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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천재 투수가 윔블던을 제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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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작품등록일 :
2023.08.04 18:57
최근연재일 :
2023.08.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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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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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언론플레이

DUMMY

“예? 취재요?”


나는 갑작스러운 감독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프로 야구 선수 시절에는 밥 먹듯이 했던 일이지만, 지금은 보여준 거라고는 고등부 대회 우승 이력 하나뿐인데 무슨 이슈를 얻겠다고.

물론 내게는 첫 우승이라 감회가 새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감독은 내 의아한 시선을 느꼈는지 취재에 관해 설명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그럴 실력도 아니니 여차하면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감독의 설명을 듣자 하니 그러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대회의 홍보 기사를 맡았던 기자가 네 신상에 대해 알게 된 모양이다. 야구 엘리트 출신이 테니스 선수로 전향한 지 1년도 안 돼서 전국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한 게 인상 깊었는지 주최 측에 따로 부탁을 넣었더구나.”


잘 알다시피 한국은 테니스 불모지다.

그런 곳에서 또 학교와 아카데미가 나뉘어져 선수를 기르다 보니 감독 입장에서는 중, 고교를 대상으로 한 전국대회를 꾸준히 주최해 주는 기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대회라도 꾸준히 유치되어야 언제라도 기회가 생겼을 때 관심을 끌 수 있고, 선수들이 한 번이라도 더 관계자들의 눈에 띌 수 있었다.


“아마 간단히 질문하고 답하는 정도일 테니 부담되는 건 없을 거다.”

“그러죠, 뭐.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나는 내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감독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는지라 취재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정체 모를 찝찝함이 남아 있었지만, 설마 고등학생 데려다 두고 악의적인 기사라도 쓰겠냐는 생각도 함께였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기자라는 족속들은 더 야비한 존재들이었다.


[야구 잘하라고 준 장학금으로 테니스 친다··· 절실한 기회 앗아간 야구 천재의 변심]

[배운 지 반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 인천 아시안게임 앞둔 한국 테니스의 현실]

[한국 테니스 고등부 루키 정환희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꿈이에요”]


각자 다 다른 언론사에서 나온 기사지만 의도는 명확했다.

날 음해하고 깎아내리겠다는 거다.

뒷조사까지 한 걸 보면 처음부터 내가 표적이었던 게 분명했다.


동시에 올라온 인터뷰 기사에 내 신상이 적힌 건 물론이고, 취재하면서 찍은 사진까지 떡하니 붙어 있었으니 퇴로도 없었다.

기사는 다른 언론사까지 붙으며 예상보다 더 널리 퍼졌다.


“사진 더 잘 나온 거 없었나?”


안타깝게도 난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쇠를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하던가?

타고난 강심장이었던 나는 꼴찌팀에서 잡초처럼 자란 덕에 강철보다 더 단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겨우 이까짓 기자들 농간에 당할 리가 없지.

물론 앙갚음은 제대로 해줘야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거든.


나는 폰을 들어 메시지 한 통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지만 아마 거절당할 리는 없을 터였다.

그렇게 작성한 문자를 아버지에게 전송하고 웃음 짓고 있으니, 호영이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너 괜찮냐?”


내 기사를 확인하고 바로 테니스장으로 왔는지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평소에는 까불기 바쁘더니 이럴 때는 또 친구라고 걱정해 주는 게 기특했다.


“안 괜찮으면?”

“응?”

“매점에서 네가 사준 햄버거 먹으면 괜찮아질 듯.”

“이 자식 멀쩡하네.”


나는 길게 대답하는 대신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심했는지 호영이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아버지께 보냈던 메시지에 답장이 왔다.


“야, 호영아. 내일은 오늘처럼 꾀죄죄하게 오지 말고 잘 씻고 나와라.”

“엥? 나 오늘도 씻고 왔는데?”


나는 호영이의 충격발언을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기자들 엿 먹여줄 생각에 잔뜩 들뜬 기분을 애써 차분히 가라앉혔다.



***



“저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까 두 배, 세 배로 더 훈련해야죠.”


