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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경 님의 서재입니다.

건물상속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도원경]
작품등록일 :
2021.03.06 17:38
최근연재일 :
2021.04.09 09: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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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029

작성
21.03.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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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어제와 다른 나 (2)

DUMMY

편의점에는 사장 아들이 앉아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반가웠다.

무려 석 달 만에 다시 보는 거다.

사장 아들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나를 처음에는 못 알아보다가 내가 카운터로 다가오자 그제야 나를 알아보고 놀랐다.

“야. 너 아침 타임이지?”

천재민이란 이름이 떡하니 있는데 아침 타임이 웬 말이냐?

“안녕하셨어요? 문규 형님.”

내가 깍듯이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자 사장 아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왔어? 네가 갑자기 그만둬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이틀이나 8시간 넘게 일했다고.”

사장 아들은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할 말을 했다.

“못 받은 알바비 받으러 왔는데요.”

“난 그런 이야기 못 들었는데?”

“그럼, 지금 사장님께 전화해 보시던가요.”

사장 아들은 나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더니 그제야 핸드폰을 들었다.

“저는 잠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을게요.”

나는 노트북을 들고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내가 노트북으로 쉴 새 없이 타자를 치는 동안 사장 아들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아침 타임 알바 말이야. 걔 왔어.”

[누구?]

“석 달 전에 유산 상속받고 사라진 걔 있잖아. 걔가 알바비 받으러 왔다고.”

[아. 재민이. 어때? 정말 부자 돼서 나타났어?]

“부자는 무슨. 거지꼴에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왔어.”

[대체 뭐지? 분명 유산을 상속받았다고 했는데.]

“암튼 빨리 와 봐. 알바비 받으러 왔대.”

[뭔 알바비야? 지가 갑자기 그만둬서 우리가 얼마나 피해가 막심했는데. 그 자식 거기에 있어?]

“응.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 하는데?”

[잠깐 기다려봐. 나 지금 복덕방이니까 금방 갈게.]

“응. 아빠.”


***


한참 필이 만든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있던 나는 편의점 사장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야. 천재민.”

“사장님?”

나는 예의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야. 너 알바비 받으러 왔다고 했어?”

“예. 우선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나는 프로그램이 끝난걸 확인하고 웃으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씩씩거리며 사장이 함께 따라 들어왔다.

나는 당당하게 카운터로 가서 사장 아들에게 말했다.

“CCTV 좀 열어봅시다.”

“뭐?”

내가 카운터 뒤에 매달린 CCTV를 바라보자 사장 아들이 이게 무슨 일인지 싶어 눈을 똥그랗게 떴다.

뒤늦게 들어온 사장이 나를 보며 한소리를 했다.

“CCTV 까보자고? 이게 진짜 나랑 해보겠다는 거야? 야. 문규야. 그거 CCTV에서 USB 뽑아.”

“아빠. 뭐 하려는 거야?”

사장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뚱히 서 있자 사장이 카운터에 들어가 CCTV에서 USB를 꺼냈다.

“재민이 너 알바비 받으러 왔다고 했지?”

“제 일당인데 당연히 받아야지요.”

“너 지난번에 나한테 한 이야기 기억나?”

나는 평소에 기억력이 좋지 않았는데 필 형님의 두뇌 맛을 보더니, 기억력까지 좋아진 듯싶었다.

내 머릿속에는 석 달 전 했던 말이 그대로 떠올랐다.

“예. 기억나요. 이참에 CCTV 뒤져보고 누가 돈 훔쳐 갔는지 확인해 보자고 했죠. 저는 바로 이분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내가 사장 아들을 가리키자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너 내가 CCTV 확인해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경찰 부른다고 했어? 안 했어?”

“우선 CCTV 먼저 확인해 보고요.”

나는 USB를 사장의 손에서 빼앗아 노트북 단자에 밀어 넣었다.

내가 알기로 편의점에 설치한 CCTV는 석 달간 내용이 저장된다.

지금 이 작은 USB 안에 석 달간의 카운터 상황이 모두 녹화되어 있다.

나는 필이 만든 영상 분석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엔터를 쳤다.

“뭐 하는 거야?”

“돈 훔치는 장면 찾는데요.”

“뭐라고?”

필이 만든 영상 분석 프로그램은 찾고자 하는 영상의 패턴을 입력해 손쉽게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바깥의 의자에 앉아 돈을 빼내서 주머니에 넣는 영상의 패턴을 만들고 있었다.

