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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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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
작품등록일 :
2009.03.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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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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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1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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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들-2

DUMMY

다음날 목노야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상유촌 삼백 명의 사람들이 모두 목노야의 집에 모였다. 목가장(木家莊)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집. 그러나 세상의 유력세가들의 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조그만 장원이었다. 물론 상유촌 그 어떤 집보다도 컸지만.

목가장 안 널따란 정원에는 삼백 명을 위한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다. 기실 목노야가 자신의 잔치를 이렇듯 거창하게 여는 이유는 꼭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마을의 절반이 자신의 광산에서 일하고 있었다. 광산일은 그 어떤 일보다 험하고 고되다. 때문에 이런 기회를 빌려 그들을 잘 다독여두지 않으면 오래도록 일을 같이 할 수 없었다. 비록 잔치를 여는 돈이 아깝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결과를 위해서는 지출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백 명 상유촌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목노야가 자신의 생일을 자축했다.

“허허! 이 모자란 사람의 생일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러 와주셔서 감사하오. 내 오늘 부족하나마 여러분들을 위해 상을 차렸으니 부족하다 탓하지 마시고 마음껏 즐겨주시오. 음식은 넉넉하게 준비했소이다.”

“와아아!”

“목노야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모두 목노야를 위해 잔을 듭시다.”

누군가의 선창에 마을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하며 술잔을 들었다. 어른들은 술잔을, 아이들은 찻잔을 들어 목노야의 생일을 축하했다.

“목노야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목노야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와아아!”

일순 함성과도 같은 소리가 목가장을 가득 채웠다.

목노야는 안면가득 웃음을 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삼백 명의 사람들이 그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단지 먹을 것을 위해 왔을 테고, 어떤 이는 거짓으로 축복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매개체로 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목노야는 만족했다. 자신이 여전히 이 마을의 중심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허허! 천천히 즐기시구려. 음식 걱정은 하지 말고.”

목노야는 연신 웃음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그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놈들!“

갑자기 그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모두가 그를 보고 있는데 오직 단 한곳에 있는 무리들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끼리 떠들고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세 명의 사내들 가운데서 웃고 떠들면서 아비인 자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고약한 녀석. 바로 그가 늘그막이 얻은 막내딸 목경화였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 백수경이 있었다.

상유촌의 유일한 글 선생. 지닌바 학식이 대단하다고 들었으나, 솔직히 목노야의 눈에는 사기꾼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는 목경화가 백수경을 만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이 어찌나 세던지 이제는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그녀가 백수경을 만나는 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백수경은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자리에 앉은 두 남자는 또 어떠한가? 하나는 십년 전에 흘러들어온 백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청로호 남쪽에서 홀로 은둔생활을 하는 외톨이였다. 아니, 자신의 딸이 뭐가 모자라서 저런 것들과 함께 자리를 한단 말인가?

“내 이것들을 그냥.”

“아이, 대인 참으세요.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요.”

옆에서 애첩 설향이 말리지 않았다면 당장 저들 자리로 가 단매에 쳐 죽였을 것이다.

“에휴! 내 전생이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어서.”

그는 그만 탄식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자 설향이 빙긋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잘하셨어요. 오늘 같은 날은 웃으셔야죠.”

“오냐! 내 너를 봐서라도 웃을 것이다. 오늘만 참자, 오늘만.”

“호호!”

웃음을 흘리면서 설향은 목경화가 껴있는 자리를 봤다. 그곳에 환사영이 있었다. 저번 물놀이 직후 설향은 환사영에 대해 은밀히 알아봤다. 그녀가 알아낸 것은 거의 없었다. 단지 그가 육년 전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는 정도뿐이었다. 알아낸 것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사영에 대한 호감은 더욱 커졌다.

과거가 비밀에 가려져 있는 남자는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하물며 환사영처럼 남자답게 생긴 자에게는 더욱 호감이 이는 법이었다. 설향은 목노야 몰래 환사영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미소를 지었다.

‘언제고 저 사람을 내 치마폭에 녹이리라.’

그녀는 그렇게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술을 마시는 한청의 허리춤에는 고기를 잡을 때 쓰는 소검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보통 고기를 잡는 이들이 날이 두터운 중도나 도끼를 쓰는 것을 감안할 때 확실히 한청의 모습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중도로도 소나 돼지를 잡는 것을 힘겨워했지만, 한청은 소검 한 자루만으로도 고통 없이 숨을 끊었다. 그러다보니 그가 잡은 고기는 여타 고기에 비해 더욱 연하고 맛있었다. 그렇기에 잔치를 벌일 일이 있는 사람들은 한청에게 고기를 잡을 것을 부탁했다.