지영은 새벽부터 이어진 환희의 훈련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KBC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사흘’의 VJ인 지영은 요 며칠 밤샘으로 정신이 몽롱했지만, 한편으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 예정된 촬영이 어그러지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생길 위기였는데, 때마침 온 연락 덕에 적절한 소재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큐 사흘은 특정한 공간을 사흘 동안 관찰하고 기록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였다.

이번 촬영은 가람고 테니스장을 배경으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을 그려내는 게 목적이었다.

꿈, 청소년, 운동부는 이미 여러 다큐에서 써먹은 진부한 소재지만, 지영을 포함한 제작진은 아직 테니스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적은 없다고 판단하고 촬영을 결정했다.

게다가 어차피 일정을 맞추려면 다른 소재를 떠올릴 시간도 없었다.


“전국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했는데도 부지런하네요.”

“제가 잘해서 우승한 게 아니니까요. 전부 동료들 덕이죠.”


환희는 지영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이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환희를 아는 사람이라면 웃음을 참지 못할 모습이었으나 지영에게는 순박한 체육 소년으로 보일 뿐이었다.

환희는 지금 시청자들이 좋아할 모습으로 철저하게 이미지 메이킹하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 환희 선수와 관련된 기사가 나왔던 걸로 아는데, 그건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지영은 신체적으로는 성인과 다를 바 없어도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할 환희를 배려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촬영이 시작된 이상,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환희는 상처받았다는 걸 숨기는 듯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지영의 물음에 답했다.


“제가 모 기업의 장학금 대상자가 된 건 맞는데, 당시 감독님께서 제 동의 없이 신청한 거라 바로 다음 후보에게 양보했거든요. 그 부분이 누락되어서 많이 아쉽네요.”


환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표정도 풀어지지 않도록 계속 신경 쓰면서였다.


“그리고 국내 테니스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에 대해서는 제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배님들이 국제대회에서 성과도 내고 있고 선수들이 모두 열심히 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분명 아시안 게임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이 좋은 성적 거둘 거라고 확신합니다.”


많은 응원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환희는 다시 운동에 열중했다.

예의도 바르고, 겸손하고, 생각도 잘 잡혀 있고. 지영은 왜 환희가 이런 악의적인 기사의 주인공이 됐는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이번 촬영을 통해 사람들이 오해를 풀 수 있을 테니 천만다행이었다.


지영은 뷰파인더를 통해 환희를 계속 지켜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 어때요, 똑같죠?”

“에이, 그보다 톤을 좀 더 낮춰야지. 많은 응원 부탁합니다!”

“제가 한 거랑 뭐가 달라요?”

“둘 다 그만 좀 하지?”


잠시 점심시간을 이용해 코트에 나온 나는 호영과 광현이 방송에 나온 내 멘트를 따라 하며 놀리는 걸 귀 아플 정도로 듣고 있었다.

사나운 눈빛을 보내봤지만 두 사람은 내 눈빛을 확인하고 잠시 멈칫할 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깐족거리기 시작했다.


“어휴.”


나는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촬영 후 2주가 지나, 드디어 어제 방영된 다큐멘터리는 내 예상보다 파급력이 있었다.

오히려 나와 관련된 기사를 모르던 사람들이 다큐 사흘을 보고 알게 되어 대신 분개해 주기까지 했다.


기자라는 탈을 쓴 양심팔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뼛속 깊은 불신과 운동밖에 모르는 순수한 테니스 소년으로 가장한 내 이미지 메이킹 덕분이었다.

물론 아버지의 도움으로 티비에 나올 수 있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역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언론에는 언론.

인터넷 신문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진정한 매스 미디어의 힘으로 눌러주니 찍 소리도 못하는 꼴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걸로 이제 쉽게 건드리는 놈들은 없겠지.”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어 있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우습게 보고 더 신나서 물어뜯기 마련이었다.

일부러 척질 필요는 없지만, 쉽게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


게다가 이번 일 덕분에 얻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내 기사가 올라온 게 의문이었던 지영이 지인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WS에이전시라는 곳이 배후에 있었다는 걸 알아낸 것이었다.

