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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천재 투수가 윔블던을 제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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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작품등록일 :
2023.08.04 18:57
최근연재일 :
2023.08.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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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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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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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대구 퓨처스(3)

DUMMY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1회전에서 정연을 상대로 이긴 나는 2회전과 3회전에서 손쉽게 승리했다.

그 사이에 민우는 2회전에서 6번 시드를 만나 탈락했고, 석현과 광현은 살아남았다.


이제 남은 건 준결승과 결승뿐이었다.

그리고 내 준결승 상대가 바로 석현이었다.


“네가 처음 입부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코트를 마주 보고 서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때의 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우승 후보도 이기고 올라온 상대를 무시할 배짱은 없어서.”


코트에 들어서기 전에 석현과 짧은 인사를 나눈 나는 슬슬 몸을 풀었다.

아마 오늘은 힘을 꽤 많이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니, 근육을 꼼꼼히 풀어두는 게 중요했다.


석현은 정연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주는 선수였지만, 디테일하게 보면 차이가 있었다.

정연이 위력적인 백핸드를 중심으로 수비하는 디펜시브 베이스라이너라면, 석현은 특별히 부족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샷으로 상대의 생각을 한발 먼저 읽어내 능숙하게 수비하는 타입이었다.

당연히 나는 열심히 두드려야 할 테니 힘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정연과의 경기에서 사용했던 늪테니스는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당시에는 2세트에서 체력을 비축하면서 상대를 당황에 빠뜨렸기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서로 너무 잘 아는 상대라 그 정도 함정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석현은 조바심 내다가 실수할 성격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도 누구나 약점은 있는 법이지.”


난 첫 대회의 결승전을 떠올렸다.

마지막 매치에서 석현이 이기긴 했으나, 풀세트에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상대였던 배진고의 임가온은 공격적인 플레이로 석현을 밀어붙였다.

나는 오늘 가온의 플레이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읏차!”


내 서비스로 시작된 첫 게임에서 나는 석현과 스트로크를 주고받다가, 별안간 공에 스핀을 걸어 네트 근처에 절묘하게 떨어지는 드롭샷을 날렸다.

석현은 급하게 스프린트해 팔을 뻗었지만, 애꿎은 바닥만 쓸고 지나갔다.


내 생각대로였다.

석현의 약점은 느린 반응속도였다.

지능적인 플레이로 그걸 커버하고 있지만, 내가 주로 사용하지 않던 샷이 나오자 대응하지 못하고 놓치는 모습이 바로 나왔다.


가온과의 매치에서도 이런 장면이 많이 포착됐었다.

공격적인 네트 플레이를 하는 가온이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해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애매하게 넘겼을 때 말이다.


“그치만 여기서 끝이었으면 프로들을 이기고 올라오지도 못했겠지.”


대구 퓨처스 본선에 오른 32명 중 대다수가 실업팀 소속 프로선수였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테니스 불모지여도 실업팀에 들어갈 정도면 국내에서 손에 꼽는 재능임이 분명했다.

그러니 석현의 약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이게 끝이 아니란 거지?

아무리 훈련을 같이하고 있다고 해도, 직접 경기에서 마주하지 않으면 본모습은 알 수 없는 법이었다.

나는 석현이 내 움직임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다.


뭐, 열심히 두드리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나는 장인의 마음으로 공을 깎고 또 깎았다.

내가 석현의 저력을 알게 된 건 힘겹게 1세트를 따낸 후였다.


“후욱, 후욱. 이제 드롭샷은 못 써먹겠네.”


드롭샷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나왔을 때, 그 효과가 제대로 드러나는 법이었다.

그러나 1세트에서 이미 드롭샷을 사용하는 타이밍을 석현에게 간파당하는 바람에 더는 결정구로서 작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백핸드와 리턴 또한 철저히 배제하고 있었고, 똑같은 자세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플랫과 탑스핀도 까다로운데, 불쑥 튀어나오는 로브 때문에 운동량 또한 크게 차이 났다.


