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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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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838,375
추천수 :
16,202
글자수 :
790,195

작성
13.07.09 09:04
조회
5,832
추천
111
글자
9쪽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5-

DUMMY

하지만 예원은 아직 입을 꾹 다물고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얼굴을 따라 땀이 흘러내려도 손등으로 한 번 훔칠 뿐이었고, 어쩌다 힘든 듯이 숨을 골라도 그때뿐이었다. 그래서 태민은 리엔을 사용하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훈련 중에도 예원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봐. 도움을 받는 건 그 뒤여도 늦지 않으니까.


태양이 훌쩍 기울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산 밑이 겨우 보이기 시작했다. 예원은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태민아. 혹시 지금 우리는 달 위를 걷고 있는 걸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공기가 없는 곳에서는 먼 곳에 있는 것도 선명하게 보이거든.” 예원은 모자를 벗고 손등으로 이마를 닦아냈다. “저 산이 이렇게 멀 줄 알았으면 그냥 트럭으로 강을 건너는 건데.”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러기엔 이미 늦었죠.” 태민은 눈을 굴렸다. “리엔에게 근처를 탐색해보라고 할까요?”

“그래. 그러자. 마을로 돌아갈 시간을 생각하면 그래야겠어.”


태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리엔. 이 주변 지형 좀 조사해줘.”


[지형을 탐색합니다.]


리엔이 작업을 완료할 때까지 시간은 더디게 흘려갔다. 그동안 예원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뒤, 신발을 벗어 안에 들어차 있던 열기를 빼냈다. 태민은 그럴 만한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바닥에 앉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화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처음이었다.


[탐색 완료. 현재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2km, 지하 500m 이내에 다른 전자장비의 반응은 없습니다.]

“누나. 전자장비 반응이 없대요.”

“그래? 사람도 없고?”

[탐색 범위 내에 인간의 생명 반응은 두 분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의 반응은 상당수 있습니다.]

“사람도 저희 빼면 없다네요. 동물만 많대요.”

“에휴, 그럼 가자. 숨어있기 적합한 곳이라 생각했더니 동물의 왕국이었나 보네.”


신발을 다시 신고 되돌아가는 예원의 등은 힘이 없어 보였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하루를 그냥 날려버린 허탈함과 그로 인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예원이었기 때문에 해석에 신중을 요구했다.


한참을 걸어가던 예원이 괜히 AK를 메고 있던 어깨를 흔들어댔다.


“배고프다.”


태민은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트럭에서 뭐라도 먹죠. 있는 건 전투식량뿐이지만.”

“그것보다, 태민아. 저것 좀 봐.”


예원이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가리킨 곳에서는 커다란 동물이 풀 사이를 헤치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갈색 털을 두르고 있는 거대한 몸,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는 크고 날카로운 발톱,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풍성한 갈기. 풀에서 빠져 나온 수사자는 입가에 묻은 물을 혀로 핥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태민은 어깨에 메고 있던 AK를 급히 뽑아 들어 사자를 조준하며 말했다.


“사자가 왜 여기 있지요?”

“아프리카잖아. 사자뿐만 아니라 코끼리도 있고, 기린도 있고. 그런 동네 아니겠어?”

“하지만 여기는 사자 서식지가 아닐 텐데….”

“조사했어?”

“아니요.”


예원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서식지하니까 떠오른 건데, 우리 같은 동양사람들이 아프리카에 와있는 것도 서식지를 벗어난 거 아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런 것보다 지금 그런 말 할 때예요?”


태민은 총구를 사자에게 고정하고 천천히 오른손을 안전장치로 가져갔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이 일어나기 전에 준비해야 했다. 제발 움직이지 말라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안전장치를 아래로 내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요란한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시발점이 되어 사자가 달려들었다. 태민은 급히 안전장치를 풀었던 오른손을 방아쇠로 가져왔지만 이미 사자는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총구를 돌렸지만 사자의 꼬리 부분만 겨우 보였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사자의 꼬리가 움직이는 곳이 각도상 예원이 서 있던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만 눈치챘을 뿐이다. 태민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러지 않았고, 슬프지만 사람이 땅에 쓰러지는 소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들린 건 딱딱한 무언가와 살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예원은 AK의 총구를 손으로 잡고 옆으로 몸을 돌리면서 개머리판으로 사자의 머리를 후려쳤고, 그녀를 덮칠 기세로 뛰어올랐던 사자는 관자놀이를 얻어 맞고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살가죽이 땅에 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흙먼지가 피어 올랐다.


예원은 그대로 공중에서 AK를 한 바퀴 돌리더니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시키고 사자를 조준했다. 쓰러져있던 사자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총성과 함께 총알 하나가 사자의 발 바로 옆에 떨어졌다. 사자는 깜짝 놀라 뒤로 몸을 피했다.


