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5,130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5.14 23:47
조회
5,189
추천
120
글자
8쪽

< #6. 검귀(劍鬼) 11-2 >

DUMMY

백련은 내리쓴 삿갓 안으로 손을 들이밀어 코를 만지작거렸다. 원래라면 기분 좋은 살결이 느껴져야 할 손끝에서 이제는 차가운 나뭇결만이 느껴진다. 과연 삿갓을 벗었을 때 백성들은 우스꽝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다.


다만, 광장에 가득한 백성들 사이에서 백련이라는 말이 속삭여지자 불안감도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다. 모두 따뜻한 목소리로 백련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바로 곁에서 백련의 호위를 맡은 이리떼들이 그 소리에 기분 좋은 듯 어깨를 펴고 있었다.


'왕의 호위로 쓰기에는 격이 떨어지는 자들이다. 내치기는 그러니, 수비진의 대장으로들 보내야겠어.'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할 때, 죄인들이 단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분명 어딘가에 망할 꼬마 녀석이 있겠지. 그 녀석은 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놓인 별 볼 일 없는 돌멩이 하나일 뿐. 다만 노인이 걱정이다.


노인에 대한 생각이 들자, 잔뜩 흥분이 올라와 몸을 떨게 했다. 목숨을 건 승부를 다시 한번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번엔 겁에 질린 게 아니었다. 그냥 당황한 것뿐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검을 나눌 상대가 생겼기에 놀란 것뿐이다.


하지만 흥분은 오래가지 않고 가라앉기 시작했다. 왕이 될 자신이 이름도 없는 노인과 드잡이질을 할 수는 없었다. 쓰러진 노인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칼을 뽑을 수는 있어도 드잡이질을 하기에는 신분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주변 건물 위에 활을 잘 쏘는 이들을 여럿, 배치해놓기까지 한 것이 아닌가?


들어보라. 주변에선 소곤대며 얘기하고 있지만, 백성들 모두가 원하는 백련이 아닌가? 하주에 왕국을 세우고 송과 연계해서 금을 갉아먹을 것이다. 송? 여차하면 나약한 송도 쓰러트릴 것이다.


그래, 왕이 아니라 황제가 될 것이다.




***




달콤한 상상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고람이 세금 문제를 들먹이며 백성들에게 불을 지르고 내려갔다. 사람들은 점점 끓어오르고 있다. 이제 작은 불씨 하나만 던지면 불이 멈추지 않고 퍼져나갈 것이다.


그때였다. 사람 중에 누군가가 외쳤다.


"뒤집어써라!"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같은 말을 하며 품 안에서 하얀 두건을 꺼내 사람들이 쓰는 게 아닌가? 어느새 광장에는 하얀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던 아낙도, 곰방대를 피던 노인도 모두 복면을 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백련은 마음 한편에서 울컥거림을 느꼈다. 좋은 왕이 되리라. 이 우매한 백성들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주리라. 이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갑작스레 백성들이 움직이자 창을 든 병사들은 당황해 우물쭈물한다. 그때 다른 외침이 들린다.


"백련님이 납신다."


'좀 유치하지만 이리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구려. 아버지. 언젠가 대업을 이루는 날 제대로 장사를 치르겠소이다.'


이리들이 주변을 터고 백련이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 터벅터벅 단을 걸어 올라갔다.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백련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류다. 천천히 걷는 그의 모습에 병사들은 당황하다가 그를 둘러쌌다. 창을 길게 내빼고 바로 찌를 듯 위협하는 병사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단위로 올라섰다.


”백련님이 얘기보다는 키가 작구려. 8척이 넘는 거구라고 들었는데 그 정도는 안 돼 보이네. 그려.“


”아, 큰일을 하는 분이니 후광이 비쳐서 더 커 보인 것이지. 그래도 훤칠하니 멋있구먼. 그래.“


주변 사람들이 주고받는 얘기가 백련을 화나게 했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병사들은 바보처럼 류를 둘러싸고 고람을 쳐다볼 뿐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검을 빼든 백련이 단 아래에 도착해 계단을 밟을 때 류의 목소리가 터졌다.



***



”여러분, 전 백련님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냐고요? 많이들 보셨을 것 아닙니까? 방에 붙은 방어사의 동생, 류. 그게 접니다.“


백련의 발은 계단 하나를 밟고는 멈췄다. 사람들이 집중한다. 백련은 조용히 검을 검집에 꽂고는 기다렸다. 뭐라 지껄이는가. 궁금해졌다. 혹여 백련을 도발하고는 어딘가 숨은 노인이 튀어나온다? 그게 계획인가?


”모두 가까이 주변을 감싸라.“


백련은 그 말을 하고는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눈은 주위를 훑기 시작했다. 위험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행여 가까운 곳에 나이든 이라도 있는가? 유심히 봤지만 모두 복면을 뒤집어썼으니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다만 건물 위에 있는 궁수들이 동요하지 않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백련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며 녀석들은 시위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무슨 짓거리를 하든지 결국 넌 오늘 죽는다.’



***



”모두 듣지 않았는가? 난 백련님의 큰 뜻에 감동해 형도 배신했다. 나만 한 사람이 있는가? 내가 정녕 오른팔이 아닌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단 아래에 멈춰선 백련이 쏘아보는 게 느껴진다. 장막 안에 있는 고람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린다. 곁눈으로 바라본 아버지와 야율모는 심히 매질을 당했는지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울컥한 마음에 더 목소리가 커졌다.


