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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
작품등록일 :
2009.03.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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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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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1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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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상유촌-2

DUMMY

사내는 묵묵히 땅을 골랐다. 목노야의 말처럼 이곳은 자갈들로 덮여 있어 농사짓기에는 부적격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사내는 돌들을 모아 한쪽으로 치우고 농지를 개간하고 있었다. 습지가 바로 곁인데도 그가 개간한 땅은 바싹 말라 있었다. 자세히 보면 습지 역시 외곽부터 말라가고 있었다. 요 몇 년 동안 전혀 가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런 곳에서는 그 어떤 식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사내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묵묵히 밭을 갈고, 돌을 옮겼다.

육척장신에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그리고 희미했지만 그의 전신에는 수많은 상처가 종횡으로 나 있었다. 하지만 너무 희미해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상처가 지워졌지만, 유독 눈에 띄는 상처가 하나 있었다. 바로 그의 가슴에 횡으로 남겨진 자상이었다. 마치 가슴전체를 가로 지른 것처럼 남은 자상은 너무나 뚜렷해 오히려 섬뜩할 정도였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다는 사실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내의 이목구비는 매우 뚜렷했다. 구릿빛 피부와 어울려 더욱 남성적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강인한 인상과 달리 그의 눈매는 무척 부드러워 매우 선해 보였다.

한참동안이나 땅을 고르던 사내는 점심때가 다되어서야 손을 멈추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의 거처 역시 습지 근처에 있었다. 불과 백 걸음을 걷기도 전에 나무를 엮어 만든 오두막이 나왔다. 그곳이 바로 사내가 사는 곳이었다.

비록 볼품없고, 허름하기 그지없는 곳이었지만, 이곳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이곳에서 홀로 살아오고 있었다. 생필품을 사러 상유촌에 나갈 때를 제외하곤 그는 항상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아니, 지으려 노력했다. 모두가 그를 비웃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해도 그는 이곳에서 반드시 새싹을 피워낼 생각이었다.

사내가 잠시 오두막 전경을 둘러보았다. 그때 유독 눈에 띄는 광경이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깊숙이 박혀 있는 쇠기둥이 있었다. 두 치 두께의 쇠기둥은 겨우 한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땅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사내는 아련한 눈으로 쇠기둥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쿠쿠쿠!

갑자기 대지에서 커다란 울림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대지의 열기가 더욱 강렬하게 일렁였다. 사내 역시 그런 변화를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에도 대지의 울림은 커져만 가고 있었다. 마치 지하에서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기(地氣)가 움직이고 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구나.”

사내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대지의 울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마치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대지의 울림은 잦아들었지만, 열기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열기 때문에 습지가 점차 말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사내 혼자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두막에 들어온 사내는 생필품이 거의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제 사다 놓는다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군. 다시 한 번 마을에 갔다 올 수밖에.”

비록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수확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 자급자족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결국 그는 가죽자루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상유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상유촌까지는 청로호변의 소롯길을 따라 반시진이 걸렸다. 사내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주변 풍광을 감상하기도 하고, 이름 모를 들꽃에 시선을 두기도 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본래 그는 매우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상유촌에서의 육년은 그의 성격을 진중하게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그는 서두르는 대신 돌아가는 법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변을 겨우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사내는 천천히 그리고 주변경관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본래는 상유촌까지 반시진이면 족했지만,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다보니 한시진이상이 걸렸다. 그렇게 찾은 상유촌은 청등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상유촌의 성인들 중 절반은 목노야의 광산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논농사나 밭농사를 짓거나, 청로호에서 어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소비하고 남는 물건들을 시장에서 내다팔았다. 그 때문에 상유촌 한가운데 있는 조그만 공터에는 항상 물건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내가 찾는 곳 역시 그런 조그만 시장이었다.

그가 시장에 들어서자 몇몇 상인들이 그를 알아보고 아는 척을 했다.

