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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
작품등록일 :
2009.03.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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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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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1

DUMMY

혈루검(血淚劍). 한때 강호를 위진 시켰던 위대한 이름 중 하나였다. 자신과 겨룬 상대에게 반드시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해서 붙여진 명호가 혈루검이었다.

강호에서 활약할 당시 그는 백여 명의 절정고수와의 연이은 대결을 승리로 이끈 무패의 전적을 자랑했다. 그는 타고난 승부사였다. 강호에 처음 나왔을 때 그는 그저 그런 쾌검을 익힌 애송이 무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출도를 시작으로 그는 도전을 시작했다. 강호의 무인들에게 겁 없이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처음에는 우습게보던 사람들은 그가 열 명의 무인을 패퇴시켰을 때부터 달리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오십 번째 상대로 혈아마도(血牙魔刀) 장사결을 쓰러트렸을 때 그에게 천하오수의 자격을 주었다.

한때 그 어떤 명호보다 찬란하게 강호에서 빛났던 혈루검. 하지만 십년 전 혈루검은 돌연 강호에서 사라진다. 천하육주의 아성에 도전할 것이 분명하다던 혈루검의 실종은 수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혈루검이 사라진 것이 스스로의 뜻인지. 아니면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대결에서 패했기 때문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강호에서 잊혀져갔다. 강호는 옛 인물을 쉬이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천위가 한청을 보며 말을 이었다.

“혈루검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의 당신은 그야말로 누구보다 눈이 부셨죠. 강호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신출내기들이 당신을 보고 꿈을 키웠을 정도니까요. 저 역시 그런 신출내기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당신은 나의 우상이었습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단호한 손속과 살수, 그 모든 것이 나를 매료시켰었죠.”

당천위가 기억하고 있는 혈루검은 그 누구보다 잔인하고 포악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얼마나 강하든 상관없었다.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투지로 수많은 상대를 무너트렸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과 은원관계를 맺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당시의 그는 검에 미친 혈귀였다. 그의 과거를 기억하는 자라면 누구나 두렵게 생각할만큼 무서웠다.

당천위가 한청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오래전 머릿속에 봉인된 기억들이 풀려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당신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 몰랐습니다. 정말 뜻밖입니다.”

“영광이군. 내가 자네의 우상이었다니.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냥 돌아가 줄 수는 없겠는가?”

“후후! 무언가 착각하시는 것 같군요. 당신이 한때 나의 우상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당신의 그 손이 그렇게 된 순간부터 당신은 이미 나의 우상이 아닙니다.”

“너?”

“천하인들은 모르지요. 왜 당신이 그렇게 강호에서 사라져야 했는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 싸움에서 패했기 때문에 강제로 은퇴를 해야 했다는 사실을.”

당천위의 입가에 어린 웃음, 그것은 분명히 조소였다. 그는 한청을 비웃고 있었다.

“후후! 혈루검, 정말 대단하지요. 허나 당신은 인생의 정점에서 꺾였습니다. 희대의 검의 천재에 의해서. 당신의 오른 팔은 신경이 송두리째 날아갔고, 두 번 다시 검을 잡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혈루검이라는 명호는 그저 과거의 짐에 불과할 뿐, 젊은 날의 나를 설레게 했던 당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천하오수에서 잊혀졌고, 당신의 빈자리는 내가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존경해야할 이유가 내게는 없습니다.”

당천위는 잔인했다. 한청의 심장을 후벼 파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있었다. 과거의 한청은 존경받아 마땅한 존재였으나, 현재의 그는 그렇지 않았다.

방금 전 기정유와 대립에서 그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의 오른 손은 아직도 낫지 않았다. 만일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미 한청은 예전의 혈루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존경해줄 이유도 없었다.

당천위는 한청을 비웃었다. 그의 시선은 한청의 오른팔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청 역시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흉터가 뱀처럼 가로지른 오른팔은 지금 이순간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런 팔로는 도저히 검법을 쓸 수 없었다.

이미 혈루검은 죽었다. 당천위는 그렇게 규정했다.

“당신을 향해 줄 수 있는 충고는 단 하나뿐입니다. 이곳을 떠나십시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인들이 이곳에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후후! 그들이 눈독을 들인 이상 이 마을은 영원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당신도 무인이었으니,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무공을 펼칠 수 없는 당신이 살아남을 길은 오로지 이곳 상유촌을 떠나는 것뿐입니다.”

“결국 뜻을 꺾지 않겠다는 건가?”

“하하! 금장혈괴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금속입니다. 역사상 그런 금속이 출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금장혈괴로 무기를 만든다면 얼마나 큰 위력이 나올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검을 든 무인들은 모두 상유촌으로 몰릴 수밖에요.”

당천위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자신이 금장혈괴를 차지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금장혈괴라는 금속 때문에 이 평화로운 마을을 지옥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후후!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 싫다면 이곳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야겠죠.”

우득!

한청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무섭게 당천위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당천위는 오만한 시선으로 오히려 그를 응시했다. 여전히 조소를 지우지 않은 채였다.

“자네들이 이 마을을 마음대로 휘젓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네.”

“그 손으로 말입니까? 과연 그런 손으로 개미새끼 하나라도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하하하!”

당천위가 앙천광소를 터트리며 뒤돌아섰다. 한청 따위는 염두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런 당천위의 등을 향해 한청이 소리쳤다.

