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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
작품등록일 :
2009.03.25 19:55
최근연재일 :
2009.01.16 18:31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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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429
추천수 :
198
글자수 :
95,390

작성
08.12.10 17:51
조회
23,083
추천
17
글자
7쪽

서-

DUMMY

“왜?”

소녀는 그렇게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눈앞에 있는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얼굴은 물론이요, 몸 어느 한구석 피로 물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자신의 피보다 상대의 피로 목욕을 한 사내, 그 모습이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사내의 눈동자는 깨지기 직전의 유리구슬처럼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소녀의 시선이 사내의 가슴으로 향했다. 그러자 가로로 길게 베인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깊어 하얀 뼈마저 드러나 보이는 상처. 그런 상처를 입고도 사내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상처 입은 야수의 울음처럼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의 갈라진 성대를 통해 흘러나왔다.

“미안하다.”

단지 한마디뿐이었다. 아무런 수식어도 없이 미안하단 말뿐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단번에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래도 그녀의 얼굴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증오와 분노, 그리고 슬픔이 한데 어우러진 눈으로 그녀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 그의 코, 그의 입과 얼굴선까지 그녀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절대 잊지 않기 위해.

사내는 소녀의 눈빛을 담아두었다. 그녀의 눈에 자신의 모습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귀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가 감당해내야 할 몫이었다.

사내가 벽장문을 닫으며 말했다.

“하루가 지난 후에 나오거라.”

“당신의 이름은?”

“환……사영.”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내 이름을 잊지 마요. 내 이름은…….”

쿵!

마침내 벽장문이 닫히며 어둠만이 소녀를 휘감았다. 소녀는 양팔을 둘러 자신의 무릎을 껴안았다. 그렇게 잔뜩 몸을 움츠린 채로 중얼거렸다.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어둠속 그녀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내는 걸음을 옮겼다. 주위의 모든 것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던 전각군도, 화려하게 가꿔졌던 가산도 모두 불타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화마가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거세게 불타오르는 화마 앞에 현판의 대부분이 타버리고 마침내 검은 재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푸스스!

사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붉은 재가 부서져 바람에 흩날렸다. 타오르는 재속에 고통의 표정으로 숨져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옥의 한 부분을 그대로 세상에 옮겨다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웃고 떠들던 한 가문이 이렇게 철저하게 몰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몇 시진에 불과했다. 웃음과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진 가문을 화마가 집어삼키고 있었다.

사내가 향한 곳에 그들이 있었다. 검붉은 갑주로 전신을 무장한 백오십여명의 사내들. 그들은 불타오르는 건물로 둘러싸인 대연무장에 한데 모여 있었다. 주위에서 격렬하게 화염이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 곁에는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는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점점 커져만 가는 그의 기세에 사내들이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단 한 명뿐이었지만 사내의 기세는 백 명이 넘는 사내들의 기세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내의 등장에 긴장을 한 것은 백 명이 넘는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사내의 눈에 담겨있는 분노를 보았다. 그의 분노는 결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와라, 운천.”

후웅!

사내의 목소리에 휩쓸린 화마가 금방이라도 꺼질듯 위태하게 요동쳤다. 그러자 백 명이 넘는 사내들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은 사내의 반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지 못해 초조해했다. 그때 사내들 틈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처럼 하얀색의 경장에 새하얀 영웅건을 걸친 인물, 누구보다 선량하게 생긴 얼굴과 부드러운 눈매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의 모습은 검붉은 피풍의를 걸친 사내의 모습과 확연한 대조를 이뤘다. 그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이 모든 일 네가 꾸민 것이냐?”

“그게 무슨 말인가?”

“그걸 몰라서 묻는 것이냐? 이곳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곳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그 누구도 우리의 나라에 한 발짝도 들여놓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무엇 때문이냐? 무엇 때문에 이들을 고른 것이냐?”

“그것 때문에 화난 것인가? 하지만 자네의 생각은 잘못 되었다네. 이들은 결코 착한 사람들도 아니고, 무엇보다 우리의 나라를 무너트린 자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라네. 비록 이들은 모르고 한일이지만, 이들의 자금 중 일부가 그들에게 흘러들어갔다네. 그들은 비록 아무것도 모르고 한일이겠지만, 그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죄라네. 친구.”

“운ㅡ천!”

사내의 노성이 다시 한 번 화마 속에 울려 퍼졌다.

피로 온통 물든 채 분노를 토해내는 그의 모습은 차마 꿈에서조차 보기 두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운천이라 불린 사내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이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화내지 말게, 친구. 어떤 때의 자네는 너무 고지식해서 가끔 융통성이 필요하다네. 그리고 잊었는가? 그날의 기억을. 우리는 가족들을 모두 잃었네. 여기 있는 우리만이 자네의 가족이고 형제일세.”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운천. 이것은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할 텐가? 설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을 모두 자네 손으로 죽이기라고 할 텐가?”

운천이라 불린 사내가 양팔을 활짝 벌렸다. 그의 주위에는 백오십 명에 이르는 사내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사내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였다.

사내의 눈이 그들 하나하나를 훑고 지나갔다. 어떤 이는 형으로 불렀고, 어떤 이는 자신의 친동생처럼 여겼다. 그리고 어떤 이는 동료로, 친구로, 그렇게 지내왔다. 그런 이들이 모두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사내에게 결단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런 사내들의 시선을 안고 운천이 말했다.

“결정하게.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복수는 이미 끝이 났다. 그날의 참사에 관계한 모든 자들에게 우리는 복수했다. 그런데도 더 이상의 피를 봐야하는가?”

“자네에겐 끝났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아니 우리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네.”

“기어이 끝을 보겠단 것인가?”

“그러지 않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걸세. 자네가 결정하게. 어떻게 할 것인가?”

“운천.”

“자네의 결정만 남았음이야. 다른 이들은 모두 나를 따르기로 했네.”

사내들이 하나둘 운천의 뒤로 몰려들었다. 삼백여개의 눈이 사내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내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사내는 야공을 올려다봤다. 화마가 내뿜는 시커먼 연기에 가려 온통 어둡게만 보이는 하늘에는 그 어떤 길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 * *



일단 시작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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