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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 님의 서재입니다.

환영무인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우각
작품등록일 :
2009.03.25 19:55
최근연재일 :
2009.01.1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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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1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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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상유촌-3

DUMMY

가죽 자루를 한가득 채우고 돌아오는 환사영의 눈에 골목길에 멍하니 앉아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겨우 다서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환사영도 익히 아는 소년이었다. 환사영은 소년의 곁에 가서 조용히 쭈그리고 앉았다. 그래도 소년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또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냐?”

“네!”

“아직 돌아오시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달리 할일도 없으니까요.”

소년의 말에 환사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유촌은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마을이었다. 주민 수 불과 삼백 명, 그중에 소년의 또래가 몇 명이나 있을까? 있다고 하더라도 소년과 나이차이가 나는 아이들뿐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늘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소년의 이름은 아소였다. 아소의 아버지는 목노야의 광산에서 일하는 인부였고, 어머니는 그가 더 어렸을 때 열병으로 돌아가셨다. 때문에 아소는 항상 이곳에서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수경이는?”

“선생님은 조금 있다 온다고 했어요.”

“공부는 잘돼?”

“헤헤!”

환사영의 말에 아소가 혀를 빼고 웃었다. 그런 아소의 머리를 환사영이 살짝 쥐어박았다.

“인석아. 수경이가 가르쳐줄 때 열심히 공부해.”

“그래도 공부는 너무 어려워요.”

아소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환사영이 말하는 백수경은 상유촌에서 유일하게 글을 가르치는 글 선생이었다. 이제 겨우 이십대 초반의 그는 수많은 책들을 잃었고, 여러 가지 시문에 능통해 인근의 유력가들이 앞 다퉈 글 선생으로 초빙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백수경은 상유촌을 벗어나지 않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리켰다.

아소 역시 백수경의 제자 중 하나였다. 다른 아이들 대부분이 백수경의 수업에 빠지지 않았지만, 아소만큼은 아비에 대한 정이 유별난지 이렇게 몰래 빠져나오기 일쑤였다. 아마 잠시 후면 백수경이 아소를 찾으러 올 것이다.

“아소야, 여기 있었구나.”

아니나 다를까? 불과 반각이 채 가기도 전에 낯익은 목소리가 아소를 불렀다.

“선생님.”

“또 여기 있었더냐? 형님도 여기 계셨군요.”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는 해맑은 표정의 남자. 이십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지닌바 학식이 이미 일반적인 석학들을 뛰어넘었다는 남자가 눈앞의 백수경이었다.

환사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지치지도 않나 보구나. 매일 이 녀석을 찾아다니고.”

“후후! 아소가 갈만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 오면 찾을 수 있는데요. 아소, 너는 어서 내 집으로 가 있거라.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예!”

아소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지만, 백수경이 직접 찾아왔는데 자기 고집만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아소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소는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 백수경의 집으로 뛰어갔다. 그런 아소의 뒷모습을 보며 환사영이 몸을 일으켰다.

“형님이 나오신 것을 보니 또 먹을거리가 떨어지신 것 같습니다.”

“후후! 좀 걷자꾸나. 저 녀석 때문에 이제까지 쪼그리고 앉아있었더니 다리가 아프구나.”

“예!”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음을 옮겼다.

한 사람은 갈의를 입고 있었고, 다른 한사람은 눈부시게 하얀 백의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모습은 묘하게 어울렸다.

백수경은 환사영이 이곳 상유촌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지내는 사람이었다. 처음 그가 상유촌에 정착했을 때 제일먼저 다가온 사람이기도 했다.

마치 백지와 같은 천성을 지녀서 절대 남을 의심하지 못하는 사람. 지닌바 학식이 하늘을 찌를 정도지만, 결코 야망을 갖지 않는 남자. 그래서 그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상유촌에서만 칩거했다. 하지만 환사영은 언제까지고 이런 시간이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능력 있는 자는 언제고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세상의 패권을 차지하기위해 움직이는 유력자들은 학식이 있는 학자를 영입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학자들 역시 유력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자신들의 뜻을 펼치는 것을 꿈으로 여기는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아직까지 백수경이 제대로 된 주군을 만나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상유촌에서 유일한 대로를 거닐었다. 거리를 오가는 동안 만난 사람들이 분분히 눈인사를 해왔다. 평소 말을 섞지 않던 사람들도 일단 얼굴을 마주하면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세상이 각박하게 변했지만, 이곳 상유촌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은 고되지만 그들은 하루하루에 만족할 줄 알았고, 자신들과 함께 터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았다. 아직까지 함께하는 정이 존재하는 마을이 바로 상유촌이었다.

백수경이 입을 열었다.

