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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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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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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39,628

작성
18.05.2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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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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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8쪽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DUMMY

하지만 아무리 현실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해도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현상에 서슴치 않고 끼어들 만큼, 담서은은 그리 멍청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담서은은 그저 픽 웃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 없는 한서준의 침묵에 소리를 더하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를 봐도 온통 부서지고 무너진 건물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콘크리트 도로 위에서, 담서은은 그리 어렵지 않게 멀쩡한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주변 건물들에 비해 멀쩡하다는 것이지, 결코 깨끗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겠지?"

그곳으로 걸어가던 담서은이 문득 입을 열었다.

콰득!

더불어 또 하나의 몬스터가 모든 감각을 내려 놓는 소리가 하모니처럼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목발을 끄집어 낸 한서준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몫이 되어 버린 '몬스터 처리'를 보다 완벽하게 매듭짓기 위해 거듭 발을 움직였다.

그 차가운 반응에 잠깐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담서은이 이어 몇 걸음도 걷지 않아 도착한 가게의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여기는···, 뭐지?"

뜨끈한 숨결에 유리창의 일부가 축축하게 젖어들어갈 즈음에도, 눈에 보이는 건 무척 제한적이었다.

안쪽에서부터 낀 희뿌연한 먼지 덕에, 아무리 이마를 짓눌러도 극히 일부분만 보일 따름이란 것이었다.

콰득!

삽시간에 또 하나의 생명이 꺼졌다. 담서은은 질척하게 달라붙는 선연한 파육음을 떨쳐내려는 듯 크게 한 번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탁한 유리창 너머로 시시각각 형태가 잡히던 여러가지 물품들이 한순간 찾아온 어둠에 의해 힘없이 물크러지고 말았다.

결국 가게 안의 물건들을 알아보려던 시도를 잔뜩 찌푸린 얼굴과 함께 그만둔 담서은은, 대신 유리창 한쪽에 붙어 있던 가게의 포스터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소시지? 좋은데? 안 그래도 우리 식량 없었잖아. 좀 가져갈까?"

탁. 탁.

대답 대행으로, 단단한 콘크리트 땅을 짚는 목발의 소리가 다소 적나라하게 사방을 긁어 대었다. 역시 볼을 부풀린 담서은이 살짝 불만스럽게 한서준을 쳐다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포스터의 옆에 위치한 가게의 문을 거리낌 없이 잡아당겼다.

덜컥!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유려하게 조각된 유리문을 뒤덮은 검고 진득한 먼지만이 오래간만의 손님에 찌뿌둥한 기지개를 펼 뿐, 정작 그 손님을 맞이해야 할 문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이런 세상에 누가 문단속을 한 것도 아니겠고···. 안에 사람이 있나?"

마치 들으라는듯, 담서은이 다시 한 번 크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역시 들려온 대답은 콰득! 또 하나의 생명체가 내지른 육체의 비명이었다.

그에 여전히 제 할일만 찾아 돌아다니는 한서준을 곁눈질로 힐끗 쳐다본 담서은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유리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짐짓 진지한 얼굴로 한서준을 불렀다.

"아저씨."

한서준이 몸 전체를 움직여 담서은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건 결코 담서은의 진지함을 엿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바닥을 기어다니는 몬스터들을 전부 압살했기에, 다시 말해 할일을 모두 끝낸 자신에게 내리는 일종의 상 같은 개념으로 행한 '변덕'이었다.

하지만 그런 한서준의 심리와는 달리 그가 이제야 자신을 쳐다본다 생각했는지, 담서은은 삽시간에 진지한 표정을 없애고 다시 발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슬슬 대화를 좀 해 볼까 하는데, 아저씨 생각은 어때?"

한서준은 말없이 담서은의 눈을 바라보았다. 대강 보면 까맣지만, 자세히 보면 짙은 갈색이 묻어나는 가무스름한 눈동자 안엔, 총을 두 자루나 들고 다니는 거대한 체구의 외다리 남자가 비쳐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쪽밖에 없는 남자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것인지, 눈동자는 미세하게 움직이는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좀 친해져 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며칠은 같이 지내야 할 텐데. ···일단 저 아이는··· 당신을 그래도 좋게 보고 있거든?》


"···좋게 본다라···."

권지아의 말에 마치 목이 매인 것처럼, 한서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도··· 벌써 20년 전인가?"

20년.

'한서준'이란 독립적인 개체로서 살아온 인생의 절반.

단지 이렇게만 생각해도 까마득했다.

그렇기에 정확히 언제, 어떤 상황에서 들은 말이었는지는 잘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한창 청춘을 불태울 시기에 들었던 단어임은 분명했다.

물론 일반인에서 군인이 될 때, 하사에서 중사로 진급할 때,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배웠을 때, 파병을 나가 손가락으로 세지도 못할 만큼 사람을 죽였을 때처럼, 당장 기억나는 큼지막한 사건들 가운데 비록 그 말이 녹아 있는 예의 '좋게 보는' 사건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대충 그러한 시기에 들었던 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한서준은 이내 휘휘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 저런 말을 들었든, 이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지나갔기에, 다시는 거머쥘 수 없는 과거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과거는 온전히 과거로만 묻어둬야 진정한 과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권지아의 말처럼, 아직 정상적인 몸을 갖고 있던 시간을 그리워하며 과거를 꺼내보는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과거는 단지 과거이기에, 이미 일어나 버린 '현재'를 바꿀 수 있는 신비한 도구 같은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지난 날의 감각을 더듬어보는 건 무척 쓸데없는 일이었다.

"일단 지금 상황을 정리해 봐야 돼."

까닭에 지금도, 무작정 과거를 부정한다 해서 2016년 1월 2일 오후 2시 24분경. 몬스터의 소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맨해튼의 어딘가에 떨어져 버린 '현재'가 아주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내처 떨어지자마자 습격을 받은 일 또한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우린 습격을 받았어. 그렇지?"

때문에 그것을 무작정 부정한다기보다는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현재를 불러온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알맞은 미래를 준비해야 했다. 너무 과거에만 얽매여 시작도 끝도 없는 후회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근데 그 몬스터가 Juggernaut급이라 추정된단 말이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우린 이쪽으로 날려졌어. ···여기까진 동의하지?"

고로 금시의 담서은처럼, 과거로부터 비롯된 '현재'를 차근차근 정리하는 것 또한 아주 좋은 미래 지향적 방법이었다.

한서준은 담담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자 마저 고개를 끄덕인 담서은이 낭랑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린 일행과 흩어졌어. 결국 지금은 아저씨랑 나밖에 남질 않았지. 그리고 또 문제는···, 난 여기가 어딘지 잘 몰라. 별로 맨해튼에 들어온 적이 없거든. ···아저씨는···."

담서은이 모호하게 말을 끊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한서준의 '머리 가로젓기'라는 단호한 부정의 표시에, 담서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담서은이 살짝 멋쩍은 투로 말했다.

"그럴 것 같더라. 그러면··· 먼저 이곳이 어딘지부터 알아야 될 것 같아. 내 생각엔 일단 우리의 위치부터 알고, 원래 가기로 했던 장소로 가 보는 게 나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가만히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거야. 그래야 좀 더 살아날 확률이 높을 테니까. 그러면서 먹을 것도 좀 구하고. 쉴 장소도 마련해 놓는 게 좋겠지. ···어때? 꽤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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