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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천재 투수가 윔블던을 제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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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작품등록일 :
2023.08.04 18:57
최근연재일 :
2023.08.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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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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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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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입부 테스트(1)

DUMMY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거냐, 이 멍청아!”


개학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나는 곧장 테니스장으로 달려갔다.

내가 졸업한, 아니 이제는 다시 재학 중인 가람고등학교는 일반사립고지만 야구부를 포함한 여러 운동부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호영이 역시 우리 학교 테니스부 소속이었다.


호영이는 다짜고짜 찾아와 테니스부에 가입하고 싶다는 내게 역정을 냈다.

테니스에 입문한 지 겨우 한 달 차인 내가 갑자기 프로를 운운하니 어릴 때부터 테니스에 매진해 온 호영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만했다.

하지만 나 역시 금세 결정을 내린 것과는 별개로 가벼운 마음을 갖고 내뱉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프로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해서는 내가 훨씬 잘 알고 있었다.


“너 테니스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호영이는 평소에 보이는 웃음기는 싹 지운 채 내게 물었다.

그 물음에는 나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진지하니까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테니스를 우습게 보지도, 프로가 되는 걸 쉽게 여기지도 않아.”


내 대답을 듣고도 호영이는 한참이나 날 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눈빛을 거두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얼굴엔 이제 걱정과 우려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냥 네가 야구를 그만두고 처져 있을까 봐 기분전환 삼으라고 테니스를 알려준 것뿐이야. 뒤늦게 배워 프로가 되는 게 쉬운 일도 아닌데 이러면 꼭 내가 가시밭길로 이끈 것 같잖아.”

“그럴 리가. 전부 내 의지고 선택이야.”


아무래도 호영이는 내가 이런 선택을 내린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프로가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런 듯했다.

어릴 때부터 외길만 파왔어도 가능성이 희박한 길인데 뒤늦게 출발한 나로서는 수 배는 더 힘든 길일 테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아무리 타 종목이라도 프로라는 벽을 뛰어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선택에 있어서 어떤 타인의 의지도 개입시키지 않았다.


나는 호영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괜찮지 않아? 프로 지망이라면 입부 테스트를 거쳐야겠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는데.”

“엇. 광현 선배님, 나오셨습니까?”


고개를 돌린 곳에는 투어백을 메고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운동선수답지 않은 하얀 피부에 훤칠한 인상을 하고 있는 남자는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에,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키도 다 자라지 않았고 체격도 갖추지 못한 지금의 나보다 훨씬 우월한 신체 발육이었다.


“호영이 일찍 나왔네. 네 옆에는 야구부였던 친구지? 우리 반 야구부 애들이 너 나간 걸로 시끄럽던데 테니스에 관심 있는 줄은 몰랐네.”

“안녕하십니까. 정환희라고 합니다.”

“반가워, 2학년 박광현이야. 감독님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들어와.”


그렇게 말한 광현은 씩 웃으며 테니스장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더니 별안간 감독에게 입부 희망자가 있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덕에 테니스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몰려 나는 부끄러움을 겪어야 했다.


“그··· 나쁜 선배는 아니야. 하는 짓이 좀 짓궂어서 그렇지.”


하루 이틀 일이 아닌지 호영이도 그저 옆통수를 긁적이며 지켜보기만 했다.

생긴 거랑 다르게 똘끼가 좀···.


“네가 입부 희망자냐? 개학하고 2학년 교무실에 계신 김현성 선생님께 입부 신청서 제출하면 처리해 주실 거다.”

“감독님. 저 친구는 취미부 말고 선수부로 입부하고 싶대요.”

“선수부?”


광현의 말에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있는 덩치 큰 테니스부 감독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나를 주시하던 테니스부원들의 눈빛에도 경계하는 기색이 더해졌고 말이다.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감독은 위아래로 훑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내 몸을 관찰했다.


“체격은 좋군. 입상 이력이 어떻게 되지?”

“대통령기 전국대회에서···.”

“호오?”

“최고타자상과 최고투수상을···.”


올라가던 감독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굳었다.

테니스장의 분위기도 일순간 썰렁하게 얼어붙었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지난 후에는 여기저기서 웃음 참는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구력이 어떻게 되나?”

“한 달··· 입니다.”


