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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 님의 서재입니다.

불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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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piedbleu
작품등록일 :
2015.04.06 21:49
최근연재일 :
2015.05.23 23:00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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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79
추천수 :
1,024
글자수 :
490,880

작성
15.05.20 14:00
조회
561
추천
9
글자
8쪽

#23. 순회

DUMMY


알렌은 등 뒤로 손을 돌려 문의 걸쇠를 걸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육중한 나무문이 잠겼다. 그는 손바닥 안에 숨겨 가지고 온 열쇠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로엔 이피스의 누구도 이 방에 들어올 수 없었다.


“형님, 하실 말씀이라는 것은?”


제론드는 본래 막내 동생에게 할 말이 있었다. 사실 부탁이었다. 하지만 먼저 짚고 넘어갈 일이 생겼다. 그는 동생을 쏘아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뭐가 말입니까?”

“내게 숨길 셈이냐?”


알렌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예, 숨길 수 없겠지요.”


왕국의 제2가문인 로엔 라피트 가의 삼남매는 어려서부터 남들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장남이자 후계자였던 제론드는 그 명석함과 더불어 남을 괴롭히는 완벽주의와 날카로운 논쟁적 기질로 악명을 쌓았다. 나이가 들고 마법을 배우면서 남들 보기에 쾌활한 천성만 남자 안도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일곱 살 아래의 여동생 레나는 애초부터 밝고 주변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로엔 이피스의 담장 너머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미친 놈들이 가끔 있었다.

둘 다 어른이 되었을 때, 남매를 두고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법사의 길을 걸으면서 작위를 거부한 기행까지 똑같았다.

막내인 알렌은 사교계의 이야깃거리인 손위 형제들과 조금 달랐다. 머리가 좋고 탐구를 좋아하는 기질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한 성격이라 사람들의 주목도 덜 받았다. 어찌 보면 형과 누나의 빛에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조금은 차가운 성정의 청년으로 자라났다. 결국 그가 작위를 물려받게 되자 로엔 라피트 백작가는 절도 있고 상식에 부합하며 예절에 충실한 가풍을 갖게 되었다. 손위의 라피트들이 거의 집에 붙어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제론드는 이를 갈며 말했다.


“알렌, 누가 네게 마법을 가르쳤지?”


알렌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금빛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이 열쇠는 집안의 어느 문에도 맞지 않았다.


“형님과 누님께서 마법사 세계에 인맥이 많으시니, 제가 그 중 몇 분을 만나뵙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왜 숨겼느냐?”

“굳이 숨기려고 한 건 아닙니다. 집에 돌아오셔야 말씀을 드리든지 말든지 하지요.”


알렌은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도 이제 스물이 넘었으나 열 살 위의 큰형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제론드는 푸른 눈으로 계속해서 동생을 쏘아보았다. 알렌의 이마에 땀이 약간 배어나왔다. 영혼의 문이 무자비하게 열리고,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사로서의 수준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군.”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그만둬.”

“저는 마법사가 되려는 건 아닙니다. 저는 그럴 수가 없지요. 저까지 그럴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알렌의 얼굴에 다소 신경질적인 표정이 떠올랐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들입니다. 형님과 누님이 그토록 원했던 길을 저도 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마법사를 그만두겠다는 레나의 얼마 전 선언에 이어 제론드는 또 충격을 받았다. 계속되는 충격에 아주 녹다운이 될 지경이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으시군요?”


알렌은 그의 무심함을 원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여러 감정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미안함과 자책감, 스스로에 대한 분노 등이었다. 그는 그 감정들을 한구석에 밀어 놓았다.


“......어찌됐든 더 이상 마법에 손대지 마라.”

“왜 안 됩니까? 제가 로엔 라피트 백작이기 때문입니까? 가문의 체면과 품위에 어긋나니까?”

“내가 그런 데 신경쓰는 사람이었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제론드는 탄식하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다는 일을 내가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으냐? 언제 그런 적이 있었다면 말해봐라.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러면 왜......”

“위험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마법사들은 씨가 마르고 있었다. Proschen은 자신의 존재와 책무를 떠넘길 대상을 찾아 온 세상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이것은 사건이라기보다는 재해라고 부르는 편이 옳았다.


“알렌, 너까지 잃을 수는 없다.”


알렌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영혼은 불안하게 깜빡였다.


“......저는 항상 레미나스 누님이 부러웠죠.”