내가 벤치에 앉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와중에도 석현은 슬슬 심호흡하며 땀만 닦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3세트까지 끌고 갔다가는 패배하는 건 내가 될 터였다.

석현에게 이겨 결승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번 세트에서 경기를 끝내야 했다.


“해보자고.”


나는 의지를 다지고 라켓을 다시 손에 쥐었다.

그리고 리턴을 준비하며 온 신경을 석현을 향해 집중시켰다.


석현이 올린 토스는 포물선을 그리며 몸 앞에 높이 떴다.

일반적으로 탑스핀을 넣기 위한 토스는 아니었지만, 석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킥서브를 보내왔다.

똑같은 토스에서 여러 구질의 서브를 보내는 건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선수라면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했다.


“흡!”


나는 석현의 서브를 빠르게 포착하고 안정적으로 넘겼다.

초반에 무리하지 않고 세트 중반부터 승부를 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승부를 걸어온 건 오히려 석현이었다.


마치 1세트 때 당했던 복수라도 하려는 듯, 별안간 석현이 내가 서 있는 반대쪽 코트로 드롭샷을 날렸다.

나는 따라가지도 못하고 공이 코트에서 여러 번 바운드 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이래서야 2세트를 따려면 나도 초반부터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2세트를 버리고 3세트에서 승부를 낼까 생각도 했지만, 석현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주면 오히려 불리해지는 건 나였다.

석현이 내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고 있기 때문에, 점점 코트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지고 있었다.


“서브부터 견제해 볼까?”


나는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손안에서 라켓 손잡이를 빙빙 돌리며 얕은꾀를 냈다.

위험부담을 감수해야겠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게 없었고, 잘만 하면 충분히 석현에게 통할 듯했다.


석현이 토스를 올리는 순간, 나는 기습적으로 서비스라인 근처까지 전진했다.

서브라는 건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실패 확률이 급격히 올라갈 수 있는 섬세한 기술이기 때문에, 당황한 석현의 서브는 이전과 달리 날카로운 구석 없이 밋밋하게 날아들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석현의 서브를 먼 곳으로 찔러 넣었다.

아마 강한 서브가 날아왔다면 오히려 당하는 건 내가 됐겠지만, 석현은 퍼스트 서브에도 스핀 서브를 섞어가며 혼란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이번 포인트는 단순한 한 점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석현은 내 기습 대시를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거고, 쉽게 스핀 서브를 넣지 못하게 될 터였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입꼬리를 슬쩍 올릴 수 있었다.

석현은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 이전보다 확연히 많아진 횟수로 공을 튀기고 있었다.



***



“열 받네, 저 자식.”


2회전에서 고배를 마신 호영은 환희와 석현의 준결승전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환희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건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회 중에도 성장을 이어 나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예선전에서 보여주던 모습조차 이제 과거에 불과했다.


기습적인 움직임으로 석현의 서브를 막아낸 환희는 이후에 그 기술을 더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존재감을 잘도 써먹었다.

대시하는 척하며 석현을 움찔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덕분에 1세트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석현의 더블폴트를 유도해 내기까지 했다.


호영은 문득 환희가 처음 테니스를 배울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당연히 호영은 환희의 재능을 알아봤다.

하지만 설마하니 이 시점에 퓨처스 대회에서 국내 1위 선수마저 꺾고 결승을 바라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호영의 입장에서는 질투심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초3 때부터 테니스한 나보다 잘하면 어쩌라는 거야. 이래서야 탈락했다고 슬퍼할 틈도 없겠네.”


한숨을 내쉰 호영은 환희에 대한 질투심을 원동력으로 삼았다.

환희에게 쫓기느라 초조했던 과거와 달리, 오히려 쫓는 입장이 되자 마음은 편했다.

그렇게 계속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때, 조금 더 일찍 준결승전을 마친 광현이 호영의 옆자리에 앉았다.


