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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938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6.28 09:37
조회
2,012
추천
52
글자
18쪽

6화. 첫 주거지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괴물이 긴 목을 좌우로 사정없이 휘두르니 가까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커다랗고 순박해 보이는 둥근 눈에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이 한눈에 역력히 드러났고······.


비록 덩치가 크고 사나워 보이지만 겁 많은 동물임이 분명했다.


풀을 뜯어 먹는 것으로 보아서는 육식(肉食)이 아닌 초식(草食) 동물이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몰랐다.


저 두 마리만 잡아도 제법 양식이 될 법한데 문제는 어떻게 잡느냐였다.


‘저걸 어떻게 잡아?’


마침내 주위를 맴돌며 망설이던 무사 중에 두 명이 긴 도를 뽑아 들고 말을 몰아서 괴물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고삐를 풀어 주며 말 옆구리를 힘차게 걷어차니 번개처럼 내달려서 괴물(怪物)에게로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자 옆에서 접근하여 도(刀)로 목을 치려고 하는데···, 뒤에 있던 녀석이 동료의 위기를 느꼈는지 잽싸게 앞으로 내달리며 긴 목으로 후려쳤다.


이 한 방에 천령대 무사들 두 명이 말과 함께 칠 장(21m)이나 나가 떨어졌고······.


우당탕 탕탕!


죄 없는 말이 어디 뼈가 부러졌는지 일어나지 못하니, 말의 몸통에 다리가 깔린 무사들도 어디를 다쳤는지 낑낑대며 일어서지를 못했다.


그러자 몇 명이 급히 달려가서 말을 치우고 두 사람을 한쪽으로 들어냈다.


그래도 무사들이라 낙법(落法) 때문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한 명은 머리를 흔들며 일어섰고 한 명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이때 멀리서 이 모습을 본 안율이 말을 타고 급하게 달려왔다.


“우리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모두 조심하도록.”


“덩치가 너무 커서 어디를 베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식용(食用)으로 쓸 동물이라도 너무 잔인하게 죽여서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이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선을 끌면 내가 뒤에서 단번에 목의 얇은 부분을 칠 것이니 모두 준비해라.”


그 소리에 몇 명이 검과 검집을 두들기기도 하고 갑옷을 두드려서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기도 했다.


또 몇 명은 검과 창날을 번쩍거리며 말을 타고 빠르게 괴물 앞을 왔다갔다하면서 눈과 귀를 어지럽히니, 괴물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잔뜩 움츠린 모습에 커다란 두 눈은 겁먹은 표정이 역력(歷歷)했고.


이렇게 괴물이 앞쪽에 한눈을 팔 때 뒤에서 안율이 힘차게 뛰어올랐다.


“차~앗!”


말 위에서 안장을 박차고 순식간에 사 장(12m) 정도를 날아올랐다. 움켜쥔 대검에는 푸르스름한 검기(劍氣)가 맺혀서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은빛 검날이 더욱 예리한 기운을 풍겼다.


안율은 검강(劍罡)도 발현이 가능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지금 들고 있는 검이 천인족의 5대 신검(神劍) 중에 하나라서 검기만을 사용했다.


신검은 모두가 태을현철(太乙顯鐵)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떤 강철보다도 강했고 검강에도 잘리지 않았다.


아무리 단단한 금속이라도 단칼에 잘라 낸다는 철 중의 철이 바로 태을현철이다. 가장 강하면서도 가볍고 유연한 것으로 알려진 신의 금속!


그 귀한 철로 만든 청룡여의검(靑龍如意劍)이기 때문에 검에 진기를 크게 싣지 않았던 것이다.


태을현철은 워낙 융점이 높아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가공이 어렵기 때문에, 채취할 때나 검으로 가공할 때도 천인족의 5대 신수(神獸) 중 하나인 청룡(靑龍)에게 부탁하여 만든 것이다.


청룡의 뜨거운 숨결로 녹여 내어 거푸집으로 틀을 잡고, 단조(鍛造)나 열처리도 청룡의 숨결로 불어 가면서 만든 검이었다.


검날이 은빛으로 빛나지만 빛에 반사시키면 바다의 파도처럼 푸른 서광이 어려 있었다. 바로 검을 만들 때 고온의 열에 의한 흔적이었다.


지금까지 태을현철은 청룡의 숨결이나 주작의 화정(火晶)이 아니고서는 녹일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안율은 검기가 맺힌 보검으로 두 마리 중에 뒤쪽에 있는 괴물의 머리와 목이 연결되는 얇은 부위를 단숨에 쳐냈다.


