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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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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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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9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1.0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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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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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부바와 키키 (5)

DUMMY

(대근건설 - 제1건물 브레인 - 사장실)



목요일 늦은 저녁, 부바는 사장실 바닥에 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훌쩍.... 훌쩍...."


단 한 번도 고통이라는 것을 겪어본 적 없는 이가 고통을 겪으면 어떻게 될까?

단 한번도 슬픔이라는 것을 겪어본 적 없는 이가 슬픔을 겪으면 어떻게 될까?


어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가 이 모든 것들을 한번에 겪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부바의 모습이 바로, 이 의문점들의 훌륭한 모범 답안일 것이다.


부바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세상인 네버랜드에서는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험악한 얼굴, 시끄러운 고함소리,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버린 어른들의 모습.


부바는 강도윤과 쉐도우를 보며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느꼈다.

그 바람에, 부바의 작고 여린 심장은 벌벌 떨고 있었다.


"나, 나랑 같이 놀아준다구 했자나......"


강도윤은 부바를 무시한 채 쉐도우에게 감탄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와우... 제가 못한 걸 한번에 성공하시는군요? 그림자도 그곳엔 갈 수 없다더니?"


쉐도우는 흡족한 표정으로 몽당연필 크기의 검은색 크레파스 조각을 던졌다, 받았다 하고 있었다.


"뭐, 버림받은 강아지 한 마리 데려오는 거야 별 거 아니지요. 조금 예상 외의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난 버림받은 거 아냐! 대근이는 나 안 버려!"


억센 손으로 부바의 입을 틀어 막으며 강도윤이 물었다.


"입 좀 닥쳐라, 이 개새끼야. 비서님, 예상 외의 일이라뇨?"

"네버랜드의 태양이 지고 있습니다."

"그게 뭐요?"


진심으로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 강도윤을 보며, 쉐도우는 고개를 저었다. 한심한 것이다.


"네버랜드의 태양이 진다는 것은 결국, 인간 황대근의 정신연령을 낮추겠다는 우리의 계획이 산산조각난다는 뜻입니다."


그제서야 강도윤은 놀라며 말했다.


"예? 그럼 큰일이잖습니까? 어서 뭐라도 해야죠!"

"대근이... 대근이는 어디있어...? 너희가 숨겼어...?"


부바의 통통한 꼬리는 이미 다리 사이로 감춰진 지 오래다.

쉐도우가 그런 부바를 힐긋 보더니 말했다.


"강이사님, 혹시 네버랜드에서 만난 인간 황대근이 누군지... 이 녀석에게 말했습니까?"

"아뇨? 말을 한 적은 없는데? 전 그냥 인간 황대근이랑 대화만 했어요."


쉐도우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강아지는 인간 황대근이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태양이 지는 것이다.


"쉐도우 비서님, 당장 빨리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쉐도우는 머리가 아팠다. 헨리는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러 간지 오래다.

계속해서 울먹이는 부바와, 제멋대로 떠들어 대는 강도윤 때문에 쉐도우의 머리는 어지러웠다.

태양이 지면 어둠이 찾아온다. 그림자가 활동하기 딱 좋은 때이다.


헌데, 네버랜드의 태양이 진다는 것은 결국 더 이상 쉐도우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 황대근의 정신연령을 낮춰버리려는 그의 계획은 이미 무너졌다.


콱—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든 쉐도우는 부바의 동그란 머리통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외쳤다.


"당장 시작해!"


불쌍한 부바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귀가 축 늘어진 이 강아지는, 맑은 눈망울로 쉐도우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당장! 인간 황대근의 몸 속에 동심을 불어넣으란 말이야! 되돌리란 말이야! 인간 황대근을 어린시절에 가둬버리란 말이야!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넌 할 수 있잖아? 황대근하고 가장 친밀하게 지냈던 건 너잖아?!"


강도윤은 쉐도우가 이토록 흥분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적잖이 놀랐다.

부바는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위협적으로 소리 지른 이를 본 적이 없기에, 역시 놀랐다.


"어린아이의 마음! 때 묻지 않은 순수함! 현실감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멍청한 순수함을 보여주란 말이야! 왜 못하는 건데?!"


무서웠던 것일까, 부바는 자신도 모르게 본인 안에 내재되어 있던 방어기제를 본능적으로 사용했다.


뽀잉—


갑자기 온갖 귀여운 동물 모양이 인형들이 나타났다. 그 인형들은 한 두 개가 아니었고, 몇 십 개, 아니 몇 백 개나 되는 인형들이었다.

