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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Messo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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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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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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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39,628

작성
18.05.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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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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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맨해튼, 그 다음의 목적지.

DUMMY

"준비해라."

그 말에, 마지막 단추를 신중하게 끼워 맞추던 담서은이 눈을 반짝이며 한서준을 올려다보았다.

"드디어?"

대답은 짧았지만, 그 의미만큼은 확실했다.

한서준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갈 시간이다. 너무 많이··· 시간을 지체했군."

한서준은 이어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남은 통조림을 마찬가지로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배낭 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그런 뒤 낡은 지도 또한 반듯하게 접어 배낭의 옆 주머니에 넣어둔 한서준은 다시 몸을 돌려 뜨끈한 열기가 피어 오르는 장소, 무너진 벽이 오히려 그곳의 출입구가 된 일명 '난로방'에 들어갔다.

그리곤 기다란 빔과 함께 벽에 꽂혀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거대한 불덩이를 향해 익숙하게 총을 들어 올렸다. 그런 뒤 비록 팔과 다리는 없지만, 머리는 온전히 남아 있는 불덩어리 몬스터에게 M16 소총의 총구를 겨누었다.

한서준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거대한 불덩이의 이마를 향해 조금의 고민도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쾅!

어김없이 사방을 울리는 단 한 발의 총성이 머릿속을 진하게 흔들었다. 동시에 그 격한 운동 에너지를 고스란히 받게 된 불덩어리의 머리통이 거칠게 뜯겨지며, 마치 작은 유성우 같은 불똥을 사방으로 튀겨 내었다.

그러나 한서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법 굵직한 불똥이 기어이 옷에 구멍을 뚫고 내려와 살갗을 익히기 시작했음에도, 한서준은 신음 하나 흘려 내지 않았다. 여전히 총구를 몬스터에게 고정한 채, 이젠 머리마저 잃어 버린 불덩어리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과는 달리 불덩어리는 시시각각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종국엔 새카맣게 탄 제 주인의 육체만을 덩그러니 토해 내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혹시'라는 생각이 만들어 낸 경계심에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코웃음을 치듯, 별 다른 이변 없이 꺼진 것이다.

총을 거둔 한서준은 감흥 없이 몸을 돌렸다.

난로가 사라짐에 따라 그동안의 울분을 표출하겠다는 양, 겨울철의 차가운 공기가 삽시간에 밀려 들어왔지만, 한서준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함에 중독되어 무언가에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던 몸 이곳저곳이 깨끗하고 날카롭게 깨어 나는 기분이었기에, 한서준은 양팔을 두 손으로 감싼 담서은과는 달리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한서준은 망설임 없이 창문을 통해 나갔다. 물론 목발과 총, 그리고 배낭을 짊어진 상태로 허리만큼 올라오는 창문을 넘는 일은 꽤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한서준은 간단하고 창문을 넘을 수 있었다.

목발로 먼저 창문 너머의 땅을 찍고, 오직 팔의 힘만으로 몸을 비롯한 모든 부속품들을 공중에 들어올려 그대로 창문을 넘어간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역시 서커스해도 잘 될 것 같아."

담서은이 순간 그렇게 중얼거릴 정도로, 한서준의 행동은 확실히 묘기나 다름이 없었다.

한서준은 다시 거침없이 목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일직선으로 이어진 사잇길을 지나자, 아까 전 보았던 거대한 철덩어리가 수두룩하게 깔린 도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더불어 도로라고 부르기도 모호한 비틀린 콘크리트와 온갖 쓰레기들이 고여 있는 구덩이, 무너진 건물들이 총 세 개의 눈동자 속에 들어왔지만, 한서준은 물론 담서은도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들을 피해 걸었다.

"오른쪽만 따라가면 돼."

문득 담서은이 입을 열고 말했다. 언제 꺼내든 것인지 담서은의 두 손엔 어느새 낡은 지도가 들려 있었다.

담서은은 거의 얼굴을 파묻다시피 하며 지도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그래도 제법 거리가 좁혀지긴 했어. 이대로만 간다면 40분 정도 걸릴 거야. ···또 방해가 들어오면 하루가 연장되겠지만."

한서준은 그저께의 일을 떠올렸다.

뭔가 자잘하게 깔린 기억들 사이에서도 오롯이 존재하는 거대한 불덩어리. 딱히 명칭 같은 건 없었다.

허나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갑작스런 공격을 날린 이 몬스터 덕에 한서준과 담서은은 거의 이틀이나 이곳에 체류를 해야 했다.

마치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하늘 높이 쏘아 올려진 불덩이를 시작으로 순간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담서은의 능력으로 당장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한 번 모인 몬스터들은 꼭 접착제가 발려진 것처런 흩어질 줄을 몰랐다. 빙 둘러싼 상태로, 몬스터들은 한서준과 담서은을 압박했다. 헌데 그완 반대로 몬스터들의 처리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담서은의 능력과, 일단 던지기만 하면 그 주변 일대는 깨끗이 날라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열 수류탄 일곱 알 덕분에, 몬스터들은 빠르게 한 자리에 모인 것처럼 아주 빠르게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한순간에,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수천 개의 파편으로 화해 날아간 것이었다. 이는 담서은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물론 불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달리 인간들의 도주로를 막기 위해 빼곡하게 틈을 채우고 있던 몬스터들의 작전 아닌 작전도 몰살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 다음은 간단했다.

