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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천재 투수가 윔블던을 제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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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작품등록일 :
2023.08.04 18:57
최근연재일 :
2023.08.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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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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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대구 퓨처스(2)

DUMMY

이번 대회 탑 시드인 정연의 이름은 테니스를 배우기 전부터 들어본 적 있었다.

9월에 열릴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복식 금메달을 차지할 선수이자, 언젠가 조코비치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둘 선수였다.

테니스를 모르던 나조차 단편적으로나마 기억할 정도니 대단한 선수임이 분명했다.


지금 동 나이대에서는 정연을 상대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

벌써 퓨처스와 챌린저 대회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데다, 작년 윔블던 주니어 남자 단식에서는 준우승도 기록했다.

대구 퓨처스가 열리기 직전에 열렸던 창원 퓨처스 대회에서는 단식 우승을 거둬, 세계 랭킹도 294위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다짜고짜 끝판왕이네요.”


아직 경기장에 입장하기 전이었다.

몸을 풀며 감독에게 말하니, 감독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내게 답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꺾어야 할 상대다. 미리 만났다고 생각해.”


나를 그 정도로 믿는 건지, 아니면 지레 겁먹지 말라고 그러는 건지.

그래도 감독의 무덤덤한 말투 덕분에 탑 시드를 만난 게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연은 수비력이 좋은 베이스라이너고, 코트 깊숙이 파고드는 백핸드가 위닝샷이야. 다른 선수들에게 하는 것처럼 백핸드 노릴 생각은 하지 마.”


나는 정연에 대해 예습한 내용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감독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교롭게도 정연과 나는 무기가 비슷했다.

즉, 이번 경기에서 내가 이길 수 있다면 내 백핸드가 세계에 통한다는 말과 같았다.

정연의 백핸드는 ATP 투어에서도 경쟁력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니 말이다.


ATP 투어란, 프로 테니스 협회(Association of Tennis Professionals, ATP)가 조직하는 최상위 투어 대회들을 총칭하는 말이었다.

여기에는 ATP 파이널스, ATP 투어 마스터스 1000, ATP 투어 500, ATP 투어 250이 속하는데 명칭 뒤에 붙은 숫자는 우승하면 받게 되는 싱글 랭킹 점수를 뜻했다.


머지않아 나는 경기장에 들어서서 정연과 잠시 공을 주고받았다.

짧은 랠리임에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공을 쳐 내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기초가 튼튼하게 쌓여있는 선수인지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동전 던지기로 첫 서비스 게임이 정연으로 정해지면서 1회전 매치의 막이 올랐다.


“핫!”


기세 넘치는 기합과 달리 정연의 서브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코스 자체는 예리했지만 빠르지 않다면 그 위력은 반감되기 마련이었다.

나는 정연이 내 백핸드를 경계해 쉽게 움직일 수 없게, 첫 리턴부터 강한 임팩트를 남겨줄 생각이었다.


빠앙.

정확히 임팩트한 공이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네트를 넘어가 정연의 베이스라인 근처에 꽂혔다.

정연은 발조차 떼지 못하고 빠르게 제 코트로 들어오는 공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자!”


엄파이어의 콜과 함께 내 포인트가 올라가고, 나는 파이팅 넘치게 소리쳤다.

정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다시 서브를 준비했다.

하지만 눈썹이 슬쩍 올라가는 걸 보니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정연의 서브가 다시 날아왔다.

여전히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완전히 외곽으로 빠지며 오는 터라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받아치는 건 불가능했다.


무너진 자세로 어영부영 넘긴 공이 정연을 향해 높게 떴다.

정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닿을 수 없는 구석을 향해 강한 스매시를 날렸다.

공은 코트를 찍고 높게 바운드되어 펜스를 강타하고 떨어졌다.


“Fifteen all.”


작게 주먹을 쥔 정연이 남모르게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내 백핸드를 경계하고 있다면 이번엔 T존으로 보내 내 포핸드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정연의 라켓 헤드가 공에 닿기 전에 중앙으로 미리 몸을 움직였다.

방향을 읽어 더 강하고 빠른 리턴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바깥쪽?”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공은 내가 움직인 방향의 반대로 꽂혔다.

