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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709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7.15 10:13
조회
1,331
추천
42
글자
19쪽

87화. 노무사들의 분노(忿怒)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그러나 노고수들은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목숨을 내놓고 덤비는 일전인지라 처절할 정도로 은신술로 다가가서 거인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부상을 당해도 고요한 그들의 눈빛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중 일부는 번개처럼 허공을 박차고 뛰어올라 거인들의 허리를 길게 베기도 하고, 보호구를 착용한 틈새로 도검을 찔러 넣어 무릎과 발의 뒤꿈치 심줄을 끊어 내기도 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산화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고······.


그러다 보니 쓰러지는 거인들이 하나둘 늘어나서 어느새 반절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우리가 죽더라도 천인족을 반드시 지킬 것이다. 어서 덤벼라 이놈들!”


모두 구차스럽게 삶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악착같이 덤빈다.


하늘의 도리가 무너졌는지 주거지에 쳐들어와서 늙은 노인들을 짓밟아 죽이는 모습에, 천령대는 눈물을 흘리며 분노(忿怒)했다.


절대 나서지 말라는 노고수들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모두 전장에 뛰어들었으니!


둥둥둥~ 두둥두둥~ 둥둥둥~


“모두 적을 쳐라! 도리를 모르는 마귀들을 처단(處斷)하라!”


천령대가 뛰어들어 이미 반절이 쓰러진 거인족을 벌떼처럼 공격했다. 몇 명이 도망가려고 뒤를 향해서 뛰었지만, 후방을 차단한 오백 명의 고수들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고······.


큰소리치던 카로네는 두 발의 무릎 관절이 모두 잘려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천령대 두 사람이 양 옆에서 비호처럼 달려들어 두 팔의 힘줄마저 끊어내어 사지를 무력화시켰다.


이번에는 또 두 명이 달려들어서 번개처럼 뛰어오르더니 양쪽 눈을 통하여 뇌 속으로 검을 깊숙이 박아 넣는다.


그러자 사지를 바르르 떨다가 마침내 지옥의 문턱을 넘어가니 이제 전장에 서 있는 거인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짐승 같은 놈들!”


분노한 천령대는 부상당해 대항할 힘이 없는 거인들까지 모두 처단해서 들판에 짐승들의 먹이로 던져 버렸으니······. 짐승 같은 짓을 저지르니 시체마저 짐승 같은 대우를 받는 것 아니겠는가?


이번 전투로 돌목족의 카로네 부대 백 명이 전멸을 당했고, 천인족은 노고수 천오백 명이 종족을 위하여 장렬하게 생명을 내던지고 산화(散花)하였다.


천령대 이백 명도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가 오백여 명. 이렇게 수많은 피가 대지를 적시건만 오늘따라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천령대의 눈에는 모두 원망과 비탄의 눈물이 흘렀다.


산화한 노인들은 모두 그들을 어릴 때부터 안아 주고 귀여워하며 돌봐 준 할아버지들이 아닌가? 인간이라면 그 정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



전쟁으로 시신은 넘쳐나는데 날씨가 더워서 금방 썩기 시작했다. 오래 방치할 수 없으니 천인족은 전장 후방에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부대와 부족별 구획을 정하여 전사자가 나올 때마다 바로 땅에 매장했다. 전시라 큰 무덤을 만들고 다듬을 시간도 없으니, 땅에 평장한 뒤 그 위에 나무를 한 그루씩 심고 전사자의 명패를 달았다.


그러나 숫자가 얼마 안 남은 거인족은 전사자들 처리보다 먹고살 식량이 급한지라, 죽은 거인들을 근처에 산처럼 쌓아 놓고 쓰레기같이 방치했다.


그러자 시취가 거인족 진영까지 퍼져서 모두 코를 쥐고 다닐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냄새를 맡고 수천 마리의 갈가마귀와 독수리 떼가 날아들어서 주변을 맴돌며 눈치껏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들짐승들은 거대한 전쟁에 놀라서 모두 멀찍이 떨어져 기회만 노렸으나, 날짐승들은 무서운 줄 모르고 떼 지어 날아들었다. 쫓으면 날아올랐다가 잠시 뒤에 다시 내려앉았고.


