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롤랑

천재 투수가 윔블던을 제패함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김롤랑
작품등록일 :
2023.08.04 18:57
최근연재일 :
2023.08.18 01:12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2,555
추천수 :
68
글자수 :
79,025

작성
23.08.06 20:50
조회
242
추천
5
글자
13쪽

팀보다 위대한 선수(2)

DUMMY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호영이를 보며 테니스를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상대를 제압하는 빠른 서브, 허를 찌르는 다채로운 구질, 수 싸움에서 이겼을 때의 짜릿함.

내가 투수를 하며 좋아하던 것들이 전부 테니스에도 있었다.

물론 그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혼자 경기를 운영한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떠냐면···.


“더 빨리 움직여!”


나는 호영이 녀석이 왜 나한테 라켓을 건넸는지도 이해 안 갈 정도로 맨손으로 뛰어다니며 날아오는 테니스공을 잡아내는 중이었다.

이 시기면 체력 훈련도 빼먹지 않고 하고 있을 때인데, 저 자식도 그걸 알고 있기에 내 한계까지 빠르게 공을 상하좌우로 보내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스프린트를 반복한 터라 피로감도 평소보다 빠르게 쌓였다.


“헉, 허억. 라켓도 없이 이게 뭐 하는 건데?”

“초보자들이 거리감 익힐 때 하는 훈련인데 생각해 보니 넌 야구를 오래 했으니 필요 없었겠다.”

“이 새끼가···.”


저 자식 일부러 했네.

저 사악한 웃음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것도 못 알아챌 리가.


나는 호영이가 공 보내기를 멈춘 틈을 타 무릎에 손을 대고 묵은 숨을 몰아쉬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시간을 포함해서 이렇게까지 뛰는 건 오랜만이었다.

첫날에 잠깐 훈련에 나갔을 때도 가볍게 투구 몇 번 하고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핑계로 금세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야구할 마음이 없어졌다고 원래 운동을 좋아하던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잘 맞는 종목이 있다면 새로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에서 우승 못 했다고 다른 종목에서 우승을 바라는 건 너무 낙관적인 사고겠지?”

“뭐라고 했어?”

“아냐. 혼잣말이야.”


내 혼잣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호영이는 라켓을 한쪽에 놓아두고 내 쪽으로 넘어왔다.

나는 굽혔던 허리를 쭉 펴고 정상적으로 돌아온 호흡을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이제 라켓을 쥐어봐.”

“드디어 공 치는 거냐?”


나는 벤치에 방치해 놨던 라켓을 들고 와 손에 쥐었다.

평생 들어온 야구 배트 대신 테니스 라켓을 쥐는 감각은 굉장히 어색했다.

손에 쫀쫀하게 감기는 그립은 익숙했지만 팔각형으로 각진 손잡이는 난생처음이었다.

이스턴이니 웨스턴이니 하는 것도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말이다.


“근데 너 언제부터 왼손잡이였냐?”

“태어났을 때부터 이 새끼야.”

“야구 때문에 바꾼 줄.”


어릴 때 교정을 받아 글씨나 가위질, 젓가락질은 오른손으로 하고, 운동 관련된 건 전부 왼손으로 하고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선택적 양손잡이긴 했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어른들과 식사하면서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면 재수 없다는 소리가 바로 날아왔다.

스포츠에서는 왼손이 유리한 경우가 많지만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였는지 모른다.


“테니스도 왼손이 더 유리한가?”

“아무래도 그렇지. 상대적으로 비율이 더 적은 만큼 익숙하지 않으니까. 회전도 반대로 걸리고.”


물어볼 것도 없었나?

괜히 좌완 파이어볼러를 지옥에서도 모셔간다고 하는 게 아니니.

1루 견제가 수월하다는 장점도 크지만, 희소성도 아주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럼 일단 그립부터 쥐어보자. 손바닥을 폈을 때, 검지손가락 아랫부분 있지? 여기를 인덱스 너클이라고 해. 그리고 인덱스 너클에서 사선으로 내려오면 손바닥에 넓게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여기는 힐 패드야. 라켓은 손잡이가 인덱스 너클부터 힐 패드까지 일직선이 되도록 잡는 게 일반적이야.”

“그냥 쥐는 게 아니었네?”

“맞아. 망치처럼 잡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검지와 중지 사이를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로 벌려줘.”


나는 마치 권총을 쥐는 것처럼 라켓을 잡았다.

그리고 어디서 보던 대로 적당히 밀어 치는 시늉을 했다.

그립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휘두르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듯했다.


“지금 네 인덱스 너클이 손잡이 여덟 면 중에 넓은 면에 닿아 있지? 그걸 이스턴 그립이라고 해.”


다음으로 호영이는 포핸드의 여러 그립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멍청인 줄로만 알았는데 전문 분야가 나오자 말이 아주 유창했다.

호영이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포핸드 그립에는 총 네 가지가 있었다. 컨티넨탈 그립, 이스턴 그립, 웨스턴 그립, 세미웨스턴 그립.


