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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경 님의 서재입니다.

건물상속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도원경]
작품등록일 :
2021.03.06 17:38
최근연재일 :
2021.04.09 0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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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029

작성
21.03.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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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어제와 다른 나 (1)

DUMMY

“해킹 데이터는 모두 삭제했습니다. 시스템 로그뿐만 아니라 전기계통 변경이력까지 모두 리셋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전문가가 와도 절대 흔적을 찾지 못할 겁니다.”

보안팀 에이스 박주찬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박주찬은 보안센터장인 김도윤보다 월등히 실력이 좋다고 소문난 인물이다.

그때 보안팀 막내 하용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속인이 시스템실에서 나왔습니다. 방금 최윤건 변호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고 합니다.”

박주찬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급한 회의 때문에 이진상은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었지만,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 최윤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혹시 필 그레이브 씨와 아시는 사이였어요? 어떻게 타워링 시스템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죠?”

“아. 그거요.”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내 머릿속에 필 그레이브의 뇌가 칩으로 박혀 있다고 말하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그건 뭡니까?”

최윤건은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노트북을 보며 물었다.

“서버실에서 가지고 왔어요.”

“아. 기억이 나네요. 그거 필 그레이브 씨가 사용하던 겁니다. 저도 본 적이 있어요.”

“예. 저도 압니다.”

내가 들고 있는 노트북에는 디오티마가 챙겨준 타워링 시스템의 해킹 정보가 모두 들어 있다.

“그런데 천재민 씨. 혹시 맘이 바뀐 겁니까? 타워링 시스템 안 팔 거예요?”

“예. 안 팔아요.”

내 단호한 대답에 최윤건 변호사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어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까 보니 제국에서 준비를 많이 해 왔더군요. 타워링 시스템을 안 판다고 버티면 피해보상건으로 소송을 건다고 할지도 몰라요. 제국 그룹 법률팀이 소송으로 사람 피를 말려 죽이는데 일가견이 있거든요. 잘못하면 천재민 씨가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최윤건 변호사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말했다.

나는 그런 최윤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지요.”

“예?”

“피해보상은 아마 제국 그룹이 해줘야 할 겁니다.”


***


보안센터로 돌아온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를 반기는 제국 사람들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내가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이 법률팀 팀장이 최윤건 변호사를 잡고 물고 늘어졌다.

역시나 손해배상 이야기였다.

나는 최윤건 변호사에게 눈짓하고는 이내 이진상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이진상은 자리에 없고 시설관리센터장 박성춘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도 눈이 있다.

나는 박성춘과 똑같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계약서 18조 3항은 확인하셨나요?”

내가 계약서를 운운하자 최윤건 변호사와 대화 중이던 법률팀 팀장이 쪼르르 달려와 수백 장이나 되는 계약서 문건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18조 3항이 대체 무슨 문제라는 겁니까?”

이렇게 기를 죽이고 시작하는 건가?

나는 내 시야를 가리는 계약서를 한곳으로 치우며 말했다.

“뭐 이렇게 계약서를 다 뽑아 오셨나요? 프린터 잉크 아깝게.”

내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법률팀 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8조 3항은 타워링 시스템의 불법적인 접근과 조작이 포착된 경우, 그 피해에 맞는 손해 해상을 시행하거나 최악의 경우, 계약을 파기한다 입니다.”

내 입에서 계약서 내용이 술술 흘러나오자 법률팀 팀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베테랑답게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물었다.

“증거가 있습니까? 불법적인 조작과 해킹에 대한 증거 말입니다. 우리는 있는 거 같은데요.”

법률팀 팀장이 말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안팀 박주찬이 자료를 들고 나타났다.

그가 내게 건넨 자료는 꽤 흥미로웠다.

킹덤 타워의 서버 구성도였기 때문이다.

내가 한참 서버 구성도를 살펴보고 있는데 박주찬이 내게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보겠어요?”

당연히 알아보지. 지금 뭐라는 거야?