“결코 너희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대해보죠. 과연 당신이 예전의 명성을 찾을 수 있을지. 다음에도 당신이 내 앞을 가로막을 때는 결코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겁니다. 나의 과거의 우상이시여.”


* * *


모든 것이 붉게 물들었다. 하늘도 땅도, 그녀의 눈앞도.

너무나 붉어 마치 핏빛처럼 보이는 세상. 그 한가운데 그녀가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에게 자애로운 웃음을 흘려주던 어머니도. 목마를 태워주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던 숙부도. 고사리 같은 그녀의 손을 잡고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시비도 모조리 타오르는 불속에 갇혔다.

“엄마.”

그녀는 목이 터져라 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오직 입안에서만 맴돌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목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그래도 목소리는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쿠쿠쿠!

거대한 전각이 무너지고 있었다. 예향각(藝香閣)이라고 불리던 건물이었다. 수많은 예인들이 한데 모여 기예를 겨루던 전각이었다. 이백년 역사의 전각이 무너지는 데는 불과 촌각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아!”

벌려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옅은 신음성만이 흘러나왔다.

검붉은 갑주를 입은 악귀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들은 바람처럼 예고도 없이 쳐들어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도살했다. 그것은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아악!”

처절한 비명성이 장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녀는 갈 길을 잃고 울었다.

그녀는 절망했고, 지옥을 경험했다. 그녀의 마음은 가뭄속의 논바닥처럼 메말라갔고, 북극의 찬바람처럼 차게 가라앉았다.

“아빠.”

그녀의 시선이 문득 어느 한 곳을 향했다.

그곳에 그녀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도 있었다. 침입한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검붉은 갑주를 입은 사내. 하지만 그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들은 싸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부서지는 세상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서로를 향한 눈에 증오가 담겨있을 법도 하건만 그들은 마치 오랜 세월 헤어져 있었던 여인을 보는 듯 부드러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얼굴과 달리 그들의 손에서 펼쳐지는 손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살벌했다.

얼마나 싸웠을까?

그녀의 눈에 아비의 검이 남자의 가슴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것이 보였다.

“아빠!”

그녀는 아비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자의 가슴에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가 보였다. 그 상처를 입고도 남자는 아비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아ㅡ빠!”

그녀의 절규가 지옥 같은 세상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사고가 멈췄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다시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가 본 것은 남자의 얼굴이었다.

“미안하다.”

그가 말했다.

무엇이 미안하단 것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단 말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왜 연민이 담겨있단 말인가? 그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하루가 지난 후에 나오거라.”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이름은?”

“환……사영.”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내 이름을 잊지 마요. 내 이름은 예운향.”

“잊지 않으마.”

“당신의 목숨을 빼앗을 이름이니까요.”

“기다리고 있겠다.”

쿵!

마침내 벽장문이 닫쳤다.


“하!”

그녀가 눈을 떴다.

방을 밝히고 있는 등불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절대 불을 끄고 잠이 들지 못했다. 그리고 한 번에 두시진 이상 잠든 적이 없었다.

예운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전신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들어와 그녀의 땀을 식혔다.

“내 이름은 예운향, 천상예가(天上藝家)의 마지막 생존자.”

그날 이후로 그녀는 자신이 천상예가의 생존자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그래서 ‘예’씨라는 성조차 철저하게 숨겼다. 그녀의 성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그녀의 사부인 남황뿐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날의 기억만이 떠오른다. 모두가 잊어버렸지만, 나의 기억은 아직도 그날, 그 시간에 멈춰져 있다. 이래서는 절대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녀의 시선이 눈앞에 드넓게 펼쳐진 청로호에 고정되어 있었다. 호수에서 불어온 찬바람이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환사영은 고개를 들어 호수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호수에서부터 불어고 있었다. 이제 기온이 더 내려가면 첫눈이 내릴 것이고, 곧 혹독한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상유촌의 겨울은 그 어느 곳보다 혹독하고 추웠다. 청등산에는 허리깊이까지 파묻히는 눈이 내리고, 청로호는 꽁꽁 얼어붙어 거대한 빙판이 되었다.

평소 상유촌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모든 활동을 멈추고, 집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올 한해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무림인들이 들쑤시고 돌아다니기 시작한 이상 예전과 같은 평화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환사영이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은 차가운데 대지는 뜨거웠다. 이곳에서 육 년 동안 있으면서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예전에도 열기가 느껴지곤 했지만, 지금처럼 강렬하게 느껴진 것이 없었다.

“어쩌면 이런 극렬한 변화가 금장혈괴라는 금속을 태동시켰는지도 모르지.”

환사영은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손바닥에 느껴질 만큼 열기가 강렬했다. 이런 변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환사영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아름다운 마을이 초연 속에 묻히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하늘은 나에게 일말의 평화조차 허락하지 않는가? 그만큼 내 죄가 크단 뜻인가?”

잊고자 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 세상을 떠났어도, 옛 기억은 어둠속의 망령처럼 끈질기게 그를 따라붙고 있었다.




* * *



모두 즐거운 연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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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풍운-3 +69 09.01.06 7,699 10 8쪽
16 풍운-2 +50 09.01.05 7,516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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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타오르는 불씨-1 +31 08.12.14 10,316 10 9쪽
4 상유촌-3 +35 08.12.13 11,270 9 11쪽
3 상유촌-2 +29 08.12.12 12,171 13 10쪽
2 상유촌-1 +32 08.12.11 17,053 11 8쪽
1 서- +62 08.12.10 23,075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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