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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 님의 서재입니다.

불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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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piedbleu
작품등록일 :
2015.04.06 21:49
최근연재일 :
2015.05.23 23:00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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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75
추천수 :
1,024
글자수 :
490,880

작성
15.05.14 22:30
조회
452
추천
9
글자
8쪽

#17. 청춘의 불꽃

DUMMY




북부 순찰대원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전투의 흔적이 어지럽게 흩어진 공터를 대충 치우고 막사를 세웠다. 그들에게 정해진 숙소 따위는 없는 듯했다. 적이 있는 곳에 있을 수 있다면 족했다. 기사들도 레나의 명령대로 사라진 단장을 찾아보기 위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그러자 어디선가 올빼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완전히 밤이 된 것이었다.


“고생했어, 라스카. 우린 일단 공관으로 돌아가자.”


남은 사절단 일행은 돌아갈 채비를 했다. 진지 구축을 지휘하던 라기타 대령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라피트 백작 영애,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소위를...... 아니, 클레이스 군을 좀 빌려주십시오.”

“어디에 쓰시게요?”

“마스란엔 원래 스필레인의 무력시위가 잦았습니다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습격해온 것은 처음입니다. 2차 습격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전력 보강이 필요합니다.”


레나는 시르첸을 돌아보았다. 그가 말했다.


“부단장님이 허락하신다면.”

“네 생각을 말해봐.”

“내 생각?”

“너도 생각이 있을 거 아니야.”

“가지 않겠다.”

“왜?”

“네 곁에 있겠어.”


라르센 경은 다른 기사들을 다 보내고 유일한 수행원으로 남아 있었다. 라스카는 그가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르첸을 흘겨보는 것을 눈치챘다. 뭐,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레나는 그의 존재를 거의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라기타 대령은 아쉬워했다.


“이젠 내 부하가 아니니 강요할 수는 없겠지. 정말 아쉽군. 자네가 군에 남아 있었어야 하는데. 백발백중의 사수였잖나. 자네를 보고 마법사도 꽤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지.”

“회유하지 마십시오.”

“아, 들켰나?”

“막사에 남지는 못하더라도 제 힘이 닿는 한 돕겠습니다.”

“너무 부담가질 필요 없네. 어찌됐든 놀랍군. 자네가 여성을 사귀는 것도 놀랍고, 5년째 별 진전이 없다는 것도 놀랍네.”

“......”


어제, 아니 오늘 오후이기만 했어도 그런 말씀 못하셨을걸요. 라스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등불을 든 종자 하나가 라기타 대령 앞으로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아직 앳된 소년이었다.


“대령님, 진지 구축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렇군. 가봐야지. 라피트 백작 영애, 내일 아침 일찍 공관으로 가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잘 가게, 클레이스 군.”


라기타 대령은 가볍게 경례를 붙인 후 몸을 돌려 걸어갔다. 종자도 그를 따라갔다. 레나는 별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시르첸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라스카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시르첸은 갑자기 일행을 떠나 라기타 대령에게로 뛰어갔다.


“대령님, 잠시만!”

“왜 그러지? 마음이 변했나?”


라기타 대령이 뒤를 돌아보았다. 종자도 따라서 몸을 돌리며 등불을 높이 쳐들었다. 소년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라스카는 레나의 몸이 굳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녀의 가슴도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인생이 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르첸은 라기타 대령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종자 소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모든 자제력과 자기 통제력이 날아가버렸다. 갈망에 찬 시선, 떨리는 마음, 당황, 경악, 기타 등등의 감정들이 자기 자리를 찾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알아차리기에 충분했다. 너무나 닮은 두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선......?”


소년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떠올랐다.


“제 이름이 맞습니다만.”


시르첸은 소년의 두 어깨를 붙잡았다.


“레이선! 네가 어떻게 여기에......”


소년, 레이선은 그 손을 뿌리쳤다.


“왜 이러십니까? 누구시죠?”


라기타 대령이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지, 클레이스 군? 내 종자일세.”


그러자 레이선의 눈에도 혼란이 떠올랐다.


“클레이스라고요? 저와 무슨 관계가 있나요?”

“네 성이 클레이스였던가? 둘이 무척...... 닮았군.”


시르첸은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관계인가?”

“제 동생입니다.”


