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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2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일반소설

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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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1
추천수 :
623
글자수 :
659,060

작성
20.05.1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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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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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Limitation. 임무를 마친 자의 여유

DUMMY

수휘의 심사가 끝나자 인길이 마이크를 들고 다른 심사위원들을 보며 말했다.


“저는 무리 없이 잘 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심사위원들 사이에도 견해 차이는 있게 마련이죠. 여우비의 음악적 성향이 아무래도 저와 밀접한 쪽이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요.”

“잘한 건 맞으니까요.”


다른 심사위원들이 긍정하자 인길이 말을 이었다.


“다만 저는 <내면의 전쟁> 후반부, 은별 양이 ‘그대의 집에는 단 하나의 거울도 남아있지가 않잖아요.’에서 거울을 쓰러뜨리고, 그 뒤에 ‘그대’ 대신에 ‘나’로 바꿔서 노래한 부분에서 놀랐어요. 이 부분에서 은별 양의 자아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꼈습니다. 댄스 참가자들도 이런 부분은 눈여겨 봐두세요. 격렬한 댄스도 좋지만, 이렇게 조그만 퍼포먼스와 변화만으로도 얼마든지 자기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Fire>에서는 ‘춤을 춰요’를 ‘박술 쳐요’로 바꿨고, 살랑살랑 흔드는 곳을 엉덩이가 아니라 온몸으로 바꿨어요. 댄스곡이었던 원곡을 춤 없이 부르려면 이런 부분도 분명히 고려해야죠. <Fire>에서 어색한 부분이 들려서 이유가 뭘까 싶었는데 수휘 심사위원이 알려주었죠? 이렇게 저는 오늘도 묻어가네요. 어쨌든 잘 들었어요.”

“까르르!”

“이번에는 제가 좀 길어요.”


감사 인사를 하기도 전에 여원이 한 말에 서희와 은별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여원이 길게 말하는 내용은 대부분 단점이기 때문이다.

객석에 있던 참가자들도 웃음을 멈추고 긴장했다.


“은별 양.”

“네.”

“여우비의 미션 중에 은별 양의 비중이 높게 한 건 제가 넣은 거고, 둘 다 기성곡으로 하라는 건 수휘 심사위원이 넣었어요. 의도가 뭐라고 생각했어요?”

“그 동안 제 비중이 적었고, 저희가 자작곡 없이 어느 정도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 알고 싶으셔서 미션을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맞아요. 한편으로 저는 팀 내에서 은별 양이 메인보컬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어요.”


여원은 숨을 고른 후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갔다.


“레게 잘 들었어요. 근데 저는 두 사람 노래 들으면서 잘한다고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뭔가 불편하게 들렸습니다.”


심상찮은 말에 객석이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 팀은 이미 3라운드 음원을 제출했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 심사위원들이 여우비를 심사하는 동안 두 사람이 부른 음원을 들어봤어요. 그걸 듣고서야 이유를 알았죠. 다른 심사위원들이 지적한 부분도 그 포인트예요.”

“···.”

“<Fire> 무대는 실패입니다. 은별 양이 감정 조절을 잘못했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은 듯했다.

은별은 천천히 인사하며 굳어지려는 표정을 애써 폈다. 풀렸던 긴장이 아까보다 더 자리함과 동시에 잔잔했던 가슴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내면의 전쟁>은 음원이나 무대에서나 거의 같았고 거울 퍼포먼스 들어간 것도 좋았어요. 두 곡 사이에 들어간 은별 양의 독백 부분의 멜로디도 좋았고, 서희 양의 랩도 연결 역할을 충실히 했어요. 지난번에 지적했던 은별 양의 자세도 나쁘지 않았고, 바이브레이션과 벤딩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두드러지지 않았어요. 이런 게 큰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죠.”

“그렇죠.”


지노의 변죽에 여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은별 양이 갑자기 세게, 혹은 약하게 불러서 불편하게 들렸던 부분이 음원에서는 제가 바라는 수준으로 정확하게 불러져 있어요. 이 말은 은별 양이 연습 때도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아!”

“그렇군요.”


