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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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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838,377
추천수 :
16,202
글자수 :
790,195

작성
13.05.23 06:00
조회
10,878
추천
132
글자
11쪽

4장 [불운을 넘어서] -01-

DUMMY

“캣!”


고양이가 아니라 캣이라 제대로 외친 남자는 대머리 긱이었다. 불길을 배경으로 경사를 내려오는 그의 양손에는 소총과 응급 상자가 들려있었고, 쓰고 있던 선글라스는 테만 남고 양쪽 렌즈가 모조리 날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글라스를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만은 존경 받을만했다.


“태민! 이걸로 등을 비춰줘!”


긱은 태민에게 손전등을 던지고 응급상자를 열었다. 태민은 손전등을 손에 들고 망설였다. 예원의 상처는 자기를 구하려다 생긴 상처였다. 그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태민! 똑바로 비춰!”


그러나 개인의 고민이 통할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긱은 이미 예원의 겉옷을 벗기고 간단한 응급처치를 한 다음 등에 박힌 유리파편을 뽑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민은 이를 악물고 손전등을 비췄다. 크고 작은 유리파편이 빛에 반짝였다.


긱이 핀셋으로 뽑아낸 유리 파편이 10개가 넘어갔다. 유리 파편을 뽑아내는 데는 개당 수초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개중에는 깊이 박혀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런 것은 시간도 오래 걸렸고, 긱도 신중을 기했다.


그때 도로 위에 있던 자동차가 또 하나 폭발했고 그 진동에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태민은 긱이 뭐라고 하기 전에 두 손으로 손전등을 부여잡았다. 예원의 등에 박힌 유리파편은 이제 대부분 제거된 것처럼 보였다. 긱이 얼굴을 따라 흐르는 땀을 팔로 훔치며 핀셋을 잡았던 시간만큼 참았던 긴 숨을 내쉬었다. 파편 제거가 끝난 것이다. 태민도 손전등을 들고 있느라 피곤해진 팔을 내리려 했다.


[환자의 목 부근에 파편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갑자기 들린 인공지능의 목소리는 팔에 다시 힘이 들어가게 했다. 손전등 빛을 예원의 목덜미로 가져가자 긱도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핀셋을 들었다. 자세히 보니, 옷자락에 가려진 조그만 파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긱은 태민과 시선을 교환하고 단번에 파편을 제거했다.


“잘했어. 밤 눈이 꽤 좋은가 봐?”


긱의 칭찬에 태민은 마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해도 뿌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긱이 상처 부위를 깨끗한 물로 씻고 약을 바른 다음 붕대를 감을 동안 태민은 예원의 몸을 잡아 치료를 도왔다.


그러는 사이, 총성이 멎었다. 어느 한 쪽이 모두 쓰러져 자연스럽게 전투가 끝난 신호는 아니었다. 기가 막힌 우연으로 총알을 발사하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 겹쳐서 일어난 일이었다. 도로 위에 있던 대원들은 잠깐의 평화를 마음껏 만끽하고 다시 적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


응급상자와 소총을 챙긴 긱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가 지금 손이 바쁜데, 대신 캣 좀 일으켜 세워줘. 금방 지원이 올 거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원이 도착했다. 대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되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폭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면서 땅이 흔들렸다. 도로 위에 있던 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가자!”


앞장서서 경사를 올라가는 긱의 발걸음은 굉장히 가벼웠다. 태민 또한 도로 위에서 일어난 일에 호기심이 동해 예원을 부축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경사를 올라갔다. 그리고 도로 위에 올라오자마자, 논과 밭을 집어삼키고 있는 거대한 화염이 보였다. 환호성을 지르는 대원들 사이에서 스티븐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긱과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곧바로 태민에게 다가와 예원의 한쪽 팔을 자기 목에 걸었다.


“캣은 내가 옮길게.”


이미 긱이 멀쩡한 차 한 대를 확보해 운전석에 올라타 있었다. 태민은 스티븐과 예원이 타기 편하게 먼저 움직여 뒷문을 열어주고 자신은 보조석에 올라탔다. 비행기로 이동한 네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차에 함께 탔다.

긱이 차를 출발시키면서 스티븐에게 물었다.


“애들은 몇이나 남겨두기로 했어?”

“열. 곧 지원도 올 테니 그 정도면 충분해.”

“어쩐지 따라오고 있는 차가 2대 밖에 안 되더라니.”


태민은 고개를 돌려 예원을 보려다가 목에 힘을 줘서 멈췄다. 자신의 실수, 아니 실수가 아니라 명령을 따르지 않아 생긴 일이었기 때문에 감히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창 밖을 내다봤다. 화염은 이미 저 뒤로 멀어지고 있었고, 총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차 안은 필요 이상으로 조용했다. 태민은 둘 중 아무라도, 아니면 예원이 정신을 차려서 자신을 비난해주길 바랬다. 의도적인 회피보다는 직접적인 비난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자동차가 움직이는 소리만 공허하게 울렸다.


[아군 지원 차량 접근.]


갑자기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무의식적으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먼 곳에서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오고 있었다. 곧이어 전조등이 보이더니 어둠 속에서 험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초의 험비가 일행이 타고 있는 자동차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운전병이 긱에게 경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야, 지원 참 빨리도 온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감탄 겸 비꼬는 말을 할만한 사람은 차 안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태민은 그제서야 뒷좌석을 돌아볼 수 있었다. 옆을 지나고 있는 험비의 전조등에 예원이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초췌해 보였지만 후회하거나 원망하는 기색은 없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


소총의 안전장치를 확인하던 스티븐이 물었다.


