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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
작품등록일 :
2009.03.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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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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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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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들-1

DUMMY

목노야가 장씨를 비롯한 인부들을 닦달하고 돌아간 이후에도 금장혈괴를 채굴하는 작업은 한참동안 진행되었다. 하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금장혈괴는 발견되지 않았다. 목노야는 더더욱 인부들을 채근했다. 하지만 연일 고된 객장 일에 지친 인부들은 반쯤은 금장혈괴를 채굴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굳이 금장혈괴를 채굴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철광석을 케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니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지지부지 흘러가고, 처음의 의도와 달리 금장혈괴를 찾는 작업은 한없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목노야도 금장혈괴에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리 애를 태우면 뭘 하는가? 아무리 땅을 파도 나오질 않는데.

금장혈괴는 한때의 소동으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더 이상 상유촌 사람들은 금장혈괴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에겐 금장혈괴보다 일상의 소소한 일이 더욱 소중했기 때문이다.

결국 목노야도 금장혈괴를 체념했다. 대신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자신의 생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생일은 고즈넉한 상유촌 최대의 행사였다. 그가 곳간을 열고 풍성한 잔치를 벌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목노야의 생일잔치는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마을 사람전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유일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는 결코 흔하지 않았다.

마을의 아낙들이 목노야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그의 집에 모여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에 사람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어서 내일이 오기만 기다렸다. 마치 축제 전야와 같은 분위기가 상유촌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환사영은 오랜만에 그런 마을에 나왔다. 굳이 목노야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의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 역시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오랜 칩거를 깨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원했다. 그 때문에 환사영은 오랜만에 깨끗하게 옷을 차려입고 마을에 나왔다.

마을에 나와 그가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백수경의 집이었다. 백수경은 환사영을 자신의 친형처럼 생각하고 대접했다. 그리고 마을에 나오면 꼭 자신의 집에서 머물기를 원했다.

“하하하!”

“호호!”

백수경의 집에 들어서자 환한 웃음소리가 제일 먼저 그를 반겼다. 백수경의 집은 항상 이랬다.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따스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는 언제나 주위사람을 챙기며 소홀히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 덕분인지 모르지만 그의 집에는 항상 웃음이 흘러나왔다.

“흠!”

환사영이 밖에서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백수경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안에 경화가 와있는 모양이구나.”

“예! 저 혼자 적적할까봐 맛있는 음식을 싸왔다고 합니다.”

“목노야가 허락했다더냐?”

“그녀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 없잖습니까? 목노야도 더 이상 그녀를 제어하기를 포기한 모양입니다.”

“그래?”

환사영이 빙그레 웃었다. 그 정도만 해도 분명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여인은 이 마을의 최고지주인 목노야의 막내딸이었다. 목노야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는 보물 같은 아가씨였다. 이제 열일곱이 된 그녀에게는 목경화라는 이름이 있었다.

목경화는 누구보다 고집이 세지만, 활발한 성정에 웃음까지 많아 보는 이로 하여금 항상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목노야와 같은 핏줄에서 목경화가 태어난 것은 상유촌 최대의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

목경화가 사랑하는 남자가 백수경이었다. 목노야는 이름 없는 문사에 불과한 백수경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상유촌 제일의 부를 축척하고 있는 그의 마음에 백수경과 같은 일개 서생이 마음에 들리 없었다. 그러나 목경화의 고집은 실로 대단해 결국 목노야 조차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환사영이 안으로 들어서자 목경화가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늦으셨네요. 조금 더 빨리 올 줄 알았는데.”

“후후! 이것도 최대한 서두른 것이란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가 아니더냐.”

“피! 이제까지 쌀 한 톨 추수하지 못한 분이 무슨 농부에요.”

“내 밭에서 곡물을 추수하면 제일 먼저 너에게 가져오마. 그때 놀라지나 말거라.”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저도 제발 오라버니가 가져오는 쌀을 먹고 싶단 말이에요. 도대체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자갈밭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에요.”

“오늘은 너에게 혼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란다. 이제 이쯤 하자꾸나.”

환사영이 두 손을 들었다. 그러자 목경화가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계세요. 제가 음식을 다시 차려올게요.”

“난 식은 음식도 상관없다만.”

“무슨 말씀이에요? 그럼 제가 오라버니께 식은 음식을 대접했다는 소문이 상유촌에 돌아야겠어요?”

“아니다, 항복! 내가 어찌 네 뜻을 거스를까? 네가 알아서 해다오.”

“후후!”

목경화가 싱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 환사영 역시 미소를 지었다.

목경화에게는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싱그러웠고,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타인에게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한 여인이었다.

환사영이 백수경을 돌아보았다.

“후후! 여전하구나, 경화는.”

“큰일입니다. 조금 더 조신해도 좋을 텐데.”

“경화에게는 그런 모습이 어울린다. 그래서 너랑 더 잘 어울리는 것일 수도 있지. 어쨌거나 축하한다. 경화가 이 시간에 이곳에 왔다는 것은 목노야가 너희들의 사이를 인정했다는 뜻일 테니까.”

“형님도.”

백수경이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그 역시 목경화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비록 아직 나이가 어려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여자가 될 사람은 오직 목경화뿐이라고 생각했다.

백수경이 환사영의 잔에 술을 따랐다. 환사영 역시 말없이 그의 술잔을 받아들었다.

