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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경 님의 서재입니다.

건물상속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도원경]
작품등록일 :
2021.03.06 17:38
최근연재일 :
2021.04.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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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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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콩 (1)

DUMMY

제국 그룹 실장실에서 비서 김용한이 이진상에게 말했다.

“실장님. 오늘 이진호가 수능을 본다고 합니다.”

“기어이 수능을 본대?”

“예.”

“그냥 유학 가라니까. 끝까지 말을 안 듣네.”

이진상은 얼굴을 구기고 보고 있던 서류를 냅다 접었다.

“이거 다시 작성하라고 해.”

“예. 실장님.”

김 비서가 재빠르게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를 챙겼다.

“그래서? 어디 갈 거래?”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전국 1등이었습니다. 사실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실력입니다.”

이진상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팼다.

자신은 억대 과외를 받으며 힘들게 서울 중위권 대학에 입학했다.

그나마 유학을 다녀오고 나서야 체면치레를 할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서자 주제에 이진호는 머리가 너무 좋았다.

김 비서는 이진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국대 법대를 가는 게 제일 관리하기 어려울 텐데, 다행히 컴퓨터공학과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제기랄. 그게 더 문제야.”

“예?”

김 비서가 놀란 눈으로 이진상을 바라봤다.

이진상은 얼굴을 구긴 채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킹덤 타워가 보였다.

“할아버지가 한국대 컴퓨터공학과 나오셨다고. 그 자식이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오면 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시겠어?”

“이만복 회장님께서는 이진호를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생판 모르고 살다가 이 년 전에 집에 들어왔으니까. 내가 진짜 그때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화가 나서 벌떡벌떡 일어난다고.”

이진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 비서는 이진상의 기분을 바꾸기 위해 다른 말을 꺼냈다.

“그래도 이번 타워링 시스템 일로 이만복 회장님의 눈에 드시지 않았습니까?”

타워링 시스템이란 말이 나오자 깊게 패었던 미간의 주름이 풀어졌다.

천재민에게 된통 당하고 오히려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당한 이진상은 작전상 일 보 후퇴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호재가 터졌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만 상속인이 타워링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전 세계에 보도된 것이다.

제국 그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언론 플레이를 했고, 졸지에 제국 그룹이 앞서서 타워링 시스템을 지키는 듯한 모양새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걸로 할아버지께 점수 좀 땄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타워링 시스템이고 뭐고 벌써 다 밀어버렸을 거야.”

이진상은 킹덤 타워 보안센터가 고작 스무 살의 애송이에게 발렸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우선 10년 계약을 채우고 나중에 생각하시죠.”

“그래야지. 당분간은 나도 뭘 어쩔 생각이 없어. 그나저나 이진호 걔가 문제네. 결과 나오면 나한테 바로 알려.”

“예. 알겠습니다.”


***


수능을 마치고 킹덤 타워로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푹 잤다.

무려 12시간을 자고 일어나자 디오티마가 기다렸단 듯이 말을 꺼냈다.

[상속인. 축하합니다. 수능 만점자가 되셨군요.]

‘어? 정말? 그게 벌써 떴어?’

디오티마는 답변 대신 내 머릿속에 텔레비전 영상을 전송했다.

[유달리 어려웠던 올해 수능 때문에 수험생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또한 예년보다 만점자도 1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

‘오. 그럼, 나만 만점인 거야? 와. 대박이다.’

[상속인. 필은 11살에 MIT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그 정도로 기뻐하면 안 됩니다.]

‘알아. 하지만 좋은 걸 어떻게 하라고.’

나는 너무 기뻐서 하늘을 날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똘똘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비록 인기 있는 학과가 아니었지만 서연대도 내 실력으로 붙지 않았던가.

[상속인. 그만 웃고 준비하세요.]

‘응? 뭘 준비해?’

[이제 시험이 끝났으니 나와 함께 제대로 공부할 시간입니다.]

‘아 맞다. 그랬지.’

디오티마의 눈치를 살피던 내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오늘은 놀면 안 돼? 드디어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났는데 바로 공부하라니 너무하다.’