컨티넨탈은 하나의 그립으로 서브, 발리, 포핸드, 백핸드를 구사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지만 파워나 탑스핀에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고, 이스턴은 플랫성 공을 강하게 구사할 수 있지만 탑스핀이나 높은 공 처리가 어려운 그립이었다.

웨스턴은 강력한 탑스핀을 구사할 수 있고 높은 타점의 공도 치기 쉬우나 낮은 공 처리가 어렵고 부상의 위험이 크며, 마지막으로 세미웨스턴은 웨스턴과 이스턴의 중간에 해당하는 그립으로 양쪽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럼 나는 세미웨스턴이 좋아.”

“어차피 그립은 실제로 쳐봐야 아니까 원하는 대로 해. 세미웨스턴은 여기 잡으면 돼.”


호영이가 직접 라켓을 돌려 내 그립을 교정해 줬다.

세미웨스턴은 이스턴에서 한 면 더 아래를 잡는 그립이었다.

빠른 공과 스핀을 동시에 사용하고 싶은 나에게는 딱 맞았다.


“자세는 한 번 보여줄 테니까 따라 해 봐. 원래 처음에는 공 맞히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그건 생략해도 되지?”

“나 대통령기 대회에서 홈런왕 했던 사람이야.”

“네, 네. 대단하십니다요.”


나는 이 시점에서 1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호영이의 말에 답했다.

호영이는 귀찮다는 듯이 건성으로 대답하며 다시 반대 코트로 넘어가 볼이 잔뜩 담긴 카트 옆에 섰다.


“자! 잘 봐. 포핸드는 이렇게 치는 거야.”


호영이는 공을 위로 높게 던지고 바로 자세를 낮춘 채 라켓을 몸 뒤로 뺐다.

이내 라켓 손잡이 아랫면이 먼저 정면으로 나오면서 스윙이 이루어졌는데, 팔이 완전히 펴지지 않고 살짝 굽혀진 상태에서 공을 올려 치듯 때렸다.

반대 손이 뒤로 당겨지며 가슴이 정면으로 향하게 되는 것도 함께였다.

공을 컨택한 이후에는 라켓이 반대쪽 어깨 뒤로 넘어가며 끝까지 공을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경쾌한 스트링 소리와 함께 구석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공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호영이는 연달아 열 구를 타격하며 내 기억에 남도록 정성껏 자세를 취했다.

상체 회전이나 손목의 사용 등 야구 스윙과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점이 눈에 띄었다.


“이제 공 보내줄 테니까 네가 한 번 쳐 봐.”

“좋아!”


나는 크게 대답하며 자세를 낮추고 받아칠 준비를 했다.

호영이가 가볍게 친 공은 네트를 넘어 적당한 높이와 속도로 날아왔다.


이 정도야 쉽지.

나는 호영이가 보여준 자세를 따라 라켓을 뒤로 빼고 공을 끝까지 보며 스윙했다.

그러나.


“이야. 역시 홈런왕은 다르네.”


내가 스윙한 볼은 코트를 크게 벗어나 뒤편의 철망을 맞추며 떨어졌다.

내 예상과 다른 결과에 나는 머쓱하게 얼굴을 붉혔다.

역시 처음부터 제대로 넣는 건 무리가 있었나?


하지만 그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친 공은 계속해서 코트를 벗어나 높게 솟거나 네트에 걸리기 일쑤였다.

어쩌다 제대로 들어간 공도 내가 의도한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에 꽂히기만 했다.


“야, 까불지 말고 힘 빼고 쳐!”


보다 못한 호영이가 내게 힘을 빼라 소리쳤다.

그제야 나는 나도 모르게 팔에 과하게 힘이 들어갔다는 걸 깨달았다.

힘 빼고 스윙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건데, 몇 년 동안 배트를 놓고 있었다고 까먹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이제라도 알아차렸으니 됐다.


“공 다시 보내줘.”


나는 심기일전하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천천히 오는 공에 템포를 맞춰서 힘을 빼고 스윙스피드를 높인다는 생각으로.

휙, 빡.


“오!”


라켓을 맞고 날아간 공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궤적을 그리며 코트를 찍고 나갔다.

이전과 전혀 다른 손맛에 내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지금의 스윙은 볼을 맞히자마자 직감적으로 코트에 들어갈 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호영이 역시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의 운동신경을 무시하지 말라고.

아무리 처음이어도 이 정도는 기본이지.


“어때? 놀랐냐? 내가 1년만 배우면 너보다 잘할걸?”

“어쭈? 까부네?”

“쫄?”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호영이에게 놀리듯 말해주자, 녀석은 불길한 웃음을 지으며 빠르게 팔을 놀려 공을 연신 보내오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구석을 향해 꽂히는 공이었다.


“야, 야 이 새끼야. 잠깐만.”

“하하. 날 이기기에는 많이 부족한데? 언제든 내가 너한테 지면 삭발한다.”


나는 그 후로 한 시간이나 더 호영이의 감정 섞인 공을 받아 쳐야만 했다.

처음 치는 포핸드 스윙이 하루만에 절로 체화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농담도 못 하겠네, 이 재미없는 놈.



***



“환희야, 쳐라!”


