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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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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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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5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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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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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39,628

작성
18.05.29 11:44
조회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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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6쪽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DUMMY

《놀랍네.》


이것만큼은 머릿속을 직접 관통하는 목소리였기 때문인지, 한서준은 놀랄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권지아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멍하니, 그저 백지만을 그려가던 정신이 삽시간에 번쩍하고 무너지며, 온통 새하얗기만 하던 세계의 일부에 다색의 빛이 스며들어 왔다.

그건 한서준에게 '생각'이란 축복을 안겨 주었다.


《이건··· 그래, 전쟁 때 얻은 부작용이지? ···예전에 봤어.》


그리고 그 생각대로, 한서준은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힘겹게 떼어 냈다. 나아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목발을 잡고 약속처럼 신경을 관통하는 육신의 고통을 무시하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여태까지의 경험상 움직이는 것보단 가만히 누워 있는 게 더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한서준은 그러지 않았다. 흡사 반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서준은 이를 악물고 꿈틀꿈틀 몸을 들썩였다.


《착각하고 있었구나. ···변이로 몸이 아주 튼튼해 졌으니까 그럴만도 하겠지만···, 변이는 단순히 변이야. 현재를 바꿀 수는 있어도 십 년 전의 부작용까지는··· 고칠 수 없지. ···당신의 오른쪽 다리와 눈이 그 예야. 변이가 되기 전에 일어난 몸의 현상은··· 변이로도 고칠 수 없지.》


단지 일어서는 것뿐이었기에, 동작은 간단했다.

한서준은 먼저 목발의 아래쪽 지지대를 잡고 똑바로 세워 땅을 짚었다. 비록 이 일을 행한 오른팔 전체에 마치 칼로 저미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한서준은 이를 무시했다.


《아마 잠복기 같은 거겠지. 하지만··· 그래. 이건 이렇게도 해석이 될 거야.》


한서준은 왼팔을 뻗어 자신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단단하게 땅을 짚은 목발에 고정된 오른팔은 마치 고목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왼팔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제 몸을 의탁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칼로 저미는 고통이 아닌 불로 지지는 듯한, 만약 고통에 높낮이가 있었다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 왼팔 여기저기를 광란의 고통이 들쑤셨다.

신경 하나하나가 선연하게 죽어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무시했다.


《변이가 끝났기에, 더이상 숨을 필요가 없다는 거지. ···물론, 내 생각이지만 말이야.》


한서준은 어쩐지 콧방귀를 뀌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하지만 저것이 아니라면 달리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지금은 멋대로 늘어놓는 권지아의 말에 반응이 가능한 남은 신경 또한 없었다.

그래서 한서준은 권지아의 말 또한 무시했다. 자의적이 아닌 타의적으로.

한서준은 빠르게 익어가는 왼팔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생선의 아가미처럼 쩍 벌어질 것만 같은 오른팔에도 힘을 주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상체가 물에 젖은 종이처럼 찢어졌다.

그런 생각이 덜컥하고 들 만큼,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멀그스름함과 간드러지는 감각이 온몸을 엄습해 왔다.

그와 더불어 더 이상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고통이 여지없이 닥쳐들었지만 그건 다른 곳에 비해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이 아니었다.

대신 내장 하나하나를 쥐어짜는 묘한 압박감과, 그런 압박감에서 비롯된 날카로운 통증이 순식간에 내부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상체를 일으킴으로써 자연스레 딸려온 왼쪽 다리에서의 통증 또한 결코 나머지 부분에 못지 않았지만, 이건 이미 오른팔과 왼팔에서 겪은 아픔이었다. 참지 못할 것도 없었다.

때문에 한서준은 이것 역시 무시했다.

또 "변이는···"이란 단어로 말을 시작하는 권지아의 말마저 아무렇게나 흩어지도록 놔두고, 그는 높아진 시야만큼이나 오른팔을 잡고 있던 왼팔을 추켜올려 이번엔 지지대가 아닌 중간에 위치한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양 왼팔이 고통에 삼켜졌다. 다시 기다렸다는 양 오른팔이 거슬러 올라와 마찬가지로 왼팔의 손목을 콱 틀어쥐었다.

한서준은 이어 오른팔과 왼팔에 가득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 번 거쳐간 고통으로 인해 거의 망신창이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육신에 새로운 고통을 덧바르며, 수많은 감각들로 점철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렇게 권장할 만한 행동은 아닌데···.》


권지아의 말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지만, 이젠 아까처럼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 이 공간 안에 권지아의 말은 슬그머니 잡아먹히기 시작했다.

기어이 전신 수축이 진행 중인 몸을 일으켜 세운 한서준이 목발의 어깨받침에 오른팔을 얹어 단단하게 몸을 고정했다. 물론 자꾸만 말려들어 가는 손가락이나 역방향으로 꺾이는 관절이 새로운 문제로 다가오긴 했지만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고통과 등가교환을 하면 됐다.

힘을 주어 억지로 그것을 막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온몸을 찌르는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신경 하나하나를 건드리는 통증의 수준은 이미 변이된 몸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까마득하게 넘어선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마냥 누워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더욱이 머리가 접근하기를 거부하는 장소 바로 앞이었음에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신 수축을 기다린답시고 무작정 누워 있는 건 오히려 위험한 선택이었다.

때문에 한서준은 무리해서라도 움직이는 걸 선택했다.

"···가자."

그렇게 말하며, 아니, 순수히 그렇게 말했다란 느낌을 받으며, 한서준은 담서은의 입에서 쉴 새 없이 튀어 나오는 바람소리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채 휘청휘청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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