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i****** 님의 서재입니다.

불의 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piedbleu
작품등록일 :
2015.04.06 21:49
최근연재일 :
2015.05.23 23: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40,776
추천수 :
1,024
글자수 :
490,880

작성
15.05.23 23:00
조회
622
추천
6
글자
18쪽

<외전> 17세(完)

DUMMY

10월 19일. 이 날도 하늘은 푸르고 꽃은 향기로웠다. 안다렐이 탑에서 세미나를 열기로 한 날이었다. 급하게 잡힌 일정이었지만 안다렐의 명성이 높았기에 많은 마법사들이 세미나 참석을 위해 탑을 방문했다.

안다렐과 약속-혹은 선전포고-한 대로 제이드도 왔다. 쓰리 피스 정장 차림이었다.


“저게 또 누굴 조지려고.”


맏제자를 마중 나온 리노스가 중얼거렸다. 레나는 오빠의 정강이를 걷어차기 위해 발을 움찔거리다가, 흙이 묻으면 옷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동생 앞에서 체통을 지키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알렌은 왜 데려왔어?”


제이드는 열세 살짜리 막내 남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집에 혼자 놔두면 빌라드 집사가 괴롭히거든.”

“무슨 소리야?”

“열세 살짜리한테 결재를 받으려고 든다니까. 아무리 부재시 대행이지만?”


알렌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야 형님께 가져가면 한번에 통과되는 게 없으니까 그렇지요.”

“뭘 제대로 해 와야 결재를 해주지. 결국 내가 다 하잖아. 오히려 편할 텐데.”


그럴 리가 있나.

저게 제자이기 망정이지, 절대 저런 놈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리노스는 아까 떠올렸던 질문을 꺼내 놓았다.


“웬 정장 차림이야? 어딘가에 정성스럽게 격파해줄 적수가 나타났냐?”

“어쩌면 그렇게 저를 잘 아십니까.”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그는 레나에게 손짓했다.


“레미나스, 이리 와.”


레나가 투덜거렸다.


“같이 앉지는 않을 거야.”

“내가 부끄럽냐?”

“조금?”

“그거 유감스러운데.”

“세미나 장소는 왜 바뀌었어?”

“나중에 설명해 주지.”


그는 한 손은 알렌의 어깨에, 다른 손은 레나의 어깨에 얹은 채 세미나 장으로 들어갔다. 과연 레나는 종달새가 날아가듯이 자기 친구들에게로 뛰어가 버렸다.

그래서 비게 된 그의 한쪽 옆자리에 처음 보는 소년이 와서 앉았다. 붉은 머리에 적갈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었다.


“로엔 라피트 백작 각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미르주 라이탄센이라고 합니다.”

“탑의 학생인가? 반가워.”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딱딱한 얼굴의 안다렐이 단상에 올라 주제를 발표했다. 주제는 ‘시간과 마법’이었다. 어려운 주제였다.

마법의 가장 유명하고도 확고한 공리 중 하나. 시간은 우리 영혼의 바깥에서 지배하는 힘.

따라서 마법으로 시간을 구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안다렐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발제를 진행했다. 나이가 사십대 중반인데도 목소리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연륜이 배어 절제되고 중후하기까지 한 열정이었다.

제이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생각했다. 흥미로운데. 인정해 주고 싶을 정도야. 책잡을 구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엉터리 아닙니까?”


옆자리의 소년이 중얼거렸다. 제이드는 조금 놀랐다. 나한테 말한 건가?


“엉터리까진 아닌데.”

“설명을 요구하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질문을 해보면 되겠군.”


안다렐이 1차 발제를 끝내고 질문 있느냐고 묻자 누군가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금발 소년, 티로였다.


“안다렐 님, 마법과 시간이 별개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사실 모든 것이 시간의 영향 아래 있지 않습니까? 마법이 시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과, 마법과 시간을 분리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까?”


안다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본적인 질문이군. 좋은 질문이다.”


탑의 학생들이 감탄의 눈으로 티로를 바라보았다.


“마법은 전과 후를 다르게 만들며, 사물의 흐름을 바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력은 결국 흩어지고, 마법 역시 시간 속에 사라진다. 시간이야말로 진정으로 전과 후를 다르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개념적으로 시간과 마법을 분리하지 않으면 혼란이 일어난다. 이론과 실재(實在)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때로는 일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제이드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맞는 말이지만, 좀더 정치(精緻)할 수 있을 텐데.” 그러자 미르주가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제이드는 소년의 얼굴에서 일종의 갈망을 읽었다.

