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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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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우각
작품등록일 :
2009.03.25 19:55
최근연재일 :
2009.01.1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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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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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90

작성
09.01.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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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혈루검-2

DUMMY

“이건 위험해.”

예운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 역시 집단의 광기를 느끼고 있었다. 한청이 등장한 시기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광기는 그가 움직이자 본격적으로 발산되기 시작했다. 한번 번지기 시작한 광기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일대로 번져가고 있었다.

한청을 아는 자들은 누구나 그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만큼 그를 증오한다. 워낙 그의 손속이 잔혹해 한번이라도 그와 겨룬 자들은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상대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한다는 별호가 붙었겠는가?

한청과 원한관계를 맺은 자들은 수없이 많다. 상유촌에 들어온 무인들 중 그와 원한이 있는 자가 한두 명쯤 있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로 인해 잔잔하던 수면이 파문을 일으키며 요동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청과의 격돌은 이제까지 관망하고 있던 다른 무인들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둑이 터진 것처럼 한번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봇물은 바닥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이 그와 같았다.

“마치 누군가 이런 상황을 의도한 것처럼 너무나 갑작스럽고,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건 좋지 않아.”

예운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중에도 다른 무인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무인들은 냉정하게 판단하고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뒤에 합류한 무인들은 무작정 앞만 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예운향의 뒤에 조용히 서있던 삼십대 초반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당분간 지켜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관망을 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러다 금장혈괴를 빼앗긴다면 아가씨의 처지가 곤란해질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관망하시겠다는 겁니까?”

“때로는 남들보다 느리게 움직일 필요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목노야의 집에 인원을 더 투입하세요.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목노야에게 접근해 강제로 채굴권을 얻으려고 시도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가씨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예운향의 뜻이 너무나 확고하자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조용히 물러나 기묘한 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예운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혈리백검(血鯉白劍) 관지경. 그것이 사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는 본래 남천련주 남황의 직속조직중 하나인 흑풍대(黑風隊)의 대주였다. 남황은 관지경과 흑풍대에게 예운향의 호위를 맡겼다. 평소 위험한 임무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흑풍대를 동원했다는 것은 그만큼 막내제자인 예운향을 아끼고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관지경은 칙칙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예운향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큭! 좌수검을 익혔던가?”

당천위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방금전 그는 분명히 보았다.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한청이 왼손으로 눈부신 쾌검을 펼치던 광경을. 과연 자신이었다면 그의 쾌검을 막을 수 있었을까?

덜덜!

당천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좀 전부터 시작된 떨림이 아직까지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방금 전 한청이 보여줬던 일수는 강렬했다. 마치 자신의 미간이 꿰뚫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당천위 역시 무인이었다. 더구나 그는 예전 한청의 무위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성기 시절의 한청은 실로 두려울 만큼 강력한 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역시 호랑이였던가? 발톱이 빠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다른 발톱을 갈아두고 있었단 뜻이군.”

그의 입술주위 근육이 기묘하게 뒤틀렸다.

이제야 겨우 손의 떨림이 멎고 있었다. 그제야 심적인 안정이 찾아왔다.

당천위가 한청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청등산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당천위는 청등산에 목노야의 광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후후! 좋아, 인정하지. 당신도 무인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좌수검을 익혔는지 모르지만, 이미 십년의 세월이 흘렀어. 당신이 활동하던 시절의 강호가 아니란 말이지.”

한청이 천하오수의 일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당천위는 천하오수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한청은 천하오수에 밀려났고, 당천위는 새로이 천하오수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 자존심이 쉽게 한청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월아(月牙).”

“옛!”

당천위의 부름에 한쪽에 조용히 서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눈부신 백포로 전신을 가린 남자였다. 얼굴을 가린 백포사이로 두 눈만이 드러나 있었다.

“방금 전 달아난 계집을 잡아오도록.”

“알겠습니다.”

“후후! 멍청한 것들이야. 여전히 그 계집은 효용가치가 있지. 그 계집을 확보하면 목노야를 움직일 수 있고, 목노야에게서 광산 채굴권을 넘겨받으면 명분을 확보하게 된다. 최후의 최후에는 그런 명분을 갖춘 자가 결국 승리하게 된다. 단지 지금 이곳에 있는 멍청한 군중들은 단지 눈앞의 한청에 홀려 그런 사실을 미처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계집을 나에게 데려오도록.”

“알겠습니다.”

월아가 조용히 물러났다. 그의 등 뒤로 다섯 명의 사내가 따라붙었다. 모두 월아의 수하들이었다. 계집 하나를 잡기 위해 여섯 명이나 움직이는 것은 무척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당천위는 그들 모두를 움직였다.

월아가 수하들과 함께 사라지자 당천위가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여볼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청등산 어귀였다.


* * *


목경화가 백수경의 집안으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가가!”

“무슨 일이냐?”

잠에서 깬 백수경이 방문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리둥절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목경화는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가, 큰일 났어요. 어서 환 오라버니의 집으로 가야해요.”

“무슨 일이냐?”

“그, 그게…….”

목경화는 숨을 고르며 자초지정을 백수경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백수경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서둘러 옷을 차려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한청형님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냐?”

“네! 하지만 모든 게 나 때문이에요. 한청 오라버니가 나보고 그랬어요. 환 오라버니의 집으로 가는 게 최선이라고.”

“한청 형님이 그렇게 말했으면 그렇겠지.”

