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도원경 님의 서재입니다.

건물상속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도원경]
작품등록일 :
2021.03.06 17:38
최근연재일 :
2021.04.09 09: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01,800
추천수 :
2,108
글자수 :
130,029

작성
21.03.27 09:00
조회
4,502
추천
93
글자
12쪽

넌 키가 172, 난 아이큐가 172

DUMMY

강남 재수학원에 도착한 나는 폼나는 검정 세단에서 내렸다.

디오티마가 시간이 금이라며 수능시험까지 타고 다니라고 계약해준 렌터카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를 위해 기사까지 딸려줬다.

“감사합니다. 이따 끝날 때 다시 와 주세요.”

“예. 공부 열심히 하세요.”

기사는 나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아 진짜. 적응 안 된다.

석 달 전만 해도 내가 이렇게 다시 대학 수능시험을 준비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새 가방을 메고 룰루랄라 재수학원으로 들어갔다.

학원을 등록한다니까 직원이 너무 늦지 않았냐며 걱정을 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쿨하게 등록비를 냈다.

수업은 바로 오늘부터 들어도 된다고 했다.

강의실에 가보니 이른 아침부터 자습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자리는 고정석이었고, 늦게 등록한 나는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1층 서점에서 구매한 참고서를 꺼내 책상 위에 펼친 나는 그 위에 내 이름을 썼다.


[천재민]


나는 원래 내 이름에 불만이 많았다.

다들 내 이름을 들으면 너 머리 좋아? 라고 물어봤기 때문이다.

내가 멍청하진 않지만, 천재는 아니다.

과거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얼굴이 굳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왜냐면 나는 천재니까.

디오티마는 내 머리가 동기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는데 당사자인 나는 알 수 있다.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필 형님의 천재성이 꿈들 대고 있었다.

참고서에 내 이름을 다 쓰고 제일 먼저 수학 참고서를 펼쳤다.

전형적인 문과 출신 수포자인 내가 수학 참고서를 먼저 펼치다니 놀랄 일이다.

진도표와 함께 보니 참고서의 앞부분은 패스해야 한다.

상관없다. 어차피 앞부분은 너무 쉬워서 보기만 해도 지루하다.

오늘 수업 예정인 참고서의 뒷장을 펼쳤는데 예상대로 너무 쉬웠다.

필 형님은 머리를 식힐 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거나 논문을 보던 분이시다.

수학 논문을 취미로 보던 분에게 고삼 수학이 웬 말이냐?

나는 수학 참고서를 접고 이제는 영어 참고서를 펼쳤다.

영어도 볼 게 없다.

3살 때 미국에 입양 가서 영어만 쓰던 사람이 필 형님이다.

참고서 한쪽 면에 꽉 찬 영어지문이 술술 읽혔다.

디오티마에게 한국 대학교에 갈 거라고 큰소리는 치긴 했지만, 고작 몇 개월 공부해서 갈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암기 과목만 조금 파면 당장 다음 달이라도 시험을 볼 수 있을거 같다.

그때 조용하던 강의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저게 누구야?

김민용이랑 박진용이잖아.

조용한 강의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내 고등학교 동창인 김민용과 박진용이었다.

일명 투룡팸이라 불리던 번동 고등학교의 문제아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와. 고생해서 대학 갔는데 다시 수능 준비하려니 미치겠다.”

김민용의 불만 섞인 말에 박진용도 한마디 했다.

“시발. 너희 엄마나 우리 엄마나 인서울 아니면 대학 아니라잖아. 진짜 짜증 나.”

김민용과 박진용은 부잣집 자식들로 고액과외를 받고도 원하는 대학에서 떨어졌다.

이름 없는 지방대에 붙었다고 들었는데 재수하네.

김민용과 박진용은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한참을 욕을 하며 떠들었다.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다른 학생들이 그들이 시끄럽게 떠들자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순간 김민용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아. 되게 유세 떠네.”

조용히 해달라고 했던 학생은 김민용의 기세에 눌려 입을 닫고 고개를 숙였다.

“야. 그냥 우리가 나가자.”

“시발.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김민용과 박진용이 시발시발 거리며 강의실을 나가자 그제야 강의실이 다시 고요해졌다.

내가 이래서 투룡팸을 싫어한다.

일진은 아니었지만, 수업 분위기 흐리고 얘들한테 막말하던 놈들이 걔들이다.

그때 1교시가 시작되고 강의실에 강사가 들어왔다.

투룡팸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그들의 자리에는 주인 없는 책가방만이 놓여 있었다.


***


킹덤 타워에서의 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아마도 내가 재수학원에 다녀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낮에는 재수학원에서 입시 준비를 하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디오티마와 함께 IT 공부를 했다.