수휘와 지노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제가 은별 양이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건 원래 이 정도로 부르고 말 사람이 아닌 걸 알기 때문입니다. 녹음된 음원을 이 무대에서 절반도 재현하지 못했는데, 음원에서만큼 힘을 빼고 불렀다면 이 지적은 없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은별은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정완은 <Fire>를 연습할 때 원곡만큼 세게 부를 필요가 없다고 여러 번 말했고, 은별 역시 그 점에 공감하고 힘을 빼려고 노력했을 뿐 아니라 사전 인터뷰에서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연습할 때와 다르게 노래를 시작했고 여원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은별 양은 힘을 빼고 노래할 줄 알고 감정 표현도 좋아요. <내면의 전쟁>에서는 어두운 방에서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며 독백하고 성찰하다가 거울까지 쓰러뜨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노래도 거기 맞게 담담히 불렀어요. 근데 <Fire>로 연결하면서 감정선이 팍 튀다 보니 실수가 나왔고 불안정해진 거죠. 잘하다 못해서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서희는 은별의 허리에 손을 얹고 연신 토닥이고 있었다.


“뮤지컬 넘버에서도 감정의 크기가 롤러코스터처럼 급격히 변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관객들이 따라갈 수 있을 만큼의 곡선으로 움직여요. <Fire>에서 은별 양 감정의 크기는 여러 직선을 모아 놓은 것 같이 들렸고, 어떤 부분에서는 조울증 환자가 부른 것처럼 느껴졌어요. 세상을 향해 자유롭게 달려가려는 감정이 은별 양 본인 안에 갇혔으니까 공감을 다 얻지 못한 거죠.”

“아무래도 음원을 들어봐야겠는데요?”

“들어보세요. 제 말이 이해될 겁니다.”


여원은 수휘의 말에 답한 후 말을 이었다.


“여우비는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노래 실력이나 곡에 대한 이해가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어요. 충분한 연습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쳤고, 무대에서는 연습 때 몸에 밴 대로 표현하고 있어요. 이번엔 자기감정에 취해서 오버했는데, 그걸 느끼고 의식적으로 톤을 낮추면 이렇게 돼요.”

“그렇죠.”

“두 사람은 지금 아마와 프로의 경계에 서 있어요. 프로 레벨이 되려면 실수가 없어야 하고, 실전에서 연습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걸 생각하고 들어가야 해요. 노래 속 상황에 들어가서도 표현에 집중해야 하고요. 지금처럼 하면 공연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방송 무대에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며칠 전 정완은 서희와 은별의 다음 단계가 ‘연습 중 가장 좋았던 것만을 뽑아내는 무대’이고 그 다음인 마지막은 ‘최선이 아니어도 최고처럼 보이는 무대’라고 이야기하면서, 그것은 제 능력 밖이라고 했다.

서희는 여원의 평가가 방송 무대에서 최고처럼 보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노래를 즐겼지만 그게 실수가 용인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Fire>의 원곡자인 2NE1이 좋은 예죠. 그 사람들은 무대에서 그냥 노는 것처럼 보여도 실수를 거의 하지 않으니까요. 시청자 분들이 봐주시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러다보면 가수로서 수명이 짧아집니다. 용두사미의 무대라서 아쉬웠습니다. 여기까지 할게요.”

“감사합니다.”

“이제 캐스팅입니다.”

“저예요.”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인길이 말했고 여원이 손을 들었다.

서희와 은별은 긴장 어린 얼굴로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여우비 지명의 첫 순서는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였고, 다음 순서인 지노도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아직 아무도 캐스팅하지 않았어요.”

“···.”

“그래서 저는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의 첫 팀원으로 여우비를 캐스팅하겠습니다. 잘해 보죠.”

“네?”

“크으으.”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은별은 놀란 토끼눈으로 굳었다가 서희가 먼저 인사한 후에야 객석 여기저기에 인사했다.

TYK의 지노는 앞서 여원이 혼성 듀엣 ‘솔베이지’를 캐스팅하려 할 때 우선권을 썼다. 그래서 그는 여우비를 캐스팅하려고 마음먹고 있다가 고개를 높이 들고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또 암사자 하셨네요.”

“조금만 고치면 대박인 친구들이에요. 제 캐릭터가 이런 걸 어쩌겠어요.”

“하아. 저 친구들 데려가서 흑인음악 시켜보려고 했는데.”

“정 원하시면 나중에 TYK에 파견 보낼게요.”


