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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천재 투수가 윔블던을 제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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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작품등록일 :
2023.08.04 18:57
최근연재일 :
2023.08.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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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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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대구 퓨처스(1)

DUMMY

“그렇게 안 봤는데 너 되게 자만심 가득하구나?”


현택에게 코칭을 받는 중이었다.

훈련에 앞서 지금 부족한 점이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에 답하는 중이었다.

나는 대회에서 느꼈던 점을 솔직히 밝히며 아직 누군가와 정면으로 붙어 이길 자신이 없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내 얘기를 듣고 픽 웃은 현택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띠고 있었다.

나는 현택이 어떤 의미에서 자만심 가득하다고 말한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네가 결승에서 상대했던 배성찬 있지? 걔도 내가 눈여겨보던 애야. 근데 테니스를 얼마 하지도 않은 네가 꺾은 거야. 아무리 테니스 경기에서 언더독이 이기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지. 정면이든 뭐든 네가 이긴 것 자체가 진짜 말도 안 되는 거거든.”


그런가 싶어 내가 대답을 주저하는 사이에 현택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표정은 웃고 있어도 말투는 진지했기에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러니까 주제도 모르고 벌써부터 까불지 마, 이 자식아. 너 투수였다며. 야구하면서 바깥쪽 공에 강한 상대가 있으면 일부러 바깥쪽 공만 던져서 상대했어? 그거랑 똑같은 거야. 변화구도 던지고, 맞춰서도 잡고. 어쨌든 이기면 되는 거야.”


현택의 말이 끝난 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주위에서 계속 재능 있다는 말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만한 듯했다.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아득바득 덤벼도 부족한 수준으로 그 이상을 논하고 있으니 현택이 보기에 가소로워 보일 만했다.


나는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았다.

벌써부터 적을 단번에 제압할 생각하지 말고 기초를 더 탄탄히 쌓아 실력부터 늘리자는 생각도 함께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에 비하면 내 실력은 아직 출발선에도 못 선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씀 감사합니다, 코치님. 그럼 역시 코치님께 배울 건 탄탄한 기초···.”

“당연히 적을 당황하게 할 필살기지.”

“예?”


까불지 말고 훈련이나 열심히 하라는 거 아니었나?

갑자기 필살기라니 무슨 소리지?


현택은 흔들리는 내 동공을 발견했는지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너희 감독님한테 배우는 걸로 기초 훈련은 충분하잖아? 똑같은 가르침 받을 거면 굳이 나한테 배우는 의미가 없지. 그리고 이 정도 성장 속도면 아마 다음에 대회 나갈 때쯤이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들 거다.”


감언이설에 불과했던 누구와는 달리 설득력 있는 목소리였다.

그 확신에 찬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페더러의 백핸드 슬라이스, 나달의 리버스 포핸드, 조코비치의 리턴.

모두 위닝샷으로 자주 나오는 빅3의 주요 무기였다.

다른 스탯도 수준급인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포인트를 확실히 따낼 수 있는 결정구가 있어서 나쁠 거 없었다.


“그럼 어떤 게 좋을까요? 지금은 서브가 제일 좋긴 한데.”

“서브는 이미 확실히 잡혀 있어서 어설프게 손댔다가 시간 안에 못 잡아줄 수도 있어. 내가 쭉 살펴보니까 너는 백핸드로 하는 리턴이 좋더라. 백핸드랑 리턴 중심으로 보자고. 왼손이니까 나달처럼 리버스 포핸드도 하면 좋을 텐데 그건 시간 나면 봐주는 걸로 하고.”


현택도 2009년에 은퇴하고 작년에 현역 복귀를 선언했기에 훈련만으로 시간이 부족할 터였다.

9월에 열리는 아시안게임의 국가대표 선수 겸 감독으로도 발탁된 상황이라 이렇게 봐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일단 한 번 보고 개선점이 보이면 알려줄게.”


현택의 말과 함께 우리는 코트에 마주 보고 섰다.

비록 이제 불혹에 가까운 나이라 전성기 때의 기량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세계적인 플레이어의 공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 설렜다.

나는 어떤 서브가 날아올지 기대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곧 현택의 서브가 이어졌다.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서브는 아니었다.

하지만 두 손을 잡고 백핸드로 밀어친 공은 의도한 궤적을 조금 벗어났다.

공에 담긴 무게가 상당한 탓이었다.


“나쁘지 않아! 한 번 더 간다!”