첫 리턴을 생각한다면 내가 백핸드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당연했는데, 무던한 표정 뒤에 강한 승부욕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오히려 내게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승부욕이라는 건 적당할 땐 집중력을 올려주고 한계 이상의 힘을 내게 해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압박과 스트레스로 오히려 신체를 더디게 만들고 생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포인트까지 뺏긴다면 의욕 자체를 상실시킬 수도 있다.


“후···.”


다음 서브에도 정연은 내 백핸드를 노리고 들어왔다.

어떻게든 내 강점을 깨부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랭크도 없는 나를 얕보는 걸 수도 있고, 같은 무기를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열망일 수도 있었다.


“게임, 정환희.”


하지만 안타깝지만 그런 생각으로 내게 게임을 따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마 나도 현택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저 승부에 응했겠지만, 지금은 오로지 매치에서 이기는 플레이를 할 생각이었다.


나는 루틴대로 서브 전에 손가락 끝을 불며 감각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정연의 백핸드를 피해 단식 사이드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서브를 보냈다.


정연은 내 기억 속의 모습과 달리 아직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적도, 조코비치에게 승리를 거둔 적도 없는 어린 선수였다.

그러니 내 서브를 리턴하지 못하고 그대로 포인트를 뺏기는 일도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조건만 갖춰지면 탑 랭커가 하위 랭커에게 업셋 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 바로 테니스 세계니까.



***



“게임, 매치, 정연.”


내 예상과 달리 정연은 승부욕 때문에 제 실력을 못 내지도, 중요한 포인트를 뺏기고 좌절하지도 않았다.

첫 세트를 내게 뺏긴 정연은 심기일전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두 번째 세트에 임했다.

오히려 1세트에서 내 백핸드에 익숙해진 덕에 2세트에서는 더욱 수월하게 게임을 리드할 정도였다.


과연 괜히 세계랭킹 30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분명히 부족한 점은 있지만, 그걸 강점으로 보완하며 싸우는 능력이 지금까지 만나본 다른 선수들과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랠리를 끝낼 만한 대단한 공은 없었어.”


정연이 1세트에서 내 테니스에 익숙해져서 2세트를 따냈다면, 나 역시 2세트를 통해 정연을 파악했다.

정연의 백핸드가 위력적인 건 사실이나, 수비적인 테니스를 하기에 그 장점이 더욱 극대화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상대의 백핸드를 노리게 되는 공격이 정연에게는 먹히지 않으니, 랠리가 길어지면서 압박을 느낀 상대가 알아서 자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으로 나를 이길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

만년 꼴찌팀에서 스무 살부터 소년가장 역할을 해오던 나다.

동료들의 실수, 프런트의 방목, 감독의 무능, 팬들의 비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

그 모든 걸 겪은 덕에 참는 거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제대로 늪테니스 한번 해보자고.”


얼굴에 잔뜩 번진 땀을 타월로 닦아낸 나는 마음을 굳게 다지고 다시 코트에 섰다.

2세트 중반부터는 상황이 좋지 않아, 일부러 상대는 달리게 하면서 나는 힘을 비축했다.

덕분에 정연은 내가 지쳐서 처음처럼 서브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3세트가 시작하자마자 본인의 예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면 사람인 이상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는 토스를 올리고 트로피 자세에서 골반과 허리를 회전시키며 라켓을 빠른 속도로 스윙했다.


쿠웅.

코트를 강타하는 소리와 함께 내 서브는 정연의 허리 옆을 쌩하고 스치고 지나갔다.

전혀 대비하지 않았던 강서브가 나오자 정연의 표정은 잔뜩 굳어졌다.


“후우, 3세트가 되어서야 표정을 드러내네.”


나는 다음 서브를 준비하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제 이변을 만들기 위한 준비는 전부 끝났다.


“흐아!”

“하앗!”


랠리가 길어질수록 몸을 쥐어짜며 나는 소리는 더 처절하게 울렸다.

겨우 한 포인트를 얻기 위해 우리는 라켓을 열 번도 넘게 휘둘러야 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포인트를 따내는 사람이 이 경기에서 승리한다.

모든 걸 쏟아붓고 있는 이 점수를 빼앗긴다면 아마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을 터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도 모르고 있을 때, 팔다리에 납덩이를 단 듯 무거워졌을 때, 드디어 이 긴 싸움에 마침표가 찍혔다.


“30-0.”


