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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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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838,196
추천수 :
16,202
글자수 :
790,195

작성
13.05.28 09:50
조회
10,468
추천
139
글자
11쪽

4장 [불운을 넘어서] -03-

DUMMY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길지 않았다. 태민은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예원을 일으켜 계속 걸었다. 총소리는 아까보다 멀어졌지만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힘겹게 시간을 끌어주고 있을 다른 대원들을 위해서라도 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저기, 네 이름이 뭐였지?”

[리엔입니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리는 건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 리엔. 아까 전에 크로노스가 우리를 쫓아오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 같았는데,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까?”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몇 가지 가정만 가능합니다. 모두, 신뢰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뢰할 만한 건?”

[무슨 이유에선지 크로노스가 망설였다는 것입니다.]

“그냥 추측이잖아.”

[저는 분명 신뢰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기대 이하의 대답에 얼이 빠져있던 중이었다.


“너 누구랑 얘기하니?”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팔이 한결 편해졌다. 정신이 돌아온 예원은 기침을 크게 두어 번 하더니 그때마다 등의 상처가 땅기는지 몸을 움찔했다. 그녀는 부축에서 벗어나 홀로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뭐야. 아무도 없잖아. 너 도대체 누구한테 말한 거야?”

“아, 그게요. 인공지능에게요.”

“인공지능? 그거 진짜로 작동해?”


태민은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켰다.


“네.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요.” 그러다 지금은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 “누나. 스티븐과 긱 아저씨는….”

“말 안 해도 알아.”


예원은 뒷말은 듣지도 않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뒤에 남겨진 두 사람이 걱정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두 사람에 대한 압도적인 신뢰의 표현이었다. 그들을 믿기에 예원은 멀리서 들려오는 총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였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네. 비행장으로 가려면….”

“이쪽이에요.”


태민이 손전등으로 수풀 쪽을 가리키며 앞장서자 예원이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네가 그럴 어떻게 알아?”

“아, 리엔…. 인공지능이 가르쳐줬어요.”


두 사람은 길이 아닌 곳을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도중에 작은 개천이 있어서 예원이 발을 헛디뎠다. 물이 발목까지 적셨다. 평소였다면 불평불만을 쏟아냈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단순히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했다.


태민은 갑자기 휘어진 나뭇가지가 왼팔을 향해 날아오자 당황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느껴질 아픔을 각오했다. 그런데 아픔은커녕 나뭇가지가 팔에 닿은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태민은 당황하며 작은 목소리로 리엔에게 물었다.


“왜 왼팔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야?”

[현재 왼팔은 완전히 부러진 상태입니다. 원래대로라면 통증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신경 마취를 시행했습니다.]

“으아….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야?”

[체내에 레가니움을 가지고 있는 당신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합니다.]


그때 먼 곳에서 타이어가 콘크리트 바닥에 갈리는 날카롭고 높은 소리와 차체가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태민은 걸음을 멈추고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다가 예원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통증과 피곤으로 범벅이 된 그녀는 말없이 손을 움직여 계속 움직이라 신호했다. 그 뒤로 태민은 의식적으로 시야와 청각을 바로 근처로 차단하고 리엔이 가르쳐주는 방향으로 꾸준히 움직이기만 했다. 절대로 걷힐 것 같지 않았던 어둠이 걷힐 때에도 발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캣! 이런…. 구급반! 빨리 와서 여기 좀 봐줘!”


소리를 지른 건 낮에 비행장에서 일행을 차량으로 안내했던 나이 든 대원이었다. 멀리서 구급반이 달려오는 게 보이자 태민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을 쏟아내는 전등들, 너무 길어 끝 부분에는 빛이 닿지 않는 활주로, 주변에 널러있는 오래된 창고들과 비행기들. 낮에 보았던 장소와는 분명 다른 장소였지만 닮은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잠시나마 집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우왓! 이게 뭐야! 너 이러고 여기까지 온 거야?”


백인 구급 대원이 소리쳤다. 예원을 보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지만 태민에게 하는 말이었다. 대원이 소매를 걷어붙이자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단련된 팔 근육이 보였다. 태민은 그 팔을 보는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나처럼 쉽게 팔이 부러지지 않겠지.’

“좀 아플 테지만 참아!”


대원은 그렇게 말하고 팔을 힘껏 움직여 일그러졌던 뼈를 맞췄다. 아픔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지만 살 속에서 뼈가 움직이는 감각은 어느 정도 전해졌다. 징그럽다. 태민은 자기 팔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부목을 팔에 고정하고 붕대가 감아졌다. 대원은 비명을 지르지 않을뿐더러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태민은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반응이라도 해야 했나.’


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생각하기엔 너무 피곤한 상태였다.


예원 쪽은 사고현장을 방불케 했다. 단 한 명만 붙었던 태민에 비해 그녀에게는 다섯 명이나 되는 구급대원들이 붙었다. 대원들은 완전히 걸레가 되어버린 예원의 등을 치료하면서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도 중간에 “응급처치가 잘 되어있어서 살았어” 라는 말이 들려 안심할 수 있었다.