감독은 혹시 내가 잘못 대답한 건 아닌지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그저 멋쩍은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이내 자신이 들은 게 맞다는 걸 깨달은 감독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가벼운 마음으로 온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선수부는 진지하게 프로를 지망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절대 가볍게 생각하고 온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입부 테스트를 보도록 하지.”


우렁찬 대답을 내놓자 감독은 마지못해 입부 테스트를 보겠다 선언했다.

소속 학교의 학생인지라 차마 문전박대는 못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형태든 기회를 얻었으니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회를 얻었어도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다.

동호회 아저씨들도 못 이기는 실력이니 아마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별 볼 일 없는 실력일 터였다.

그럼에도 내가 믿는 건 오로지 하나. 내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봐 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종목이 다르더라도 전국대회에서 수상했을 정도라면 기초적인 신체 능력에 대해서는 검증할 필요 없겠지?”

“넵! 자신 있습니다!”

“좋아. 그럼 길게 끌 거 없이 연습경기로 실력을 보도록 하지. 광현이 네가 데려왔으니 상대로 네가 들어가라.”


감독의 말에 광현은 재밌겠다는 듯 웃으며 알겠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 웃음 속에서도 날카롭게 빛나는 눈을 보니 방심할 수 없는 포스가 느껴졌다.

연습경기는 한 세트도 아닌 반 세트, 즉 3게임 시합이었다.


나는 테스트가 이루어질 코트 바깥 벤치에 앉아 게임 준비를 하면서 호영이에게 광현에 대해 물었다.

호영이는 시선을 돌려 다른 부원들이 근처에 없음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우월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강한 스트로크를 날리는 베이스라이너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최고 유망주라는 평가도 들었고. 올해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고 부상까지 당했지만 초심자인 네 상대는 아니지. 어디까지나 테스트니 힘 빼고 치겠지만.”


베이스라이너는 네트로 접근하기보다는 베이스라인 근처 깊숙한 곳에서 스트로크 싸움을 하는 유형의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나는 호영이의 말을 듣고 마음속 한켠에 불쑥 머리를 들이미는 욕심을 애써 지우고 몸을 풀었다.

승부욕이란 게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닌지라 과하게 욕심을 부려 게임을 망치지 않게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 했다.


“그럼 서브를 정한다. 위, 아래를 선택해라.”

“위로 하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답하자, 감독은 라켓을 거꾸로 세우고 손잡이를 회전시켰다.

라켓은 팽이처럼 회전하면서 중심을 잃고 바닥에 툭 하고 쓰러졌다.

버트캡에 그려진 문양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광현이가 먼저 서브한다.”


서브권이 결정되고 우리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사선으로 마주 섰다.

나도 상대를 모르고, 상대도 나를 모르는 첫 게임이니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낮췄다. 야구할 때 수비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설프지만 한 달 동안 스플릿 스텝도 충실히 익혀둔 상태였다.

가볍게 점프해 착지와 동시에 공을 향해 달려가는 스플릿 스텝은 정지되어 있는 근육을 움직이게 만들어 공에 대한 반응을 빠르게 해주는 기술이었다.

내 반응속도라면 어지간히 빠른 공이 와도 쳐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나 혼자만 긴장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상대의 서브로 게임은 시작되었다.


“으라차~”


당연한 얘기겠지만 광현은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

어딘가 장난기 섞인 기합과 함께 보내온 서브는 나름 빠르긴 했으나 그게 다였다.

힘도 실리지 않았고, 코스도 엉성했다.


이길 생각이 없다면 나야 고맙지.

처음부터 감독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기회다.


나는 라켓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왼손잡이인 내게는 듀스 코트 외곽으로 들어오는 공은 백핸드로 처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스위치히터였던 덕에 양손 백핸드도 오히려 익숙한 느낌이라 적응하기 쉬웠다.


“흐럇!”


나는 기선제압도 할 겸, 투지도 보여줄 겸 광현과 대조되는 강렬한 기합을 넣었다.

기합과 함께 제대로 밀어친 공은 빠르게 네트를 넘어 광현과 멀리 떨어진 지점을 강타하고 지나갔다.

생각지 못한 리턴에 분위기는 다시 한번 싸해졌다가 광현의 웃음에 다시 풀렸다.


“하하. 다짜고짜 리턴 에이스냐?”


점수는 0(love):15(fifteen).

하지만 내 강한 백핸드를 보여줄 수 있었으니 점수 이상의 값어치가 있었다.