그러자 두께가 세 자가 넘는 괴물의 목이 한 번에 매끄럽게 잘리면서 바닥으로 ‘쿵!’ 하고 굴러 떨어졌다.


머리 잘린 괴물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냥 서 있는데, 잘린 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 피 냄새를 맡은 다른 한 마리가 뒤돌아보더니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괴성(怪聲)을 처절하게 내질렀다.


“우~워~어~~~ 우~워~어~~~”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괴성 속에서 목이 잘린 녀석은 마치 거대한 성채가 넘어가듯이 서서히 몸체가 기울어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쿠웅!!


그 굉음에 앞쪽에 있던 녀석은 분노와 슬픔과 겁에 질린 감정이 뒤죽박죽 뒤섞인 눈빛으로 사방을 쓸어 보았다. 그러다가 안율을 발견하자 씩씩대며 그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네가 죽였으니 복수를 하겠다는 듯이.


머리를 내밀고 들이받을 것처럼 돌진해 오니 정면으로 맞설 수 없어서, 안율이 잽싸게 옆으로 뛰어나가 간신히 피했다.


그러나 애꿎게 뒤쪽에 서 있던 천령대원 한 명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머리에 들이받혀 말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바로 앞쪽에 있는 안율을 보느라 들이받으려고 달려드는 괴물을 뒤늦게 발견하여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곧 괴물의 육중한 발에 짓밟히게 생겼으니 떨어진 사람은 공포에 질려서 ‘으악~’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이에 안율이 다시 자세를 잡고 옆에서 번개처럼 뛰어들며 검으로 목을 치자, 이번에는 뎅강 잘린 목이 말에서 떨어진 사람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래도 무사라 잽싸게 피한다고 옆으로 몸을 굴렸으나 머리통이 워낙에 커서 한쪽 발을 얻어맞고 말았다.


그리고 잘린 목에서 사방으로 피가 튀니 안율도 어쩔 수 없이 전신에 붉게 피칠갑을 하고 말았고······.


그런데 이제 목은 잘렸어도 전진하던 힘이 남아 있어서, 관성(慣性)의 힘으로 밀리면서 기우뚱하고 쓰러지는 괴물의 몸통에 사람이 깔릴 판이다.


이에 두 명이 잽싸게 달려들어서 떨어진 사람을 끌어당겼다. 한순간의 차이로 ‘쿵!’ 하고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괴물의 몸체가 무너져 내렸다.


비록 큰 참사는 면했으나 말에서 떨어졌던 사람은 괴물의 머리가 다리에 떨어져서 한쪽 다리가 부러져 버렸다.


그래도 큰 화(禍)는 면한 셈이니 고통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동물들이 여기저기 사방에서 튀어나왔으나, 이미 엄청나게 큰 공룡을 두 마리나 잡은 천령대는 더 이상 살생(殺生)을 금하고 잡은 공룡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사냥 외에도 주변의 경계와 거처를 준비해야 하는 등 아직도 다른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안율은 잘려진 공룡의 머리로 다가가서 그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놀람과 분노, 그리고 공포와 겁에 질린 듯한 많은 감정을 내포한 눈을.


미처 둥근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어 있는 모습이 너무 미안하고 불쌍했다. 손으로 눈을 감겨 주며 마음속으로 가만히 속삭인다.


‘미안하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렴.’


먹을 식량을 준비한 이후부터는 일이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되었다.


“큰 하천을 중심으로 천둔산에서 내려오면 우측에 위치한 평원 쪽에 임시 주거지를 만들어라. 그래그래 그쪽!”


그곳은 제법 높은 언덕과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서 사람이 사는 마을을 만들기에 최적지(最適地)였다.


그 반대쪽에 있는 하천 건너편은 낮은 경사(傾斜)를 이루며 비교적 평평하고 너른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천 건너편은 경작하기에 좋으니 논밭으로 개간하게 그대로 두어라.”


그곳은 채소나 식량을 재배하기에 딱 좋은 땅이다. 또한 하천이 제법 넓어서 짐승 떼나 미지의 적이 공격해 와도 좋은 방어막 구실을 해줄 것이다.


“주거지 중에서 중심에 위치한 구릉 위에는 한울과 천사장, 그리고 대신녀의 임시 처소를 만들어라.”