재수학원에 다닌 지 딱 일주일째가 되자 깨달았다.

필은 IT 영역에서만 천재가 아니라 다른 분야도 천재인 것 같다.

나는 너무 빠르게 진도를 따라가는 나 자신에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오늘 지난 1년 동안 고생하며 수능을 준비한 친구들을 제치고 모의고사 1등을 했다.

지금 당장 수능을 봐도 한국대에 합격할 수 있을 거다.

한국대 뿐일까. 수석 입학도 문제없다.


나는 그날도 검정 세단을 타고 재수학원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재민 학생. 공부 열심히 해.”

“예. 아저씨도 운전 조심하세요.”

차가 사라지자 가방을 들쳐메고 재수학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강의실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야. 천재민.”

내 이름이 불리자마자 나는 돌덩이가 되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를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민용과 박진용이었다.

요 며칠간 학원에 안 나타난다 싶었더니 여기서 만나네.

“진짜 천재민이네. 야 박진용. 내 말이 맞지?”

“와. 김민용 눈썰미 좋네. 얘를 어떻게 알아봤어?”

김민용과 박진용은 기분 나쁜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야. 천재민. 너 여기 왜 왔어? 네가 재수할 리는 없고. 너 여기서 알바하냐?”

나는 화를 꾹 참고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여기 수강생이야.”

“무슨 소리야? 너 대학 못가잖아.”

박진용이 나를 보여 이죽거렸다.

“박진용. 뭔 소리야. 천재민이 왜 대학을 못 가?”

“기억 안 나? 우리 반에 돈이 없어서 대학 진학 못 한 애 있다고 했잖아. 걔가 얘야.”

“아. 걔가 천재민이었어? 몰랐네.”

김민용과 박진용은 내 앞에서 실례가 되는 이야기를 큰 소리로 떠들었다.

나는 그들과 더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내가 그냥 그들을 지나쳐 가려는데 김민용이 내 팔을 잡았다.

“야. 천재민. 너 진짜로 여기 등록했어?”

“응.”

“왜?”

“왜긴 대학 가려고.”

“너 여기가 얼마나 비싼 재수학원인 줄 알고는 있냐? 강남에서 제일 유명한 재수학원이야. 수준이 안되는 애들은 돈이 있어도 등록 못 해.”

김민용. 너는 나이를 한살이나 먹어도 변한 게 없구나.

나는 김민용을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 서연대 붙었었어. 너보다 공부 잘했다고. 오히려 네가 이 학원에 다니는 게 신기한데?”

“이게 어디서 까불어. 너 지난번에도 돈 없어서 대학 못 갔잖아.”

김민용과 박진용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강의실 복도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어느새 주위에 강의실로 향하던 학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평소에도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김민용과 박진용을 알아보고 혀를 찼다.

하지만 그들이 문제아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어느 하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들이 쌍으로 사람을 괴롭히네.

나는 원래 나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다.

고등학교 때도 이렇게 투룡팸이 건드리면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느냐란 마인드로 넘기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머릿속에 입주한 이방인인 필 형님이 평화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분이란 거다.

필 형님이 내 뇌를 주도하며 말을 내뱉었다.

“야. 너희 둘 다 키 172지?”

내가 김민용과 박진용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나는 고등학교 삼 년 내내 10센티씩 커서 지금 키가 186센티다.

나와 투룡팸의 키는 10센티가 넘게 차이가 난다.

내가 키를 들먹이자 김민용과 박진용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지금 그들은 무려 10센티짜리 깔창을 끼고 서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이 새끼가 막 나가네. 야. 쭈구리. 어디서 키를 들먹여?”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쭈구리다.

김민용 네가 나를 그 별명으로 제일 많이 불렀었지.

천재민이 쭈구리였을지언정 필 그레이브는 쭈구리로 살아온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평생을 천재라고 추앙받으며 살았던 필에 빙의해 한마디를 내뱉었다.

“너희들은 키가 172잖아. 난 아이큐가 172야. 그러니까 짜져 있어.”

“이. 이 새끼가.”

“야. 너 지금 그 말 취소해.”

김민용과 박진용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주위에 모여든 학생들도 모두 내 말을 듣고 피식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재수학원에 왔으면 공부나 해. 또 시험 못 봐서 삼수하지 말고.”

나는 이 말을 끝으로 투룡팸을 제치고 당당하게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투룡팸의 분노하는 소리가 강의실 안까지 들리는 듯싶었다.

쪽이 제대로 팔린 투룡팸은 그날 이후로 재수학원에 다시 오지 않았다.


***


그날 밤, 집에 돌아온 내가 디오티마를 보자마자 물었다.

‘디오티마. 나 궁금한 게 있어.’

[말해보세요. 뭐가 궁금하죠? 어제 배운 게 헷갈리나요?]