광현 역시 이전보다 더 진지해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말이다.


광현은 바닥에 공을 세 번 튀기더니 그대로 높이 토스해 트로피 자세를 만들었다.

라켓을 든 오른손은 머리 뒤까지 당겨진 상태였다.

이후, 잔뜩 부푼 허벅지 근육과 활처럼 휜 등 근육을 추진력 삼아 뛰어오른 광현은 등 뒤로 헤드를 돌리며 토스한 공을 최고점에서 타격했다.

설명은 길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Fifteen all”


빠르게 날아온 서브를 받아치지 못하고 코트 바깥으로 날려버린 나는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찼다.

반응은 확실히 했지만 자세 잡는 게 늦어 밀리고 말았다.

아직 반사적으로 정확한 움직임이 나오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탓에 생각하고 움직이기까지 소요 시간이 있었다.


그나저나 이게 프로를 지망하는 선수의 서브인가?

공원 코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위력의 서브였기에 오싹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이걸 단 한 구라도 공략할 수만 있다면 내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 증명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하핫. 전국대회 최고타자상 받을 만한 반응이네. 그럼 이어서 하나 더 간다.”


광현은 지체하지 않고 또다시 강서브를 보내왔다.

나는 심기일전해서 리턴을 준비했지만 이번에도 건드리는 게 고작이었다.

공은 비실비실하게 날아가 네트에 걸리고 말았다.


그 후로도 나는 한 번의 서브를 더 놓쳐 게임은 광현의 차지가 되었다.

게임 스코어 1-0. 아무래도 광현의 서브를 완벽하게 받아치는 건 좀 더 미뤄야 할 듯했다.

이제 내 서비스 게임이었다.


“그래도 한 게임만 서브를 하게 돼서 다행이네.”


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기분을 환기했다.

이전 게임의 여파가 남으면 들어갈 것도 안 들어갈 테니 빠르게 떨쳐내야 했다.

서브권을 놓친 게 긍정적인 거라니 웃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테니스에서는 원래 서버가 훨씬 유리하지만, 아직 한 달 차인 나는 완성도 높은 서브를 구사하지 못하는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라켓을 든 팔을 머리 뒤로 미리 들어 올린 상태로 시작하는 서브 자세로 게임을 시작했다.

폼은 안 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퍼스트 서브.


파앙!


“오!”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날아간 공이 서비스 코트의 T존을 절묘하게 찍고 지나갔다.

광현은 공을 미처 쳐 내지 못하고 쉽게 보내주고 말았다.

속도 자체는 광현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코스가 워낙 예리한 덕이었다.

내 어설픈 서브 자세로 인해 방심한 게 더 큰 원인이겠지만.

결과적으로 게임 초반부터 등장한 내 서브 에이스로 좌중이 술렁였다.


근데 나도 이렇게 잘 들어갈 줄은 몰랐어.

서브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투구폼과 다르지 않아 야구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지만, 아직 제구력이 따라주지 않아 연습에서는 폴트가 많았다.

그러니 방금처럼 절묘하게 들어간 공은 순전히 운이 따라주어 가능했을 뿐이었다. 아마 두 번은 힘들겠지.

그러나.


“하앗!”


온 힘을 다해 넣은 두 번째 서브도 단식 사이드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광현도 방심하지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기합은 애저녁에 갖다버린 광현이 내 상냥한 서브를 다운더라인으로 불친절하게 받아쳤다.

미리 센터라인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낙하점을 포착해 탑스핀을 섞은 포핸드로 광현의 리턴을 다시 넘겨 보냈다.

그 후로는 스트로크 싸움이었다.


베이스라이너인 광현의 포핸드는 묵직했지만 어떻게든 받아낼 정도는 됐다.

라켓을 통해 전달되는 충격에 손목이 금세 얼얼해졌지만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내 표정과는 반대로 광현의 얼굴에는 점점 활기가 돌았다.


“2-0.”


결국 광현의 스트로크를 공략하지 못한 나는 두 번째 게임도 내주고 말았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부터 지는 건 익숙했지만, 패배감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감정을 조절하며 세 번째 게임을 준비했다.


과연 감독이 지금까지의 게임에서 내 가능성을 봤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확실한 합격을 위해서는 이제 광현의 서브를 받아치는 수밖에는 없었다.


작가의말

낭만은 한손 백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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