근배 아저씨의 외침에 따라 나는 네트 근처에서 점프하며 라켓 헤드를 등 뒤로 한 바퀴 돌려 높이 뜬 공을 강하게 내리쳤다.

바닥을 찍고 크게 바운드된 공은 상대가 손댈 틈도 없이 빠르게 코트를 빠져나갔다.


“나이스 스매시!”

“나이스 서브!”


복식 파트너로 게임 중인 투실투실한 체형을 지닌 근배 아저씨의 칭찬에 나도 칭찬으로 응했다.

방금은 근배 아저씨의 서브가 상대의 애드코트 구석을 예리하게 노리고 들어가, 뒤늦게 반응한 상대의 리턴이 높게 뜬 덕에 포인트를 얻어낼 수 있었다.


“와, 180센티도 넘는 녀석이 점프 스매시까지 날리니까 손댈 수가 없네.”

“아저씨들 상대로 너무 인정머리 없는 거 아니냐, 이 자식아.”


내 인정사정없는 스매시에 상대 팀 아저씨들은 장난기 섞인 원망을 보내왔다.

나는 웃는 얼굴로 손을 들어 죄송하다는 제스처를 보냈지만 점수를 낼 수 있을 때 내야 했다.

저렇게 약한 소리 하면서도 다들 경력이 10년이 훌쩍 넘는 터라 제대로 내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면 정말 손 쓸 수 없는 건 오히려 나였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듯, 상대 팀 아저씨들의 나를 향한 집중 공세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근배 아저씨의 서브라 전위에는 내가 서 있었는데 아직 발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에 애매한 거리와 높이로 오는 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근배 아저씨의 핀포인트 서브와 내 고군분투에도 게임은 빼앗기고 말았다.


“하, 또 졌네.”

“이번에는 진짜 힘들었으니까 그런 말 말아. 반응속도가 역시 평범한 사람이랑은 차원이 다르네.”

“환희가 이제 한 달 됐나? 원래라면 한창 포핸드만 연습하고 있을 시기인데 벌써 이 정도면 운동신경이 대단하긴 해.”


게임에서 또 진 걸 속상해하는 내게 아저씨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호영이에게 이끌려 처음 라켓을 잡은 후로 테니스에 재미를 들여 하루도 빠짐없이 코트에 나온 지 한 달이 지났다.

게다가 그 한 달이 마침 여름방학이었던 덕에 하루 종일 라켓을 휘두르며 빠르게 실력을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비슷한 수준의 테린이들을 전부 이기고 숙련자 코트까지 올라온 탓에 연전연패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고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난다고 해도 10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알고 있음에도 기분이 처지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렇게 내가 좌절하고 있는 사이에 근배 아저씨가 진지한 표정을 하더니 장난기 없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환희는 프로할 생각은 없는 겨?”

“네? 프로요?”

“그렇잖여. 가람고등학교 야구부면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문인데, 거기서 1학년 때부터 주전할 정도면 운동신경도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일 거고 테니스에 흥미도 있으니 늦게 시작했어도 진지하게 하면 가능할지 누가 알아.”

“아무리 그래도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재능이 아까워서 그래, 재능이. 한 달 만에 이 정도야. 나이도 어리겠다, 운동신경도 있겠다 제대로 된 훈련 받으면서 1년만 지나면 우리 쯤은 우습게 이길걸?”


근배 아저씨의 말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야구가 아닌 다른 종목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반쯤은 장난이었다.

이제와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아온 녀석이 득시글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건 왜일까?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 아마추어 리그를 거쳐 비선수 출신 최초로 프로 구단에 입단했던 선수의 얼굴이 휙 하고 지나갔다.

지금 시작해도 가능성은 있다는 희망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떠오른 생각인 듯했다.

지금 나는 그보다 더 축복받은 환경에 놓여 있었다.

마음이 이렇게까지 기울었다면 더 망설일 필요는 없겠지.


“테니스 프로, 그거 어떻게 해요?”


작가의말

갖고싶다, 테니스 재능....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투수가 윔블던을 제패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주기 안내 23.08.18 48 0 -
14 방콕 오픈 챌린저(2) +1 23.08.18 106 3 11쪽
13 방콕 오픈 챌린저(1) +1 23.08.16 122 3 11쪽
12 국가대표 +1 23.08.15 147 3 11쪽
11 스폰서십 +1 23.08.14 142 6 12쪽
10 대구 퓨처스(3) +2 23.08.13 151 4 12쪽
9 대구 퓨처스(2) +1 23.08.12 166 5 14쪽
8 대구 퓨처스(1) +1 23.08.11 177 5 13쪽
7 언론플레이 +1 23.08.10 182 6 13쪽
6 첫 대회(2) +2 23.08.09 197 8 13쪽
5 첫 대회(1) +1 23.08.08 203 5 13쪽
4 입부 테스트(2) +1 23.08.07 217 6 12쪽
3 입부 테스트(1) +2 23.08.06 230 4 13쪽
» 팀보다 위대한 선수(2) +1 23.08.06 243 5 13쪽
1 팀보다 위대한 선수(1) +2 23.08.06 270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