그곳은 전체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니 전시에 종족을 지휘할 최고 수뇌부(首腦部)가 자리해야 한다.


대족장이나 부족장 등의 처소는 분할 구역별 중심에서 비교적 구역을 잘 볼 수 있는 곳을 골랐다. 안율은 이렇게 큰 줄기를 잡으며 업무를 분담시켰다.



임시 주거지에는 어느새 게르와 같은 천막집이 많이 들어섰다.


선발대로 온 인원으로는 물자나 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우선 세운 거처들은 다 지도자들이 거처(居處)할 집이었고, 일반인이나 병사들의 거처는 각자 별도로 만들어야 할 판이다.


선발대는 해가 서산에 걸리기 전에 하천에 건너다닐 수 있는 임시 다리를 만드느라 바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먼저 출발했던 비율신 대족장과 태을 선인을 필두로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태을 선인과 비율신 대족장은 임시 거주지의 위치만 확인한 뒤, 한울로부터 지시받은 천령수 위치와 환시(桓市)의 위치를 잡기 위해서 이십여 명의 무사를 데리고 바로 떠났다.


그래도 수백 명 단위로 밀려드는 사람들로 벌판은 금방 북적이었고, 선발대는 부족별로 정해진 위치를 안내하느라 바빴다.


쥬맥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신녀를 따라서 새로운 주거지로 들어섰다.


아늑한 분지 같은 들판이 눈에 들어오고, 벌써 여기저기 천막집 같은 막사가 들어섰다. 어떤 곳에는 불이 피어오르며 먹거리를 준비하기 바쁘고···.


신녀와 함께 들어선 천막에는 바닥에 흙이 드러난 채 아무것도 없이 썰렁하기만 했다. 이 정도 쉴 자리마저 없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누가 챙겨주겠는가?


“얘들아! 모두 바쁘니 우리가 지낼 곳은 우리 손으로 만들자. 자~ 어서!”


“예, 알겠습니다.”


신녀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쥬맥과 아이들은 스스로 바닥을 고르고, 돌들을 들어내고, 주변에서 마른 풀을 구해다가 푹신하게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두꺼운 천을 덮으니 그제야 사람이 사는 곳처럼 그럴듯했다.


작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서로 낯익은 친구들끼리 무리를 이루어 둘러앉았다. 쥬맥은 친구가 없으니 홀로 한쪽 구석에 앉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비바람을 막아 주는 천막이 있고 날씨가 따뜻하니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쥬맥 일행의 첫 주거지 생활은 이렇게 제 손으로 자신이 잘 잠자리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해가 서산에 걸린 뒤에야 한울과 천사장, 대신녀 일행이 도착했다.


한울은 아직 잔광(殘光)이 남아 있는 하늘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주거지를 둘러보았다.


노을빛에 물든 널따란 들판이 제법 아늑해 보인다. 마치 이제야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임시 거처이긴 하지만 좋은 곳을 고른 듯합니다. 주도가 될 환시의 위치를 빨리 정하여 제대로 된 주거지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여기에도 임시 촌을 만들고 빨리 농사를 짓게 하면 식량 걱정이 많이 줄어들 듯하군요.”


한울이 이렇게 말하자 천사장과 대신녀도 주변을 보더니 얼굴이 밝아졌다.


“예, 정말 좋아 보이네요.”


“물길과 넓은 벌판이 있어서 잠시 머물다가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군요. 둘레에 구릉이 있어서 외세로부터 지키기에도 아주 좋을 듯합니다”


두 사람 얼굴에도 오랜만에 흐뭇한 표정이 역력하고 웃음이 감돌았다.



제법 어둠이 짙어 갈 무렵에 마지막 출발했던 조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한울의 천막 안에서는 대족장급(大族長級) 이상의 지도자들 회의가 열리고 있었고, 나머지 인력은 임시 거처 준비와 음식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넓은 들에는 여기저기 모닥불이 불티를 튀기며 밝게 피어오르고, 천령대는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종족을 지키기 위해서 오백 명씩 조를 나누어 순번제로 주거지 주변을 경계하였다.


동트기 전 새벽부터 천둔산에서 출발한 이동이 이제야 겨우 막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임시 주거지를 둘러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철부지 아이들은 피곤함도 잊은 채 뭐가 그리도 좋은지 이미 어두워진 이곳저곳을 떼 지어 다니며 재잘거렸다.