“사영이 왔는가? 오늘도 쌀이 떨어진 모양이군.”

“예!”

“자주 좀 모습을 보이게. 그렇게 혼자 떨어져 살면 쓸쓸하지 않는가?”

“앞으로는 좀 더 자주 나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의 대답에 상인이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사내의 이름은 환사영이었다. 그는 육년 전 이곳 상유촌에 흘러들어왔고, 그 후로 꾸준히 마을 사람들과 교분을 나눠왔다. 처음엔 그를 꺼려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를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환사영은 인사를 한 상인에게 한 달 정도 먹을 쌀을 사서 자루에 넣었다. 그 후에도 장터에 나온 다른 상인들에게서 일용할 양식과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렇게 시장을 한 바퀴 돌다보니 어느새 가죽 자루 대부분이 가득 찼다. 하지만 아직도 환사영에게는 살 물건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장터를 떠나 상유촌 외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외곽을 벗어나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비릿한 피내음이 코끝에 느껴졌다. 그 비릿한 내음에 머리가 아파올 만도 하건만 환사영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상유촌의 제일 외곽에 위치한 도살장이었다. 이곳에서 간간히 잡는 돼지와 소가 상유촌의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육류의 공급원이었다. 하지만 비릿한 피내음에 아무도 이곳에 접근하려 들지 않았다.

쿵!

환사영이 들어섰을 때 한 사내가 잘게 해체한 돼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름 모를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사내는 그리 크지 않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돼지를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었다. 작다할 수는 없지만, 크다 할 수도 없는 덩치의 사내였다. 하지만 그의 눈가를 따라 흐르는 푸르스름한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질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가 환사영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자네 왔군.”

“오랜만입니다.”

“그렇군. 거의 한 달만이지 싶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요.”

“이곳에 있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게 되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을 깨닫게 되는 일이 있을 거야.”

도부(屠夫) 역시 이방인이었다. 그는 환사영보다 오래 전에 이곳에 들어와 정착을 하였다. 그리고 한 일이 다른 이들이 모두 꺼려하는 백정질이었다. 모두가 꺼려하는 일을 해주니 주민들은 환영할 수밖에. 그렇게 그는 이곳에 정착했다.

환사영은 그의 이름이 한청이라는 사실과 그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 외의 과거나 신분은 모두 비밀에 가려져 있었다. 어쩌면 그는 환사영 만큼이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상유촌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가진 두 사람이 마주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서로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도살장의 주인과 손님으로 마주했을 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고기를 사러왔는가?”

“공교롭게 먹을 것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잘 왔네. 오늘 마침 좋은 녀석이 들어왔거든. 방금 잡았으니 꽤 신선할걸세.”

“제가 운이 좋군요.”

“후후! 얼마나 사겠는가?”

“늘 가져가던 만큼 주십시오.”

“알겠네.”

한청은 탁자위에 놓인 고기위에 소도를 가져갔다. 그러자 그의 오른팔을 따라 나있는 흉측한 흉터가 보였다. 오른 손목에서부터 어깨 어림까지 뱀처럼 길게 나있는 흉터. 팔이 두 쪽이 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한청은 굳이 상처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른 손에 힘을 줄때마다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상처에서 회복했을지는 모르지만 힘줄마저 되살아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도 한청은 고기를 깔끔하게 도려냈다. 커다랗게 도려낸 고기를 한청은 환사영에게 넘겨주었다. 환사영은 그에게서 받은 고기를 자루에 담고 셈을 치렀다.

한청이 그 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매우 특이한 사람일세. 그런 사실을 아는가?”

“형님,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런가? 하긴 이곳 상유촌에 흘러들어온 자들 중 사연이 없는 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멀리 나가지 않겠네. 살펴가게.”

“편히 쉬십시오.”

환사영은 한청에게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그는 잠시 도살장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지독한 피비린내가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진한 향기가 한청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급히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어 수정도 제대로 못하고 올리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길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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