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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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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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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2
글자수 :
79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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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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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글자
12쪽

5장 [대화의 밤] -01-

DUMMY

전용기가 김포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을 때는 이미 아침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인물은 이전에 예원의 병실을 가르쳐줬던 의사였다. 그는 먼저 태민과 예원에게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오르라고 지시했다. 침대는 당연히 예원 차지였다. 태민은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어이구, 관리자님. 이번에도 또 한 건 하고 오셨어요.”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숙소 접수대의 최수진이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입고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또 한차례 싸움을 걸 기세다. 거기에 지지 않고 예원 또한 틱틱 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요. 비행장 하나를 화려하게 날려먹었습니다. 그래도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어요.”

“우리 사람 좋은 사장님이 그걸 고려해주실까요?”

“끄응. 욕은 좀 먹겠지만 한 대 있던 DF도 무사귀환 시켰고, 홍콩 지부가 이동할 시간도 좀 벌었으니까….”

“해저 연구소보다는 싸니까요.” 최수진은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고마워요. 살아 돌아와서.”


예원은 그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두 손 위에 얼굴을 올리고 조용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태민이 웬일로 싸우지 않고 넘어가나하며 최수진을 바라봤다. 얼굴은 물론이고 귀까지 붉어진 그녀는 백미러로 눈이 마주쳐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의사가 구급차에 올라 문을 닫으며 태민의 옆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입에서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얘기는 끝났어. 최양. 연구소로 돌아가자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최양이라고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구급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민은 긱과 스티븐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한 걸 생각하고 조그마한 뒷창문으로 밖을 내다봤다. 아쉽게도 스티커로 가려진 창문으로는 전용기 앞머리만 살짝 볼 수 있었다.


“등짝 좀 보자.”


의사는 동의는 구하지도 않고 예원의 셔츠를 위로 걷더니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다.


“내 평생 이렇게 자기 몸 안 아끼는 년은 처음 본다.”

“제가 다 우리 탕주 아저씨 믿고 이러는 거잖아요.”


야단에도 예원이 헤헤 웃으며 대답하자 의사는 손을 번쩍 들고 그대로 내려치려 했다. 그래도 그는 의사였기에, 환자를 때리는 몰상식한 짓을 하기 직전에 극한의 참을성을 발휘했다.


“당분간 움직일 생각, 특히 운동은 절대 금지다.”

“네. 네. 알겠습니다.”

“술, 담배도 금지다.”

“그건 원래 안 하는데요.”


예원은 양쪽 볼에 바람을 집어넣어 불만을 표시했다.




※※※




구급차가 멈춰 선 곳은 허허벌판 한가운데였다. 황량한 땅에는 나무 한 그루도 없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는 갈색 잡초만 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건물이라고는 딱 한 채, 마루역이라 쓰인 표지판과 입구가 폐쇄된 지하철역 밖에 없었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빌딩 숲이 주변 풍경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마루역.”


태민은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흙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쓴 표지판을 지나 지하철역 앞에 섰다. 도심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양의 역이었다. 얼마 전에 예원을 따라 지하철로 역에 왔을 때는 멀쩡한 역인 줄로만 알았는데, 설마 입구가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최수진이 손가락에 열쇠를 걸고 빙빙 돌리더니 자물쇠와 손잡이에 걸려있던 쇠사슬을 풀어냈다. 그녀가 무게가 꽤 나가 보이는 쇠사슬을 비교적 가볍게 다루는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문이 열린 역 입구는 다른 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그 끝에 살짝 보이는 지하 복도의 모습. 그리고 지하철 특유의 냄새 등. 다만 에스컬레이터는 움직이지 않아서 보통 계단처럼 이용해 내려가야 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최수진은 내려오지 않고 문을 닫더니 손잡이에 다시 쇠사슬과 자물쇠를 걸었다. 태민은 그녀가 문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고 질문을 했다.


“저 분은 왜 같이 내려오지 않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대답은 예원이 해줬다.


“누군가 문 닫을 사람은 필요하니까. 구급차 돌려주고, 우리가 왔던 것처럼 지하철로 올 거야.”


에스컬레이터 아래 복도에는 조명이 꺼져있어 굉장히 어두웠다. 앞서 걷던 예원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LED전등을 밝혀 복도를 비췄다. 대리석처럼 매끈한 바닥에는 흙으로 만들어진 발자국이 즐비했다.

태민이 비교적 깨끗한 바닥을 밟으려 애쓰면서 말했다.


“여기는 관리가 전혀 안 되어 있네요.”

“안쪽은 지하철 직원들이 쓰니까 청소를 하긴 하는데 이쪽은 아예 신경 안 쓰더라.”

“직원들이 안쪽을 써요?”

“여기가 시설은 비교적 좋거든. 그걸 유지하려고 항상 상주하는 인원들이 있어. 가끔 졸다가 여기까지 온 일반 승객들 돌려보내는 역할도 하고.”


예원은 상처가 또다시 아려오는지 걸음을 멈추고 등을 쭉 폈다. 뒤에서 의사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과도하게 큰 소리로 유추해볼 때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행동이었다.


어느 정도 들어가니 드디어 전등이 켜진 넓은 복도에 들어섰다. 예원도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복도 좌우로는 어느 지하철역이 그렇듯이 매장이 들어설 만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비록 매장은 한 곳도 들어오지 않아 황량함을 넘어 음산한 느낌까지 들었지만 기본 골격 자체는 그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태민은 이곳이 사람들로 가득한 모습을 상상하다가 그만뒀다. 역 밖이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인데 상상 따위는 무의미했다.