새들이 거인들의 시신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잔인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날짐승을 먹여 살리는 자연의 섭리(攝理)였다.


어찌 보면 청소부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어차피 썩으면 흙으로 돌아갈 몸인 것을!



신수 현무는 근처에 다다라 있었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종족 간의 싸움에 신수가 무턱대고 끼어드는 것은 천리에 어긋나고, 아직은 천인족이 멸족의 위기(危機)는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삼자인 자신이 일단 나서서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순간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온 수행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음이다.


그리고 위기는 가능한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야 강해지는 법! 위기 때마다 누가 나서서 돕는다면 의존심이 생겨서 나약해지지 않겠는가?


한편, 쥬맥이 보급대를 모두 중간에서 차단하니 거인족은 죽을 맛이었다.


그렇다고 화해의 손길을 냉정하게 뿌리친 마당에 명예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먼저 머리를 숙이며 화해를 하자고 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이러다가는 모두 굶어서 죽을 판이다.


더 죽고 죽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천인족이 나섰다. 여기에 몰려온 거인들을 멸해 봐야 서로 간에 원한만 더 쌓일 것이고, 그 이유로 더 많은 수가 몰려오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차라리 화해를 요청해서 체면(體面)을

살려 주고, 종족의 위기를 넘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


한울도 천사장도 같은 생각으로 대족장들과 총대장 등을 모아 의견을 피력(披瀝)했다. 그래서 또다시 천사장이 협상을 위한 대표로 나섰다.


“그럼 내가 한 번 더 다녀오지요.”


천사장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의복을 정제한 다음 진영을 나섰는데······.


거인족 진영이 멀지 않으니 금방 그 앞에 다다랐다. 그러자 거차를 둘러 세우고 보초를 서던 초병(哨兵)의 조장이 나오더니 앞을 가로막는다.


“멈추시오! 당신은 누구요?”


[나는 천인족의 천사장이다. 너희들의 총대장을 만나러 왔다.]


“그럼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오.”


보초를 서던 초병이 나머지에게 감시를 맡기고 총총걸음으로 들어가더니 군사 챵커테를 데리고 나왔다.


[안녕하시오? 다시 보게 되는군요.]


“어서 오십시오. 오시리라 생각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막사에 들어가자 이제는 힘이 빠진 샤리네가 커다란 돌탁자에 앉아서 조금은 독기가 빠진 얼굴로 사신(使臣)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에 뵈었던 천인족의 천사장입니다. 지금쯤은 서로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어서 오시오. 나도 이렇게 천사장님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학습 효과(學習效果)인지, 샤리네는 천사장의 선어에 당황하지 않고 바로 담담하게 대답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무의미하게 아까운 목숨 죽이지 말고 화해를 합시다.]


그러자 아직도 자존심이 살아 있는지 샤리네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이렇게 멀리 원정을 와서 나더러 빈손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오?”


[삶도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데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지금 우리 종족은 당신들 때문에 반인족과의 소금 거래가 끊겨서 모두 죽게 생겼소. 그 해결이 없으면 나는 원군이 오고 있으니 그대들을 멸족시키고 반드시 소금을 확보할 것이오.”


샤리네는 어떻게든 양보(讓步)를 얻어내기 위해서 거짓으로 원군이 오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좋소. 그럼 우리가 반인족과 물물 교환하는 소금의 양을 반으로 줄이겠소. 그러면 반인족도 남는 소금을 처분해야 할 것이니 거인 부족에서 교환하면 되지 않겠소?]


“반인족과의 소금 거래를 반으로 줄이면 천인족은 어찌할 것이오?”


[우리는 이미 다른 종족과의 거래를 협의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소.]


암염(巖鹽) 얘기가 나오면 또 쟁탈전이 벌어질지 모르니 달리 둘러댔다.


“소금 문제만 해결된다면 우리도 돌아갈 의향이 있소. 확실하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이오?”


[확실하게 약속하겠소. 대신 거인족도 우리가 약속을 깨지 않는 한 향후 10년 동안은 절대 우리를 침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오.]


“좋소. 두말하지 않도록 약속을 서로 증거로 남깁시다.”


