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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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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조회수 :
359,638
추천수 :
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8.06.10 14:21
조회
127
추천
3
글자
7쪽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DUMMY

《···그럼··· 간단해. 당신의 배고픔이 정말 몸의 진화를 촉진시킨 거라면··· 배가 고프지 않게 해서 한번 비교를 해 보면 돼.》


그 말에 한서준이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곤 역시 아무것도 변한 게 없음을 확인한 뒤 삼각지대의 유일한 이물에 조용히 눈을 고정시켰다. 그는 곧 늘어져 있던 왼팔을 가만히 들어올렸다.

왼팔이 뚜둑뚜둑 기괴한 소리를 토해 내며 움직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마치 기름을 먹인 인형의 관절처럼 왼팔은 순식간에 떠올라 부드러이 움직였다.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는 '8'이 허공 중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을 그저 상상으로만 휘저은 행동이었기에 그림은 그려지는 순간 지워졌다.

하지만 한서준은 이 의미 없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그림을 그려갔다.

그렇게 총 일곱 번을 내리 그리고나서야 겨우 만족한 한서준이 문득 이물을 향해 천천히 왼팔을 가져갔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게 정말 맛이 있을까?》


그에 감전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움찔 손을 멈춘 한서준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싸늘하게 식은 이물을 지그시 노려보며 재차 한숨을 머금었다.

"···이제 그걸 알아야겠지."

한서준이 멈췄던 손을 거듭 움직였다.


《···그래. 하지만 강요라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해. ···뭔가 내가 나쁜 것 같잖아.》


"···어차피 필요에 의한 선택이다."

강요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건 몸이 원하는 행동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인간 한서준이 아닌 몬스터 한서준이 원하는 행동이었다.

까닭에 권지아의 저 말은 그저 본인을 자책하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건 순전히 한서준, 그 스스로가 원하고 결정한 행동이었다. 단지 길을 제시해 주었을 뿐인 권지아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때 차갑기 이를 데 없는 이물의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그 소름이 끼치는 감각에 한서준이 반사적으로 손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그는 곧 다시 손을 움직여 조심스레 그것을 감싸쥐었다.

그것에 대한 별다른 표현은 필요가 없었다. 그건 그저 차가웠다. 마치 얼음 조각상을 쥔 것처럼, 손끝이 아닌 손바닥 전체로 느껴지는 싸늘한 냉기는 비록 한순간이었지만 '배가 고프다.'란 본능을 깔끔하게 얼려 버릴 정도로 차가웠다.

한서준은 천천히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것과 이어진 커다랗고 차가운 덩어리 하나가 콘크리트 샌드위치 아래에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건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역동적인 동작을 요하는 부근마저 차라리 끊어지는 쪽을 선택할 만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한서준은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끌어당겼다. 비록 스스로 포기한 곳이 많아 앞에 도착할 즈음엔 뜯어진 지점토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가 원한 부분은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투둑.

마치 밤송이를 털어내는 것처럼, 상투적인 소리와 함께 덩어리와 그것이 다급한 이별을 고했다.

그러자 흡사 빨간색 과자를 잘게 부순 것 같은 덩어리의 부스러기가 삽시간에 주변에 흩뿌려졌다.


《어때?》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비릿한 쇳내가 뇌를 찔러왔다. 철분이 다량으로 함유된, 그런 시큼하면서도 구역질이 나는 냄새였다.

다만 이게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온 쇳내인지, 아니면 덩어리의 결합 부분에서부터 시작된 쇳내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한서준은 어쩐지 그것에서 시선을 떼기가 힘들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한서준은 이 느낌이 굶주린 몬스터의 식욕에서 비롯된 일종의 '갈망'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한서준이 문득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건 절대 추위나 공포로 인한 떨림이 아니었다.

그건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전율이었다.

얼어붙어 딱딱할 게 분명한 몬스터의 부산물을 들고, 먹기 약 5초 전의 상황을 맞이했음에도 정작 큰 반발심이 없는 자신의 몸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의 표시였다.

한서준이 잇따라 몬스터의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여전히 코를 쥐어뜯는 비릿한 쇳내가 물씬 풍겨져 나왔다. 도저히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썩은 내가 삽시간에 이성을 뒤흔들자, 한서준은 냉정해진 머리의 명령에 따라 몬스터의 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한서준은 다시 몬스터의 팔을 집어들었다.

분명 방금 전만 해도 이성을 들쑤시던 비릿한 쇳내가 가득했건만, 내려놓기 무섭게 식욕을 자극하는 묘한 냄새로 뒤바뀐 탓이었다.

한서준은 몬스터의 팔을 재차 얼굴 가까이에 가져왔다. 식욕을 감퇴시키던 쇳내가 제법 먹음직스런 냄새로 변했기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이번엔 그렇게 큰 거부감 같은 게 들지 않았다.

오히려 냄새에 이끌린 눈은 도저히 움직일 줄을 몰랐다. 코는 연신 냄새를 빨아들었다. 혀는 하릴없이 입술을 핥았다. 배는 뜯겨질 것처럼 뒤틀렸고, 내장들은 합주를 하듯 소리를 내었다. 목젖이 적나라한 소음으로 굶주림을 호소하자, 메마른 식도가 말라붙은 괴음으로 화답했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상념이 삽시간에 백지가 되어 사라졌다. 심장의 두근거림도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들려왔다.

시야가 좁아졌다. 냄새가 한층 더 강렬하게 얼굴 주위를 휘감았다.

그는 거듭 자신이 배가 고프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러자 위장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느껴졌다. 위장의 뒤틀림과 그에 따른 비명이 장기란 한계를 넘어 가죽에 둘러싸인 근육과 뼈를 자극했다.

어깨가 들썩였다.

그의 손이 홀린 듯이 위로 솟구쳤다.


《···신기한데.》


이성은 현재 그의 몸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권지아의 말조차 그에겐 큰 깨달음을 선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오직 바람처럼 스쳐갈 뿐이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무언가가 움직인다는 감각은 없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는 오른팔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계획을 바꿔 왼손에 힘을 주었다. 몬스터의 팔을 좀 더 강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그는 먼저 몬스터의 팔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몬스터의 팔은 그의 손이 닿아 있는 부분에 한해서만 제법 말랑말랑하게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 부위에선 더욱더 기름진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왼손을 고쳐잡았다. 얼어붙은 몬스터의 손가락을 한꺼번에 그러쥐었다. 그런 뒤 그는 곧장 왼팔을 끌어당겼다. 그는 본능적으로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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