넓은 복도를 꺾어 들어가자 나란히 늘어선 지하철 개찰구가 보였다. 카드시스템을 쓸 수 있는 비교적 최근의 물건이었지고, 전원은 들어와 있지 않아서 그냥 지나가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굳이 위로 통과하려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예원이었다.


그녀는 허들 뛰어넘듯이 개찰구를 뛰어넘었다.


“아야야야….”


그러고서는 등이 아프다고 한동안 멈춰 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두 남자는 동시에 혀를 찼다.


지하철 승강구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가면서 태민은 생각했다. 바로 어제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이렇게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예원의 영향이 아닐까 하고. 그 생각은 얼마 안 있어 믿음이 되었다. 예원의 활발한 모습에 마음이 즐거워졌을 뿐이라고, 결코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징조는 아닐 거라고 말이다.


그때, 의사가 태민의 부러진 왼팔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으앗! 왜 그러세요.”


어젯밤까지 괜찮았던 팔이었지만 지금은 고통이 확실하게 전달됐다. 의사는 반응을 보더니 다시 제 갈 길을 가면서 무덤덤하게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한 번 확인해 본 거야. 부러진 게 확실하구먼.”

“꼭 확인하지 않아도 붕대째로 감긴 부목을 보면 아시잖아요.”


승강구 천장에 설치된 알림판에 다음 열차는 15분 뒤에 도착한다는 글귀가 떠있었지만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승강구에 있는 사람은 방금 도착한 일행 세 사람이 전부였다. 예의 철문에 제일 먼저 도착한 예원이 지문 검사기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철문이 열렸고, 태민은 예원을 뒤따라 어두운 통로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지문 등록 같은 것도 안 해놨네요.”

“그러게. 한가할 때 다시 말해. 내가 해줄게.”

“네.”


이번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명이 켜졌고 새하얀 벽 중앙에 놓인 무빙 워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원이 가볍게 무빙 워크 위로 올라가면서 말했다.


“우와, 앞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다.”

“그만 좀 놀려요.”


커다란 산업용 엘리베이터로 내려갈 때 의사가 예원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다. 예원은 아프긴 한데 참을 만하다고 대답했고, 의사는 내려가는 즉시 진찰실로 가자고 말했다.


“그럼 저는요?”


태민이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말하자 의사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지금 네가 더 많이 다친 것 같니, 아니면 얘가 더 많이 다친 것 같니? 일단은 관리자씨 먼저야.”


맞는 말이었다. 그 말을 백번 이해했다. 그렇지만 자기도 부상자이니만큼 평범하게 걱정을 받았으면 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신경질적인 말을 들으니 화가 났다. 하지만 이미 젊은 시절이 한참 전에 지나가 버린 의사는 그런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태민의 왼쪽 귀를 잡아당겼다.


“그나저나 계집애처럼 웬 귀걸이냐?”

“아야야, 조심하세요. 팔에 힘 들어가요.”

“거참, 남자 놈이 귀걸이 하는 것도 이상한데 그것도 한쪽에만 달았네. 관리자씨는 저걸 보고도 아무 생각 안 드나?”


당연히 태민은 예원이 자신을 두둔해줄 거라 생각했다. 바로 옆에서 사장이 귀걸이를 상자에서 꺼내는 것부터 귀에 달아주는 모습까지 직접 목격한 그녀가 아니었던가.


“냅둬요. 자기가 좋다는데 어쩌겠어요.”


태민이 벙찐 표정을 짓자 예원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쿡쿡하고 웃었다. 그 덕분에 의사는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남성성에 대한 장대한 설교를 퍼부어 댔다. 운동과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마른 몸의 의사가 어찌 생각은 그렇게 마초 같은지.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첫날과 같은 환영은 없을 거라 예상했지만, 설마 연구원들 모두 자기 자리에서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들려오는 것은 온통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화이트 보드에 수식을 적는 소리밖에 없었다. 항상 눈인사를 해줬던 턱수염 아저씨와 양 갈래 머리 여직원도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조용히 사무실을 가로질러 숙소로 이어진 통로로 빠져나갔다. 연구소 내 병원은 숙소 2층에 있었다.


“이상하다…. 왜 다들 날 모른 척하는 거지?”


통로를 절반쯤 걸었을 때 예원이 중얼거렸다. 태민도 거기에 자신이 품었던 의문을 더했다.


“누나도 그랬어요? 역시 나만 이상하다 생각했던 게 아니구나.”

“혹시 사장이 비행장 날려먹은 거에 분노해서 나 해고라도 했나?”

“어, 그건 좀 신빙성이 있는데요.”


두 사람이 힘 빠진 목소리로 궁상을 떨자 의사가 뒤에서 또 한 번 혀를 찼다.


“관리자가 해고됐으면 마중이라도 갔겠어? 내가 지시했어. 환자가 둘이니까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그럴 수가! 인간은 관심을 먹고 사는 동물이잖아요!”


그 말이 가슴을 파고들어 와서, 태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사는 농담 따위를 들어줄 시간은 없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창 일할 시간이라 숙소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접수대도 최수진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비어있는 상태였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어김없이 벽에서 푸른 바닷가가 재생됐다. 그것을 보자 그제서야 집에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랬다. 연구소 숙소가 집으로 느껴져서 태민은 그 느낌의 원인을 찾아내느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느낀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예원이 눌렀다. 2층과 5층이었다.


“태민이는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 시간 되면 여기 이 의사 아저씨가 호출할 거야.”


속도가 빠른 엘리베이터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층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예원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가볍게 손 인사를 해서 태민도 똑같이 손 인사로 답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5층을 향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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