여원은 지노의 말에 간단히 대꾸한 후 미소 어린 표정으로 서희와 은별을 보았다.


“두 사람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한 단계만 넘어서면 프로인데 넘어설 수 있어요. 다만 지금까지의 노력 이상이 필요하다는 건 알아두세요. 이따 보죠.”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


서희와 은별은 객석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무대 뒤편으로 퇴장했다.

제작진이 두 사람에게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의 로고가 새겨진 목걸이를 건네자 은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완은 인터뷰실 앞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은별은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서희가 정완의 손을 잡아 은별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축하한다. 잘했어.”

“죄송해요.”

“쓸데없는 소리한다.”


은별은 서희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눈물을 흘렸고, 서희와 정완은 그녀를 다독여 주었다.

정완은 서희를 바라보다 그녀의 어깨를 가리켰고, 서희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완이 서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서희 잘했어.”

“감사해요. PD님 덕분이에요.”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냥 너희 잠재능력만 살짝 건드린 걸.”


이때 인터뷰실의 작가가 이들에게 손짓했다.


“여우비 인터뷰 들어오세요.”

“들어가. 복도에 있을게.”

“네.”


정완은 뒤돌려다가 인터뷰실로 들어가려는 은별을 붙잡았다.


“은별아.”

“네?”

“행여나 내 얘긴 하지 마.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야.”

“알아요. 걱정 마세요.”


서희가 정완에게 대답해주고 은별을 다독이며 인터뷰실로 들어갔다.

인터뷰는 은별의 눈물이 멈춘 후에야 시작되었다.


“캐스팅된 소감 말씀해주세요.”

“먼저 저희를 뽑아주신 담여원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무대 들어갔는데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근데 은별 양이 담여원 심사위원님께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작가의 말에 은별의 눈에 또 눈물이 고였고, 서희가 그녀를 다독이며 답했다.

경연이 끝나자마자 리더 역할은 다시 서희에게 돌아와 있었다.


“이번 라운드에서는 은별이가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두 곡 모두 선곡했고, 가사나 곡의 흐름, 두 곡의 연관성 같은 것도 얘가 정한 대로 갔어요. 그리고 오늘은 리더 역할도 얘가 맡았습니다.”

“그렇군요.”

“저한테 말은 안 했지만, 해본 적 없는 일인데다가 자기가 잘못하면 떨어진다는 생각에 힘들었을 거예요. 올라갈수록 부담이 큰 상황에서 제가 짐을 나눴어야 했는데, 언니로서 은별이한테 많이 미안해요.”

“아, 아니요.”


은별이 눈물을 닦아내고 마음을 추스르며 고개를 들었다.


“저는 <내면의 전쟁> 다 부르고 아주 만족했어요. 연습에서 제일 잘했을 때만큼 한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긴장이 풀렸고 <Fire>를 평소와 다르게 불렀어요. 첫 소절에서 꼬인 게 느껴졌죠.”

“그런데도 담여원 심사위원님은 여우비를 캐스팅하셨어요. 은별 양, 어떻게 생각해요?”

“다른 심사위원님들도 제 노래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다면 시청자 분들도 당연히 불편함을 느끼시겠지요. 담여원 심사위원님께서 어렵게 캐스팅해 주셨는데, 그분의 껌딱지가 되어서라도 제 문제점 다 고쳐서 많은 분들 실망시켜드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서희 양도 앞으로의 각오 얘기해주세요.”

“<C-POP Artist>에 참가하기 위해 저희보다 더 열심히 준비한 분들 계실 거예요. 그분들한테 죄송하지 않도록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서희의 이 말에 작가는 이들의 초심을 떠올리고 물었다.


“두 사람은 예전 인터뷰에서 그저 노래하고 싶어서 여기 나왔다고 했죠? 노래가 진통제나 도피처라고도 했고요. 생각이 바뀐 건가요?”

“네. 저는 한 번이라도 무대에 서고 싶어 나왔는데, 이제는 좋은 가수로 더 많이 무대에 서고 싶어졌습니다.”


은별의 명확한 답에 작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희를 보았다.

서희는 은별마저 자신을 바라볼 때에야 답했다.


“저는 아직 그것까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가수 아닌 다른 분야로 간다고 해도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얻었고, 큰 꿈 하나가 생겼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큰 꿈은 뭐예요?”