“선배, 아쉬웠습니다.”

“꼼짝없이 당했는데, 뭘.”


광현은 공백으로 인한 실전 감각의 저하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3회전까지는 부족한 경기력을 피지컬로 어떻게든 커버했지만, 준결승전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4강까지 이름을 올렸으니, 직전에 나갔던 대회보다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게 위안이었다.


“다음에는 우승해야지.”

“저도 더 열심히 하려구요.”

“하긴 친구가 저러고 있으니... 둘 다 힘내자.”


갈피를 잡은 환희는 이제 공이 정점에 오르기 전에 타점을 잡는 라이징 샷으로 석현의 타이밍을 빼앗고 있었다.

까다로운 상대와 붙어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결국에는 성장까지 이뤄내는 환희는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해 보였다.



***



"결승 축하한다."


2세트에서 석현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는 빠른 공격으로 승기를 잡은 나는 결국 매치에서 승리를 거뒀다.

석현은 후련한 표정으로 내게 악수를 건넸다.


"다음엔 오늘 경기를 바탕으로 더 철저하게 공략할 테니 기대해."

"선배랑은 다시 붙고 싶지 않은데요?"


진심으로 한 얘기였다.

정연과 상대할 때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지만, 어려운 걸로 따지면 석현이 더 심했다.

정연과 달리 내 강점을 차단하는 경기 운영을 하면서 철저하게 약한 부분만 파고드니 그럴 수밖에.

그만큼 앞으로 보완할 점도 알게 해준 경기였지만 아무래도 다시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봐."


석현은 그렇게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는 전혀 짓지 않는 표정인데, 이 사람 나한테 진 충격으로 이상해졌나?

하지만 이내 다시 미소를 지우는 걸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어떻게 결승까지 왔네."


가방을 챙겨 경기장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여기까지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프로 테니스 협회가 주관하는 최상위 투어에 비하면 낮은 등급의 대회라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들보다 늦게 시작한 나로서는 남다른 기분이었다.

상위 대회에 도전하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듣자 하니 결승전 상대는 광현을 이기고 올라온 오성증권 소속의 선수였다.

그리고 국가대표팀에 소속된 선수이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결승전도 쉽지 않을 듯했다.


“모든 걸 쏟아낼 수밖에.”


그렇게 결심하고 시작한 대구 퓨처스 결승전.

나는 첫 세트부터 밀리고 있었다.


“게임, 성준우.”


나에 대한 분석이 끝났는지 석현처럼 코스를 제한하면서도 자기 장기인 공격을 멈추지 않고 이어 나가는 상대.

그에 반해 나는 평소와 달리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기세가 오른 상대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아마 지금 상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터였다.

안타깝게도 모두 내가 의도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석현을 상대하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바로 백핸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포핸드를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지금 당장 부족한 능력을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부족함마저 이기기 위해 써먹는 수밖에.


나는 성준우의 공세에 밀리는 척하며 약한 반격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위력을 줄인 만큼 코스만은 평소보다 더 예리하게 가져가 상대의 위닝샷이 나오는 것만은 저지했다.

아무리 유리한 상황이라도 공을 계속해서 원하는 대로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간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빠질 수도 있고, 집중력이 끊어질 수도 있으며, 과한 힘을 주어 코스를 벗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처럼.


“Thirty all.”


나는 상대가 어정쩡하게 보낸 공을 전력을 다해 상대에게 보냈다.

내 힘 빠진 포핸드에 익숙해져 있던 상대는 갑작스레 빨라진 공에 반응하지 못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시속 100마일의 강속구를 쳐낸 타자라도 패스트볼에 이은 시속 80마일의 느린 공에 삼진당하기도 하고, 당연히 지금처럼 그 반대도 가능했다.

정연을 늪에 빠뜨렸던 테니스에 함정까지 설치한 늪테니스 진화 버전이었다.


작가의말

어느새 10화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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