결국 천사장이 품에서 준비해 온 지필묵을 꺼내니 그 형상과 사용성에 모두 놀랐다. 천사장이 천령문으로 초안을 잡고 내용을 읽어 주자 군사 챵커테가 거인족 표기문으로 토를 달았다.


두 장을 똑같이 만들어 천사장과 샤리네가 손바닥에 먹을 묻혀 날인을 하니 화해 협상이 잘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약속을 지켜 내일 바로 회군을 하겠소. 당신들도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오. 그렇지 않으면 수만의 군사로 다시 올 것이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소. 또한 회군하는 뒤를 공격하지 않겠소.]


“좋소! 그럼 잘 가시오. 우리 다시는 보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그럼 잘 돌아가시오]


천사장이 돌아간 뒤에 샤리네는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지금 거인족의 가장 큰 문제인 소금을 자신이 해결했으니 돌아가도 체면이 선다.


전쟁에서 지고 이기는 문제보다는 거인들 전체의 삶과 직결되는 소금 문제를 해결했으니 말이다.


원군이 오고 있다고 협박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천사장은 수를 뻔히 읽으면서도 넘어가 주었고······.


이미 반인족과의 소금은 거래를 중단했으니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장기간의 평화 협정(平和協定)은 큰 효과가 없으니 십 년을 내세웠고, 그 시간이면 천인족이 일어서기에 충분한 시간!


이렇게 해서 종족의 위기로 다가왔던 큰 전쟁이 겨우 끝을 맺었다. 한편으로는 환호하면서도 그 처참한 결과에 모두 넋을 잃었지만······.


쥬맥의 백호대도 연락을 받고 회군하는 거인족과 충돌하지 않도록 그 노선에서 멀리 돌아 주거지로 복귀했다.


이번 전쟁으로 천인족은 삼만 명에 가까운 무사가 생명을 잃었고 만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특히 버팀목이 되는 초일류고수 천오백여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들 한 명당 동료들 수백 명의 목숨을 지켜 내고 의연히 산화한 것!


거인족은 일만 명이 출전하여 이천칠백 명 정도가 살아남았지만, 그중에 중상자가 구백 명이라 경상자를 포함한 온전한 사람은 천팔백 명에 지나지 않았다.


위풍당당하던 처음과는 달리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그나마 소금 문제의 해결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들은 동족들의 시신도 매장하지 않고 들판에 버리고 가니 그 근처는 삼 년 동안이나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냄새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고 나중에는 거대한 거인들의 백골만 남아서 이리저리 땅바닥을 뒹굴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이 전쟁터를 거인들의 피로 땅이 물들고 나중에는 백골만 뒹구는 곳이라 하여, ‘거혈골(巨血骨)’ 이라고 불리웠다.



거인족과의 긴 전쟁이 끝나니 벌써 초가을이 되었다.


오늘은 이번 전투에서 숨진 전사자들의 혼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리는 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으니 전사자 가족은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이 한두 명의 가족을 잃었으니 말이다.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일일이 장례를 치르겠는가? 부상자도 많고 전후(戰後) 처리도 태산 같은데······.


한 사람씩 장례를 치르기 어려우니 전장에서 즉시 공동묘지에 매장하고 그 위치만 알려 줬을 뿐이다.


그 대신에 이처럼 합동으로 위령제를 지내는 것! 그러니 장례식 대신이다.


한울도 천사장도 대신녀도 그리고 선인과 신녀들도 모두 하나같이 하얀 상복을 입었다.


종족을 지키려고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지며 산화한 삼만의 전사자들을 위하여, 모두 술을 따르고 큰절을 하면서 그들의 넋을 위로했다.


제단 아래서는 대족장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동료들과 가족 친지들이 모여서 숨죽여 오열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멸족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렇게 위령제를 올릴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한 달간 종족 전원에게 금주령이 내려졌다. 누구는 종족을 위해서 죽고 가족이 슬픔에 잠겨 있는데, 누구는 살았다고 술 먹고 투정부리는 일을 막고자 함이다.


쥬맥이 속한 비율신 대족장의 소속 부족에서는 많은 무사들이 쥬맥을 찾아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죽었다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위험(危險)을 무릅쓰고 달려와서 구해 주기를 여러 차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번에 쥬맥이 세운 공이 적지 않음에도 보돈타 대족장과 탕타로 부족장만 모른 체했다.