환사영은 술잔을 기울이며 한청의 검을 자세히 바라봤다. 고기를 잡느라고 날이 무뎌지고, 피에 절어 곳곳이 녹슬었지만, 예전에는 명검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검이었다. 그런 검이 이제는 소나 돼지를 잡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환사영은 한청의 검에서 시선을 뗐다. 이 이상 남의 물건을 훔쳐보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술잔을 들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한청도, 백수경도, 그리고 목경화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술을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이순간이 기분 좋았다.

멀리서 목노야가 사람들에게 짓궂은 농담을 하고, 한껏 위세를 떠는 것이 보였다. 제 아무리 배를 내밀어봤자, 왜소하기 그지없는 그의 몸이 더 커 보일 리도 없건만.

환사영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때 목노야가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방향을 바꿔 다가왔다. 그는 여전히 없는 배를 한껏 내밀고 있었다.

“어흠! 그래 음식은 입맛에 맞는가?”

“목노야.”

제일 먼저 백수경이 목노야를 맞이했다. 어쨌거나 그는 목노야의 딸인 목경화와 사귀고 있었다. 사위가 될지도 모르는데 앉아서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환사영과 한청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목노야를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오늘의 주인공인데 앉아서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환사영 등이 일어나 자신을 맞이하자 그제야 목노야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평소 소 닭 보듯 하는 그들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월감을 느꼈다.

목노야가 환사영 등을 향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혼자 생활하는 자네들이 언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었겠는가? 음식은 많으니까 천천히 먹게나. 그리고 자네는 언제까지 되도 않는 농사를 지을 셈인가? 차라리 내 광산으로 오게. 내 장씨에게 말해 셈은 적지 않게 쳐줄 테니까. 젊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일을 해야지, 그렇게 언제까지 허송세월을 할 셈인가?”

“아빠, 그만! 정말 여기까지 와서 이럴 거예요. 잘 먹던 음식도 체하겠다. 그만하시고, 다른 곳으로 가보세요. 아빠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요.”

목노야의 연설에 제동을 건 사람은 목경화였다. 그녀는 목노야의 말을 끊은 채 노려봤다. 그 모습이 꼭 성이 난 암고양이처럼 보였다.

목노야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하여간 딸년은 키워놔 봐야 소용없다니까. 어느새 저도 여자가 됐다고, 외간 남정네들 편을 드니. 에잉!’

그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설향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호! 노야께서 너무 기쁘셔서 하는 말입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해주지 말아 주세요.”

“이해합니다.”

“그럼 저희는 가볼 테니까 계속 즐기세요. 노야의 말씀대로 음식은 많으니까요.”

그러면서 환사영을 향해 눈웃음을 살살 쳤다. 하지만 목노야는 고개를 팩 돌리고 있어 그런 설향의 모습을 미처 보지 못했다. 만일 그가 설향이 환사영을 향해 눈웃음을 치는 모습을 보았다면 오늘 잔치는 그대로 끝이 났을 것이다.

“에잉! 자리로 돌아가자.”

“예! 대인.”

설향은 목노야의 팔짱을 끼고 걸음을 옮기면서도 환사영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허! 정말 대담한 여인이구나. 뻔히 임자가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다니.”

한청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러자 목경화가 샐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는 정말 저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첩으로 들인 건지 모르겠어요. 저렇게 천박한데.”

“후후! 비록 그런 여자라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최고의 여자일수도 있는 법이지.”

“괴변이에요.”

목경화가 한청을 향해 혀를 내밀어 보였다. 한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괴변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이 환사영을 향했다. 그리고 의미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환사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자, 술이나 하시죠.”

“좋지.”

“저도.”

“앗! 나도, 나도.”

백수경과 목경화도 끼었다.

좀 전의 일은 모두 잊고 금세 웃음꽃이 피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근심을 잊고 목노야의 생일을 즐겼다.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목가장의 평화는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끼이익!

누군가 목가장의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녹슨 경첩이 지르는 비명에 일제히 정문을 바라봤다.

낯선 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문 너머로 보였다.

“후후!”



* * *



연말입니다. 모두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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