“모두 나 때문이에요. 나만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목경화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책했다.

“그게 어찌 너만의 탓이겠느냐? 자책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우선 몸을 피하자꾸나. 네 말대로 사태가 그리됐다면 여기도 안전하지 않을 테니.”

“네!”

목경화가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대답했다. 백수경은 더 이상 목경화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자책하고 있는데, 더 이상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마당에 나있는 나무에서 나뭇가지 몇 개를 꺾어 바닥에 꽂았다.

“뭐하시는 거예요?”

“몇 해 전 우연히 기문진서(奇門陣書)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곳에 기본적인 진법(陣法)을 펼치는 방법이 써 있었는데, 무척이나 인상이 깊어 탐독한 적이 있다. 그곳에 환영미로진(幻影迷路陣)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다 펼치려고 한다.”

“왜요?”

“혹시 널 따라온 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따라온 사람은 없는데요. 아소와 장씨 아저씨를 집에다 데려다주고 바로 이곳으로 왔어요.”

“무림인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자들이다. 만일을 대비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구나.”

그는 목경화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꺾은 나뭇가지를 바닥에 꽂았다. 일견 무질서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꽂힌 것 같았지만, 기실 그 안에는 엄격한 법칙이 존재하고 있었다.

푹!

마지막 나뭇가지를 바닥에 꽂자 갑자기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백수경의 집은 안개로 둘러싸였다. 한참 뿌옇게 일어났던 안개는 곧 투명하게 변하며 눈에 보이지 않게 됐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안개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자꾸나. 우선은 이곳을 피하는 것이 급선무니까.”

하지만 대답하는 백수경의 얼굴에도 당황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사실 진법을 펼치는 것은 그 역시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지 책에 적혀있던 대로 따라한 것인데 이런 기이한 일이 일어나다니.

백수경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지 아직 인식하지 못했다. 세상에 수많은 책들이 있고, 그중에 진법에 관한 책들이 적지 않았지만, 진법을 펼칠 수 있는 자가 극소수인 것은 그만큼 어려운 학문이기 때문이다.

우선 천문에 능통해야하고, 지세를 읽을 수 있고,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임기응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약간의 계산착오만으로도 진법이 발동되지 않거나, 엉뚱한 쪽으로 발현될 수도 있기에 학문에 능통한 자들은 많으나, 진법에 능통한 자는 거의 없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백수경은 예전에 한번 보았던 책을 바탕으로 단숨에 진법을 펼쳤다. 그것이 비록 초보적인 미로진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백수경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지 아직까지 알지 못했다.

백수경이 목경화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환 형님의 집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빨리 가자꾸나.”

“네!”

목까지 붉어진 얼굴로 목경화가 대답했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 백수경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목경화의 손을 잡아끌고는 어둠속으로 달려갔다.


월아는 무서운 속도로 목경화의 흔적을 추적했다.

지금 그의 얼굴에는 살기와 당황한 빛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처음 목경화를 추적할 때만 하더라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인근의 모옥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것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마음 놓고 들어간 집안에는 뜻밖에 미로진이 펼쳐져 있었고, 때문에 그와 수하들은 족히 반 시진은 미로진에서 헤매야 했다. 다행히 진법 자체가 살상력이 없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수하들 중 두세 명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반 시진을 미로에서 헤맨 그는 결국 미로진을 파훼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엄청난 고생을 했기에 목경화를 잡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월아의 수하들 역시 낭패를 경험한 직후 눈에 은은한 살기를 띄고 있었다. 말은 안했지만 그들의 심정 역시 월아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목경화와의 거리를 줄여나갔다. 비록 반시진이라는 시간을 하릴없이 소모했지만, 애초부터 무공을 극성으로 익힌 그들과 목경화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었다. 제 아무리 목경화가 열심이 뛸지라도 경공술을 익힌 월아 일행을 따돌릴 수 없었다. 게다가 거리 곳곳에 그녀가 움직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월아는 어렵지 않게 목경화의 지척까지 추적해올 수 있었다.

목경화의 흔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말은 안 해도 그녀가 인근에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청로호 남쪽인가? 이곳에 무엇이 있기에 그토록 사력을 다해 달리는 것인가?’

무공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벌써 반 시진을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렸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벌써 탈진해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목경화의 발자국을 보면 이 근처에 오면서 오히려 힘을 얻은 듯 더욱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월아의 상식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청로호 남쪽에 다가갈수록 발밑에서 기이한 열기가 느껴졌다. 후끈하지는 않았지만 초겨울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뜨거운 기운이었다.

“도대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금장혈괴라는 미지의 금속에 한청이라는 고수, 그리고 진법을 펼치는 정체불명의 문사와 기이한 열기가 느껴지는 대지까지. 월아의 상식 어디에도 이런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청로호 한쪽에 덩그러니 홀로 서있는 모옥이 들어왔다. 발자국의 흔적이 모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인가? 그토록 애를 쓰며 달려간 곳이. 내 결단코 말하지만 이토록 고생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것이다.”






* * *




요즘 주위에 일이 많네요...여러분들도 한번쯤은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세요.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2

  • 작성자
    백수건달
    작성일
    09.02.08 21:50
    No. 61

    백수경= 십야의 조사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라이칸
    작성일
    09.02.13 20:49
    No. 62

    환영미로진을 보니 분명히 탑인듯.... 탑이라고 해줘용~~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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