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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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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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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05.10 23:06
조회
5,297
추천
137
글자
8쪽

< #6. 검귀(劍鬼) 9-1 >

DUMMY

유유자적한 여행이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시원하다. 저 멀리 풀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흥이 절로 난 노인의 콧노래는 커졌지만, 선예는 달랐다.


선예는 헤어짐에 슬퍼하며 조금 우울한 표정이었다. 입이 한치는 튀어나온 듯 사부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점점 커지는 콧소리가 짜증이 났는지 결국 쏘아붙이듯 말을 내뱉었다.


"뭐가 그리 좋습니까?"


"그냥 마음을 비웠다. 사실, 그동안 괜찮은 놈이 있으면 전수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힘들게 했었거든. 그런데 비우니 마음이 편하구나."


"쳇, 죄송합니다요. 소녀가 괜찮지 못한 년이라서요. 네이.네이. 못난 년이지요."


"아니다. 빌어먹을 우리 장백류가 그런 것이지. 여자가 극성까지 익히기에 엿같이 만들어놔서 말이야."


"장백류···. 그게 진짜 이름이었나요?"


"지나치면서라도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더냐? 글쎄···. 얘기해 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까먹었었나? 선예야. 화를 풀어라. 내가 나이만 헛먹다 보니 깜빡깜빡한다."


노인의 능글맞은 말에 선예는 더 바짝 열이 올랐다. '쳇'이라며 콧방귀를 끼고는 먼 곳으로 눈을 돌렸다. 노인은 삐진 선예가 오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계속 채찍을 휘둘렀다.


"사부님 대에서 그만 마무리한다는 건 아무래도 좋아요. 그래도 가장 서운한 건 비급을 제가 아니라 그놈한테 준건 정말 정말, 서운합니다."


한참을 먼 곳을 보던 선예가 섭섭한 마음에 조용히 물었다. 눈도 돌리지 않고 정말 서운하다는 듯이 말이다.


"무슨 비급? 비급이란 게 어디 있더냐?"


"아이씨, 아까 류 녀석에게 던져주며 '세 번만 읽으면 천하무적이다.' 그랬잖아요?"


"허 참···. 했던 말은 틀리지만 뭔가 주기는 했지. 하지만 비급은 아니다. 그냥 저잣거리에서 굴러다니며 닷 푼에 팔리는 싸구려 무술책이지. 젊었을 때 몇 권 사서 읽은 후에 버릴까 하던 것이다."


"뭐···. 뭐야? 완전 사기꾼이잖아? 그것만 믿고 나대면 어쩌려고요?"


노인은 선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자기 생각을 천천히 털어놨다.


"그냥 희망을 준 거야. 녀석과 실력 차이가 크다고 긴장을 하면 잔뜩 몸이 굳겠지. 굳은 몸으로 싸움을 시작하면 더 쉽게 질게다. 이기려고 가는 게 아니라, 형에 대한 죄책감에 죽으러 가는 길이 되면 안 되지 않느냐?"


"그···. 그렇군요."


선예는 그제야 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웃으며 노인에게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비급이 있으면 역시 저 주실 거죠? 제가 가장 나은 제자 맞는 거죠?"


"당연하지. 선예야. 무슨 그런 말을······. 그런데 비급 같은 게 없단다."


다시 시무룩해져 선예는 먼 산을 바라봤다. 노인은 웃었다. 형을 중시한 무예는 버린 지 오래됐다. 모든 건 기억 속에 있다. 지금은 기억도 지우려 한다. 처음 배우는 때야 보법이나 파지법, 간단한 검로들. 이런 게 도움이 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래, 선예야. 이 못난 장백류. 여자들도 배울 수 있게 고쳐보자꾸나. 앞으로는 그것에나 신경 써야겠다.'


선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뾰로통한 표정은 풀지 않았지만, 아까처럼 서운한 기색은 아니다. 그럼 됐다. 아직도 먼 여행길인데 싸우며 가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리고, 류야. 비급은 아니더라도 도움이 될 게 있을 것이다.'




***



헤어진 류는 수풀이 우거진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삼일의 시간을 어찌 움직일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정한 시점에 움직이는 건 잡아드시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으니 먼저 움직일 생각이다.


그러면 오늘과 내일에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중압감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백련의 현란한 검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도저히 뚫고 들어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아···. 그래, 노인.'


혼전 중에도 백련과 노인의 대결을 지켜봤다. 현란하게 치고 들어와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이는 그 검로를 웃으며 막아냈다. 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마음이 바빠졌다.


