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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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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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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75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1.10.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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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이생망 (3)

DUMMY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9월의 첫 주가 무탈히 지나가고 어느덧 둘째 주 금요일이 되었다.

크림파스타와 청국장이 동시에 나온 기괴한 점심시간이 끝나고, 황대근은 매점으로 달려가 메론맛 막대 아이스크림을 입에 베어 물며 입 안을 정화했다.


"야! 나도 사 줘!"


그때, 양아치 마냥 계산도 하지 않은 아이스크림의 포장을 뜯고 냅다 입에 박아버리는 이시연 때문에 황대근은 결국 2인분의 아이스크림을 계산해야만 했다.


"야, 나 고민 있다."


운동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 이시연의 아이스크림이 재빨리 녹기를 바라며, 황대근이 물었다.


"뭔 고민?"

"요즘 엄마가 수상해."

"....너희 어머니는 저번에도 수상하다고 하지 않았냐?"

"우리 엄마 욕하는 거야, 지금?"


황대근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욕이야?"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패륜아...."

"아! 입 다물고 뭔 고민인지 말이나 해!"


뚝. 황대근의 바람이 통한 것일까, 이시연의 막대 아이스크림은 밑에서 부터 재빠르게 녹아 그녀의 손을 적셨다.


"아~ 정말!"


손에 묻은 녹아버린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그녀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안방에 비상금을 두는 비밀장소가 있거든?"

"....너한테 들켰으면 그건 더 이상 비밀장소가 아닌 거 아니냐?"


이시연이 두 눈을 흘겼다.


"입 다물고 내 고민이나 들어!"


황대근은 두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비상금을 두는 비밀장소, 아니 장소가 하나 있단 말이야. 그런데 그곳에 돈이 계속 사라지고 있어."

"네가 훔쳤냐?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안 훔쳤어! 엄마가 구영원에 빠지고 한동안은 그곳에 돈이 안 빠져나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돈을 구영원에 갖다 바치더란 말이야. 걱정이 되니까 그 장소를 계속 주기적으로 살피고 있는 중이라고. 그런데 최근 들어서 돈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어!"


황대근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돈이 좀 필요하셨겠지. 우리 엄마도 보면 가끔 월급 다 떨어져서 생활비 걱정 하시더라. 그럴 때를 대비해서 숨겨 놓은 돈을 쓰는 거지."


이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며 땅 바닥을 쳐다보았다.


"아니, 아니야... 뭔가 이상하다고.... 뭐라고 해야 하지, 마치 그 돈봉투를 누군가에게 바치러 가는 사람 같았단 말이야."


그녀의 시선의 끝에는 개미 때가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여왕개미에게 바치러 기어가고 있었다.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금요 오후 2시 예배가 끝이 나고, 이생망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도들에게 인사를 하는 영부에게 달려갔다.

그는 요즘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영부의 말대로 큰하늘님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맡기고 나니 일이 왠지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9급 공무원을 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또 군대에 있을 때 모아두었던 돈들과 최근 열심히 일해 번 알바비가 들어있는 적금통장 덕분에 나름 쓸모 있는 하나의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이다.


물론, 그 적금통장이라는 것이 이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긴 하지만.


"영부님!"


이생망의 활기찬 인삿말에 영부는 특유의 인자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 이생망 형제님! 믿습니까."


이생망이 화답했다.


"믿습니다! 영부님! 이것을 받아주세요!"


그가 건넨 것은 매우 굵직한 굵기의 하얀 돈 봉투였다.

영부는 이게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여우의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형제님? 이게 무엇입니까?"

"이 돈을 큰하늘님의 영광과 영부님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바칩니다! 부디 잘 쓰이게 도와주세요! 제가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모았습니다! 이건 저의 전부입니다!"


원래 세 번 정도는 거절하는 게 예의라고, 영부는 사양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큰하늘님께서는 이런 속세의 재물보다는, 형제님의 순수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형제님의 어린 아이와 같은 맑은 영혼을 원하십니다."


영부의 능구렁이같은 거짓말에 이생망은 울망울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역시! 영부님은 대단하십니다! 영부님 덕분에 제가 드디어 인간 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하, 저에게 감사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큰하늘님 덕분이니까요."


턱—


이생망은 억지로 돈 봉투를 영부에 손에 쥐어주었다.


"누가 복음 5장 28절의 말씀에 의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라라'라고 적혀 있다고 영부님께서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영부의 손에 돈 봉투를 쥐어주는 것을 성공한 후, 이생망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예전 같으면 저는 누군가에게 제 돈을 단돈 100원라도 주는 것을 아까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얼마 전, 얼마 전, 영부님께서 알려주신 영신수련 덕분에 저는 나눔과 베풂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부님, 영부님이야말로 이 혼란한 세상을 평정하러 온 구원자이십니다. 저는 영부님을 믿습니다!"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5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황대근은 국어선생에게 질문을 하러 가기 위해 2학년 교무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국어에 약했다. 물론, 그는 문과생들 보다 국어 성적이 월등하게 높은 전교 1등이기는 하다.

허나 원래 있는 놈이 더하다고, 그는 조금이라도 의아한 부분이 있다면 논리적으로 이해가 갈 때까지 쉽게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드르륵—


교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전주한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 싸맨 채 중얼거리고 있었을 뿐이다.