태민은 응급처치를 한 긱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걱정됐다. 주변이 시끄러워서 그런 건지 전등에서 흘러 나오는 전자파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까 전까지 희미하게 들려오던 총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부목이 덧대진 팔은 움직이기 불편했다.


‘관절은 중요한 거구나.’


실없는 생각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활주로에는 낮에 타고 왔던 전용기와 비행장에서 운용할 수 있는 비행기 대부분이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태민은 직감적으로 이곳을 떠날 사람이 자신과 예원뿐이 아니란 걸 느꼈다.


그제서야 비행장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격납고 안에서 비행기를 꺼내는 대원들, 연료통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대원들, 트럭에 커다란 부품을 싣고 다니는 대원들. 모두들 필사적으로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치료를 받은 예원은 한쪽에 마련된 간이 의자에 앉아 나이 든 대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태민이 그쪽으로 걸어가자 나이 든 대원이 손으로 막아 섰다.


“미안하지만 잠시 떨어져 있어 주겠나?”


그러자 예원이 태민의 오른손을 잡아당겨 가볍게 옆으로 데려왔다.


“괜찮아요. 얘는 영어 못해서 우리가 하는 말 못 알아들어요.”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태민은 알지 못했다. 다만 예원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만이 조금이나마 근거가 되어주었다. 나이 든 대원은 젊은 관리자를 이해해주기로 한 것 같았다.


“알았다. 그럼 원래 하던 얘기로 돌아가도록 하지. 꼭 이 비행장을 버려야 하나?”

“예.” 예원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힘이 있었다. “2년 전, 크로노스를 떼어놓고 도망칠 수 있었던 방법은 해저 연구소와 함께 심해로 던져버리는 것이었어요. 대령님. 지금 우리에게 크로노스를 또다시 심해로 던져 넣을 방법이 있나요?”


대령이라 불린 나이 든 대원은 길게 탄식했다.


“없지.”

“애들을 최대한 살리려면….” 예원은 잠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크로노스를 이곳으로 유인해서 비행장과 함께 폭발시키는 사이에 도망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생각해봐요. 녀석은 혼자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정확히 우리를 습격했죠. 정보와 팀이 있었다고요.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 홍콩 지부를 찾아낼 위험도 있어요. 최대한 멀리 떼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이왕 날려버리는 거, 현재 가지고 있는 폭약을 모두 사용하면 크로노스를 처치할 수 있지 않을까?”


예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수천억 하는 연구소를 버리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캣. 내가 너를 신뢰하고 있다는 걸 미리 알아줬으면 한다. 하지만 그때는 실내였잖아. 애초에 실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한정적이고, 또 연구소가 폭파될 위험에 소극적이었을 수도 있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나?”

“그때가 벌써 2년 전이에요. 그동안 대령님의 말을 저 스스로 몇 번이나 질문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 그때마다 대답은 한 가지더라고요.”


대령은 고민했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지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예원을 이해하려 애쓰는 눈치였다. 다만 그런 노력에도 머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가슴만이 마지막 정신을 잡고 필사적으로 현 상황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예원을 이해하고 있었다. 대령은 자신의 나쁜 버릇이 또 나왔음을 깨닫고 질문으로 넘어갔다.


“홍콩 지부는 또다시 위치를 옮겨야 하는 건가?”

“홍콩 지부도 여기 자리 잡은 지 2년이 넘었으니까 오래됐죠. 무전 넣어놨으니까 지금쯤 열심히 이사 작업 중일 거예요.”


대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무전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지금 당장 대원들에게 크로노스를 본부로 유인하라고 전해라. 캣. 자네는 꼬마와 함께 전용기에 올라타 있어. 여기 있으면 방해만 될 뿐이니까.”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예원은 자신의 말을 실행하려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가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한동안 어정쩡한 자세를 해야만 했다. 격납고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대기 중이던 전용기에는 태민을 치료해줬던 구급대원이 함께 올라탔다. 낮에 보았던 흑인 조종사가 미리 와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조종석은 비어있었다.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구급대원이 소파를 뒤로 펴서 침대로 만든 다음 예원을 거꾸로 눕히고 정장 재킷을 벗겼다. 전용기 내부 전등을 켜니 화상과 파편으로 엉망이 된 예원의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태민은 거기서 고개를 돌리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창문으로 몇몇 격납고에 비행기 대신 상자가 쌓이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상자인지 몰랐지만 이내 예원이 말했던 폭발이 생각났다. 폭약 상자였다. 상자에 연결된 전선이 활주로를 가로질러 수풀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크로노스를 유인해오면 함께 날려버릴 계획인 것 같았다.


‘저 정도면 되지 않을까?’


태민도 대령과 똑같은 의혹을 느꼈다.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폭약을 크로노스가 버텨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랬는데, 폭발 속에서도 도로 위에 우뚝 서 있던 크로노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크로노스는 그 많은 총알과 수류탄을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과연 저 폭약으로 크로노스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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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6장 [결심] -04- +12 13.06.22 9,135 13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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