오차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 찾을 수 있을 거다.

얼마 전에 설치한 CCTV가 꽤 고화질이고 필이 만든 프로그램이니까.

“야. 너 지금 CCTV 영상 밀어버리려는 거지? 그거 당장 꺼내.”

사장이 USB를 꺼내려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영롱한 알람음이 노트북 스피커에서 들렸다.

‘띠링.’

찾았다.

사장은 씩씩거리며 내 노트북을 뺏으려다가 수상한 소리에 멈칫했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지난 3개월이 고스란히 녹화된 USB에서 무려 14개의 패턴이 검출됐다.

거의 한 주에 한 번씩 금고를 털었나 보다.

나는 다가오는 사장의 얼굴에 노트북 모니터를 들이밀고 첫 번째 검출된 구간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사장의 눈앞에 CCTV 영상이 펼쳐졌다.

CCTV 속에는 자기 아들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사장은 다가오던 발걸음을 멈추고 영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장 아들도 놀란 눈으로 영상을 지켜봤다.

영상 속의 남자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금고로 손을 옮겼다.

금고가 열리자 능숙하게 몇만 원을 꺼낸 사장 아들이 돈을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금고를 닫았다.

나는 굳어버린 사장과 사장 아들의 얼굴을 확인한 후 말했다.

“이런 영상이 14개나 있던데. 더 볼까요?”

내가 영상을 재생하려고 손을 움직이자 사장이 외쳤다.

“됐어. 원하는 게 뭐야? 알바비 달라는 거지?”

“예. 지난달 알바비랑 그동안 안 준 주휴수당도 주세요.”

“주휴수당?”

“그거 달라고 하니까.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죠?”

“지금 장난해? 편의점 일이 얼마나 된다고? 그냥 앉아서 손님 오면 계산만 하면 되잖아. 시급 주는 것도 아까워 죽겠구먼. 무슨 주휴수당이야?”

“여기 학교도 많고, 학원가잖아요.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제가 물건 정리도 다 하고 재고 정리도 다 했잖아요.”

“그것도 안 하면 돈 받지 말아야지.”

“그럼, 사장님 아들은 돈 받지 말아야겠네요.”

나는 말을 마치며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속의 사장 아들은 이번에도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더니 금고에서 돈을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사장은 이 모습을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며 아들을 쳐다봤다.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당당히 카운터로 걸어 들어가 금고를 열었다.

오늘이 알바비 나가는 날인지 금고에 현금다발이 들어 있었다.

나는 못 받은 알바비와 주휴수당을 챙기고 금고를 닫았다.

“그럼, 저는 갈게요. 번창하세요.”

내가 편의점에서 나서자 뒤에서 사장이 아들을 향해 욕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


원룸 건물에 도착한 나는 감회가 새로웠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물려받았던 내 건물.

지금은 비록 내 소유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되찾고 말 거다.

내 꿈이 더는 헛된 망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살던 원룸에는 포스트잇이 잔뜩 붙여져 있었다.

간단히 ‘6월 월세 밀렸음.’에서 시작한 포스트잇은 마지막에는 ‘9월에 강제 철거 예정’이라는 최종 경고가 붙어 있었다.

지금이 9월인데.

설마 벌써 철거한 건 아니겠지?

나는 놀란 눈으로 다급하게 원룸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었다.

다행히 방은 지난 석 달 전 내가 이 방문을 나섰던 그대로였다.

그동안 월세가 안 나갔나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고작 석 달 동안 비워둔 건데도 불구하고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다.

문도 꽉 닫아놨는데 이 먼지들은 어디서 생긴 걸까?

나는 꼭 가져가야 하는 물건만 챙겼다.

시스템실 주거공간에 웬만한 건 다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 앨범과 부모님이 생전에 쓰시던 물건이 든 상자를 제일 먼저 챙겼다.

옷장을 열자 몇 벌 없는 내 낡은 옷이 보였다.

나는 원래 작은 편에 속했는데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일 년에 10센티미터씩 키가 자랐다.

그래서 부모님이 생전에 살아 계셨을 때 사주셨던 옷은 입지도 못하고 버렸고, 내가 산 싸구려 옷만 옷장에 걸려 있었다.

다 버리고 새로 사자.

어차피 안 맞을 거야.