그러나 말에도 발이 있어서 알려질 건 알게 모르게 다 알려졌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주머니 속에 끝이 뾰족한 송곳을 넣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주머니를 뚫고 밖으로 머리는 내미는 법이다. 그러니 뛰어난 사람이라면 어찌 그와 다르랴?



지금 천인족 한울의 집무실에 한울과 천사장 그리고 대신녀가 앉아서, 앞으로의 일을 협의한 뒤 쉬면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다.


“이번 거인족과의 전투에서 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나 이 정도로 끝난 것이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처음에는 우리 종족이 멸족되는 것 아닌가 하고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한울이 먼저 말을 꺼내자 천사장도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요. 여러 가지가 우리를 도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첫째 날 모두 진기가 소진되어 막막했을 때, 쥬맥이 그 귀한 자오음양지를 아낌없이 내놓아 초일류(超一流)고수들을 회복시킨 것이 수만 명을 살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음 날 앞쪽의 방어선(防禦線)이 무너졌으면 후미에서 수만 명이 죽을 수도 있었지요. 지금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합니다.”


“그 녀석은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어린 사람이 마음 씀씀이가 현자들과 다름없어요. 다 우리 종족의 복(福)이지요.”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대신녀도 쥬맥에 대해서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지난번에 거인족의 선발대를 습격할 때도 쥬맥이 혼자서 수백 명을 해치워서 가능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도 부족의 무사들이 다치지 않게 잘 챙겨서 모두 칭찬이 자자해요.”


그러자 그 말을 한울이 받았다.


“이번 전투에서 악기로 거인들을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무공을 스스로 만드니 이제 일대종사(一代宗師)가 아니겠습니까?”


“보급품을 차단하는 유군의 일과 암염은 또 어떻구요. 쥬맥이 산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호호호!”


“적은 항상 외부보다 내부의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빨리 피는 꽃이 시기 질투(嫉妬)로 빨리 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중에 누구 하나라도 남아 있는 동안은 잘 지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울의 말에 두 사람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것이 종족을 위한 길이니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걱정 마시어요. 그 아이는 절대 단명하지 않을 거예요.”


“허허허허! 그렇다니 좀 안심이 됩니다. 잘 가꾸어서 기둥으로 삼아야지요.”


세 사람은 오랜만에 큰 걱정을 덜고 환담을 나누었다.



어느덧 전쟁이 끝난 지 한 달.


그동안 쥬맥은 부족 사람들과 함께 암염이 있는 동굴을 찾아가서 위치를 알려 주고 한동안 머물며 일도 도왔다.


그러면서 어릴 때 생활했던 대협곡과 그 주변도 둘러보았다.


마음이 아팠지만 미루의 무덤도 찾아가서 주변의 잡초를 뽑아 주었다. 심었던 나무에서는 미루처럼 예쁜 꽃이 만개해서 옛날이 더 그리울 뿐이었지만.


사람은 떠나고 없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남았다. 큰 전쟁을 치르고 나니 이제야 그날의 상처들이 아물고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용기를 내어 그동안 미뤘던 미루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미루의 아버지도 미루를 잃고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물어보지도 못하고 벙어리가 냉가슴을 앓듯이 끙끙대다가, 수만 명이 죽은 큰 재난의 고비를 넘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아직도 마음은 아프지만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면서 쥬맥의 얘기를 들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좋은 곳에 묻혔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단지 쥬맥에게 너무 미안하여 집밖에까지 따라 나오면서 연신 사죄와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딸의 죽음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짊어지고 살아온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지만, 사실 이 짐은 그가 살 수 있게 지탱해 준 기둥이 아니었던가?


쥬맥은 이제야 일이 일단락된 듯했다.



이번에 거인족과의 전쟁을 지켜본 주변의 다른 종족들은 깜짝 놀랐다.


거인족 전사가 일만 명이면 다른 종족은 오십만 명 이상이 죽어 나가는데, 천인족은 삼만여 명의 전사자만 내고 선방(善防)을 하였다고 보는 것일 터.