네트 끝에 걸리고 만 정연이 쳐낸 공.

나는 나도 모르게 마치 경기에서 이긴 듯 포효했다.

반면에 정연은 떨어진 고개를 들지 못했다.



***



정연은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기자들 앞에 섰다.

취재차 대회를 방문하는 기자들은 항상 정해져 있기에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불과 어제 창원시립테니스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후에 소감을 물었던 기자도 함께 있었다.


“탑시드인 정연 선수가 오늘 충격적인 1회전 패배를 겪었는데, 어제 있었던 결승전이 영향을 준 건가요?”


정연은 기자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자신도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경기 중에 특별히 몸이 무겁다거나 집중력이 끊긴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혹여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로로서 살아갈 생각이라면 경기에서 지고 나서 하는 말은 전부 변명일 뿐이었다.


“아닙니다. 어제 결승전은 상관없습니다. 단순히 상대가 오늘 경기에서 저보다 잘했기 때문에 패배했을 뿐입니다.”


간결한 대답을 마치자, 기자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상대였던 정환희 선수는 이제 테니스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는 선수였는데, 아쉽지 않으신가요?”


정연도 환희에 대해서는 경기 전에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플레이 스타일조차 제대로 모르고 상대해야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방심도 오늘 패배에 크게 일조했다.


“정환희 선수가 테니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건 이제 의미 없는 얘기 같습니다. 실제로 예선까지 거쳐 퓨처스 대회 본선에 올라온 선수고, 자랑은 아니지만 탑시드인 저도 이긴 선수입니다. 아마 누구든 구력으로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칠 겁니다.”


정연은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하고 인터뷰를 끝냈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서니 환희가 인터뷰하는 모습이 정연의 눈에 들어왔다.


“역시 국내 선수 중 가장 높은 세계 랭킹을 가진 선수답게 힘든 경기였습니다. 정보의 우위와 끈질기게 따라붙은 근성이 오늘 승리를 결정지은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연도 환희의 말에 공감했다.

환희의 신상에 대해서는 알았어도 환희의 테니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정연은 어쩔 수 없이 실력만으로 환희를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변수를 없애기 위해 초장부터 환희가 가장 잘하는 플레이를 정면승부로 이겨 의욕을 잃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게 하필이면 또 백핸드라 정연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게임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정연이 몸소 받아본 환희의 백핸드는 자신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노골적으로 백핸드를 노린다는 걸 알아차리고 교묘하게 이용하기까지 했다.

정신 차려보니 상대의 플레이에 말려드는 것은 오히려 정연 본인이었다.


게다가 2세트에서는 마치 체력이 빠진 척 연기해서 힘을 비축해 두고 3세트에 전부 쏟아붓는 것까지.

그것도 모르고 체력을 소진했던 정연으로서는 랠리를 길게 이어 나가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 언포스드 에러를 남발하는 것도 당연했다.

중요한 대목에서 점수를 잃은 탓에 회복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한몫했다.


“어?”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으니 어느새 인터뷰를 끝낸 환희가 정연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환희는 정연에게 웃으며 좋은 시합이었다는 말을 전했다.


“저도요.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 같네요.”

“그럼 말 편하게 하세요, 선배님.”

“그럴까? 너도 편하게 해.”


환희와 정연은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경기 감상을 나누기 시작했다.

시합하다 보면 피지컬만 믿고 아무 생각 없이 경기에 임하는 선수도 보이는데, 환희는 지능적인 플레이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알아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됐다.

머지않아 정연은 환희를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

“너도 국가대표로 뽑혔으면 저번 데이비스컵 지역 예선에서 더 좋은 결과 냈을 거 같은데 아쉽네.”

“하하. 국가대표로 뽑힐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해 볼게.”


환희도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정연이 이번 아시안 게임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는 걸 알고 있는 환희로서는 병역을 위해 무엇보다 바라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테니스 대표팀 멤버는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중간에 부상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멤버가 교체될 일은 딱히 없어 보였다.

교체가 된다고 해도 환희가 발탁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랭킹 끌어올리고 있어 봐.”


정연은 기회란 간절히 바라며 준비한 자에게만 온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환희에게 그렇게 말한 건 진심으로 그 기회란 게 오길 바라며 한 말이었다.

환희 역시 그 말을 결코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다.


작가의말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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