당신이 박살낸 정객과 마법사가 한두 명이 아니라며?

저 사람도 깨부숴 줘!

제이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붉은색 머리칼도 적갈색 눈동자도 판에 박은 듯이 안다렐과 똑같았다.


그때 다른 소년이 일어났다. 목의 화상 흉터가 세미나장의 불빛 아래 한층 강조되어 보였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설과 통제 변인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선언과 논리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일치될 수 없는 경우입니까, 아니면 일치시키지 않은 경우입니까?”


안다렐은 눈에 이채를 띠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뭔가?”

“시르첸 클레이스라고 합니다.”

“클레이스 군, 답변하자면, 일종의 모형과 관련한 것이다. 마법이라는 현상의 전체 체계는 속속들이 파악되어 있지 않다. 일개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할 때는 하나의 모형을 마음속에 가지는 수밖에 없다. 마법사가 창조한 모형 안에서 시간의 존재는 배제된다. 배제될 수밖에 없다. 실재에서 시간에 손댈 수 없는 이상 내부 모형에서는 전제부터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설명이 되었나?”


레나가 곧바로 손을 들었다. 세미나는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안다렐 님, 저도 질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안다렐 님의 저서를 읽어보았고, 시간의 흐름이 배제된 모형의 이론을 주장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것은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전과 후를 다르게 하는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마법을 위해 모형을 구상하는 순간 모형은 변화의 상을 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미 시간의 개념이 개재된 것이 아닐까요?”


안다렐은 두 손을 맞잡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크렐라인에는 훌륭한 동량들이 많군. 숙녀분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가. 누구의 제자인가?”

“레미나스 라피트입니다. 리노스 그리슬란 님의 제자입니다.”


그러자 안다렐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레나를 노려보았다. 제이드에게 쫓겨난 일이 기억나는 모양이었다.

이 광경을 보며 제이드는 또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속도 좁지.” 자기도 뒤끝이 남아서 여기까지 쫓아왔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미르주가 안다렐과 똑같은 눈빛을 불태우며 그에게 말했다.


“각하께선 반박하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쟤네들이 잘 하고 있잖아. 역시 내 동생이야.”


미르주는 레나와 시르첸을 노려보았다.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세미나는 오후 늦게야 끝났다. 안젤리나는 원장실에서 작은 모임을 소집했다. 가문의 체면을 생각하느라, 혹은 무심한 천성 탓에 제이드는 탑에 자주 들르지 않았다. 안젤리나는 그를 반쯤 자기 제자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또 가장 좋은 차를 준비하여 그를 대접했다.


“자주 좀 들러요.”

“자주 들르고 있습니다만.”


리노스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향이 좋았다.


“그건 네 생각이고.”

“선생님이야말로 왜 로엔 이피스엔 얼씬도 안 하시는지요?”

“너랑 마주칠까봐.”

“저 왜 이렇게 인심을 잃었나요?”


레나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몰라서 묻나 봐.”


리노스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레나가 너랑 똑같은 짓을 한다. 가출하고 싶어.”


그는 아직 서른여섯 살이었다. 제자가 둘이나 딸리고 나니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다. 맏제자는 완전히 독립하긴 했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였다. 안젤리나는 미소 지었다.


“그런 게 행복이죠.”

“그건 원장님 생각이고요......”


갑자기 레나가 탁자를 탕 두들기며 관심을 요구했다. 어른들의 대화가 재미없어 딴생각을 하던 알렌과 메이즈가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 얼마 전에 일대 사건을 겪었어!”

“뭔데?”

“들어봐. 탑에 날 짝사랑하는 남자애가 있는데, 꽃씨 사러 같이 가자고 유혹하길래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섰지. 그런데 얘네들이 작당해서 사람까지 써 가며 나한테서 점수를 따려고 하더라고? 수법이 너무 고전적이라 넘어가 주기도 민망했어. 공주님 구하는 기사 이야길 너무 많이 읽었나 봐.”


레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안젤리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다치지는 않았나요?”


레나가 대꾸했다.


“뭐 다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걔넨 다 내 마음속에서 끝장이야.”


제이드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너 좋다는 남자애도 있어?”

“그게 오빠라는 사람이 할 말이야? 나를 뭘로 보는 거야? 게다가 그런 걸 묻기보단 안젤리나 원장님처럼 날 걱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뭐 멀쩡해 보이는데. 난 너 시집도 못갈 줄 알고. 그걸 걱정했는데.”