그러나 쥬맥과 같이 이동해 온 고아들은 모두 힘이 빠진 우울한 모습으로 천막 안에 모여 있었는데······.


쥬맥은 아직도 공간균열의 틈새로 빠지며 울부짖던 부모님과 형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처럼 생생했다.


특히 아버지가 쥬맥을 살리기 위해서 뒤로 밀치면서, 균열 속으로 빙령을 끌어안고 떨어져 내리며 외치던 말이.


“쥬맥아! 넌 용감한 아이이니 절대 울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그 소리가 쟁쟁하게 귓가를 울리자 어린아이라 참았던 눈물이 또 흐른다.


그리운 사람들을 보고 싶은 생각에 두 손을 피가 나도록 움켜쥐었다. 어찌 그때를,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지도자들이 모인 회의에서 한울은 여러 가지를 제시(提示)하고 의견을 들었으며, 안건마다 의사를 결정하고 지시를 내렸다.


“종족의 안전과 관계된 것을 최우선 하여 경계를······. 오늘을 환시력 일 년 일월 일일 신단(천인족의 설날)으로 정하여 기념하고, 사흘간 쉬면서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취하고······. 평원 둘레에 임시 방책으로 목책을 둘러 방어력을 갖추고······.


태을 선인과 비 대족장이 천령수와 환시 위치를 찾아오는 즉시······. 안다선인은 장인들에게 비거(飛車)를 만들게 하여 이 땅의 지도를 작성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임시 주거지 목책 주변으로 주술 진법을 펼쳐 방어력을 보강하고······.


좌측 평원은 가구와 식구 수를 감안하여 부족 단위로 경작지 분할하고······. 천령대는 당분간 경계와 수렵을 통한 식량 확보를 병행하고······. 달력 등 시간 관리는 기존에 아리(峩理)별에서 사용하던 대로 임시 사용하고, 전문가들이 세부 사항을 조정하여···.”


수많은 내용들이 처리되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태산이라, 결국 삼경(三更) 초(밤11시경)가 되어서야 일을 내일로 미루고, 아직도 못 한 저녁 식사가 들어갔다.


그동안 육포나 건식 등 비상식량만 먹다가, 불로 요리한 고기를 먹으니 모두 군소리 없이 맛있게 먹었다.


비록 처음 먹어 보는 공룡 고기지만 양념해 구우니 맛이 제법 그럴듯했다.


이상할 법도 하건만 쥬맥과 고아들도 신녀들로부터 음식 그릇을 받아 들고, 슬픔도 잊은 채 주린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이렇게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은 일단락을 맺으며 막을 내렸다.


깊어 가는 밤하늘에 보석처럼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누구는 슬픔이 배인 긴 한숨을···,


누구는 희망과 기대에 부푼 설렘을···,


누구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쥬맥도 천막 한구석에 웅크리고 누웠다. 그래도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아열대(亞熱帶) 기후라서 그런지 아직도 낮의 온기가 남아 있어서 밤이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아쉽게도 아리별에서 사귀었던 친구나 형아들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모두 고향별에 남은 것일까?


비록 가족을 잃었지만 아는 친구나 형아들이 있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런 생각에 빠지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꿈속인 듯 뿌연 안개밭을 홀로 걸었다. 한쪽은 끝없는 수평선, 한쪽은 끝없는 지평선이 아득히 펼쳐진 곳을.


홀로 그 사이를 걷는데 갑자기 거대한 짐승 같은 괴수들이 멀리서 울부짖으며 다가오더니 쥬맥에게 덤벼들었다.


“으악! 쫓아오지 마!”


쥬맥은 필사적으로 들판을 향해 내달렸다. 주변 환경이 바뀌더니 이번에는 큰 바위와 나무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쥬맥의 의식은 지금이 어렴풋이 꿈속이라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괴수들이 갑자기 나타나 덤벼들면 얼른 바위나 나무로 변신하여 모습을 감췄다.


이번에는 천 길 낭떠러지 끝에 몰렸다. 쥬맥의 의식은 꿈속이니 자신의 의지대로 낭떠러지에서 날갯짓을 하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용감하게 낭떠러지를 향해서 살고자 하는 필사의 힘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면서 날개도 없는 두 손을 마치 날개처럼 푸덕거렸고 말이다.


생각같이 하늘을 새처럼 훨훨 날지는 못했지만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멀쩡했다.