그 인형들은 사장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이건 또 뭐야?"


쉐도우는 갑자기 튀어나온 인형들 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그만 발을 헛디뎌 인형들 사이에 파묻히고 말았다.

강도윤은 이미 인형들 틈에 깊이 파묻힌 지 오래다.


"훌쩍! 무섭잖아! 왜 화를 내고 그러는데!"


부바의 두 눈에서는 사탕과 초콜릿이 쏟아져 나왔다. 얼마 전 네버랜드에서 울었을 때와는 조금 양상이 달랐는데, 이번 눈물에서는 인간처럼 실제 눈물이 섞여 나온 것이다.

물론 비율은 아직 초콜릿과 사탕이 좀 더 많았다.


"이 자식, 당장 이것들 안 없애?"


겨우 인형들에 파묻히지 않을 수 있었던 쉐도우가 부바의 통통한 꼬리를 콱 쥐자마자, 공중에 동그란 원 하나가 그려졌다.

이번에는 쉐도우가 그린 것이 아니었다.


"...뭐야?"


동그란 원 안에서 하얀 손이 뻗어져 나왔다. 그리고 곧, 그 손은 쉐도우와 부바를 한 손에 움켜쥐고는 원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스르륵—


부바가 사라지자 마자, 사장실을 가득 채웠던 인형들 역시 사라졌다.

강도윤은 양 볼을 부풀린 채 바닥에 대자로 엎어져 있었는데, 그의 양복은 지저분해졌으며 머리칼 역시 엉망이었다.


"푸흑! 퉷!"


강도윤이 입에서 흰 털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인형들에 파묻혔을 때 먹은 게 틀림없다.







하얀 손에 의해 네버랜드에 도착하게 된 쉐도우는 모습이 바뀌어 검은 그림자가 되었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았다. 여전히 태양은 뜨거웠기에, 쉐도우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부바를 품에 안은 채 태양을 피해 그늘로 피한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이 어딘지 깨달은 순간, 그는 당황했다.


"여기... 여기는... 네버랜드?"


쉐도우는 악 그 자체이기에, 순수의 결정체인 네버랜드에서 버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늘 밖 태양이 이글거리는 곳으로 발을 한 걸음 내디뎠다.


"크아악!"


고통스럽다. 발이 타들어갈 것 같다. 쉐도우는 내밀었던 발을 서둘러 그늘로 옮겼다.


"태양빛이 참 뜨겁지?"


쉐도우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황대근의 목소리다.

쉐도우는 여전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인간 황대근이라고 굳게 믿었다.

황대근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닐 리 없다.


"인간 황대근! 너는 어째서 날 자꾸만 괴롭히는 것이냐? 왜 내 일을 방해하는 것이냐?"


여전히 모습이 보이지 않는 황대근이 말했다.


"방해라고? 방금 방해라고 했나? 나를 지키기 위해 하는 일이 잘못된 것인가?"

"그래! 저번에는 큰하늘님께 바치는 성스러운 의식을 방해하지 않나, 이번에는 내 소중한 계획을 무너뜨리지 않나!"

"......"

"하지만 넌 7명의 신도들의 목숨은 구하지 못했다."

".....!"

"그들의 영혼은, 내 손아귀에 있다. 큰하늘님께서는 권능을 주셨다. 한 인간의 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능!"


황대근의 목소리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오자, 쉐도우가 소리쳤다.


"왜 웃는 거냐?! 그리고 넌 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


약이 오른 쉐도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더 꼼꼼히 둘러보았으나 황대근은 보이지 않았다.

헌데, 쉐도우의 품에 갇혀있는 부바의 표정은 밝았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는 사라졌다.


"대근아! 돌아왔구나! 난 네가 돌아올 줄 알았어! 이제 난 슬프지 않아!"


부바는 황대근을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실, 황대근은 쉐도우가 충분히 그를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거리에 있었다.

쉐도우가 그를 보지 못한 이유는, 키키와 함께 크레파스로 만든 투명망토 안에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쉐도우는 현재 부바를 인질로 잡고 있기는 하지만, 위협적이지는 않다.


태양이 저물고 있으니 충분히 그림자로서 활동해도 되겠으나, 만약 자칫 잘못하다가는 인간 황대근의 정신연령을 낮추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될 테니 말이다.


"대근아."


옆에 있던 키키가 그에게 속삭였다.

키키는 쉐도우처럼, 그가 인간 황대근이라고 믿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


황대근이 쉐도우로부터 눈을 떼지 않으며 물었다.