리노스가 웃어 댔다. 그는 탑에서 레나의 인기를 잘 알고 있었다.


“레나는 골라잡아 갈걸. 너나 잘해.”

“제가 왜요.”


열세 살밖에 안 되었지만 사리는 분명한 알렌이 끼어들었다.


“형님은 혼담이 들어오면 분쇄기에 갈아버리십니다.”

“대체 왜 그러고 사냐.”


레나는 두 손을 휘휘 저으며 화제를 다시 자신에게로 돌렸다.


“더 들어봐. 그렇게 웃기지도 않은 촌극이 끝나고 이번엔 실제상황이 벌어졌어. 진짜 불량배들이 나타났단 말야. 이렇게 날 붙잡고 끌고 가려고 했다니까.”


이번엔 모두 놀랐다. 리노스가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백주 대낮에 그런 일이 벌어졌단 말이야?”

“벌어졌다니까요! 순간 얼마나 당황했는데. 좀 무섭기도 했고요.”


거기까지도 누군가의 음모일 거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했다. 제이드가 천천히 팔짱을 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치지는 않았는데,”


레나가 극적인 어조로 말을 이으려는데 마침 창밖이 소란해졌다. 모두 반사적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탑의 정원이 펼쳐져 있었고, 정원과 탑의 앞마당을 구분하는 담장이 높이 솟아 있었다. 그 담장 아래로 소년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세 명은 쫓아가고, 한 명은 달아나고.

쫓아가는 소년들 중 금발 소년은 울먹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치고 있었다. 다른 한 소년이 거기 맞장구를 치는 듯했다. 붉은 머리칼의 미르주가 가장 크고 가장 분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거기 서! 이 건방진 자식아! 사람 무시하지 말란 말이야!”


시르첸은 억울했다. 사정을 어느 정도 짐작하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게 다 그 파란 눈의 계집애 때문이다. 걔한테 잘 보이자고 멍청한 계획을 세웠다 실패한 게 나 때문인가. 걔를 골려주려다 실패한 놈은 그게 잘한 일인 줄 아는 건가. 세미나에서 주목을 받아 보려다가 묻힌 건 내 잘못인가. 팔자 편한 놈들. 병신 같은 놈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그야말로 비호같은 속도로 뛰어갔다. 세 소년은 헐떡거리며 겨우 그를 쫓아갔다. 시르첸은 담장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추격자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그는 좁은 담장 위를 달려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아, 세미나에서 본 학생이군. 시르첸 클레이스라고 했던가?”


제이드의 혼잣말에 안젤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생이죠. 마르가트의 제자랍니다.”

“탑에 두기보다는 기사 학교에 넣는 게 어떻습니까?”


시르첸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제이드는 휘파람을 불었다. 이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단한데요.”


안젤리나는 미소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마법사로서의 재능도 출중합니다.”


티로와 아넨다, 미르주는 숨을 몰아쉬며 담장 아래 멈춰 섰다. 제길, 다람쥐 같은 놈. 왜 저렇게 잘 뛰는 거야. 자기들이 꾸민 계획들이 다 그 녀석 좋은 일만 시킨 것 같기도 했거니와,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를 녀석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한 방 먹여 주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비겁하게 도망가다니!”


아넨다가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겁쟁이 자식아!”


외로운 메아리가 들려왔다. 겁쟁이 자식아, 자식아, 자식아......


“제길, 돌아가자.”


미르주가 이를 갈며 돌아설 때, 저편 담장 위에서 탁탁탁탁 되돌아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시르첸은 도망쳤을 때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와 담장 위에서 뛰어내렸다. 검은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는 17세였다.


“지지배배 말만 많은 새 새끼 같은 자식들아, 덤비든지!”


정말로 사람 패는 게 습관인지 시르첸의 눈과 주먹은 자연스럽게 최단거리를 탐색했다. 세 소년들은 위협을 느끼며 그를 노려보았다.


“여자애나 괴롭히는 놈들 주제에 뭐라고? 닥치고 차례대로 덤비든지 다같이 덤비든지 마음대로 해!”


창밖으로 이러한 광경을 내려다보던 레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리노스가 눈치 빠르게 이를 알아차렸다.


“저기서 말하는 여자애가 너냐?”

“그런...... 그런 것 같은데요.”


메이즈가 어린애다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와, 낭만적이다.”


레나가 발끈하여 반박했다.


“쟤는 낭만적인 거하고 거리가 멀어! 입은 험하고! 성질은 더럽고!”