[상속인. 계약서를 꺼낼까요? 상속인은 계약을 이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누가 기계 아니랄까 봐. 참 차갑게도 말한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나는 입이 댓 발은 나와서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


재수학원에 플래카드가 걸렸다.

[축하. 수능 만점자 천재민]

그동안 학원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투룡팸이 학원에 나타났다.

수능이 끝나고 물건을 정리하러 온 것이다.

김민용과 박진용은 재수학원의 반을 가린 플래카드를 못 보고 건물로 들어갔다.

김민용이 박진용에게 말했다.

“역시 재수는 하는 게 아니었어. 작년보다 점수가 더 개판이야.”

“재수가 문제가 아니라 올해가 유독 어려웠어. 왜 하필 우리가 재수할 때 난이도를 높인 거야? 진짜 짜증 나네.”

투룡팸은 둘 다 수능시험을 망하고 얼굴이 죽상이었다.

“야. 근데 천재민 걔는 어떻게 됐을까? A반 이야기 들어보니까 걔 꽤 한다던데?”

“꽤 하면 뭐할 거야? 작년에도 걔 서연대 붙어놓고 돈 없어서 등록 못 했어.”

“그래도 우리 학원 다닐 정도면 돈 좀 있는 거 아냐? 우리 학원 비싸잖아.”

“아. 씨발. 돈 이야기 좀 그만해. 집에만 가면 엄마가 학원비랑 과외비 이야기해서 짜증 나 죽겠다고.”

투룡팸은 사물함에서 그들의 물건을 꺼내 밖으로 1층으로 내려왔다.

그때 1층의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24시간 교육 방송만 나오는 텔레비전이었기에 투룡팸은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옮겼다.

뉴스에서는 올해의 수능 만점자와 함께 인터뷰 중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눈에 익었다.

“천재민?”

“저거 천재민 맞아?”

투룡팸은 들고 있던 물건을 내팽개치고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갔다.

[올해 수능이 어려워서 만점자가 천재민 군 한 명입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리포터의 질문에 천재민이 생글생글 웃으며 답했다.

[저는 올해가 특히 어려웠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떨지 않고 평소에 하던 대로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거 같아요.]

[겸손하시네요. 혹시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과 과가 어딘지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한국대 컴퓨터공학과에 지원하려고 합니다.]

천재민의 입에서 한국대란 말이 나오자 투룡팸의 얼굴이 썩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시발’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평창동 고급 주택의 이 층에서 텔레비전으로 천재민의 인터뷰를 보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이진호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전국 1등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던 이진호는 처음으로 2등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이진호는 수학에서 한 문제를 틀렸다.

‘아. 저 인터뷰는 내가 해야 했는데.’

이진호는 울상이 된 채 텔레비전을 껐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앞자리에 앉은 천재민을 보고 놀라서 재 실력이 안 나온 것 같다.

‘어제 정말 어려웠는데 무슨 20분 만에 다 풀고 잠을 자냐? 걔 진짜 천재 아냐?’

이진호는 이번 수능을 잘 봐서 그동안 그를 무시하던 형 누나에게 본때를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등이 된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고작 한 문제밖에 안 틀렸다고 해도 1등이 아니면 소용없다.

지금도 봐라.

만점자는 저렇게 인터뷰를 하는데 1개 틀린 나는 이렇게 집에 처박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진호는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한편, 같은 시간 대전의 한 부동산에서도 누군가 천재민의 인터뷰를 보고 놀라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천재민의 작은아버지 천재용이었다.

건물을 보러 부동산에 왔던 천재용은 텔레비전 안에서 환히 웃는 천재민을 보고 입을 쩍하고 벌렸다.

“저 새끼가 왜 저기서 나와?”

천재민의 아래에 대문짝만하게 수능 만점자란 자막이 적혀 있었다.

“수능 만점이라고?”

놀란 천재용은 부동산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왔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핸드폰이 아니라 이럴 때만 쓰려고 장만한 대포폰을 든 천재용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끝나고 누군가 전화를 받자 천재용이 다짜고짜 물었다.

