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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천재 투수가 윔블던을 제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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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롤랑
작품등록일 :
2023.08.04 18:57
최근연재일 :
2023.08.18 01:12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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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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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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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국가대표

DUMMY

“내년 초에 열릴 호주 오픈은 저희 측에서 와일드카드를 제공하겠지만, 다른 그랜드슬램 대회에 자력 진출하기 위해서는 랭킹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운전대를 잡은 현화가 내게 투어 일정을 일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1년 반짜리 단기 후원 계약을 맺은 만큼, 내년도 대회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낼 필요가 있었다.

특히 계약을 맺을 때, 경철과 나눴던 얘기를 떠올려 보면 내 비교 대상은 가이아자동차의 나달이었다.

나달은 가이아자동차와 후원 계약을 맺은 지 1년 만에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했다.


다음 달에 열릴 올해 US 오픈은 예선전에 나갈 수 있는 싱글 랭킹 224위를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내게 주어진 기회는 총 5번이었다.

내년도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 그리고 다시 내후년도 호주 오픈까지.


물론 기간 내에 실적을 올리지 못해 재계약을 못하면 다른 후원사를 구하면 되는 일이지만,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 가능성을 믿어준 경철의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고마움이나 미안함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본디 일류 선수라면 중요한 대목에서 반드시 승리를 따내는 법이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게 많습니다. 우선은···.”

“코치. 코치부터 구해야겠습니다.”


아직 성장 여력이 많은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이었다.

이제 무소속이 된 만큼, 더욱.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후보를 몇 분 추려봤습니다. 일정 계획표 뒤에 리스트가 있습니다.”


일정이 적힌 종이를 한 장 넘기니, 국내외 코치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나와 있었다.

멀미 때문에 자세히 읽는 건 포기했지만, 최대한 영입 가능성이 높은 후보 위주로 조사한 모양이었다.

경기 외의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점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춘천의 한 스포츠타운에 위치한 테니스장에 도착했다.

나는 현화가 달려와 손수 뒷문을 열어주기 전에 얼른 문을 열고 나왔다.

현화의 도움은 다 감사한데, 가끔 과한 경우가 있었다.

내가 보기엔 내 반응 때문에 일부러 더 과장하는 듯했다.


“문 열다가 다치기라도···.”

“할 리가 없죠?”


현화의 대사를 앗아간 나는 트렁크에서 짐을 챙겨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훈련 중인 현택의 모습이 보였다.

데이비스컵에 이어 아시안게임 대표로도 선발된 까닭인지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나는 현택이 잠시 훈련을 멈췄을 때가 되어서야 말을 걸 수 있었다.


“선배님, 저 왔습니다.”

“어, 환희 왔냐? 미안하다. 온 줄도 몰랐네.”

“아닙니다. 방금 왔어요”


나는 오늘 현택의 훈련 파트너 겸 내 훈련도 하기 위해 테니스장을 찾았다.

이곳은 김현택 테니스 아카데미 재단에서 운영하는 코트였다.


“그럼 오늘 신세 좀 지겠습니다.”

“신세는 무슨. 내가 더 고맙지.”


현역으로 복귀한 현택은 지난 5월에 열린 퓨처스 대회에서 복식 우승을 거두긴 했으나, 같은 대회의 단식에서는 부상으로 기권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를 앞둔 탓에 초조한 기색도 슬쩍슬쩍 내비치고 있었다.


“그럼 가볍게 몸부터 풀자.”


스트레칭을 마친 나는 현택의 말에 따라 가볍게 공을 주고받았다.

여전히 날이 더운 탓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흘렀다.


“몸 다 풀렸으면 좀 더 세게 해도 돼.”


현택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외치고는 공에 싣는 힘을 더욱 올렸다.

우리는 서서히 강도를 높여가며 격렬하게 움직였다.

집중력이 먼저 끊긴 것은 현택이었다.


프레임에 맞은 공이 코트를 벗어나 비실비실하게 날아갔다.

현택은 숨을 몰아쉬며 모자를 벗었다.

겨울이었으면 아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보였을 거다.


“후우, 나이를 먹으니 랠리가 길어지면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


허리를 짚으며 토로한 현택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모자를 고쳐 썼다.

그러고는 내게 1세트짜리 연습게임을 제안했다.


“실전처럼 부탁한다. 아무래도 아직 단식은 불안해서.”


나는 현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동전이 없는 관계로 서비스 게임을 정하기 위해 라켓 손잡이를 돌렸다.


“선배님 먼저입니다.”


실전처럼 부탁한다고 말한 만큼, 나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상대는 지금 내 세계 랭킹이 우스울 만큼, 높은 위치에 올랐던 선수였다.

그건 전성기가 지났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다.


“헛!”


현택이 묵직한 서브를 보내왔다.

전성기 시절 서브에 강점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무거운 라켓에서 나오는 묵직한 공이 리턴을 방해했다.

두 달 전에는 그 힘에 밀렸지만, 지금 나는 숱한 대회를 거치며 더 성장한 상태였다.


나는 서비스 코트에 강하게 꽂히는 서브를 일직선으로 날카롭게 되돌려 보냈다.

내 리턴이 수준급이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는 현택은 까다로운 코스로 올 걸 예상하고, 내가 공을 컨택하는 순간에 미리 움직여 상대적으로 느린 발을 커버했다.

하지만 나도 실전처럼 임하기로 한 순간에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렸기에, 현택이 다시 쳐낸 공에 쉽게 반응했다.


현택이 백핸드 크로스로 보낸 공을 따라잡은 나는 다시 다운더라인으로 돌려보냈다.

그걸 가까스로 따라잡은 현택은 강한 포핸드를 때렸다.


그 후로는 스트로크 싸움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헛!”