"무슨 할 말?"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나에게는 행복 그 자체였어."


황대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키키는 말을 이었다.


"나는 영원히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거야."


키키가 투명망토를 벗었다. 키키의 몸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네버랜드의 태양 역시, 많이 저물었다.

석양이 지고 있다. 기회를 포착한 그림자는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 때문에 알록달록 아름다웠던 네버랜드는 회색빛으로 조금씩 변해버렸다.


그림자가 폭주하고 있다. 그림자는 황대근을 발견했다.


"넌 영원히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황대근."


쉐도우의 품에 갇혔던 부바는 그림자가 밖으로 나오면서 바닥에 떨어졌고, 키키는 서둘러 크레파스로 공중에 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키키가 만든 것은 무지개색의 로켓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멀리 떨어져 있던 부바는 눈 깜짝할 사이에 로켓 근처에 와 있었다.


통통—


키키가 로켓을 두드렸다.


"대근아, 이제 네버랜드는 없어."


황대근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영원히 살아있을 거야."


네버랜드가 검게 물들어 간다. 어른의 색이다. 개성도, 감동도 없는 천편일률적인 평범한 어른의 색.


"넌 여기 있으면 안 돼. 넌 앞으로 나아가야지."


키키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황대근은 머리가 아파왔다.

이 목소리를 들어보기는 했는데. 누구의 목소리였더라? 누구였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황대근은 기억해냈다. 이 목소리는 분명 그가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친어머니의 목소리다. 간혹 친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목소리에는 실체가 없지만, 목소리만으로 눈 앞에 잊고 있던 기억을 재생 시킬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황대근은 그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인간 황대근은 친부모와 함께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며 상상의 로켓을 타고 달나라 여행도 가며 놀고 있다.

로켓은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저 무한한 우주를 향해서.


"너희는? 너희는 어떻게 하려고?"


황대근의 다급한 질문에 부바는 프로펠러마냥 꼬리를 흔들었다.


"우리한테는 크레파스가 있잖아!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네버랜드의 기(氣)에 쉽사리 세력을 뻗치지 못하고 있던 그림자는 태양이 모습을 거의 감춰버리자 기운을 차리고는 황대근을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키키가 서둘러 말했다.


"잘 지내야 해, 대근아! 아프지 말고!"


키키는 황대근을 로켓에 태웠다.

황대근이 키키와 부바 역시 로켓에 태우려 손을 뻗었으나, 둘은 이미 그림자의 앞으로 나아간 상태였다.


"뭐하는 거야?! 로켓에 올라타! 너희 그러다 죽어!"


그가 다급히 소리치자, 부바가 웃으며 말했다.


"뭐야, 대근이~ 너 바보구나? 무의식에 빠지는 건, 죽는 게 아냐. 우린 늘 네 안에 있을 테니까."


로켓은 발사되었다. 황대근이 탄 로켓은 감당하기 벅찰 수준의 빠른 속도로 네버랜드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네버랜드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무의식 속에서 튕겨져 나오게 될 것이다. 충격이 강하다.


"너희는... 대체..."


네버랜드가 점점 멀어져 간다. 어느 새 모든 것이 검게 물들어 버린 네버랜드는, 조금씩 그 형체를 감추고 있었다.

역시 형체가 사라져 무지개색의 잔잔한 잔향만 남게 된 부바와 키키는, 폭주하는 그림자인 쉐도우를 방어했다.


둘은 그림자를 삼켜버렸고, 곧 그림자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부스럭—


스파게티처럼 몸이 늘어나는 것만 같은, 무의식 속을 빠져나오는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황대근은 주머니 속을 뒤졌다. 검은색의 크레파스가 있었다.

그는 크레파스로 공중에 그림을 그려 보았다. 고양이 그림, 강아지 그림. 그러나 크레파스는 더 이상 그림을 그려낼 수가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크레파스를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으며, 그는 부바와 키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크레파스 하나만 있으면, 우린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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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그 여자의 사정 (2) 21.11.06 22 1 11쪽
115 그 여자의 사정 (1) 21.11.05 1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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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부바와 키키 (3) 21.11.04 18 1 13쪽
111 부바와 키키 (2) 21.11.03 1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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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추격자 (4) 21.10.31 21 1 13쪽
104 추격자 (3) 21.10.31 18 1 12쪽
103 추격자 (2) 21.10.30 20 1 13쪽
102 추격자 (1) 21.10.30 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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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생망 (2) 21.10.28 2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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