사자는 그 이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원은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발사된 세 발 중 마지막 하나가 사자의 뒷발톱을 깨부쉈다. 사자는 고통에 울부짖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예원은 사자가 멀리 떨어져 작은 점으로 보일 때가 돼서야 총구를 내리고 안전장치를 다시 걸었다.


“세수하러 왔다가 얻어맞고 가지요.”


예원은 뜬금없이 자기 멋대로 개사한 동요를 부르더니 재밌지? 하고 묻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태민은 억지로 웃음을 띄우면서 AK의 안전장치를 걸었다. 철컥하는 소리가 여전히 컸다.


사자의 모습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태민은 사자가 도망간 방향을 보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자가 뛰는 걸 잡지 못했어요. 조금만 잘못했으면 예원 누나가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바보처럼 얼어가지고….”


하지만 예원은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방금 전 사자의 안면을 강타한 개머리판이 반으로 쩍 갈라져 몸통과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예원은 탄약을 회수한 다음 빈 AK를 미련도 없이 던져버렸다.


“나 살다 살다 개머리판이 갈라지는 경우는 처음 봤네. 이래서 짭퉁은 안 된다니까. 그런데 태민아. 방금 뭐라고 했어?”


세상에는 두 번 말하기 힘든 말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진심을 담은 후회였기에, 태민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다른 말을 했다.


“사자를 그런 식으로 도망가게 한 누나가 대단하다고요.”

“대단한가? 그런 게 달려들면 보통 반사적으로 그러지 않아?”

“그래서 대단한 거라고요.”


트럭으로 돌아가면서 두 사람은 다시 강을 건너야 했다. 태민은 이번에도 점프가 부족해서 강물에 뛰어들었다.



※ ※ ※



마을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노을이 붉게 지고 있었다. 태민은 아예 처음부터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오두막으로 트럭을 몰았다. 트럭 소리는 숨길 수 없었지만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움직였다. 오두막 앞에 트럭을 멈추고 어제와 똑같이 장비와 AK가 들어있는 상자를 옮겼다.


두 상자를 옮기고 나니 드문드문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타카야가 뛰어오며 말했다. 약간 상기된 목소리였다.


“두 분,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그 질문은 트럭 옆에 서 있던 태민이 받았다. 오두막 앞에 있던 예원이 네 거짓말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내온 이유가 있었다.


“예. 근처 탐사를 좀 다녀왔어요. 무슨 일 있었나요?”

“아침 일찍부터 사라지셔서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린 줄 알았어요. 그리고….” 타카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근처는 아직 안전하지만 먼 곳으로 나가면 강도나 반군들과 만날 수도 있거든요.”

“죄송해요. 괜히 걱정시켰네요.”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소득은 있었나요?”

“소득…. 없었어요. 슬프게도 내일 또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해요.”


그때 마을 어린아이들이 타카야를 불렀다. 리엔이 통역시켜준 말을 들어보니 전화가 온 것 같았다. 태민은 금방 돌아가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타카야를 보내며 마을 주민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을 살펴봤다. 살갑지 않은 그들의 눈빛에 이 마을에 머물 수 있는 것이 타카야 덕이라는 걸 새삼스레 확인했다.


두 사람은 지도에 오늘 갔었던 지점을 표시하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날 밤은 타카야가 오지 않았다.


작가의말

음... 요즘 좀 바쁘네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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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1- +12 13.06.29 8,687 121 13쪽
32 외전 [고고학의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17 13.06.27 8,474 112 11쪽
31 6장 [결심] -05- +20 13.06.25 9,607 133 12쪽
30 6장 [결심] -04- +12 13.06.22 9,137 135 17쪽
29 6장 [결심] -03- +7 13.06.20 9,602 123 13쪽
28 6장 [결심] -02- +12 13.06.18 10,007 138 12쪽
27 6장 [결심] -01- +10 13.06.15 10,631 136 12쪽
26 5장 [대화의 밤] -05- +11 13.06.13 11,298 139 10쪽
25 5장 [대화의 밤] -04- +17 13.06.11 12,373 161 10쪽
24 5장 [대화의 밤] -03- +8 13.06.08 12,023 132 13쪽
23 5장 [대화의 밤] -02- +8 13.06.06 10,239 132 11쪽
22 5장 [대화의 밤] -01- +7 13.06.04 30,860 142 12쪽
21 4장 [불운을 넘어서] -05- +10 13.06.01 14,836 15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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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4장 [불운을 넘어서] -03- +8 13.05.28 10,470 139 11쪽
18 4장 [불운을 넘어서] -02- +9 13.05.25 10,482 136 12쪽
17 4장 [불운을 넘어서] -01- +8 13.05.23 10,878 132 11쪽
16 3장 [리엔] -06- +7 13.05.21 11,040 13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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