이 WS에이전시는 바로 방원삼이 대표로 있는 에이전시였다.


업계에서는 큰 에이전시 중 하나인지라 인맥을 동원해 이번 일을 벌인 모양이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수겠다는 건지, 아니면 내가 만신창이가 된 후에 구세주처럼 등장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참 얄팍한 수작이었다.

증거가 없으니 이 부분에 관해서는 따로 법적대응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선배, 소송 준비는 잘 되어가시죠?”

“나야 뭐,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


내 질문에 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원삼의 에이전시와 불합리한 계약을 체결한 광현은 어머니의 소개로 변호사를 선임해 계약 해지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다행히 광현의 부상 후에 에이전시 측에서 의무를 다하지 않고 방치한 자료가 남아 있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중이었다.

거기에 지영의 도움으로 언론플레이까지 하는 중이어서 방원삼도 한동안 자중할 터였다.


“속이 다 후련하네.”


어느새 베이스라인 바깥에 선 나는 토스한 공을 시원하게 쳐 서비스 코트에 꽂아버렸다.

성장기라 그런지 키도 더 크고, 근육도 더 붙어서 그새 또 구속이 올랐다.

나는 듀스 코트에서 연달아 원하는 코스에 서브를 집어넣고는 애드 코트로 위치를 옮겼다.

그 순간,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야, 서브 좋은데?”


고개를 돌리자 테니스장 문을 열고 낯선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다가···.


“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한국에서 테니스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얼굴.

한국 테니스의 전설, ATP 싱글 랭킹 36위까지 올랐던 김현택이 그곳에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그래, 그래. 네가 환희지? 반갑다.”


김현택은 소탈한 모습으로 내게 악수를 요청했다.

손을 마주 잡으니 현택의 단단한 손바닥과 강한 악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늘에 앉아 쉬고 있던 호영과 광현도 부리나케 뛰어와 대선배인 현택에게 인사했다.


“실례지만 혹시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너희 감독님 보러 왔지. 겸사겸사 선수들 좀 확인하고. 너 부상은 다 나았어?”

“아, 옙! 멀쩡합니다.”

“너는 작년보다 키가 컸구나?”

“3센티 자랐습니다!”


현택은 광현과 호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 국내 선수, 그것도 성인뿐 아니라 어린 선수까지 꼼꼼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국내 테니스 선수층이 얇다지만,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던 선수가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괜스레 어깨가 솟게 했다.


“티비에서 봤다. 어른들 때문에 네가 고생이네. 근데 너 진짜 1년도 안 배운 거 맞아?”

“예! 작년 여름에 처음 시작했습니다.”

“재능이 어마어마한데?”


현택을 나를 향해 눈을 빛냈다.

흥미로움과 호기심이 잔뜩 서린 얼굴이었다.


“아직 멀었지.”

“어, 선배님. 오셨습니까?”


그사이에 어느새 감독이 나타나 대화에 끼어들었다.

현택과는 막역한 선후배 사이처럼 보였다.

항상 무뚝뚝하던 감독이 옅은 미소까지 짓는 중이었다.


“여기까지 연락도 없이 웬일이냐?”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잠깐 들렀어요. 애들도 볼 겸.”

“그럴 거면 훈련 때나 와서 좀 봐주지. 지금은 애들도 없는데.”

“괜찮아요. 볼 애들은 다 봤으니까.”


현택은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나이가 있는데도 아직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었다.

물론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느껴지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광현이 보러왔던 거냐? 이제 부상도 문제없고 올해부터는 다시 활약하기 시작할 거다.”

“하하, 그것도 맞는데요. 오늘 주목적은 이 녀석이었거든요.”


손으로 나를 가리킨 현택이 또 다시 씩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택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티비로 공 치는 거 보고 오늘 직접 확인하니까 잘하더라. 오늘 하루 나한테 테니스 배워볼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세계에서 활약하던 선수의 제안이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제안을 철회할세라 빠르게 대답했다.


이게 다 티비에 나갈 계기를 만들어 준 원삼이 덕분이다.

고맙다, 원삼아!


작가의말

태풍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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