사실은 초일류고수층이 거의 붕괴되어 한 번만 더 들이치면 와르르 무너질 판인데, 그들은 그 내막을 모르니 외양만 보고 그리 판단하는 것이다.


자기네가 쳐서 멸족이야 시킬 수 있겠지만, 그 타격으로 자신들도 다른 종족의 먹잇감이 된다고 생각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완전한 준비 없이 섣불리 천인족과 전면전(全面戰)을 벌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분간은 천인족에 평화가 찾아올 것 같은 분위기(雰圍氣)가 형성되었다. 주변의 종족들이 모두 몸을 사리니 말이다.


* * * * *


한편, 야차족의 야신 진신챠를 처단한 마린챠 모녀는 야차족의 가장 큰 도시인 야아란에 터를 잡았다.


마린챠는 야신(夜神)이 되겠다는 야망이 없었고 미라챠는 야신이 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마린챠는 자신이 기른 전사 오만의 병력만 관장하고, 자신을 추종한 두 야얼 중에서 같은 색의 털을 가진 은모야차이면서 더 젊고 잘생긴 백수챠를 야신으로 내세웠다.


백수챠는 야심이 많은 자였고, 또 함께 마린챠를 추종한 다른 야얼은 야신이 되지 못하자 미라챠의 주변을 맴돌며, 미라챠를 정부로 끌어들여 자신이 야신이 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일인 독재(獨裁) 체제를 갖추었지만 언제 이변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야차족은 그렇게 위태한 상황 속에서도 일반 부족민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진신챠의 학정(虐政)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87화 거혈골 위치 지도.png

87화 거혈골 위치 지도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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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82화. 참혹한 전투(戰鬪) 21.07.10 1,339 42 20쪽
81 81화. 선발대와의 접전 +1 21.07.09 1,323 44 19쪽
80 80화. 거인족의 침략 21.07.08 1,341 43 20쪽
79 79화. 남은 자의 몫 +1 21.07.07 1,354 44 20쪽
78 78화. 사랑의 절규 +1 21.07.06 1,315 43 20쪽
77 77화. 불타는 것은 재를 남기고 21.07.05 1,322 45 19쪽
76 76화. 뜨겁게 타오르는 불 21.07.04 1,324 45 18쪽
75 75화. 사랑의 불씨 +1 21.07.03 1,347 46 18쪽
74 74화. 새로운 인연 +1 21.07.02 1,349 47 18쪽
73 73화. 최연소 소족장이 되다 21.07.01 1,339 45 18쪽
72 72화. 신의와의 새로운 인연 21.06.30 1,350 45 19쪽
71 71화. 점박이 별이와의 재회 21.06.29 1,337 45 18쪽
70 70화. 피 끓는 혈전 21.06.29 1,330 46 19쪽
69 69화. 백호대와 야차족의 전투 21.06.29 1,339 47 19쪽
68 68화. 백호대 대장이 되다 +1 21.06.29 1,329 46 19쪽
67 67화. 비월족과 소인족의 격돌 21.06.29 1,342 46 19쪽
66 66화. 유리의 결혼 21.06.29 1,342 47 18쪽
65 65화. 금령파와 금령신공 21.06.29 1,357 47 19쪽
64 64화. 백호제마검의 비밀 21.06.29 1,354 47 19쪽
63 63화. 마린챠 모녀의 복수 21.06.29 1,351 47 19쪽
62 62화. 새로운 출발 21.06.29 1,377 44 19쪽
61 61화. 기다리는 지혜를 배우다 21.06.29 1,349 46 19쪽
60 60화. 야차족과의 충돌 21.06.29 1,335 46 18쪽
59 59화. 길거리 생사결(生死決) 21.06.29 1,338 47 18쪽
58 58화. 영웅(英雄)이 되다 21.06.29 1,347 48 21쪽
57 57화. 비루먹은 망아지라고? 21.06.29 1,347 47 18쪽
56 56화. 영웅대회(英雄大會) 21.06.29 1,354 46 18쪽
55 55화. 선배들의 신고식 21.06.29 1,347 48 19쪽
54 54화. 의무 복무 입대 21.06.29 1,339 4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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