품 안에서 노인이 건네준 비급을 꺼냈다. 제대로 예를 올린 적도 없으니 사뭇 미안해진 마음에 책을 평평한 바위 위에 올려놓고 절을 올렸다. 그런 후 공손하게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마음가짐에 관한 내용. 뭐 뻔하다. 두리뭉실하게 마음이 어쩌고저쩌고 생각하기에 따라 강한 적도 이길 수 있다는 그런 내용.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노인의 우아한 자세가 서책에 비쳐 보이며 뭔가 비범한 내용이 있을 거로 생각하며 계속 넘겼다.


다음에는 상대를 마주할 때 땅을 밟는 방법이었다. 간단한 이치가 장황하게 이어져 있었다. 몸의 중심선을 맞춰 마주 보고, 필요할 때는 적의 왼편으로 한 발짝 정도 틀어 혼란을 준다는 내용. 이건 무예에 소질이 없는 병사들도 배우는 내용이었다.


"아···. 이건. 아닌데."


다음 장은 검을 쥐는 법. 이건 완전히 틀렸다. 이리저리 바꿔 잡기 편한 파지법을 적어놓고는 장황하게 장점이라고 늘어놓았다. 분명 생사를 겨루는 대결에 쓰일 방법이 아니다. 현란하게 폼을 잡는 무예다. 류의 생각과 노인의 생각이 맞았는지 먹으로 커다랗게 'X'자로 가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덧붙여 써진 글이 허탈하게 만들었다.


"쓰레기? 설마 노인께서 적은 글이 아니었던가?"


그 뒤를 넘겨볼수록 덧붙여진 글들이 이어졌다. 점점 반박이 늘어나면서 결국은 글쓴이에 대한 욕이 돼버렸다. 당황했다. 류는 노인이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 생각이 되자 헛웃음까지 튀어나왔다.


그래도, 한 장 한 장 넘김 없이 읽어보다가 마지막 장을 펼쳤다.


[이 책은 평이한 맛보기용 책이다.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멋 내기 책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무예라 할 수 있는가?]


노인이 적은 감상 글이다. 그리고 그 감상은 류의 생각과 한치 틀림없이 똑같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책을 건넸는가? 아니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인가? 노인이 가필했을 내용이 세 쪽에 이어져 있었다.


[무예는 결국 남을 죽이고 내가 살아남는 법. 이리저리 화려하게 치장을 해도 본질은 그것이다. 무예에 과연 끝이 있을까? 극에 달하는 무를 가지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그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한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젊었을 때 전쟁에 나간 적이 있다. 지금과 비교해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보다 경험은 적었지만, 더 강한 육체가 있었으니 어느 정도 상쇄가 되었겠지.]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 이제야 제대로 시작이 되는구나.


[청운의 꿈을 가지고 나선 전쟁터에서 나는 혼자 전세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만용을 가졌다. 나는 눈에 띄는 장수이기는 했으나 결국 우리는 졌다. 그리고 나도 등을 베여 전투 후에 한 달간을 몸져누웠다. 그 한 달간 난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바보 같은 만용에 대한 반성이었다.]


'전쟁터는 쉽지 않겠지. 나라면 어떠했을까? 그냥 까마귀밥으로 쓸려버렸을 수도 있겠네.'


[내가 도달한 결론은 하나다. 무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 우리는 그동안 너무 수단 자체에 목을 매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러니 싸움은, 목숨을 건 결투는, 전쟁은 말이다. 틀이 없는 것이다. 뻔히 질 것을 알면서 덤벼드는 건 찬사받을 일이 아니다. 그냥 만용이다. ]


류는 마지막까지 읽어내리고는 풀이 죽은 채 고개를 떨궜다. 노인은 자신의 만용을 비웃은 것이었다. 갑자기 희망이 사라졌다. 이렇게 절망에 빠뜨리려 한 것인가?


하늘을 바라보고 미친 듯 웃던 류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책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몇 번을 읊조리며 다시 읽어내렸다.


"틀이 없다. 이것인가? 내가 이길 방법은 틀 없이 싸우는 것?"


벌렁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이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려간다. 류가 원하는 답처럼 틀 없이 널리 하늘을 옮겨 다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65 아히ㅡ
    작성일
    18.05.11 00:39
    No. 1

    노인 말투 좀 더 노인스럽게 바꾸시면 어때요?
    현대 배경 아니고서 그러니까 많이 이질적이어서 ㅎㅎ
    가끔가다 묘사할때 외래어 쓰는거 까지는 괜찮아도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9 화자(話者)
    작성일
    18.05.11 00:54
    No. 2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주말에 고민해 수정해보고 감평부탁드려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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