“하앗!”


우리 둘은 서로에게 질세라 기합을 내뱉었다.

기합을 뱉는 이유는 선수 개인마다 다를 수 있었지만, 내 경우에는 호흡을 통해 신체의 텐션을 조절하고 공에 스핀 걸리는 소리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어딘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합이 순간적인 힘을 끌어 올려 주고 상대 선수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도 한다.

얼마 전에 대회에서 만났던 상대가 특이한 소리로 기합을 냈을 때,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끊겼던 걸 생각하면 납득이 되는 얘기였다.

그런 것만으로 시합에서 이길 수는 없지만, 그런 것 하나로도 승패가 갈릴 수 있는 게 테니스였다.


그 사이에 우리의 스트로크 싸움은 결판이 났다.

네트 끄트머리에 걸려 위로 솟구친 현택의 공은 애석하게도 내 코트가 아닌 현택의 코트에 떨어지고 말았다.

네트로 빠르게 대시하던 나는 공이 넘어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발을 멈췄다.


“0-15.”


담담하게 점수를 읊은 현택은 공을 주워 다시 베이스라인으로 물러났다.

어딘가 축 가라앉은 표정이 신경 쓰였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그립을 고쳤다.


흐름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슷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내 집중력은 견고했고, 현택은 아니었다는 것까지.


결국 첫 번째 게임은 내 브레이크로 끝을 맞이했다.

나는 코트를 체인지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테니스는 홀수 번째 게임이나 세트 끝에 체인지 코트하는 게 룰이었다.


그런데.


“윽!”


나와 마찬가지로 걸음을 옮기던 현택이 갑자기 복부를 부여잡았다.

저곳은 현택이 부상 당한 곳이었다.

몇 달 전에 대회에서 기권했던 것도 복부 근육 부상이 재발한 게 원인이었다.


나는 라켓도 내팽개치고 현택을 향해 급하게 달려갔다.

코트에 쓰러진 현택은 끙끙 앓는 소리를 토해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후우, 후우. 괘, 괜찮아.”


다행히 현택이 숨을 몰아쉬며 비척비척 일어섰으나, 안색이 창백했다.

나는 걱정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현택을 부축했다.


“최근에 좀 괜찮다 싶더니 다시 말썽이네.”


날 안심시키려는 듯 웃고 있지만, 현택의 입꼬리는 떨리고 있었다.

고통을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단 여기 잠깐 앉으시죠.”


현택을 부축해 벤치에 앉힌 나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스마트폰을 손에 들었다.

그걸 막아 세운 건 현택이었다.


“자식, 호들갑은. 이 정도로 안 죽어, 인마.”

“그치만···.”

“괜찮다니까. 잠깐 다친 곳이 올라와서 그래. 이제 멀쩡해.”


그 말대로 현택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한결 나아져 있었다.

내 팔을 쥔 손에도 힘이 충분히 들어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엔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 아닌 듯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폰을 내려놓고, 다리가 풀려 테니스장에 주저앉았다.

그걸 보며 껄껄대며 웃던 현택은 다시 복부를 잡고 고통을 호소해야 했다.


“아이, 아파라.”

“웃기십니까?”

“아니, 뭐. 키도 징그럽게 큰 녀석이 바람 빠진 풍선 인형마냥 쓰러지는 거 보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네. 큭큭.”


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의 현택을 보며 안심하면서도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즈음에 현택은 돌연 웃음을 멈추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너, 군대 가기 싫지?”

“그럼 운동선수 중에 군대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답니까?”

“난 98년도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따서 면제인데.”

“놀리십니까?”


별안간 군대 얘기를 꺼내는 현택을 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상무 테니스단이 있긴 하지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환경일 테니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럼 너 아시안게임 나가서 금메달 딸래?”

“네?”

“내 자리에 들어오라고.”


훅 들어오는 현택의 제안에 나는 깜짝 놀라 대답도 못하고 멈춰버렸다.

엄연한 형식과 절차가 있는 법인데, 대표팀을 이런 식으로 결정한다고?


“싫으면 관둬.”

“아니, 아니, 아니 싫다뇨. 너무 좋은데요. 근데 이렇게 어영부영 정해도 괜찮은 거예요?”

“누가 그래? 어영부영이라고. 지금 너보다 싱글 랭킹 높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정연 말고 더 있냐? 이미 감독님한테도 언질은 해놨어.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 널 보니 확신이 선다.”


나는 아직도 얼떨떨한 상황인데, 현택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모양이었다.

대구 퓨처스에서 1회전 시합이 끝나고 정연과 얘기 나눴을 때, 혹시 모르니 랭킹 끌어올리고 있어 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걸 예상한 걸까?


그 정도로 확신하는 기색은 없었던 걸 보면 알고 있었던 거 같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듯했다.

현택의 부상은 몇 달 전부터 뉴스 기사로 익히 잘 알려진 부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때, 현택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코트가 그리워서 돌아오기는 했는데, 난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체력도,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아. 다행히 네가 나타나 줘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한 현택은 후련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은퇴 후 4년이 지나 복귀한 것도, 복귀한 후에 두 번째 은퇴를 결심하는 것도 무엇 하나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 현택은 오히려 기쁜 표정이었다.

마치 나라는 존재가 나타나 줘서 걱정을 덜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제가 선배님 몫까지 열심히 해서 꼭 금메달 따겠습니다.”


나는 현택의 결정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현택은 그런 내 다짐을 듣고 피식 웃고는 답했다.


“그래, 꼭 따야지. 군대 가기 싫으면.”


이어서 현택은 ‘내가 훈련소를 이기자로 갔는데···’라는 말을 덧붙이며 별안간 군대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현택을 향해 한 번 웃어 보이고는, 귀를 막았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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