이번에는 제이드가 물었다.


“저 애가 구해줬어?”

“그, 그렇지.”


세 소년이 선뜻 덤비지 못하자 시르첸은 입가에 가소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왜, 겁나나?”


그가 주먹을 내리자 세 소년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사실 일반인과 싸우는 건 반칙이었다. 시르첸은 어린 나이에 용병 일을 하며 2년이나 현장에서 구르다 온 경력자였다. 싸움의 기술에 능통할 뿐 아니라 싸움의 완급을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주먹을 쥐고 적수들을 노려보자 이번에는 그 얼굴들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피라미 새끼들. 시르첸은 다시 담장 위로 뛰어올랐다.


“다들 꺼져버려.”


그는 웃음기 없는 웃음을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다분히 자기 과시적인 웃음이었다.

소년은 다시 담장 위를 달려 저편으로 사라졌다. 웃음소리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마지막에는 진짜 웃음이었다.






다음날은 드디어 안젤리나가 기대하던 꽃놀이 날이었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정원의 리시안셔스 꽃은 안타까울 정도로 힘껏, 활짝 피어났다.

정원에 여러 개의 테이블이 놓였고, 새하얀 테이블 보 위에 샌드위치와 음료수들이 준비되었다. 탑에 틀어박혀 있던 마법사들도 제법 많이 나왔다. 간만에 시끌시끌한 풍경을 바라보며 안젤리나는 기쁨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좀 사람 사는 모양새군요.”


그녀의 테이블에는 어제의 구성원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안젤리나가 붙잡아서 제이드는 집에 못 갔다. 알렌은 꽃향기와 탑의 자유로운 공기에 마음이 산란해져 앉았다 일어났다 집중을 하지 못했다.


“알렌, 메이즈랑 놀다 와.”


알렌은 큰형에게 원망의 시선을 던졌다. 돌봐 주는 건지, 방임하는 건지.


“아무한테나 떠맡기지 마세요.”


제이드는 피식 웃고는 안젤리나에게 말했다.


“어제 그 학생은 안 보이는데요. 클레이스 군이요.”

“안 나왔나 보네요.”

“어디 있을까요? 동생을 구해줬다는데 제가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메이즈가 종종걸음으로 시르첸을 부르러 갔다. 리노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어젠 무슨 바람이 불어서 조용했냐? 누구 하나 끝장내려는 거 아니었어? 난 그게 안다렐 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이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박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리노스는 감격하여 맏제자를 바라보았다.


“너 이 놈 철들었구나.”


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예요?”


안젤리나는 애매한 웃음으로 사실을 숨겼다. 미르주 라이탄센은 안다렐의 사생아였다. 안다렐은 이 아들을 보러 반년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크렐라인에 오곤 했다. 죄의식 때문에 아들의 말은 다 들어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참 닮은 부자지간이지.


시르첸이 불려 왔다. 놀랍게도 마르가트와 함께였다. 모두 일어나서 마르가트를 맞이했다. 그녀는 웃는 듯 마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합석했다.


“마르가트 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클레이스 군, 반갑네. 나는 레미나스의 오빠 되는 사람인데 며칠 전 이야기를 들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은데.”

“별 것 아닙니다.”

“세미나에서도 인상적이었고.”


시르첸은 그제야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레나가 끼어들었다.


“그래. 날카로운 지적이었어. 비록 내 질문이 더 훌륭했지만.”

“너는 책을 읽었잖아.”

“내가 더 오래 공부했거든.”

“그것도 자랑인가?”

“그 후 안다렐 님의 책 안 읽어 봤어? 마법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오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오지 않거나 할 뿐이라는* 이야기? 모형 내의 시간에 대하여도?”

“유감이지만 아직 읽어 보지 못했어. 그런데 그 말은 시간의 격차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부정하는 게 아니라 격차 없음을 가정하는 거야.”


또 논쟁이 시작되었다. 모두 흥미진진하게 이를 지켜보았다. 싸우고 또 싸우다가 이 시선들을 느꼈는지 시르첸이 대화를 중단했다.


“이따가 다시 얘기해.”

“좋아. 밥이나 먹고 해.”

“밥이 어디 있어.”

“샌드위치 많아.”

“샌드위치 싫은데.”

“그럼 내가 맛있는 집 알아.”


둘은 일어나서 함께 어디론가 걸어가 버렸다.


제이드는 세상에 희한한 꼴을 다 본다는 표정으로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쟤네 뭔데?”