현택은 듀스 코트에서 자리를 옮기지 않고 다시 한번 더 서브를 넣었다.

조금 전에는 몸이 덜 풀렸던 건지, 이번에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하압!”


나는 기합과 함께 공을 밀어 쳤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힘에서 밀릴 만큼 무거운 공이었기에 전력으로 치는 수밖에 없었다.

내 리턴은 현택의 시선에서 멀어져 있는 구석을 향해 떨어졌다.


현택은 달려가지 않고 공이 날아가는 걸 바라보기만 했다.

라인 안에 공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리턴을 여러 번 반복했을 때, 현택이 흥분한 얼굴로 네트 앞까지 다가와 내게 소리쳤다.


“야, 뭐야?”

“뭐가요?”

“어떻게 한 거야?”


현택의 물음에 어리둥절해진 나는 멍청한 표정만 짓는 중이었다.

대관절 어떻게 한 거냐고 물으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양손 백핸드로 베이스라인 깊숙이 다운더라인만 보내는데 에러가 하나도 없어?”

“음··· 연습했으니까요?”


백핸드 다운더라인은 실수가 많이 나오는 까다로운 코스긴 했다.

대각선으로 보내는 크로스보다 거리가 짧으니 힘 조절을 잘 못 하면 프로라도 코트 밖으로 내보내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19살까지 전국 최고 타자로 활약한 재능이 어디 갈까?

메이저리그에서도 스카우트 제의 받은 재능인데.

투수가 아닌 타자를 원하는 바람에 노답 파이터즈에 입단하긴 했지만 어쨌든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는 건 내게는 늘 해오던 일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현택은 마치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내 헛웃음을 치며 내게 말했다.


“허, 참. 천재다 이거냐? 이거 아까 한 말은 다 기만이었구만. 이런 공을 치면서 배성찬을 정면에서 못 이긴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제가 전국중학야구대회 최고타자상 수상자라서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니, 상관있나? 아무튼 네가 정말 저번 대회에서 그렇게 느꼈다면 이제 잊어라. 그때 네가 잘못 느낀 게 아니라면 이미 그보다 훨씬 성장한 게 분명하니까.”


현택은 진지하게 야구와 테니스의 연관성을 떠올리다가, 괜히 가르친다고 말했다며 코트를 떠나려는 시늉을 했다.

나는 현택의 리액션에 맞장구치며 다급히 현택을 붙잡는 척 가르쳐달라 애원했다.

현택은 며칠 뒤에 데이비스컵에도 나가야 하고, 그 외에도 대회 일정이 있을 테니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배울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흠흠. 그렇게 배우고 싶으면 어쩔 수 없지. 이번엔 나도 받아칠 거니까 계속 내 위치랑 시선 신경쓰면서 공 보내.”


야구를 할 때도 많이 본 툴툴거리면서 해줄 거 다 해주는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겨우 하루만에 셀 수 없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



경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경험, 감각, 상대방의 호흡을 파악하는 능력, 내 한계치에 대한 이해.

이 외에도 많겠지만 내게는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었다.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해도 이러한 것들은 실전이 아니면 기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닥치는 대로 크고 작은 대회에 출전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성장세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었다.


“요즘 너무 달리는 거 아니야?”

“여름 오기 전에 시원하게 삭발시켜 줘야지.”


나는 호영을 향해 우승 트로피를 흔들며 말했다.

단식으로 출전한 서울시테니스협회장배 테니스대회 18세부에서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호영이나 단체전을 함께 했던 다른 선배들은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이제 내가 너 이기는 거 아니냐? 내가 그때 일 년만 지나면 이긴다고 말했었나?”

“아직 멀었어. 대구 다녀와서 한 번 붙어?”

“좋지.”


그 말처럼 우리는 다음 주에 대구에 내려가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ITF 대구 국제 남자 퓨처스 테니스 대회 예선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국제 테니스 연맹(International Tennis Federation, ITF)에서 관리하는 퓨처스 대회는 가장 낮은 등급의 대회로 랭킹 점수가 없는 주니어부터 싱글 랭킹 300위권 정도까지 출전하는 대회였다.

주니어 대회를 거치지 않고 퓨처스부터 시작하게 될 줄은 나도 생각 못 했지만, 감독은 충분히 통할 거라고 보고 있었다.


예선에 참여하는 건 나와 호영, 그리고 부상으로 공백이 있던 광현 뿐이었다.

기현과 강한은 복식 페어로 대회에 참여하고, 석현은 본선 와일드카드의 혜택을 받았다.