결국 황대근은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나오려고 했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요즘 젊은 것들은 노력을 안 한다니까요?"


황대근은 아직 교무실 안에 있었고, 교무실 문 바로 밖에는 두 남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와 특유의 말투를 들어보니, 곽두팔과 김철환인 게 분명했다.

교무실을 빠져나가려 했던 황대근은, 어쩔 수 없이 문 앞에 서서 둘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우리 구영원에 새로운 형제님이 오셨어요. 이생망이라고, 곽선생님도 아시죠?"


황대근은 문틈 사이로 둘의 얼굴을 보았다.

곽두팔은 안색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원래도 없던 볼살이 더욱 쏙 들어가서 마치 덩치 큰 해골 같았다.

그런 동료선생의 초췌한 몰골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철환은 계속 떠들어 댔다.


"솔직히, 제 생각엔 이생망형제도 좀 이상합니다. 하는 것도 없으면서 인생이 안 풀린다고 하다니요? 제가 젊었을 때는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는데요? 군대? 그거~ 증말! 남자새끼가 그거 하나 갔다 와서 징징대면 으따 써먹습니까? 하여간~ 요즘 젊은 놈들은~ 정신 머리가 글러 먹었습니다."


계속되는 김철환의 무례한 언행에 황대근은 자신에게 하는 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곽선생, 안 그렇습니까? 솔직히 영어 하나만 프리토킹하면! 예? 대기업에서 어서 옵쇼~ 하고 데려가죠~!"


드르륵—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고 해야 할까. 갑자기 문을 연 김철환과, 하필이면 그 앞에 멀뚱하게 서 있는 황대근은 서로를 마주 본 꼴이 되었다.

황대근의 키가 훨씬 더 큰 까닭에, 김철환은 문 앞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뭐야? 황대근이? 교무실엔 왜 왔냐?"

"아, 유하린 선생님 좀 뵈려고 왔는데, 안 계시네요. 다음에 올 게요!"


황대근이 서둘러 교무실을 빠져나가자마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철환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쑤시개로 누래진 이빨을 쑤시는 동안, 곽두팔은 두렵고 걱정되는 눈빛으로 2학년 2반 교실로 들어가는 황대근의 뒷모습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대근건설 - 메모리아부서)



이틀 뒤 일요일, 대근건설은 쉴 틈 없이 쳇바퀴마냥 굴러가고 있었다.


일 년 365일 내내 휴일도 없고 공휴일도 없고, 심지어는 휴가도 없는 이 사상 최고의 블랙기업은 일요일이라고 일을 쉰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다.

일을 쉬는 순간, 인간 황대근의 목숨은 위협을 받게 되니까 말이다.


메모리아부장 컨트롤은 더 이상 황대근과 다른 메모리아부서 직원들에게 간섭을 하는 것을 포기한 듯 했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월급은 잘 나오니, 굳이 일을 벌일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요놈의 평택은 대체 뭐가 문제지? 굿이라도 한판 벌여야 하는 거 아닌가?'


한편, 직원 휴게실 소파에 앉아있던 황대근은 릴리가 준 자료를 읽고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평택에 살던 3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사망자의 이름은 이생망, 구영원에 다니던 신도이며 최초 발견자는 사망자의 부모님이라고 한다.

그의 부모님은 죽은 아들을 발견하고는 즉시 119에 신고했고, 과학수사대 역시 동행했다.

그들은 이생망의 부모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간단한 현장조사를 마친 후 이렇게 판단했다.


[외상없음, 이상징후 없음, 집안이상없음, 사건성 없음.]


결국 단순한 자살로 판단이 난 것이다.

허나 황대근은 의심스러웠다.


'아무래도 구영원 신도라 그런지, 영 찜찜하군. 아, 마침 여기 경찰이 조사한 부분도 있네.'


경찰이 조사한 결과, 이생망의 부모에 따르면 아들은 내년이면 30대 중반인데 그는 여전히 무직이었고, 9급 공무원 준비를 한답시고 책도 사고 별 짓을 다하기는 했으나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모아둔 돈은 출처를 알기 힘든 어딘가에 쏟아 부어버렸으며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을 뿐 적극적인 구직을 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과거 이생망의 SNS등을 추적해보니, 그에게는 인생에 대한 회의감과 절망감, 21세기 젊은이들 특유의 무력감이 엿보였다.


'앞길이 어두운 자신의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했다라..... 참 쉽고 간편한 추리로군.'


타악—


황대근은 신경질적으로 자료를 구긴 후 소파 앞 탁자에 그것을 던져버렸다.

구겨진 자료는 탁자의 끝 부분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더니 곧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일단 영부가 13년 전 범인이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화 된 것 같고. 문제는 이거야. 영부는 왜 죄 없는 사람들을 자꾸만 죽이는 거냐는 거지. 게다가 살인방법이 너무 비겁해. 자신은 책임에서 벗어나고, 타살을 자살로 위장하고 있잖아.'


자연스럽지 않은, 매우 급작스러운 죽음이다.

이생망은 분명, 영부에게 세뇌 당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평택은 터가 안 좋은 게 틀림없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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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부바와 키키 (3) 21.11.04 18 1 13쪽
111 부바와 키키 (2) 21.11.03 1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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