“이것은 너를 위한 잔이다.”

그리고는 백수경이 어떻게 하기도 전에 들이켰다.

또 다시 채워지는 술잔, 이번에도 그는 혼자 들이켰다.

“이건 경화를 위한 잔.”

쪼르륵!

이어지는 세 번째 잔.

“이것은 앞으로 너희 두 사람의 혼인을 축복하는 잔이다.”

그렇게 환사영은 세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백수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이제 같이 하시지요.”

“그래!”

창!

허공에서 두 사람의 술잔이 맞부딪쳤다.

별다른 안주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러 잔의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여러 말이 없어도 좋은 사이가 있었다. 그저 말없이 술잔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이가 있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그랬다.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눴다. 목경화가 안주거리를 들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술 한 병이 빈 뒤였다.

그녀가 곱게 인상을 썼다.

“아이, 두 사람 자꾸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기에요. 지금이야 젊어서 괜찮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 두 사람 모두 속병 때문에 고생하실 거예요.”

“너는 혼인하기 전부터 바가지를 긁는구나. 어허, 아우가 불쌍하구나. 지금도 이렇게 꽉 잡혀 사는데 혼인을 올리면 어떻게 될지.”

“아유, 오라버니는 또 나만 가지고 그래. 몰라요.”

“하하! 잘못했다. 자, 너도 한잔 받거라.”

“네!”

목경화가 사양하지 않고 술잔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술잔을 입에 가져다갔다 금세 인상을 썼다.

“아유, 써! 남자들은 이 쓴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먹을까?”

“하하하!”

“후후!”

방안에 웃음이 가득 찼다.

그때 밖에서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들어가도 되겠는가?”

문을 열어보니 한청이 커다란 고깃덩이를 들고 서있었다. 환사영과 백수경이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들어오십시오.”

“물론입니다, 형님. 어서 오세요.”

그들의 환대에 한청이 들고 있던 고기를 목경화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오늘 잡은 소에게서 얻은 가장 좋은 부위다. 아무거나 적당하게 요리해 오거라.”

“이거 우리 아버지 생일상에 들어갈 거 빼돌린 거죠?”

“후후!”

“맞구나! 내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이 정도 부위 빠진다고 해서 표 나는 것도 아니니까 이번 한번만 용서해줄게요.”

“고맙구나.”

한청이 미소를 지으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세 사람이 되고, 그들은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어슴푸레 동이 터올 무렵 환사영과 한청은 백수경의 집을 나섰다. 목경화는 자정이 넘은 직후 집으로 돌아갔고, 백수경은 취기를 견디지 못해 쓰러졌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오랫동안 술잔을 나누다 밖으로 나왔다.

새벽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간밤의 취기가 모조리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한청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곳이 좋네. 이곳의 부족함이, 또한 이곳 사람들의 착한 심성이 좋네. 젊은 시절 꽤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고 자부하지만 이곳처럼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은 일찍이 본적이 없었어.”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래, 이곳에 오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지. 정말 좋은 곳이야. 단지 목노야가 욕심이 많다고 하지만, 밖에 있는 부자들에 비하면 어린 아이 장난에 불과하니 그렇게 신경쓸만한 것도 아니지. 오히려 그 정도는 귀여운 애교로 봐줄 수 있지.”

한청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들어 올려 머리위에 올렸다. 그러자 오른팔의 흉터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마치 커다란 뱀이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기가 질리기 충분했다. 하지만 흉터의 모습을 바라보는 환상영의 모습은 담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네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것은 이미 알고 있네.”

“그것은 형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다는 것이 형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죠.”

“이 상처. 그래 정말 죽을 뻔 했지. 내 인생의 마지막 싸움에서 얻은 상처니까. 이 상처 때문에 나는 이곳 상유촌까지 흘러들어왔네.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상처만 나으면 밖으로 나가 복수를 할 생각이었지만, 지난 십년의 세월은 나에게 그런 마음이 부질없는 거란 사실을 알게 해주더군. 지금은 복수고, 뭐고 다 싫네. 그저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뿐이라네.”

“그렇게 될 겁니다.”

“자네는 끝까지 자네의 사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군.”

“잊고자 하는 과거일 뿐입니다.”

“그래! 잊은 것은 잊은 채로 놔두어야지.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으니까.”

한청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눈은 먼 과거를 더듬고 있었다. 그의 망막에 어떤 모습이 맺혀있는지는 오직 그밖에 알 수 없었다. 환사영은 그의 곁에서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찌르르!

가슴의 상처가 문득 통증을 호소했다. 자칫 조금만 더 깊었으면 그의 몸통을 양단했을 만큼 깊은 상처였다. 비록 상처는 흔적만 남기고 아물었지만, 아직도 환사영에게 통증을 안겨주고 있었다.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환사영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 잊을 수 없었다. 통증이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었으니까.

‘평생을 가져가야할 업보인가?’

환사영은 한청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야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날 그때처럼 시커먼 하늘이었다.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이 그때와 같았다.




* * *



대문을 예쁘게 만들어주신 신세련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환영무인은 십전제와 호흡이 다릅니다.

십전제에서는 초반에서부터 몰아붙였다면 환영무인은 조금 호흡이 느리게 시작되죠. 하지만 그 후부터는 오히려 십전제보다 빠르고 격하게 진행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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