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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티아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Minato
작품등록일 :
2012.11.18 15:07
최근연재일 :
2014.01.07 11:43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442,299
추천수 :
10,579
글자수 :
50,893

작성
10.02.04 01:48
조회
10,919
추천
57
글자
10쪽

# 1. 제국의 영애 (9)

후기와 질의응답은 서재의 공지란에 올라갔습니다.

이북으로 출간됩니다.




DUMMY

잡일을 하는 하인들은 글을 읽을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배울 필요가 거의 없었다. 직속하인들도 주인의 배려가 아니면 정말 기본적인 글자만 배우고 끝났다. 그나마 위시안의 경우는 본인이 수업시간에 귀동냥으로나마 익히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에 글을 읽고 쓰기가 능한 것뿐이었다.

책은 분명 귀한 물건이었지만 글을 모르는 평민들의 입장에선 딱히 처분할 곳도 찾기 힘든 애물단지였다. 부피는 크면서 무겁고, 그런 주제에 쉽게 처분하지 못하는 물건이니 챙겨도 짐일 뿐인 것이다. 물론 평민들 중에서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들도 있었고, 그들을 주된 고객으로 하는 책방도 드물게나마 존재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대도시나 되어야 볼 수 있는 가게였다. 이런 촌구석 영지에서 책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건이었다.

하인들은 서재의 책들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텅 빈 다른 방과는 달리 책이 가득한 서재를 찬찬히 둘러보던 위시안이 문득 어느 한 지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오래된 책인지 모서리가 다 닳아 있었다. 표지가 많이 헤져서 글자가 꽤 지워져 있었지만, 위시안은 그 글자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평민들을 좋아하는 그녀는 언제나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동전 몇 푼과 위로의 말이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후, 자신이 할 만한 일이 없는지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촌구석의 말단 남작영애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늘 자신의 한계를 한탄하던 그녀는 우연히 치료학 서적을 보았다. 손바닥만 한 영지 내에 하나 밖에 없는 치료사에게 위시안이 빌려온 책이었다.

채찍질을 당하거나 몰매를 맞은 하인들은, 벌로 치료사를 찾아갈 수 없도록 규제되어 있었다. 짧은 풍문으로 들은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건 한계가 있었고, 그러한 사정은 위시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심하게 맞은 채찍질을 조금이나마 치료하고자 치료사를 찾아가 사정해서 얻어온 책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빛내며 달라고 보채는 통에 제대로 된 치료법은 찾지도 못했다. 결국 평소처럼 민간요법으로 해결했으나, 끝내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저 책을 발견하고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직접적으로 평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치료학에 빠졌고, 귀족으로써 배워야 할 덕목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남작 몰래 치료사를 찾아가 약초 배합을 배우고,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남작은 공부가 지지부진한 그녀를 위해 많은 가정교사를 붙여주었고, 혹시 흥미를 보일까 싶어 많은 과목들을 가르치려했다. 그리고 그 많은 덕목들은 그녀의 직속 하인이라는 명목으로 같은 방에 있을 수 있었던 위시안이 습득했다. 그녀는 숙제를 할 때면 늘 위시안의 도움을 구했기 때문에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애초에 그녀가 숙제를 하지 않으면 대신 맞는 게 위시안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맞기 싫으면 무조건 수업 내용을 귀담아 들어야 했다. 덕분에 귀족 영애들이 배우는 덕목들을 위시안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와 자신의 위치가 바뀌면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위시안의 본래 머리색이 너무 화려하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평생 염색을 하고 살 것을 명했다. 누구도 위시안의 본래 머리색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붕대로 동여매 놓고 몇 겹의 옷으로 가린 가슴,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낮게 내던 목소리. 그 어느 것도 본인의 것이 아니었으니 이제와 그녀와 위치가 바뀌어서 본모습을 드러낸다고 해도 하인 위시안을 떠올릴 수는 없을 터였다. 남작이야 예전에 죽었고, 기껏해야 알아볼 법한 사람이라면 아버지 정도일까?

물론 본래의 메르노아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들킬 위험이 있었다. 하인과 연관 지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챌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리라. 얼굴을 본다면 말이다. 고용인들 중에 메르노아를 잘 따라 그녀를 제대로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그리 되겠지만, 이제 곧 이 영지를 떠나 제국으로 가게 될 몸이라면 그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시안은 쉽게 승낙을 할 수 없었다. 위시안에게는 경험이 없었다. 그녀는 귀족들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위시안 역시 다른 귀족들을 잘 알지 못했다. 어설프게 흉내 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그 길로 죽은 목숨이었다.

그렇다고 거절을 하기엔, 이번의 기회가 너무 아까웠다. 그녀가 직접 준다고 했다. 그녀 역시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겠지. 분명 질 것이 확실해지고 있는 전쟁에서 혼자 남은 영애들은 어떻게 보면 보잘 것 없는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위치보다 가능성이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제국의 귀족 중 괜찮은 작위의 귀족에게 잘만 걸리면 그야말로 기대이상의 승급을 할 테니까. 위시안은 충분히 고심했다.