”모두 백련님을 맞이하라. 그를 위해 일어서라.“


고람이 병사를 대동하고는 단 위로 급히 올라섰다. 입을 막으려는 건가? 무언가 자기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당황한 게 틀림없다. 계단을 오르며 넘어질 뻔했다. 반대편에서 백련도 오른다. 양쪽에서 오른 서로는 칼을 빼 들고 대치를 시작했다.


가운데에는 류가 있다.


”네 이 녀석, 목숨을 구걸하는 거냐? 아니면 혼란을 주고 병사들의 이반을 노린 거냐? 네놈들이 믿는 고려인 병사들을 찾는 거냐?“


고람은 환호성 사이로 낮게 쏘아붙였다. 백련도 궁금했다. 류의 말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무슨 말씀을. 어차피 당신 부하라는 건 간파했소. 당신처럼 조심성이 넘치는 사내가 고려인을 아버지 옆에 붙일 일이 없지. 안 그렇소?“


”그렇다면 네가 정녕 미친 것이구나? 홀몸으로 올라와 그 뱀의 혀로 살아보겠다고 도박을 한 것이냐? 으흐흐···. 네 놈이 네 형보다 더 바보로구나.“


류는 고람의 말을 씹더니 크게 고함쳤다. 사람들 모두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백련님을 왕으로 모시자. 너희들 모두 나와 뜻이 같은가?“


광장을 가득하게 채우며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억눌렸던 백성들의 한이 거친 입을 통해 쏟아졌다.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고람과 그 병사들은 주춤거렸다. 너무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느낀 것이다.


”백련님, 당신을 위해 술을 올립니다. 이 술을 드시고,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무릎을 꿇은 류가 말을 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술병과 술잔을 두 개 들고 가져왔다.


사내는 정중히 술잔에 술을 따르더니 류에게 하나를 남은 것은 백련에게 넘겼다. 술잔을 받아든 백련은 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변의 환호성이 넘친다. 백련의 이름을 연호한다.


”안된다. 분명 독이다. 녀석이 방법이 없으니 독을 쓰는게다.“


고람이 낮지만 급한 목소리로 백련을 말린다. 주변의 환호가 넘쳐흐른다. 류가 먼저 들이키고 잔을 바닥에 던져 깨뜨렸다. 사람들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닙니다. 독은 아닐 겁니다. 저 녀석의 눈을 보십시오. 분명 내 심장에 칼을 꽂고 싶어 하는 눈입니다.“


백련은 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사, 기사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4 < #8. 맘루크 5-2 > +7 18.06.08 4,377 108 8쪽
93 < #8. 맘루크 5-1 > +24 18.06.07 4,292 108 7쪽
92 < #8. 맘루크 4-2 > +13 18.06.06 4,463 110 8쪽
91 < #8. 맘루크 4-1 > +13 18.06.04 4,594 94 8쪽
90 < #8. 맘루크 3-2 > +18 18.06.03 4,623 98 8쪽
89 < #8. 맘루크 3-1 > +22 18.06.02 4,836 102 8쪽
88 < #8. 맘루크 2-2 > +16 18.06.02 4,709 107 8쪽
87 < #8. 맘루크 2-1 > +15 18.06.01 4,792 97 7쪽
86 < #8. 맘루크 1-2 > +13 18.05.31 4,799 104 7쪽
85 < #8. 맘루크 1-1 > +34 18.05.29 5,307 106 9쪽
84 < #7. 사막 5-2 > 사막편 끝 +12 18.05.28 4,812 100 8쪽
83 < #7. 사막 5-1 > +14 18.05.27 4,656 100 8쪽
82 < #7. 사막 4-2 > +17 18.05.26 4,685 102 7쪽
81 < #7. 사막 4-1 > +14 18.05.25 4,717 97 8쪽
80 < #7. 사막 3-2 > +16 18.05.24 4,834 100 8쪽
79 < #7. 사막 3-1 > +12 18.05.23 4,850 109 7쪽
78 < #7. 사막 2 > +8 18.05.22 5,312 113 13쪽
77 < #7. 사막 1-2 > +33 18.05.20 5,501 115 7쪽
76 < #7. 사막 1-1 > 수정편 +31 18.05.19 5,929 115 7쪽
75 < #6. 검귀(劍鬼) 14 > 수정편 +9 18.05.18 5,748 129 13쪽
74 < #6. 검귀(劍鬼) 13 > +24 18.05.17 5,326 126 12쪽
73 < #6. 검귀(劍鬼) 12-2 > +12 18.05.16 5,141 137 8쪽
72 < #6. 검귀(劍鬼) 12-1 > +8 18.05.15 5,182 128 7쪽
» < #6. 검귀(劍鬼) 11-2 > +10 18.05.14 5,190 120 8쪽
70 < #6. 검귀(劍鬼) 11-1 > +9 18.05.14 5,124 116 8쪽
69 < #6. 검귀(劍鬼) 10 > +6 18.05.13 5,290 123 13쪽
68 < #6. 검귀(劍鬼) 9-2 > +6 18.05.11 5,228 118 8쪽
67 < #6. 검귀(劍鬼) 9-1 > +2 18.05.10 5,298 137 8쪽
66 < #6. 검귀(劍鬼) 8 > +8 18.05.09 5,294 122 11쪽
65 < #6. 검귀(劍鬼) 7 > +23 18.05.09 5,473 135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