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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천재 투수가 윔블던을 제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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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작품등록일 :
2023.08.04 18:57
최근연재일 :
2023.08.18 01:12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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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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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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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오픈 챌린저(2)

DUMMY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에서 통산 14회 우승하며 페더러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그랜드슬램 대회 최다 우승자였던 前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

그는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로서, 동시대 베이스라이너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안드레 애거시와 라이벌 관계로 질긴 인연을 쌓으며 1990년대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서브 앤 발리어는 베이스라이너에 밀려 비주류 취급을 받으며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중이었다.


서브 앤 발리가 주류에서 밀려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라켓 소재의 발전으로 선수들이 베이스라인 근처에서도 적은 힘으로 강한 공을 칠 수 있게 되자 서브 앤 발리의 필요성이 점차 줄었고, 네트 근처에서 강한 패싱샷에 반응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게다가 빠른 스피드와 낮은 바운드로 서브 앤 발리어에게 유리한 잔디코트의 비율이 다른 코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도 한몫했다.

이외에도 공식 사용구의 크기 확대로 인한 범실 가능성 감소, 스포츠 과학의 도입으로 인한 평균 운동 능력 상승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이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던 톰슨이 서브 앤 발리어로서 시드 번호를 부여받은 선수를 이기고 올라온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나는 내 할 일을 해야 했다.

바로 시합에서 이기는 것이다.


“헉!”


일부러 톰슨이 네트 앞까지 나올 수 있게 서비스라인 근처에 스트로크를 떨어뜨려 준 나는 톰슨이 공을 받아 치고 네트 앞까지 걸음을 옮기는 순간을 노려, 상체를 뒤로 기울이며 아래에서 위로 공을 쳐올렸다.

톰슨의 키를 훌쩍 넘긴 탑스핀 로브는 코트 깊숙이 꽂혔고, 역동작이 걸린 톰슨은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공이 그리는 포물선만 바라봤다.


“쯧.”


하지만 나는 톰슨에게서 등을 돌려 베이스라인으로 돌아가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원하는 것보다 탑스핀이 덜 감겨서 바운드 이후 볼 무브먼트가 단조로웠다.

아마 톰슨이 탑스핀 로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충분히 따라가서 칠 수 있는 공이었다.


나는 역시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새로 준비한 무기를 꺼내 들 준비를 마쳤다.

내 서브 이후에 리턴이 돌아오고, 이번에는 톰슨이 내 로브를 경계하며 쉽게 앞으로 뛰쳐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이번 포인트에서는 앞으로 나올 일이 없을 터였다.


“헛!”


나는 공에 걸리는 스핀 소리를 숨기며 코트에 들어오는 공을 받아쳤다.

하지만 평소에 사용하던 와이퍼 스윙이 아니었다.

나달이 사용하는 리버스 포핸드 스윙이었다.


리버스 포핸드는 임팩트 후에 반대편 어깨 부근으로 스윙을 마무리하는 게 아니라, 머리 위로 라켓이 돌며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와이퍼 스윙보다 훨씬 많은 스핀양을 걸 수 있어, 리버스 포핸드로 제대로 친 공의 궤적은 공중에서 뚝 떨어져 다른 방향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게 된다.

게다가 앵글 또한 예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는 공이 일단 코트를 넘기면 대부분 라인 안에 뚝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 말처럼 리버스 포핸드로 보낸 공은 베이스라인에서 뚝 떨어져 높이 튀어 올랐다.

톰슨이 달려와 스윙하려 했지만, 공이 생각보다 높이 바운드되는 탓에 타점이 흐트러졌다.

나는 높이 뜬 공을 네트 앞에서 강하게 내리쳐 반대 코트에 꽂았다.


이후에도 리버스 포핸드 특유의 예리한 앵글로 나는 톰슨을 계속해서 베이스라인에 묶어뒀다.

많은 스핀양 때문에 느려진 스피드는 다른 샷과 섞어가며 보완했다.

마치 투수로서 타자와 승부를 펼치던 때가 연상되는 시합이었다.


“흐어어.”


베이스라인 뒤에서 좌우로 뛰며 급격히 힘을 소진한 톰슨은 마침내 바람 빠진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톰슨의 플레이에는 점차 자물쇠가 하나씩 채워지고 있었다.

장점을 잃은 톰슨은 그저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



“고마워.”