“왜? 레나는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

“누님은 자유로우면서도 의지할 구석이 있고, 스스로 선택하면서도 본보기가 될 존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


제론드는 자신이 완전히 잘못 산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저는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몰랐습니다. 고민하는 동안 점점 선택지들이 사라졌죠. 떠밀려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맞는 말이었다. 알렌은 선택의 여지없이 가문을 이어야 했다. 설령 그 역시 마법사가 되길 원했다 하더라도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18세가 되자마자 작위를 물려받은 그를 혹자는 운이 좋다 조소했을지 모르나, 과연 알렌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까?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론드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알렌이 더 빨랐다. 그는 고개를 들고 큰형을 바라보았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형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저는 있는 그대로 형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완벽한 패배였다. 제론드는 어리게만 생각했던 막내동생에게, 로엔 라피트 백작 아르미렌에게 경의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늘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다.”


다 큰 남자 형제들끼리 사랑하니 어쩌니 하고 있는 것도 피차 부끄러운 일이었다. 제론드는 피식 웃었다.


“레미나스는 그걸 몰라.”


알렌 역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그제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알렌의 마법으로 잠긴 문이 굳건하게 타인의 출입을 막았다.


“그럼 형님께서 원래 하고자 하셨던 말씀을 듣겠습니다.”

“아아. 아쉬운 소리 하러 왔던 거였지.”

“기대되는군요. 뭡니까?”

“들어 주겠다고 먼저 약속하지 않으면 말 안 하겠다.”


이건 농담이었는데 알렌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넌 참 변함없이 재미가 없구나.”

“......”


남동생의 뾰로통한 표정을 즐기며 제론드가 말했다.


“알렌, 돈 좀 빌려줘.”


알렌은 허탈해 했다.


“겨우 그건가요? 빌려 달라는 건 또 무슨 소립니까? 로엔 이피스의 재산은 다 형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대로 쓰세요.”

“그게 왜 내 거냐. 네 거지. 많이는 필요없어. 나라를 한 바퀴 돌아야 하겠는데 경비가 없어서.”

“순회를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맞다.”“돌아오신 지 며칠이나 되셨다고...... 무슨 일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물론이지. 이제 이 나라에는 마법사가 얼마 남지 않았어. 너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곧 성한 땅도 얼마 남지 않게 될 거야. 나는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최소한 늦추기라도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생각이다.”


그는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으며 말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마리엔에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 방법을 연구한 것뿐이었지. 책자도 한 권 썼다. 이제 직접 설명하는 일만 남았다. 포고문, 편지, 방문, 세미나, 순회. 할 일은 많아.”


알렌은 조용히 말했다. “고생스러우시겠군요.”

제론드는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다가 이내 일어섰다.


“다 팔자지. 그럼 부탁하겠다. 빌라드에게 예산을 뽑아 달라고 해야겠군. 그런데 사실 갚을 방법은 없어. 내가 무슨 돈이 있냐. 재산만 축내고 가서 미안하다.”


알렌은 멀거니 그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안됩니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꼭 갚으십시오.”



작가의말

알렌 귀엽지 않나여.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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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방영
    작성일
    15.07.10 20:14
    No. 1

    헉 다행이다ㅠㅠ난 돌아온 레나도 라이어트도 싸그리 다 죽은 줄;;; 미안해요 리노스 샘 별로 애정이 없어서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i******
    작성일
    15.07.10 21:03
    No. 2

    전편에서 레나도 왔다 갔다 그런 대사 있었자나 흑흑 ㅠㅠ
    탑의 마법사들만 몰살 당했음. 리노스야 뭐 여기선 조연이니까.
    알렌..알렌 귀엽지 않나여 (죄송)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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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25. 전쟁터의 소녀 +2 15.05.22 564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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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2 540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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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1 527 8 9쪽
82 #24. 마법사 제이드 +2 15.05.21 552 11 13쪽
81 #23. 순회 +2 15.05.21 609 8 13쪽
80 #23. 순회 +2 15.05.20 480 7 16쪽
79 #23. 순회 +2 15.05.20 529 9 15쪽
» #23. 순회 +2 15.05.20 562 9 8쪽
77 #22. Farewell +4 15.05.20 458 9 10쪽
76 #22. Farewell +2 15.05.19 441 9 11쪽
75 #22. Farewell +2 15.05.19 488 9 7쪽
74 #21. 재반격 +2 15.05.19 510 9 10쪽
73 #21. 반격 +2 15.05.19 592 8 6쪽
72 #21. 공격 +2 15.05.18 503 7 8쪽
71 #20. 마법사가 먼저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2 15.05.18 546 9 8쪽
70 #20. 마법사가 먼저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2 15.05.18 504 9 6쪽
69 #20. 마법사가 먼저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2 15.05.18 651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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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6. 억류 +4 15.05.12 523 8 13쪽
53 #15. Innocent +4 15.05.12 554 10 7쪽
52 #15. Innocent +4 15.05.11 624 9 11쪽
51 #15. Innocent +2 15.05.11 569 9 10쪽
50 #14. 마법사들의 밤 +6 15.05.10 452 10 7쪽
49 #14. 마법사들의 밤 +4 15.05.10 456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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