나는 원룸 건물 옆에 있는 슈퍼로 가서 쓰레기봉투를 사 와서 그 안에 버릴 것들을 모두 담았다.

재활용해야 할 물건들과 쓰레기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데 마침 위층으로 올라가는 집주인과 마주쳤다.

집주인은 나를 보자마자 쌍욕을 퍼부었다.

“이 새끼가 월세 안 내고 야반도주하는 거야?”

“무슨 야반도주예요. 이렇게 날이 밝은데.”

“어디서 말대답이야? 내가 없을 때 도망치려던 거잖아.”

“보증금 받아야 하는데 왜 내가 도망을 가요? 오늘 짐 뺄 테니까 보증금 돌려줘요.”

“짐 뺀다고?”

“월세 안 올려주면 한 달 안에 짐 빼라면서요. 난 그 돈 내고 여기 못살아요. 그러니까 보증금 돌려주세요.”

집주인은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어디 다른 곳이라도 구했나 보지?”

“갈 데가 생겼어요.”

“어디야? 이 근처는 아닐 테고. 설마 저기 위쪽의 버스가 직각으로 다니는 산동네인가 보지?”

“그러고 보니 높은 곳으로 이사를 하긴 하네요.”

“쳇. 결국은 작은아버지 찾는 거 포기했나 봐.”

집주인이 나를 향해 이죽거렸다.

디오티마가 도와준다고 했다.

내 유산을 팔고 도망간 작은 아버지는 반드시 잡을 거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삼키며 말했다.

“보증금은 제가 월세 보내는 그 계좌로 쏴주세요. 오늘 짐 모두 뺄 테니 바로 쏴주셔야 합니다.”

“넉 달 치 월세는 빼고 보낼 거야.”

“예. 알겠습니다.”

나는 나를 노려보는 집주인을 뒤로하고 쓰레기를 처리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내가 부른 택배 기사가 도착했다.

나 혼자 물건들을 들고 가기 힘들 거 같아서 나머지는 택배로 킹덤 타워에 붙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택배 기사와 함께 4층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집주인은 아직도 떠나지 않고 내 원룸 안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살피고 있었다.

깔끔하게 치워진 원룸은 꼬투리 잡을 게 하나도 없었다.

언젠가는 다시 찾을 내 건물이라고 생각하고 깨끗하게 썼기 때문이다.

“뭐 하세요? 비켜주세요.”

“어. 그래. 청소는 잘하고 살았군.”

나는 미리 챙겨둔 박스를 택배기사에게 건넸다.

“여기 주소예요. 여기로 배달해 주세요.”

내가 내민 종이를 받은 택배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주소 맞는 거예요?”

“예. 맞습니다.”

“대박. 정말 킹덤 타워로 가는 거예요? 심지어 130층?”

“예. 맞아요.”

“오. 킹덤 타워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아싸.”

택배 기사는 킹덤 타워라는 말에 흥분했다.

건축 기간만 7년이었으니 서울 사람 중 킹덤 타워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130층이면 완전 펜트하우스네요. 거기 131, 132층은 전망대잖아요.”

“예. 펜트하우스 맞습니다.”

택배 기사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계속 물었다.

“거기 사세요?”

“앞으로 거기 살 겁니다.”

“와. 대박.”

그때 곁에서 듣고 있던 집주인이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네가 왜 킹덤 타워에 사는데? 지금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머리에 웬 붕대를 감고 왔나 했더니. 역시 돌았구먼.”

집주인은 나를 대놓고 무시했다.

그런데 그때 내 머릿속에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집주인을 바라보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저 유산 상속받았어요.”

“유산 상속? 또 받았다고?”

“예. 좋은 일을 하니까 하늘이 복을 내려주더라고요.”

“거. 거짓말하지 마.”

“제가 돌아가면 펜트하우스에서 셀카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나는 택배 기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같이 내려가요.”

“예. 그래요.”

택배 기사는 이 광경이 신기한지 입을 씰룩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원룸 방을 나서는 나의 뒤통수가 따가웠다.

집주인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나 몰래 이 건물을 팔고 사라진 작은 아버지와 집주인은 둘도 없는 친구다.

집주인은 분명 작은아버지와 연락하고 있을 거다.

내가 킹덤 타워를 상속받았다는 이야기가 내 작은아버지 귀에 꼭 들어갔으면 한다.

미끼를 물어라.

디오티마의 도움 없이도 내 손으로 작은아버지를 잡고 싶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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