엄파이어의 매치 종료 선언 이후에 톰슨은 내게 다가와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였다.

분한 표정은 아직 얼굴에 남아 있지만, 그래도 악감정이 서린 건 아니었다.


“닉이 나달에게 이겼을 때만 해도 버기 윕 샷(Buggy Whip Shot)이 이렇게 어려운 샷인지 몰랐는데, 제대로 당했네. 이전에는 그런 거 안 썼잖아?”


톰슨은 본래의 표정을 지우고 넉살 좋게 웃으며 내게 불만을 토로했다.

버기 윕 샷은 리버스 포핸드의 다른 말이었다.

스윙하는 모션이 말 채찍질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지어졌다고 하는데, 말 채찍질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정말 비슷한지는 모르겠다.


리버스 포핸드는 어느 유명 테니스 만화에서는 뱀처럼 휘어진다고 스네이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거기서 한 등장인물이 공을 코트 바깥으로 휘어지게 해서 상대 코트에 집어넣는데, 실제로 나달이 옆으로 빠지는 공을 리버스 포핸드로 쳐서 똑같이 성공시킨 적이 있다.

언젠가 나도 한 번은 성공시켜보고 싶은 샷이었다.


“원래 비장의 무기는 쉽게 드러내지 않는 법이야.”


예전에 메이저에 진출하기 위해 배웠던 영어가 빛을 발했다.

나는 톰슨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호주 발음은 상당히 어려운 면이 있었지만, 그런 건 어떻게든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하, 재밌는 친구네. 기회 되면 대회에서 또 보자구.”

“그럼 대회 우승은 못 할 텐데 괜찮겠어?”

“하하하. 우선 이 대회부터 우승하고 말하지 그래?”

“그거야 당연한 거고.”


톰슨과 짧은 대화를 마친 나는 코트를 빠져나왔다.

경기장에 있는 모니터에서는 정연과 소에다 고의 준결승전이 아직 진행 중이었다.

각각 한 세트씩을 주고받은 상황에서 시작되는 마지막 3세트.


앞선 세트는 보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결과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 라운드에서 체력을 아낀 데다가 2세트에서도 숨을 고른 정연, 그에 반해 조금 전까지 세트를 따내기 위해 체력을 짜냈던 소에다.

어떻게든 게임스코어를 4-4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이제 한계처럼 보였다.


정연은 견고한 스트로크로 상대의 공을 전부 쳐 내는 중이었고, 상대는 그럴수록 더 조급해져서 어떻게든 공격하기에만 바빴다.

그러다 보니 리듬은 점점 빨라지고, 지친 몸은 그걸 따라가지 못해 어설픈 실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틈을 정연이 놓칠 리 없었다.


내 예상대로 정연은 상대의 조급함을 이용하기 위해 변화가 많은 구질을 선택했다.

상대는 탑시드임에도 불규칙한 바운드에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조급해져 있었다.

아마 평소라면 쉽게 대응했겠지만, 크게 지쳐 있는 것도 한몫했다.


결국 정연이 연속으로 두 게임을 따내면서 매치에서 승리했다.

그 말은 곧 약속한 대로 우리는 결승전에서 만나게 됐다는 얘기였다.


“두 달만이네.”


나는 모니터 속에서 기쁜 표정으로 상대 선수와 악수하고 있는 정연을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만전의 상태로 결승전에 임하기 위해 바로 숙소로 향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정연을 상대로 승리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뺏어올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



“정환희 선수는 긴장되지 않으세요?”


근처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현화가 물었다.

현화는 태연한 내 태도를 보며 긴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야구 선수 시절에 타고난 강심장으로 불렸던 나도 지금은 꽤 긴장한 상태였다.

다만 그걸 티 내지 않을 뿐이지.


퓨처스와 챌린저는 상금부터 랭킹 포인트까지 큰 차이가 있다.

퓨처스 대회는 일반적으로 총상금이 1만 5천 달러 정도라면, 챌린저 투어는 최소가 40,000달러 선이었다.

우승 시 얻는 ATP 랭킹 포인트 또한 퓨처스는 17~33포인트지만, 챌린저 투어는 75에서 125포인트로 몇 배는 많았다.


그러니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이 거의 반 정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뭐, 긴장해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면 제 손해니까요.”


하지만 나는 현화에게는 어깨를 으쓱하며 멀쩡한 척했다.