‘필 형님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어?’

[상속인은 필을 만나본 적이 있지 않나요?]

‘한번 본 게 다야.’

[그때 어땠나요?]

‘강렬했지. 태어나서 그런 사람은 처음 봤어. 온몸에서 자신감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그런 사람 말이야. 심지어 키도 크고 잘생기고 멋지기까지 했어.’

[잘 보셨어요. 필은 그런 사람이 맞습니다. 잘난 사람이고,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요.]

‘쳇. 너무 우상화하는 거 아니야?’

[나는 사실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뿐입니다.]

디오티마는 필의 이야기를 하며 목소리에서 그리운 감정이 뚝뚝 묻어났다.

기계인데도 그리움을 느끼나?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디오티마한테 필 형님은 어떤 존재였어?’

[필은 나를 만든 사람이죠.]

‘그게 다야? 디오티마는 여성형 인공지능이라고 했잖아. 필 형님한테 다른 감정은 없었어?’

디오티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디오티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죠?]

‘뭐야? 밀당하는 거야? 빨리 알려 줘.’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속인이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응? 그게 뭔 소리야?’

[빨리 타워링 시스템을 해킹하고 나를 꺼내달란 말입니다. 이렇게 잡담할 시간이 없어요. 상속인.]

참나. 찡찡대는 AI라니.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조금만 참아. 몇 달만 지나면 수능이야. 대학만 가봐. 내가 너 꼭 풀어준다.’

[대학이나 붙으세요.]


***


드디어 고대하던 수능 날이 다가왔다.

나는 오늘로 마지막인 렌터카 기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했다.

“시험 잘 치고 나올게요.”

“밀려 쓰지 말고 공부한 만큼만.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잘 보고 나오세요.”

“고마워요. 아저씨.”

기사의 배웅을 받으며 시험을 보는 교실로 들어간 나는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었다.

떨려서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이 시험을 못 보면 무덤에서 쉬고 계신 필 형님이 무슨 일이라며 무덤을 깨고 나올지도 모른다.

그냥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시험지를 받은 나는 우선 천천히 문제를 훑었다.

나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지만 예년보다는 어려운 것 같았다.

요 몇 년간 너무 쉬워서 수능 변별력이 없다고 떠들어대더니 이렇게 난이도를 높였구나.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나는 웃으며 문제를 풀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20분 뒤, 문제를 다 풀고 기입까지 끝낸 내가 책상 위에 엎어졌다.

뇌를 쓰면 휴식을 취하라는 것이 평소 필 형님의 지론이었다.

그때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수험생은 문제를 다 풀고 엎어진 나를 보고 당황했다.

그는 다름 아닌 제국 그룹의 서자이자 막내인 이진호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건물상속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리메이크 공지 23.09.18 266 0 -
공지 연재 주기에 관한 공지입니다 +4 21.04.08 1,422 0 -
24 사기꾼 잡는 기술 (1) +6 21.04.09 2,576 78 12쪽
23 날파리 +1 21.04.08 2,671 87 13쪽
22 스타트업의 희망 +3 21.04.07 2,837 74 12쪽
21 친구 찬스 +1 21.04.06 3,013 83 12쪽
20 재벌 서자 FLEX +2 21.04.05 3,301 88 13쪽
19 대기업 갑질 +2 21.04.04 3,547 87 13쪽
18 하늘을 나는 조력자 +2 21.04.03 3,769 82 12쪽
17 0.1초 승부 +1 21.04.02 3,646 89 13쪽
16 TEAM KOREA +2 21.04.01 3,881 81 13쪽
15 made by 회장님 +3 21.03.31 4,058 84 13쪽
14 서버룸의 행방 +4 21.03.30 4,392 86 13쪽
13 콩 (2) +3 21.03.29 4,462 92 12쪽
12 콩 (1) +2 21.03.28 4,489 84 12쪽
» 넌 키가 172, 난 아이큐가 172 +1 21.03.27 4,503 93 12쪽
10 계약 +2 21.03.26 4,658 86 13쪽
9 어제와 다른 나 (2) +3 21.03.25 4,579 92 13쪽
8 어제와 다른 나 (1) +1 21.03.24 4,842 90 12쪽
7 디오티마 (부제: 삼장법사) +5 21.03.23 4,877 94 12쪽
6 내 머릿속의 이방인 +3 21.03.22 4,882 93 13쪽
5 해킹 +2 21.03.21 4,844 96 13쪽
4 천재의 유산 +3 21.03.20 5,178 93 13쪽
3 유산을 상속받으셨습니다 21.03.19 5,316 93 12쪽
2 갑질당하는 청춘 21.03.19 5,540 96 13쪽
1 프롤로그: 건물상속자 +2 21.03.19 5,900 87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