리노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계집애 키워 봤자 아무 소용없어.”


안젤리나는 허리를 꺾으며 깔깔 웃었다. 한바탕 웃은 끝에 그녀는 마르가트에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탑을 세우길 정말 잘한 것 같아.”


마르가트는 그저 미소로 이에 답했다.

리시안셔스 꽃송이들이 나를 보라는 듯, 불타오르듯 화려하게 피어나는 가을날이었다.





* 알베르 카뮈, 에세이집 ‘안과 겉’ 재출간 서문 中

'예술에 있어서는 모두가 동시에 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오지 않든지 할 뿐'


작가의말

잘~됐으면~좋겠다~ㅋㅋㅋ


‘불의 춤’ <외전> ‘17세’ 끝났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방영
    작성일
    15.07.16 13:54
    No. 1

    하악 수고하셨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i******
    작성일
    15.07.16 21:36
    No. 2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맛있는거 사줄께
    올라 가자 올라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의 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완결의 변> +10 15.05.17 797 0 -
» <외전> 17세(完) +2 15.05.23 623 6 18쪽
96 <외전> 17세 +2 15.05.23 336 5 12쪽
95 <외전> 17세 +2 15.05.23 449 5 16쪽
94 <외전> 17세 +2 15.05.23 607 6 14쪽
93 #27. 선택(完) +2 15.05.23 607 9 3쪽
92 #27. 선택 +2 15.05.23 564 8 9쪽
91 #26. 최후의 칼날 +2 15.05.23 508 8 9쪽
90 #26. 최후의 칼날 +2 15.05.23 526 8 9쪽
89 #25. 전쟁터의 소녀 +2 15.05.23 422 8 6쪽
88 #25. 전쟁터의 소녀 +2 15.05.22 304 7 9쪽
87 #25. 전쟁터의 소녀 +2 15.05.22 564 9 7쪽
86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2 542 8 11쪽
85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2 540 9 12쪽
84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1 560 9 11쪽
83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1 527 8 9쪽
82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1 552 11 13쪽
81 #23. 순회 +2 15.05.21 609 8 13쪽
80 #23. 순회 +2 15.05.20 480 7 16쪽
79 #23. 순회 +2 15.05.20 529 9 15쪽
78 #23. 순회 +2 15.05.20 561 9 8쪽
77 #22. Farewell +4 15.05.20 458 9 10쪽
76 #22. Farewell +2 15.05.19 441 9 11쪽
75 #22. Farewell +2 15.05.19 488 9 7쪽
74 #21. 재반격 +2 15.05.19 510 9 10쪽
73 #21. 반격 +2 15.05.19 592 8 6쪽
72 #21. 공격 +2 15.05.18 503 7 8쪽
71 #20. 마법사가 먼저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2 15.05.18 546 9 8쪽
70 #20. 마법사가 먼저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2 15.05.18 504 9 6쪽
69 #20. 마법사가 먼저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2 15.05.18 651 9 7쪽
68 #19. Identity Crisis +2 15.05.17 627 9 12쪽
67 #19. Identity Crisis +2 15.05.17 574 9 7쪽
66 #18. 눈보라 왕국 +2 15.05.17 518 10 9쪽
65 #18. 눈보라 왕국 +2 15.05.17 475 8 6쪽
64 #18. 눈보라 왕국 +2 15.05.16 341 8 9쪽
63 #17. 청춘의 불꽃 +4 15.05.16 497 8 11쪽
62 #17. 청춘의 불꽃 +2 15.05.15 363 8 11쪽
61 #17. 청춘의 불꽃 +2 15.05.15 469 9 11쪽
60 #17. 청춘의 불꽃 +4 15.05.14 453 9 8쪽
59 #17. 청춘의 불꽃 +2 15.05.14 419 8 9쪽
58 #17. 청춘의 불꽃 +2 15.05.13 539 9 10쪽
57 #17. 청춘의 불꽃 +2 15.05.13 528 8 18쪽
56 #16. 억류 +4 15.05.12 446 9 8쪽
55 #16. 억류 +4 15.05.12 541 7 12쪽
54 #16. 억류 +4 15.05.12 523 8 13쪽
53 #15. Innocent +4 15.05.12 554 10 7쪽
52 #15. Innocent +4 15.05.11 624 9 11쪽
51 #15. Innocent +2 15.05.11 569 9 10쪽
50 #14. 마법사들의 밤 +6 15.05.10 452 10 7쪽
49 #14. 마법사들의 밤 +4 15.05.10 456 8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