이런 거 하나까지도 스폰서에게 보고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왕이면 중요한 경기에서도 전혀 쫄지 않는 모습으로 어필하고 싶으니까.


“실례되는 말일 수 있지만, 아직 어린데도 대단하네요.”

“그쵸? 저도 처음에 놀랐다니까요. 보통 재능 있는 애들은 자만하든지, 아니면 너무 빠르게 치고 올라와서 시합에서 밀리면 멘탈이 약해지든지 하는 법인데, 얘는 그런 게 없어요. 나이답지 않아서 소름까지 끼친다니까.”


떡갈비를 우물거리던 현택이 현화의 말에 맞장구치며 끼어들었다.

칭찬인지, 욕인지. 짐짓 몸을 부르르 떠는 척을 한 현택은 말을 마치고 이번에는 국그릇을 들어 미역국을 들이켰다.

그러다 별안간 나를 향해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야, 너 결승 전날인데 미역국 먹으면 미끄러지는 거 아니야?”

“무슨 수능 봐요? 전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현택을 바라봤다.

현택의 진지한 얼굴 때문에 순간 무슨 일 생겼나 생각했던 게 아까울 정도였다.


“아냐, 아냐. 선수는 중요한 시합에 이런 징크스 하나도 조심해야 해. 시합 중에 괜히 ‘아 그때 그러지 말걸’하는 생각 들어서 집중력 흐트러진다니까? 코치인 내 말 들어라.”


그렇게 말한 현택은 내 국그릇을 가져가 널 위한 거라며 단숨에 흡입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핥는 걸 보니 입맛에 잘 맞는 모양이었다.


먹고 싶으면 그냥 직원한테 더 달라고 말을 하지.

음식점 가서 혼자 주문 못 하는 타입인가?


“그나저나 내일 대회에서 우승해도 국내 ATP 싱글 랭킹 1위는 변동이 없겠네요.”


그때 현화가 다시 화제를 원위치시켰다.

이미 챌린저 대회 4강에도 올랐던 정연과는 랭킹 포인트 차이가 60점 정도 나는 상태라, 내가 우승하더라도 정연이 준우승자로 포인트를 받게 되니 앞설 수는 없었다.


“거기까진 생각 안 하고 있었어요. 시합에만 집중하는 중이라.”


어차피 국내에서 랭킹이 높고 낮은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싱글 랭킹은 투어 무대에 나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고, 어느 정도는 실력의 척도가 될 수도 있지만 완벽한 게 아니다.

챌린저 대회만 집중적으로 출전해서 랭킹만 끌어올리는 선수도 존재한다.


진정한 국내 1위가 되기 위해서 중요한 건 결국 결승전에서 정연을 이기는 것이다.

저번처럼 방심한 정연이 아닌 만전의 상태의 정연을 말이다.


“준비는 다 됐어요?”


현화가 내게 물어왔다.

나는 씩 웃으며 한 달가량이나 대회 출전을 쉬며 훈련했던 걸 떠올렸다.

들인 노력의 양은 늦게 시작한 내가 어쩔 수 없이 적을 수밖에 없지만, 질만큼은 누구보다 월등하다고 자부한다.


“완벽하죠. 누가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물론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빼고.

BCS, 봉준오, 손웅민, 정환희, Let’s go!


작가의말

본업이 있다 보니 비축 없이 라이브 연재하는 게 역시 쉬운 일이 아니네요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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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콕 오픈 챌린저(2) +1 23.08.18 105 3 11쪽
13 방콕 오픈 챌린저(1) +1 23.08.16 120 3 11쪽
12 국가대표 +1 23.08.15 145 3 11쪽
11 스폰서십 +1 23.08.14 140 6 12쪽
10 대구 퓨처스(3) +2 23.08.13 149 4 12쪽
9 대구 퓨처스(2) +1 23.08.12 163 5 14쪽
8 대구 퓨처스(1) +1 23.08.11 176 5 13쪽
7 언론플레이 +1 23.08.10 179 6 13쪽
6 첫 대회(2) +2 23.08.09 195 8 13쪽
5 첫 대회(1) +1 23.08.08 202 5 13쪽
4 입부 테스트(2) +1 23.08.07 211 6 12쪽
3 입부 테스트(1) +2 23.08.06 227 4 13쪽
2 팀보다 위대한 선수(2) +1 23.08.06 240 5 13쪽
1 팀보다 위대한 선수(1) +2 23.08.06 266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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