“등에서 666개의 손이 튀어나오는 느낌이야.”

“그거 부럽군.”

“내 등을 만진 녀석이 누구야?”


운전하고 있던 긱이 손가락을 흔들면서 대답했다.


“치료할 때 빨리 나으라고 약 대신 코카인을 썼는데 괜찮지?”

“어쩐지 아까부터 웬 문어가 운전석에 앉아있나 했다. 긱, 내가 돌아가면 널 CIA나 인터폴에 신고부터 할 거야.”

“CIA는 내 오랜 친구지.”


태민은 예원이 평소처럼 영양가 없는 농담을 하는 모습이 좋았다.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최소한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예원은 걱정하는 눈으로 보고 있는 태민을 향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하지만 차가 흔들릴 때마다 상처가 자극받아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럴 때마다 세 남자가 깜짝 놀라는 모습은 심히 부담스러웠다.


자동차는 한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도로를 달렸다. 일행 중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바랬다. 그러기 위해선 쓸데없는 잡담은 금지하고 눈앞에 펼쳐진 길에 집중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런데 그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있었다.


-긱, 스티븐. 거기 있습니까?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긱이 오른손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긱이다. 무슨 일인가?”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적들은 대부분 사살했고 2명을 생포했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미미합니다.


태민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교전 중 총에 맞아 쓰러졌던 대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사람의 부상이 미미하다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무전기 너머의 대원이 계속해서 말했다.


-지원이 온 덕분에 빠르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몇몇 인원을 남기고 나머지는 곧바로 뒤를 따라…. 잠시 기다리십시오.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거기! 무슨 일이야?- 무전기 너머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이런 제길. 긱, 들립니까? 알 수 없는 적으로부터 공격받고 있습니다. 적은….

무전은 거기서 끊어졌다.

“뭐야? 야! 응답해!”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긱은 잡음만 들리는 무전기를 붙잡고 한참 동안 소리를 지르다 아무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거칠게 내려놓았다.


태민은 분노를 겨우 참고 있는 긱에게, 그리고 뒷자리에 있는 스티븐과 예원에게 왜 도우러 가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럴 자격은 없었지만 안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속 시원하게 듣기라도 하고 싶었다. 여전히 적과 싸우고 있는 동료들을 놔두고 도망치는 짓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온 힘을 다해 등의 상처를 참고 있는 예원과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있는 긱을 보면서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걸 알았다.


[식별할 수 없는 생명체를 감지했습니다.]


잠시 동안 잊고 있었던 인공지능이 다시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태민은 무시하기로 했다. 분노와 긴장으로 아무도 말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 아무리 작게 말하더라도 누군가의 귀에 들어갈 게 뻔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태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말했다.


[대상은 교전 지역에서 이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 중 입니다. 대상의 도착 예상 시간은 6분 42초입니다.]

‘교전 지역?’


무전 마지막에 들렸던 알 수 없는 적이 떠올랐다. 인공지능이 말한 식별할 수 없는 생명체가 그 알 수 없는 적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태민은 몸을 의자 사이로 움직여 자동차 뒷창문 너머를 바라봤지만 따라오고 있는 다른 차량의 불빛에 눈이 부실 뿐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에 예원이 물었다.


“태민아. 왜 그래?”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요.”


태민은 뒷창문을 포기하고 조수석의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었다. 두 대의 자동차가 따라오고 있었고, 그 뒤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이 장악하고 있었다. 태민은 세찬 밤바람에 귀가 시려올 때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거대한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 같은 것이 아니었다. 스티븐과 예원도 그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봤다.


인공지능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대상과의 거리가 가깝습니다. 속도를 올릴 것을 권장합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코끼리만큼 커다란 몸을 가진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빠른 속도로 달려오더니 통나무보다 두꺼운 팔로 맨 뒤에 있던 승용차를 옆으로 쳐냈다. 승용차는 장난감처럼 날아가 길 옆의 논에 처박혔다.


[대상 분석 중.]


생전 처음으로 자동차를 날리는 괴물을 본 태민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다음 행동을 지켜봤다. 바람에 귀가 떨어질 듯이 아팠지만 그건 이미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뒤에 있던 자동차에서 대원들이 몸을 창 밖으로 내밀어 괴물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총구에서 불꽃이 반짝일 때마다 괴물의 형태가 일순 나타났다 사라졌다. 태민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얼핏 확인한 괴물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인간에 기초하고 있었다.


[분석 완료. 대상은 코드 CS-01.]


인공지능이 분석 결과를 말할 때 뒷 상황을 보고 있던 예원도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건….”

[크로노스입니다.] “크로노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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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외전 [고고학의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17 13.06.27 8,474 112 11쪽
31 6장 [결심] -05- +20 13.06.25 9,607 133 12쪽
30 6장 [결심] -04- +12 13.06.22 9,137 135 17쪽
29 6장 [결심] -03- +7 13.06.20 9,602 123 13쪽
28 6장 [결심] -02- +12 13.06.18 10,007 138 12쪽
27 6장 [결심] -01- +10 13.06.15 10,631 136 12쪽
26 5장 [대화의 밤] -05- +11 13.06.13 11,298 139 10쪽
25 5장 [대화의 밤] -04- +17 13.06.11 12,373 16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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