“타워링 시스템은 폐쇄망으로 구축이 되어있어요. 폐쇄망을 뚫고 들어가서 해킹하려면 액세스 로그가 다 남는다고요. 눈밭에 도둑놈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국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을 갓 졸업한 패기 있는 엔지니어는 나를 어린애 취급하고 있다.

“이걸 보면 알겠지만, 그 시각에 타워링 시스템에 접근한 액세스 로그가 없어요. 혹시나 누군가 서버에 들어가서 로그를 일부러 지우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아닙니다. 서버에서 실행된 프로그램 흔적도 없습니다. 한번 살펴보시죠.”

박주찬이 내 눈앞에 노트북을 들이밀었다.

노트북에는 서버에 연결된 터미널이 띄어져 있었다.

모두가 나를 대학도 못 간 편돌이라고 알고 있기에 이런 기술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여긴 것 같다.

디오티마가 준 데이터가 없었으면 꼼짝없이 당하는 거였구나.

눈 뜨고 코 베일 뻔했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필의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에는 디오티마가 준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타워링 시스템은 자체 블랙박스를 가지고 있다.

서버의 모든 사항을 블랙박스에 기록한다.

액세스 로그도 마찬가지다.

엔지니어가 강제로 지운다고 해도 블랙박스에 남겨진 데이터까지는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이걸 어떻게 보여줄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칩이 박힌 오른쪽 머리가 지끈거렸다.

순간 내 머릿속에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이걸 쉽게 보여줄 순 없지.

나는 노트북의 터미널을 열고 명령어를 입력했다.

$ phil

그러자 필 그레이브가 만든 해킹 툴이 떴다.

해킹 툴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다니.

필 그레이브는 괴짜다.

잠시 고민하자 내 머릿속에 해킹 툴의 사용법이 떠올랐다.

나는 해킹 툴을 마치 내가 만든 것처럼 손쉽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내가 쉴 새 없이 타자를 치자 제국 사람들이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박주찬이 나를 보고 이죽거리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인터넷 검색하나 보죠?”

나는 박주찬의 말을 씹고 할 일을 했다.

다 끝났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엔터키를 쳤다.

그러자 보안센터 회의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대형 모니터에 블랙박스의 자료들이 떴다.

“명색이 보안센터인데 보안이 허술하네요. 너무 쉽게 뚫리는 거 아닙니까?”

보안센터장 김도윤은 보안실이 뚫리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놀란 것은 박주찬이었다.

자신이 깨끗하게 지웠다고 자신했던 로그가 블랙박스에 모두 남아 있던 것이다.

“타워링 시스템에는 자체적인 블랙박스가 있습니다. 건물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기록하죠. 데이터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로그를 지웠다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들어온 순간 블랙박스에 모든 게 남습니다.”

나는 말을 하면서도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눌렀다.

내가 이렇게 멀티가 되는 사람이었던가?

내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출 때마다 오른쪽 머리의 전뇌칩이 박힌 곳이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하는 제국 그룹 사람들에게 2차 충격을 가했다.

“보안센터 메인 서버 확인해 보세요. 흔적이 남아 있는지.”

“뭐요?”

박주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내가 해킹한 흔적이 남지 않게 지웠다고요. 눈밭에 난 도둑놈 발자국이라고 말해야 알아듣습니까?”

“말도 안 돼. 이렇게 빨리요?”

박주찬은 거의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한 게 아니라 필이 만든 해킹 툴이 흔적을 지운 것이다.

물론 사용법을 기억해 낸 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트북을 닫은 내가 일어섰다.

“18조 3항에 따른 손해배상은 여기 계신 최 변호사님과 상의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내가 일어서자 최윤건 변호사가 따라 일어섰다.

그는 흥분한 얼굴로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이봐요. 이대로 간다고요?”

법률팀 팀장이 사색이 돼서 나를 막았다.

“제가 바빠서요.”

“어딜 가는데요?”

“편의점에 갑니다. 알바비 받아야 하거든요.”


***


나는 지금 최윤건 변호사의 차를 타고 한강 다리 위를 달리고 있다.

최윤건 변호사는 방금 있었던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떠들었다.