“노래로 말씀드릴게요.”

“또 하고 싶은 말씀 있나요? 감사 인사라든지.”

“최근에 씨팝 준비하느라 친구들을 거의 못 만났어요. 걔들한테 미안하고, 부모님께 아직도 말씀 못 드렸는데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도 친구들과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네. 여기까지 하죠. 수고 많았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서희와 은별은 밤 9시 30분에 여원이 주관하는 뮤컬트 팀원들의 미팅이 있을 예정이라는 공지를 전달받았다.

정완은 인터뷰실 옆 복도에 커피를 사 놓고 앉아 있다가 두 사람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고생했다. 인터뷰는 잘 했고?”

“네.”

“PD님 얘기는 안 했어요.”

“그래. 잘했다. 마셔.”


정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희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은별이 물었다.


“커피 안 마셔요?”

“난 집에 갔다 올게. 좀 쉬어야겠어.”

“네.”

“너희들 내일 당장 방송 나올 수도 있으니까 SNS는 당분간 안 하는 게 좋겠다.”

“저번에 비공개로 바꿨어요. 이거 준비하니까 귀찮더라고요.”

“이따 닫을게요.”


정완은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쉬는 시간이 되어 몇몇 참가자들이 밖에 나왔고 이들을 바라보다 들어가곤 했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은별이 말했다.


“나 오늘 못했죠?”

“아니. 잘했어.”

“통과했다고 다 잘한 건 아니잖아요. 실수도 많았고.”

“아니. 실수 없는 것보다 더 잘된 거야.”

“다음엔 정말로 연습 많이 할 거예요. 실수하고 붙는 게 더는 용납이 안 돼요.”


정완은 은별을 뚫어지게 보다 말했다.


“앞으로는 꼭 그렇게 해. 근데 이번엔 실수해서 다행이었어.”

“왜요?”

“실수가 없었으면 TYK에 캐스팅됐을 테니까.”

“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말에 서희와 은별이 눈을 크게 떴다.


“은별이가 실수할 때 여원님 얼굴이 딱 굳었는데, 난 그걸 보고 됐다 싶었어.”

“왜요?”

“여원님은 리스트에 없는 참가자는 실수를 하든 똥을 싸든 표정 안 바꾸시니까.”

“아!”

“나도 너희들이 뮤컬트 엔터에 가길 바랐어. 근데 너희들이 아까 완벽했으면 고민 좀 하셨을 걸? 프로 레벨은 아닌데 눈에 띄는 단점이 없으면 어디부터 손봐야 할지 애매하니까.”


정완은 서희와 은별을 프로듀싱하면서 <C-POP Artist>의 이전 방송을 모두 보았을 뿐 아니라, 그 기간 동안 심사위원들의 인터뷰 기사 및 각 기획사에 캐스팅되었던 가수들의 근황까지 모조리 확인했다.


“아까 지노님이 너희들한테 흑인음악 시켜보려고 했다고 하셨지? 그거 괜히 하는 소리 아니야. TYK에서도 너희들을 캐스팅하려고 했단 뜻이지.”

“네.”

“그 회사 입장에서 너희들은 구하기 힘든 원석이고, 거기서는 특히 서희를 높이 평가하고 있을 거야. 발성, 성량, 정확한 발음에 가창력까지 갖춘 여성 래퍼는 희귀하니까.”

“거기다 얼굴이랑 몸매도.”


은별이 감정을 추스르고 조용히 덧붙인 말에 서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야! 네가 더 예쁘거든? 네 몸매도 내가 다 봤는데.”

“너희들 이제 진짜 듀엣이구나. 서로 띄워줄 줄도 알고.”


정완의 말에 서희와 은별이 픽 웃으며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듀엣은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해.”

“네.”


정완은 원래의 화제로 돌아갔다.


“근데 TYK 출신 가수들 지금 뭐하냐? 래퍼들은 대부분 계약 중도해지하고 힙합 전문 레이블로 갔고, 거기서 제일 잘하는 모성일도 지금 케이블 TV에서 하는 힙합 오디션에 나갔지. 모던 로커나 펑키 뮤지션들은 소식이 없고, 지혜경이나 손세빈처럼 연기 쪽으로 간 사람들도 있어. 재계약은 대부분 안 하고.”