“참으로 정이 가는 마을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아직까지 저는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목노야만 빼면 대부분이 순박한 사람들이지.”

“후후! 비록 목노야가 욕심이 많다지만, 그릇이 작고, 그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지요. 어쨌거나 그가 있음으로 해서 철광석이 팔려나가고, 외부와 한 가닥 통로가 유지되니까요.”

“그것도 그렇구나.”

환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목노야가 눈에 거슬린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속이 좁다뿐이지 크게 잘못하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욕심 많은 유지들에 비하면 괜찮은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목노야 때문에 네가 상유촌에 머무는 것은 아닐 테고, 언제 밖으로 나갈 생각이냐?”

“저는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습니다.”

“네 생각은 그렇겠지. 하지만 언제고 너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은 결코 너처럼 능력 있는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으니까.”

“하하하! 형님이야말로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실 생각입니까? 형님이야말로 이곳 상유촌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형님이 처음 이곳으로 들어오던 날을. 그때의 형님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악귀를 보는 것 같았지요.”

“그랬더냐?”

“육년이나 지났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백수경은 육년 전의 환사영을 떠올렸다. 그때 환사영은 죽은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봤던 몇몇 사람은 아직까지 두려움이란 기억이 남아 환사영을 피하기도 했다.

백수경은 시간이 참으로 신비하다고 생각했다. 육년 전 그토록 거칠던 남자의 얼굴은 이제 부드럽게 변했고, 살기가 넘치던 눈빛은 유순해졌다. 누가 이 남자를 보고 육년 전의 그를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랬던가?”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육년 전의 일입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외지에 나가있다는 형에게서는 연락이 있느냐?”

“후후! 요즘 꽤 바쁜 모양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강호라는 곳에서 꽤 명성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이곳에 오실 틈이나 있겠습니까?”

말을 하는 백수경의 눈에는 한줄기 그리움이 떠올라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형이 보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아직 환사영은 백수경의 형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한청이 말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는 법이고, 그런 사연을 깊이 파고들만큼 그는 모진 성격이 아니었다. 말을 할 시기가 되면 굳이 채근하지 않아도 알려주리라.

“그래도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이곳에 동생인 네가 있으니까.”

“그러길 바라야죠.”

“참! 요즘 경화와는 어떻게 되어 가느냐? 풍문에 의하면 좋은 소식이 곧 있을 것 같다고 하는데.”

“형님도 참.”

백수경이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환사영은 미소를 지었다. 백수경의 순수한 모습은 그에게 오래 전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친구와 백수경의 모습은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렇다고 운명까지 닮으면 안 될 텐데. 아니겠지. 이 녀석은 그와는 또 다른 부분이 있으니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절대 그렇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환사영은 백수경이 지금의 순수한 모습을 오래도록 유지해주길 빌었다. 세상에 나가 온갖 풍파에 물든다고 해도 말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길 때 대로 한쪽에서 변고가 일어났다.

“비켜라, 비켜!”

갑자기 거친 고함소리와 함께 마차가 나타났다. 마부는 연신 채찍질을 하며 마차를 거칠게 몰랐다. 그로 인해 대로를 거닐던 사람들이 분분히 옆으로 비켜났다. 환사영 또한 미간을 찌푸리며 백수경과 함께 한쪽 옆으로 물러섰다. 그들이 열어준 길 위로 마차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무슨 일일까요? 마차에 탄 사람은 목노야 같던데.”

“그러게 말이다.”

“저쪽은 목노야의 광산이 있는 곳 아닌가요?”

백수경의 눈에 의혹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환사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또 목노야의 변덕이 도진 모양이구나. 별 신경 쓸 일이야 있겠느냐. 이제 너도 들어가 봐야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예! 형님도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자주 좀 나오세요. 얼굴 좀 보고 살게.”

“그래!”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백수경을 먼저 보내고 돌아오는 환사영이 조금 전에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별일이야 있겠는가?”






* * *





환영무인은 여러 분께서 궁금해하시는 것처럼 십전제 전대의 이야기입니다. 열개의 땅(十地)에서 열명의 신(神)과 마(魔)가 할거하는 시대. 그 시대를 기록한 것이 십지신마록입니다. 그리고 환영무인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들은 후대에 펼쳐질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대문에 써진 것처럼 모든 일들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제가 십지신마록입니다.

환영무인은 일영과 일마, 그리고 십지의 신마들의 이야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천우진이 익힌 십야마경의 원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언급이 될 겁니다.

그리고 훗날 쓰게 될 십지신마록 삼부에서는 십전제의 뒷이야기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환영무인이 끝나는 대로 십지신마록 삼부를 곧장 쓸 예정입니다. 그러고 보면 2009년도 쉴 틈이 없겠군요. 앞으로도 많은 애정과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밤이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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