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838,193
추천수 :
16,202
글자수 :
790,195

작성
13.06.11 12:00
조회
12,371
추천
161
글자
10쪽

5장 [대화의 밤] -04-

DUMMY

오전 2시. 연구소 사람들 대부분이 잠든 시간에 태민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가고 있었다. 벽에서 재생되는 바닷가는 시간대에 맞게 어두운 밤하늘 아래 넘실대고 있었다. 달빛에 빛나는 파도가 아름다웠다.


평소에도 은은했던 로비의 조명은 앞을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양으로 조절되어 있었다. 태민은 빈 접수대와 탁자들을 지나 중앙통로로 이어진 철문 앞에 섰다. 고요한 밤중에는 철문이 열리는 기계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혹시 누군가 듣지 않을까 싶어 쓸데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이 마치 범죄자 같았다.


중앙 통로 또한 최소한의 조명만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태민은 되도록 빠른 걸음으로 중앙 통로를 가로질러 실험실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철문이 열리면서 소리를 냈다. 할 수만 있다면 문을 모두 분해해서 기름칠하고 싶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였다.


실험실은 숙소 로비나 중앙통로보다도 어두웠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상태여서 그런지 중앙에 홀로 서 있는 예원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환자복 차림으로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왔어?”

“예. 왔어요.”


실험실 안으로 들어오자 뒤에서 철문이 다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예원은 태민이 근처에 다가오자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리엔, 관리자의 권한으로 이 실험실의 제어권을 가지는 걸 허락할게. 먼저 불부터 켜줘.”


어두움에 익숙해져 있던 두 사람을 배려해 평소보다 조금 낮은 밝기로 실험실 전등이 들어오면서 새하얀 타일 벽과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 뒤에서 타일이 모여 공원에서 흔치 볼 수 있는 벤치를 만들어냈다. 예원이 아무런 주저함 없이 타일로 만들어진 하얀 벤치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말했다.


“고마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리엔, 크로노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녀석을 재현해줘.”

[크로노스 재현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리엔의 목소리는 머릿속에서도 예원의 휴대폰도 아닌 실험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들렸다.


태민은 처음 예원이 이 계획에 대해 얘기할 때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휴대폰 연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귀걸이 안에 내장된 작은 컴퓨터가 실험실까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모름지기 사람을 설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예원이 옆자리에 앉는 태민을 향해 물었다.


“태민아. 어떨 것 같아?”

“뭐가요?”

“크로노스와 똑같이 생긴 물체가 눈앞에 솟아올랐을 때 기분 말이야.”


태민은 어둠과 불길 속에서 보았던 크로노스의 얼굴을 떠올렸다. 방독면같이 생긴 가면을 쓴 거대한 생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심장이 손에 잡힌 듯 조여왔다.


“실제로 본다면 무섭겠죠. 하지만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도 여기서 만들어지는 건 가짜라는 걸 아니까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왠지 예원의 말이 2가지의 뜻을 내포한 것 같아 그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 때 바로 앞에서 타일이 모여 솟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전에 사격장을 만들 때보다 훨씬 많은 수가 많았다. 한곳에 모여 물결치듯 움직이는 타일의 모습은 기계가 아니라 생명체를 연상시켰다.


예원은 타이밍을 재고 있다가 타일이 솟아오를 때에 맞춰 손가락을 튕겼다.


“솟아라.”


그러자 타일들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면서 순식간에 거대한 생명체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고개를 위로 젖혀야 보이는 머리, 수백 년 된 나무의 줄기와 비슷한 굵기를 가진 팔과 다리, 서 있는 자리에 그늘이 만들어질 정도로 커다란 몸. 색이 하얗다는 것만 빼면 완전한 크로노스의 모습이었다.


태민은 그 순간 깨달았다.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크로노스라는 생물이 가진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무섭네요.”


입에서 저도 모르게 솔직한 감상이 튀어나왔다. 예원은 그 말을 비웃지 않았다. 그녀 역시 리엔의 데이터에 의해 재현된 크로노스를 보고 지난날의 공포를 다시 느끼고 있었다. 아까 전에 했던 말은 자신과 태민, 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예원을 가짜 크로노스 바로 밑으로 움직이게 만든 건 공포를 극복해서도, 두 번이나 크로노스를 만나서 익숙해진 것도, 이 순간을 위해 남겨 놓았던 용기도 아니었다. 단순히 자기보다 약하고 나이 어린 사내 앞에서 연장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은 웃음이 나올 만큼 유치했지만 동시에 그만큼 강했다.


예원은 크로노스의 가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냈잖아. 리엔, 대단한걸?”

[과찬입니다.]


예원은 흰색 크로노스를 앞뒤로 돌아다니면서 꼼꼼히 살폈다. 몸통과 다리가 단단한 재질의 방어복으로 보호된 반면, 굵직한 팔은 아무런 방어 수단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예원은 크로노스의 팔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타일은 감촉까지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었지만 생김새만으로도 피부가 얼마나 단단한지 느껴졌다.


“태민아. 너도 와서 살펴봐.”

“아, 예.”


마침 태민은 예원이 흰색 크로노스를 살피는 모습을 보고 공포가 어느 정도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벤치에서 일어나 크로노스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공포가 다시 머리를 들었다. 태민은 침을 목 뒤로 꿀꺽 넘기고 가면이 보이지 않는 뒤쪽으로 돌아갔다. 크로노스의 등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망토가 있었다. 끝 부분의 모양으로 보아 중간에 찢어진 것 같았다.


태민은 크로노스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말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휘두르던 낫은 없네요?”


그 말에 예원이 대답했다.


“맞다. 그걸로 우리 뒤를 따라오던 차를 두 동강 냈었지. 리엔, 그거에 대한 데이터있어?”