살아 남은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것. 그리고 혹시 모를 2차적인 공격에 대비해 안전하게 몸을 숨기는 것.

그 와중에 아직 살아 있는 불덩어리를 발견하고 빔에 꽂아 가져온 게 '난로방'의 시작이었다.

비록 이틀 동안 방문한 손님이 겨우 두 명밖에 되지 않았기에 바로 폐쇄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 난리가 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는 거 보면 여긴 이제 싹 정리된 것 같아.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겠는데?"

담서은이 제법 희망찬 어조로 말했다. 한서준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또다시 나타난 거대한 쇳덩이를 빙 돌아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번엔 뒤틀리고 지저분한 콘크리트 도로가 아닌 깨끗하게 쭉 뻗은 도로가 눈앞에 나타났다.

여전히 시야 곳곳에 빈틈없이 세워져 있는 건물들은 한 발자국 뒤와 물론 변함이 없었지만, 한서준은 어쩐지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우뚝 멈춰섰다.

"응? 왜 그래?"

언젠가, 느껴본 적이 감각이 순간 온몸을 가로질렀다. 묘한 섬뜩함이 사지로 퍼져 나갔다. 더불어 엄청난 갈증이 밀려왔다. 뒷통수는 마치 상처라도 난 것처럼 근질근질거렸고, 분명 변이가 됨으로써 나았다고 생각한 저릿저릿함이 갑자기 오른쪽 신체를 뒤덮었다.

느닷없이 바닥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한서준은 미처 의아해 할 시간도 없이 본능적으로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탁.

손바닥을 쿡하고 찌르는 간지러움 같은 통증이 미약하게나마 뇌를 건드리며 번져 나갔다. 동시에 바닥과 맞닿은 두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흡사 얼음을 쥐고 있는 것처럼 손바닥 전체를 얼얼하게 맴돌았지만, 천연 그 안에 갇힌 듯, 그건 감히 팔뚝을 타고 올라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서준은 이 급작스런 상황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하지를 못했다.

오른쪽 신체를 찔러오는 익숙하지만 결코 무뎌지지 않은 끔찍한 통증. 이 과거의 통증이 뇌를 장악했기에, 한서준은 마음대로 신체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한서준은 땅을 짚은 자세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이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머리는 경고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러니까 대구에 있었을 때처럼, 머리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 경고하고 있었다.

또 목마름과 호흡이 대체 무슨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바짝바짝 타들어가던 목은 언제부턴가 가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싸아아악' 괴상한 소리를 입력하던 머릿속도 이젠 시끄러운 적색 경고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며, 오른쪽 신체를 점령한 고통은 이제 왼쪽마저도 슬슬 넘보기 시작했다.

지네가 기어온다.

그렇게 느껴지는 간지러움과 혐오감이 순식간에 왼쪽을 뒤덮었다. 동시에 왼쪽에 둘러진 수억 마리의 지네가 일제히 살을 비틀어 뜯듯,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왼쪽에서부터 부화했다.

때문에 한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지금의 상황을 지켜만 봐야 했다.

무어라 말하는 담서은의 목소리가 아른아른 귓가에 흘러들어 왔지만, 그건 채 뇌를 거치기도 전에 갈가리 찢겨져 버렸다. 고통이란 분쇄기를 통과한 탓인지, 유일하게 인지할 수 있는 소리는 '아'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그리고 이건 세상의 모든 소리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의 두근거림만은 달랐다. 마치 바깥에 튀어 나온 게 아닐까 싶을 만치 심장은 커다랗게 들썩이며 뇌를 장악했다.

더욱이 손바닥 전체에서 느껴지는 냉기로 인해 조금이나마 감지가 되던 손가락의 감각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었고, 하나뿐인 눈은 자꾸만 흐려지며 '보기'를 거부했다. 또 심장에게 정복당한 뇌는 아예 고장이 났다 해도 과언이 아닐 새하얀 세계를 무한히 펼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는, 나아가 그 어떤 것도 간섭을 할 수 없는 절대적인 백색의 공간을 오직 고통의 지배하에,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예전과 같았다. 아니, 오히려 예전이라 칭해도 좋을 과거의 일이었기에 더욱더 끔찍하게만 여겨졌다. 더구나 지금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육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몸을 가누는 건 여전히 불가능했다. 살짝만 움직여도 이성이 날아갈 듯한 엄청난 고통이 파도처럼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까닭에 그저 이전처럼, 이 지옥 같은 고통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바위처럼 굳어 있어야 됐다. 막연히 인내해야 된다는 것이다.

'전신 수축'의 고통은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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