레이선은 흠칫 놀라 한 발자국 물러섰다. 시르첸은 소년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벌써 10년이나 됐습니다. 그때 레이선은, 레이는 일곱 살에 불과했죠. 일곱 살짜리를 남의 손에 맡겨놓고 떠났던 것을 그 후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그 후로, 얼마나......”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라기타 대령은 자신의 종자를 바라보았다.


“형이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령님.”


레이선은 느닷없이 나타나 형이라고 주장하는 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철들 무렵 저는 이미 거리의 꼬마였고 부모도 형도 없었습니다. 얼굴이 닮았나요? 저는 제 얼굴도 잘 모릅니다.”

“닮았어. 누가 봐도 형제라고 생각할 만큼.”

“어렴풋이 떠오르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특징적인 점이 있었죠. 목에서 왼쪽 턱에 걸쳐 큰 화상이......”

“그럼 맞아!”


갑자기 레나가 소리쳤다.


“시르첸이 맞아! 원래 그의 얼굴엔 화상 자국이 있었어. 오빠가 치유마법을 실험하면서 없애버렸지. 레이선, 그 사람은 네 형이 맞아. 그 흉터는 너희 부모님이 화재로 돌아가셨을 때 너를 구하려다가 생긴 상처 자국이야!”


레나의 말은 그대로 선언이 되었다. 형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말이 많았지만 또한 할말이 없기도 했다. 세월을 많이 훔친 값으로 라기타 대령이 중재에 나섰다.


“좀 갑작스럽지만, 형제가 상봉하니 좋은 일이군. 클레이스 군, 레이선은 어린 시절의 과오가 있어 징역 대신 복무하고 있지만, 요즘은 착실히 지내면서 반성하고 있다네.”


레이선의 반항적인 눈초리를 보면 별로 그래 보이지 않았다. 시르첸이 레이선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징역 대신 복무하고 있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3년.”

“미성년자가 복무하는 법도 있습니까?”

“북부 출신들은 간혹 그렇게 하지. 부대에 사람이 너무 모자라니까.”

“대리 복무도 가능합니까?”

“시르첸!”


레나가 다시 외쳤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라기타 대령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가 와주겠다면 나야 대환영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법은 없네.”


레이선은 다시 한 발 물러섰다. 소년의 눈에 불이 확 붙었다.


“제겐 형이 없습니다.”

“레이선.”

“기억도 나지 않고, 원한 적도 없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잔인한 말에 시르첸은 말문이 막혔다. 레나가 나무라는 시선으로 레이선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시르첸이 10년 동안 널 찾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당신은 누군데 이 사람 편을 드는 겁니까?”


레나는 망연자실하여 중얼거렸다.


“똑같다. 10년 전의 시르첸과 똑같아.”

“내가 저랬다고?”

“구별이 안 될 지경인걸.”

“......”

“성질은 더럽고 입은 험하고......”

“그만해.”


레이선이 몸을 떨며 말했다.


“그러니 내게 무언가 권리를 주장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너에게 무슨 권리를 주장하겠니?”


낮은 목소리였다. 지친 목소리였다.


“너를 찾게 돼서 기쁘다. 너무 늦어 미안하기도 하고.”


레이선은 여전히 그를 쏘아보고 있었으나 눈 속의 독기는 조금 약해졌다. 시르첸은 계속해서 레이선 외엔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내일 다시 오겠다.”


그는 라기타 대령에게 경례했다. 대령은 마주 경례하였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일행은 몇 가지 드라마를 뒤에 남기고 공관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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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59 덧붙임
    작성일
    15.05.14 22:36
    No. 1

    시르첸은 정말 우연찮게 동생을 찾네요. 동생은 별로 안 기쁜 것 같지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i******
    작성일
    15.05.14 22:42
    No. 2

    고향에서 군생활이나 계속 했으면 진작 찾았을텐데 말이죠. 저도 너무 우연인가? 이러면서 괴로워 했어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방영
    작성일
    15.07.09 23:23
    No. 3

    뭐 판타지에서 우연이 빠지면 무슨 재밉니까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8 pi******
    작성일
    15.07.10 07:36
    No. 4

    참 편리하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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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23. 순회 +2 15.05.20 561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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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2. Farewell +2 15.05.19 441 9 11쪽
75 #22. Farewell +2 15.05.19 488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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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청춘의 불꽃 +4 15.05.14 453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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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6. 억류 +4 15.05.12 523 8 13쪽
53 #15. Innocent +4 15.05.12 554 10 7쪽
52 #15. Innocent +4 15.05.11 624 9 11쪽
51 #15. Innocent +2 15.05.11 569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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