[노출된 시간이 극히 짧았기 때문에 크기는 재현 가능하나, 모양은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합니다.]

“그 정도라도 해줘.”

[알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흰색 크로노스의 오른팔 아래에 타일이 모여들더니 커다란 낫의 형상을 만들었다. 흔히 낫하면 생각나는 평범한 모양새였지만 역시 그 크기는 압도적이었다. 오른손에 낫을 든 크로노스는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다.


가짜 크로노스의 정면에 서 있던 예원이 태민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태민이 다가가자 예원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태민아. 이 녀석을 대체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을까? 총도 안돼요. 폭탄을 터트려도 안돼. 해저에 연구소와 함께 떨궈놨더니 2년만에 다시 나타나. 이 누나는 도저히 방법이 생각 안 난다.”

“누나….” 태민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전에 사용했다가 기절했던 총 얘기 하려는 거죠?”


아무래도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단박에 알아맞힌 듯했다. 예원은 대답하지 않고 어딘가 켕기는 얼굴로 크로노스를 올려보기만 했다. 태민은 입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숨을 들이마셨다가 한 번에 내쉬고 말했다.


“위에는 한 달 동안 쉰다고 얘기하고 그동안 별도로 에너지를 추출하려는 생각이신 거 같은데, 저는 상관없어요. 한 달에 두 개라는 규칙을 누나가 깨트릴 것 같지도 않고.”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예원이 손바닥을 쳤다. “하지만 그러진 않을 거야. 뭐가 됐든 네 건강이 우선이니까.”


예측이 빗나간 태민은 자신감이 줄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니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거예요?”

“그냥 만약을 대비해서 네가 기본적인 사격술에 근접전투기술을 익히는 건 어떨까하고 물어보려고 했지.”

“사격에 근접전투요?” 태민은 잠시 생각했다. “그거 다른 전투 대원들처럼 훈련시킨단 말 아니에요?”

“맞아. 그거야.”

“거절합니다.”

“아니. 왜?”


예원은 어깨를 잡고 거칠게 흔들면서 “왜?”를 연신 말해댔다. 앞뒤로 흔들리는 머릿속에서 태민은 거절하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냈다. 첫째로, 자신은 총을 들고 싸우고 싶어한 적이 없었다. 거기에 관심을 가진 적도, 멋지다고 동경한 적도 없었다. 둘째로, 연구소에 들어올 때 그런 말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셋째로… 거기까지 생각하다 그만뒀다. 아무리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봐도 변명일 뿐이었다. 태민은 이제까지 떠올랐던 이유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그 이유들이 나올 수 있었던 근원을 직시하기로 했다.


“저는….” 태민은 입이 마음대로 열리지 않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자 그제서야 입이 제대로 열렸다. “저는 크로노스가 무서워요.”


어깨를 흔들던 손이 멈췄다. 너무 큰 실망을 준 게 아닌가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예원은 어느새 벤치로 걸어가고 있었다. 등이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벤치에 힘없이 앉는 모습을 보자 태민은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예원이 말을 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예원은 오랫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손으로 옆자리를 치면서 말했다.


“서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앉아.”


태민은 말없이 그녀의 옆에 앉았다. 바짝 붙지는 않았고 약간 떨어져 있었다. 예원은 그 거리를 보더니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6- +5 13.07.11 6,012 136 10쪽
37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5- +6 13.07.09 5,831 111 9쪽
36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4- +10 13.07.06 6,467 105 11쪽
35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3- +18 13.07.04 6,912 116 11쪽
34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2- +16 13.07.02 7,490 121 13쪽
33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1- +12 13.06.29 8,686 121 13쪽
32 외전 [고고학의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17 13.06.27 8,473 112 11쪽
31 6장 [결심] -05- +20 13.06.25 9,606 133 12쪽
30 6장 [결심] -04- +12 13.06.22 9,135 135 17쪽
29 6장 [결심] -03- +7 13.06.20 9,600 123 13쪽
28 6장 [결심] -02- +12 13.06.18 10,006 138 12쪽
27 6장 [결심] -01- +10 13.06.15 10,630 136 12쪽
26 5장 [대화의 밤] -05- +11 13.06.13 11,297 139 10쪽
» 5장 [대화의 밤] -04- +17 13.06.11 12,372 161 10쪽
24 5장 [대화의 밤] -03- +8 13.06.08 12,022 132 13쪽
23 5장 [대화의 밤] -02- +8 13.06.06 10,238 132 11쪽
22 5장 [대화의 밤] -01- +7 13.06.04 30,859 142 12쪽
21 4장 [불운을 넘어서] -05- +10 13.06.01 14,834 159 9쪽
20 4장 [불운을 넘어서] -04- +7 13.05.30 10,139 132 11쪽
19 4장 [불운을 넘어서] -03- +8 13.05.28 10,468 139 11쪽
18 4장 [불운을 넘어서] -02- +9 13.05.25 10,480 136 12쪽
17 4장 [불운을 넘어서] -01- +8 13.05.23 10,877 132 11쪽
16 3장 [리엔] -06- +7 13.05.21 11,039 139 14쪽
15 3장 [리엔] -05- +9 13.05.18 12,674 154 18쪽
14 3장 [리엔] -04- +6 13.05.16 12,033 129 14쪽
13 3장 [리엔] -03- +8 13.05.14 11,936 136 12쪽
12 3장 [리엔] -02- +8 13.05.11 12,049 143 12쪽
11 3장 [리엔] -01- +7 13.05.09 12,905 155 10쪽
10 2장 [위험은 언제나 가까이에] -05- +14 13.05.07 13,310 172 12쪽
9 2장 [위험은 언제나 가까이에] -04- +6 13.05.04 14,136 16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