그런데 이번엔 숨을 곳이 없는 넓은 벌판이다. 괴수들은 이미 등 뒤까지 쫓아왔고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곳!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숨을 곳이 없다! 작은 주먹을 움켜쥐고 절망하며 하늘을 우러렀다.


저 괴수들은 도대체 뭐 길래 나를 이렇게 끈덕지게 쫓아오는 것일까? 운명인가? 숙명인가? 삶의 굴레인가?


어린 나이에 그런 어려운 것을 알 리가 없으니 그저 엄마 아빠가 먼저 간 하늘나라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 오색의 광휘가 어리면서 두 쪽으로 천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꿈속이지만 총천연색으로 웅장하게 하늘의 문이 열리는 모습은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마침내 하늘의 문이 활짝 열리자 그 안에서 하늘을 꽉 채울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바람결에 긴 백발을 나부끼는 성스러운 젊은 여인의 모습이었고, 또 한 사람은 전신에 은빛 갑주를 걸친 위엄이 넘치는 장군의 모습이었다.


성스러워 보이는 젊은 여성이 점점 작아지면서 땅으로 내려오더니, 인간만 한 크기로 변하여 쥬맥의 옆에 섰다. 그러면서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쥬맥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다.


“하아! 이제 살았어.”


자신도 모르게 안도하는 큰 숨소리와 함께 말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하늘을 가득 채우고 떠 있는 은빛 갑주를 걸친 장군상이 너무 든든하게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을 그렇게 끈덕지게 쫓아다니던 괴수(怪獸)들이 이제는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그때 여인의 나직한 한마디가 들렸다.


“걱정 마라. 너에게는 큰 소명이 있단다.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렴.”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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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2 무림존자
    작성일
    21.07.01 14:21
    No. 1

    인드리코룡은 설마 표지에 나오는 그 공룡인가요?

    찬성: 36 | 반대: 0

  • 작성자
    Lv.28 철없는사과
    작성일
    21.08.11 17:03
    No. 2

    예지몽이군요. 귀한 이가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고
    부쩍 성장할 쥬맥이 그려지네요. 주변의 산세와
    너른평야 모든 것이 풍수는 잘 모르지만 그것을 참고한 듯..
    귀한 땅에서 귀히 보살핌을 받는 이들의 꿈이 기대됩니다.^^

    찬성: 7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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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화. 무인을 꿈꾸다 +1 21.06.29 1,501 50 18쪽
22 22화. 동굴 속의 기연(奇緣) +1 21.06.29 1,506 50 18쪽
21 21화. 새 친구 점박이 +1 21.06.29 1,482 50 18쪽
20 20화. 새로운 안식처(安息處) +1 21.06.29 1,486 49 19쪽
19 19화. 우르표범과의 조우 21.06.29 1,465 47 19쪽
18 18화. 홀로 숲에 버려진 아이 +1 21.06.29 1,469 49 18쪽
17 17화. 풍토병(風土病) +2 21.06.29 1,464 48 18쪽
16 16화. 화해협상(和解協商) +1 21.06.29 1,464 49 19쪽
15 15화. 핏물은 강이 되어 흐르고 +2 21.06.29 1,475 50 18쪽
14 14화. 협상 결렬과 힘겨루기 +2 21.06.29 1,465 50 18쪽
13 13화. 울트의 읍참마속(泣斬馬謖) +2 21.06.29 1,501 50 17쪽
12 12화. 반인족 선발대와의 전투 +2 21.06.29 1,558 50 17쪽
11 11화. 대륙지도 작성 +2 21.06.29 1,606 49 21쪽
10 10화. 비월족과 검치범 +2 21.06.29 1,615 48 19쪽
9 9화. 들개 떼의 습격 +2 21.06.28 1,690 49 18쪽
8 8화. 반인족과의 격돌(激突) +2 21.06.28 1,757 48 19쪽
7 7화. 사건의 발단(發端) +2 21.06.28 1,863 50 19쪽
» 6화. 첫 주거지 +2 21.06.28 2,013 52 18쪽
5 5화. 선인과 거인(巨人) +3 21.06.28 2,165 50 18쪽
4 4화. 거인족과의 조우(遭遇) +2 21.06.28 2,387 53 18쪽
3 3화. 천인족의 대이동(大移動) +3 21.06.28 2,640 55 18쪽
2 2화. 서장(2) 탈출(脫出) +3 21.06.28 2,835 56 19쪽
1 1화. 서장(1) 탄생(誕生) +5 21.06.28 4,656 5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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