“진 사장. 재민이가 킹덤 타워 상속받았다는 게 진짜였어?”

[이게 누구야? 천 사장이야? 지금 뉴스 보고 전화하는 거지?]

“빨리 말해봐. 킹덤 타워 상속받은 거 진짜였냐고?”

[내가 진짜라고 그럴 땐 죽어도 안 믿더니. 이제야 믿는 거야?]

“누구한테 상속받았는데?”

[친척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때 다른 사람 얼굴 못 봤어?”

[못 봤어. 그건 그렇고 건물 옥상에 누수가 있던데.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매매 시에 누수 같은 큰 결함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천재용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원을 끈 대포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천재용은 고민했다.

‘킹덤 타워라. 킹덤 타워.’

이내 천재용의 얼굴에 악마 같은 눈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


나는 지금 한국대 컴퓨터공학과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수능 만점자인 나는 안심하고 원서를 넣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석으로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했다.

오리엔테이션 장 안으로 들어가는데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우리 과 대박 난 거 들었어?”

“무슨 대박 말이야?”

“수능 만점자랑 1개 틀린 사람 둘 다 컴퓨터공학과에 붙었대.”

“컴공 인기 떨어진 지가 언젠데 웬일이래?”

“지도 컴공 들어와 놓고 그게 무슨 망발이냐?”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우리야 공돌이 체질이니까 그런 거잖아. 이 점수에 왜 법대나 의대 안 가냐고 다들 뭐라고 했다고.”

“하긴 우리 엄마도 그랬다.”

수다를 떠는 신입생들을 제치고 말끔한 세미 정장을 빼입은 누군가 지나갔다.

제국 그룹의 막내 이진호였다.

오리엔테이션 장에 들어간 이진호는 빈자리가 없는지 눈으로 훑었다.

그때 한가운데 섬처럼 앉아 있는 천재민이 보였다.

수능 만점자인 천재민을 알아본 다른 신입생들이 그의 곁을 피했고 혼자만 섬이 된 것이다.

이진호는 천재민을 한번 쳐다보고는 당당하게 그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고 이진호는 내내 천재민을 살폈다.

천재민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신입생의 모습이었다.

졸리거나 지루해서 어쩔 줄 모르고 중간중간 졸다가 놀라서 깨고.

이진호는 그런 천재민을 보고 묘하게 동질감을 느꼈다.

이럴 거면 왜 쓸데없이 사람들을 모아놓은 건지 의심이 드는 오리엔테이션이 드디어 끝났다.

이진호는 허탈한 마음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냥 메일로 알리면 되지. 오리엔테이션은 왜 하는 거야?’

이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오리엔테이션 장을 빠져나갔다.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납골묘에 들르기로 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한국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차도 돌려보냈다.

납골묘에 간다는 게 알려지면 또 한 소리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자마자 문자가 들어왔다.

[김 비서입니다. 실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 오후 4시까지 킹덤 타워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문자는 정중해 보였으나 내 일정은 묻지도 않고 오라면 와야 한다는 태도였다.

이진호는 문자를 읽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쁜 새끼들. 왜 오라는 거야?’

이진호는 결국 지하철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자리에 앉은 이진호는 화를 삼키려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때 그의 옆자리가 누군가 앉았다.

옆자리에 누군가 옆에 앉자 이진호의 눈이 잠시 떠졌다.

‘어? 천재민?’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천재민이었다.

천재민을 보고 놀란 이진호는 합죽이가 되었다.

천재민은 핸드폰으로 뭔가를 찾아보고 있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뭐지? 우연인가?’

이윽고 열차가 킹덤 타워 근처 역에 도착하자 이진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천재민도 같이 일어선다.

‘뭐야? 여기서 내린다고?’

이진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열차 밖으로 나갔다.

이진호는 왠지 기분이 이상해서 천재민보다 빠른 걸음으로 킹덤 타워로 향했다.

킹덤 타워에 들어온 이진호는 입주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제 없겠지?’

그제야 편한 얼굴이 되어 뒤를 돌아본 이진호가 깜짝 놀랐다.

바로 등 뒤에 천재민이 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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