“국제 대회는 처음이라 두근거리네.”

“부정맥 아님?”

“닥치셈.”


나는 괜히 초치는 호영에게 웃으며 욕을 날려줬다.

호영도 지지 않고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어찌 된 게 10년 전이나 후나 노는 게 똑같은 기분이지?


아무튼 시간은 금방 흘러 우리는 드디어 대구에 도착했다.

아직 6월인데 대구는 평균 기온이 상당히 높았다.

이래서 여름만 되면 자동차 보닛 위에 계란후라이 하는 뉴스가 뜨는구나 싶은 정도였다.


“와, 녹아내리겠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대구 네이티브한테 걸리면 예선에서 광탈 당하는 거 아니야?”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말이 씨가 된다는 옛 성현들이 말씀은 틀린 게 없었다.


“잘 부탁한다.”


상대는 말투에 경상도 억양이 물씬 묻어나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젊은 남자였다.

소속인 DG아카데미의 DG는 대구의 약자가 분명했다.

첫 경기부터 대구 토박이를 만나는 바람에 나는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어깨를 털어 긴장감을 떨쳐내고 베이스라인 뒤에 섰다.

상대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데다가 저쪽은 홈이라는 이점까지 있는 상황이지만, 그 외에는 내가 밀릴 게 없었다.

더위가 걱정이라면 체력이 빠지기 전에 승부를 내면 그만이었다.


“흐읍! 핫!”


나는 초반에 승부를 내기 위해 아끼지 않고 힘을 퍼부었다.

내 서브는 이제 시속 200km가 넘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그러니 퓨처스 대회 예선에서 통하지 않을 리 없었다.


서브 에이스, 서브 포인트, 서브 포인트, 그리고 마지막에 또 서브 에이스.

중간에 폴트가 나오긴 했지만 나는 6개의 공으로 포인트를 연달아 따내며 게임을 차지했다.

상대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지만 애써 표정 관리하는 중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공을 바닥에 대여섯 번 튕긴 상대는 이내 허공에 토스를 올렸다.

그리고 이어서 서브가 내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왔다.

공은 직선으로 빠르게 날아오다 네트를 넘고 나서 아래로 급격히 꺾였다.

탑스핀이 걸려있는 궤적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오른손잡이가 듀스 코트에서 킥서브를 날리면 코트 안쪽으로 바운드된다.

그건 왼손잡이인 내게는 포핸드로 칠 수 있는 편한 공이 될 뿐이다.


“0-15.”


상대의 본헤드 플레이 덕에 힘들일 필요도 없이 구석으로 공을 보내 손쉽게 한 점을 따냈다.

혀를 차는 모습을 보니 이번 포인트는 상대에게도 표정을 숨길 수 없는 뼈아픈 실책인 모양이었다.

초반 기세는 내가 확실히 잡은 듯했다.



***



“게임, 세트, 매치, 정환희.”


예선 결승에서 대만의 싱글 랭킹 1203위 선수를 꺾고 본선 진출을 확정한 나는 허공을 향해 어퍼컷을 하며 기쁨을 드러냈다.

예선까지 오면서 힘든 경기가 하나도 없었기에 더욱 기뻤다.

내 테니스가 퓨처스 대회 예선에 참가하는 선수 이상의 수준이라는 게 증명된 거니 말이다.


함께 예선에 참가한 호영과 광현도 무사히 본선 진출을 마쳤다.

이걸로 대 명문 가람고 테니스부의 황금세대가 모두 대구 퓨처스 대회에서 싸우게 되었다.

나는 토너먼트에서 누구를 만나든 즐겁게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거 벌써 여기까지 올라왔어?”


그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현택이 웃으며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허리 숙여 인사하자, 현택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다 내 덕이지?”

“그럼요. 선배님 아니었으면 예선 결승에서 질 뻔했어요.”


현택의 말에 나도 능청스럽게 답하자, 현택은 웃기지 말라면서도 뿌듯함을 참지 못했다.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이 있는 양반이었다.


“어디까지 올라가나 한번 보자.”


내 어깨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하는 현택의 얼굴에는 이제 기대감이 띄워져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현택을 향해 지켜보라는 말만 남겼다.


그렇게 시작된 본선 1회전.

햇빛은 여전히 쨍쩅하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예선처럼 초반에 빠르게 끝내는 작전은 쉽게 통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반갑습니다, 정연입니다.”


난데없이 1회전에서 이번 대회 탑 시드를 만나버렸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비가 많이 오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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