「아가씨.」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위시안의 대답과는 상관없이 떠나겠다는 소리였다. 위시안의 부름에 그녀는 짐 싸는 것을 멈추고 위시안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 색이 적갈색이라서 다행이었다. 위시안은 적발이었으니까. 정 반대의 색이었다면 그것대로 곤란한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색과 적갈색은 적어도 우겨볼 여지는 있는 것이다. 눈 색은 그녀가 위시안보다 연한 색이었지만 비슷한 계열이니 상관없었다. 위시안은 다시 한 번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들키지 않는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선택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


「물론이야.」


위시안은 그녀의 앞에서는 한 번도 짓지 않았던,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아가씨는 위시안이 되시는 겁니다.」







황자가 오고 난 후, 많은 이들이 적당한 신부와 신랑을 데리고 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점점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메르노아는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홀 안에는 그리 많은 사람들이 남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영애들의 수가 생각 보다 적어서, 남자들이 남아돈다는 점일까? 하지만 메르노아는 여전히 혼자였다.


“뭐해? 괜찮은 사람 찾았어?”

“……테라스에 있다가 이제야 막 들어왔어.”

“아직도 못 찾았단 말이야? 오늘이 마지막 날이잖아.”

“그렇긴 한데.”


꼭 여기서만 선택을 해야 하는 건가. 불만스럽게 홀을 둘러보던 메르노아가 곤란한 듯 미간을 좁혔다. 작위를 포기할 마음도 없을뿐더러, 작위를 포기하는 순간 영지도 나라에 환원되기 때문에 메르노아는 순식간에 빈털터리로 거리에 나앉아야 할 터였다. 별수 없었다. 하지만 남작이나 자작과 결혼하라니. 투정부릴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불만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영지가 없는 귀족과 결혼해서 다시 싱폰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최악의 상황이 될 게 뻔했다.


“넌 어때? 괜찮은 사람 찾았어?”

“사실 고민을 하고 있긴 한데, 고르긴 했어.”


남은 영애들도 얼추 몇몇 남성을 두고 고민하는 게 보였다. 점점 불안하게 돌아가는 사태에 잠시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서 있던 메르노아가 슬슬 뒤로 물러났다. 테라스에 숨어있으면 저 황자가 메르노아는 빼먹고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테라스에는 며칠 째 같은 장소를 공유한 누군가가 있었다. 테라스를 공유한 덕분인지, ‘누군가’와 메르노아는 인사 정도는 하고 사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홀에 들어간 지 몇 분 되지도 않아서 다시 테라스로 나오는 메르노아의 모습에 누군가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방금 전까지 테라스에서 차가운 밤공기를 쐬던 그녀는 이제 슬슬 신랑감을 물색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누군가의 말에 동의를 하고 홀로 들어갔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찾기라도 한 걸까. 누군가의 이러한 의문을 눈치 챘는지, 메르노아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들 짝을 찾아가고 있어요. 남은 사람들이 많지 않네요.”

“저런, 영애들이 많이 남았나요?”

“아뇨, 남자들이 많이 남았어요. 별로 쓸모는 없어 보이지만요.”


진심을 담아 대꾸한 메르노아가 한탄스럽다는 듯 바깥을 내다보았다. 이대로 테라스를 넘어 도망가 버릴까. 아니. 도망가면 분명 신분이 하락할 텐데, 그럼 의미가 없잖은가. 결국 그저 그런 지방 말단 남작부인이 되어야 하는 건가. 남작영애도 모자라 남작부인이라니! 심란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메르노아를 물끄러미 보던 누군가가 한걸음, 빛이 닿은 곳으로 나왔다. 덕분에 며칠 째 그림자만 보여주던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저 홀 안의 귀족들 중에는 영애의 기준에 맞는 사람은 없나보군요.”

“굳이 있다면 여자나 밝히는 막돼먹은 놈 정도일까요.”

“저는 영애의 기준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 사람인 것 같은데요.”


누군가의 말에 테라스 아래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메르노아가 비로소 그를 돌아보았다. 옅은 금발 머리에 유약한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이 부드럽게 웃으며 메르노아를 보고 있었다. 일단 외모를 보니 여자가 많이 따르게 생겼고, 작위는 모르겠고, 성격도 모르겠고, 멍청한 지도 모르겠다. 대체 뭘 보고 자신의 기준에 맞는 것 같다고 한 지 알 수 없어서, 메르노아가 미심쩍다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메르노아의 눈빛에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했다.


“아버지를 잘 만나서 작위는 그럭저럭 이어 받았죠. 남성다움은 없지만 요즘 대세라는 미소년의 이미지 때문에 여자들도 많이 따릅니다. 똑똑…… 하다고는 볼 수 없겠고, 막돼먹은 건 솔직히 모르겠네요. 하지만 결정적인 조건이 딱 들어맞죠.”


청년의 녹색 눈동자가 곱게 휘었다.


“저는 몇 년 내로 죽을 예정이거든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작가의말

판토텐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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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 제국의 영애 (3) +11 10.01.29 12,426 53 12쪽
3 # 1. 제국의 영애 (2) +16 10.01.28 13,311 43 13쪽
2 # 1. 제국의 영애 (1) +11 10.01.27 15,705 44 12쪽
1 [1부∥패전국의 영애] # 0. 프롤로그 +28 10.01.26 25,105 6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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