“대체 천재민 씨 당신 정체가 뭡니까? 혹시 필 그레이브 씨가 대한민국에 정착하려고 했던 게 헤어진 가족을 찾아서였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천재민 씨가 필 그레이브 씨 동생 아니냐고요.”

“설마요. 그럴 리가요.”

내 머릿속에 필 형님이 있긴 한데 가족은 아닙니다.

나도 내가 한 일이 우스운지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원래 무시당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필 형님은 그렇지 않나 보다.

아까 킹덤 타워에서 사람들이 나를 찍어누르려고 하니까 팍하고 숨어있던 필의 성격이 튀어나왔다.

이게 바로 사이다구나 싶었다.

필 형님 정도나 되니까 그렇게 막 나갈 수 있겠지.

왠지 UFC 세계 챔피언이 우리 형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흥분을 감추고 있는데 최윤건 변호사가 조용히 물었다.

“천재민 씨. 그럼, 타워링 시스템은 안 파실 거죠?”

“예. 안 팔 겁니다. 그리고 아예 시스템 실로 이사도 할 거예요.”

“거기서 사시게요?”

“계약서 보니까 130층을 킹덤 타워에서 내준 게 아니라 필 그레이브 씨 소유더군요. 제국 건설은 처음부터 서버실을 그렇게 높은 곳에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죠. 100층부터는 정말 초고가 아파트만 들어가 있으니까요.”

제국 건설은 타워링 시스템을 40층 보안센터의 한쪽 구역에 배정해 줬다.

하지만 필 그레이브는 자신이 분양받은 130층을 통으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집주인이 그렇게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필 그레이브 씨는 진짜 대단한 사람 같아요.”

“제가 보기엔 천재민 씨도 대단합니다.”

“제가요?”

나는 놀란 얼굴로 최윤건 변호사를 바라봤다.

“저는 필 그레이브 씨와 안 지 얼마 안 됐지만, 천재민 씨를 보니까 필 그레이브 씨가 자꾸 떠오릅니다. 이상하죠? 두 분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천재민 씨를 보면 정말로 필 그레이브 씨와 이야기 하는 거 같아요.”

“천재와 비슷하다고 해주시니 저야 감사하죠.”

“사실 제가 무료로 인권 변호 일도 하고 있습니다. 필 그레이브 씨와 처음 만났을 때도 그 일 때문에 양해를 구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그랬거든요. 그때 그레이브 씨가 피해자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뚝딱 프로그램을 만들더니 경찰도 찾지 못한 증거를 바로 찾아주시더군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역시 필 형님이시구나.

필 형님이 천재적인 두뇌를 활용해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마구마구 뛰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게 바로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 대단한 분이셨던 그레이브 씨의 마지막 역작인 타워링 시스템이 제국 그룹 같은 곳에 팔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나는 최윤건 변호사가 왜 처음부터 타워링 시스템을 팔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때 차가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무려 석 달 만에 내가 살던 동네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차에서 내려 최윤건 변호사에게 말했다.

“이사하고 연락드릴게요. 130층에서 집들이해요.”

“그거 좋지요. 손해배상 건은 제가 제국 그룹과 잘 협의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우습지만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잘 해결해 주세요. 킹덤 타워에 살면서 계속 얼굴 마주칠 건데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이미 이진상 실장한테는 찍히셨을 겁니다.”

“하. 뭐. 그건 어쩔 수 없죠.”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조만간 연락드릴게요.”

“예. 변호사님. 조심히 가세요.”

나는 최윤건 변호사의 차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나는 석 달 전 이곳을 나올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다.

수중에 돈은 한 푼도 없었으나 서버실에서 들고나온 필 형님의 노트북이 있다.

편의점 알바비 받고, 원룸 보증금 빼서 돌아가자.

킹덤 타워 130층으로.

결심을 굳힌 나는 편의점 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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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 머릿속의 이방인 +3 21.03.22 4,880 9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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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재의 유산 +3 21.03.20 5,173 93 13쪽
3 유산을 상속받으셨습니다 21.03.19 5,311 93 12쪽
2 갑질당하는 청춘 21.03.19 5,532 96 13쪽
1 프롤로그: 건물상속자 +2 21.03.19 5,888 8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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