“그렇죠.”

“그 회사는 트레이닝이나 데뷔 후 지속적인 활동 측면에서 뮤컬트보다 약해. 그래서 난 너희들이 가수가 하고 싶어졌을 때 TYK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인디밴드연합은요?”

“거긴 안 넣은 게 아니라 못 넣었을 거다. 수휘 선배는 내가 너희들 거기 보내려고 이거 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아실 테니까.”

“아.”

“거기 가고 싶음 말해. 전화 한 통만 넣으면 되니까. 아니, 너희들이 수휘 선배한테 직접 얘기하면 계약서 들고 헬렐레하면서 뛰어오실 걸?”


두 사람뿐 아니라 참가자들 대부분은 <C-POP Artist>에 참여 중인 네 기획사 중에서 특히 KP와 뮤컬트 엔터테인먼트를 선호했다.

다른 두 회사에 비해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릴 기회도 많고 소속 연예인에 대한 사후관리도 잘 되기 때문이다.


“TYK도 요샌 괜찮아졌잖아요. 트레이너들도 많이 영입했고요.”

“그렇긴 하지.”

“근데도 저희가 뮤컬트에 가길 바라셨어요?”

“응. 너희들은 무조건 담여원님한테 트레이닝 받아야 한다.”

“왜요?”

“TYK에서 트레이너 백 명을 영입해도 담여원님은 없으니까.”

“네?”


정완은 보컬트레이너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선배 보컬트레이너가 담여원님보고 ‘벌판에서 미래를 캐낸 분’이라고 했어. 본인이 직접 뛰면서 오랫동안 가수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셨으니까.”

“그래요?”

“엔터테인먼트도 수익사업이야. 막말로 너희들 정도면 회사에서 여기저기 내돌려도 당장은 돈을 벌겠지만, 그럼 몇 년 못 가서 생명이 끝나. 근데 여원님은 생명력을 길게 유지하는 방법을 아셔. 씨바쌤이 툭하면 회사 말아먹고 소송 져 가지고 여원님이 벌어놓은 돈 털어 가셨던 건 알지?”

“풉! 네.”

“신곡도 못 내는 상황에서 사람들한테 잊히면 안 되고 돈은 벌어야 하니까 어디에든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데, 한 물 간 가수로 박혀 버리면 당장 공연장이 줄어들고 페이부터 뚝 떨어져. 그분은 그걸 전부 본인 힘으로 극복하셨지. 배워야 돼.”


정완은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희들쯤 되면 가창력 올리고 한계를 넘는 게 우선이 아니야. 교과서에 맞든 안 맞든, 발성이나 성량의 한계 안에서 언제 어디서든 제대로 된 감성과 목소리를 표현하는 게 중요하지. 이것도 그분한테 배워야 하고.”

“네.”

“그리고 여원님은 무대란 무대는 죄 서 보셨으니까 무대의 생리를 잘 아실 거야. 여러 방송프로 출연하시면서 창법 다 다르게 하고 이미지 바꾸고, 본인에게 변화를 주면서 지금까지 살아 남으셨어. 뮤지컬 하신 것도 마찬가지고···. 나 따위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분은 본인을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활용할 줄 아는 분이야.”

“전에 PD님이 저한테 자기평가 얘기하셨던 게 그거예요?”

“맞아. 가서 그거 잘 배워. 그럼 최소 10년은 가수로 살 테니까.”


서희의 말에 정완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은별은 눈을 빛내며 정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지금까지 너희들은 무대에서 누구보다 빛났어. 근데 다음부터는 그렇지 않을 거야.”

“왜요?”

“다음 경연에선 생방송 진출자 선발해. 거기서부턴 노래가 완벽해야 해. 가창력이든 감성이든 퍼포먼스든 전부 다. 그게 프로고···. 그래서 지금은 너희들한테 무대 경험이 많은 분이 필요한 시점이야.”


정완은 조곤조곤 이야기하다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다행이다.”

“왜요?”

“이제 나는 너희들한테 더 이상 가르쳐줄 게 없으니까.”

“오늘이 마지막이라서요?”

“아니. 난 너희들한테 필요한 건 다 알려줬고 너희들은 잘 받아들였어. 이제부터 너희들이 갈 길은 내가 몰라.”


정완은 지금 막 마지막 임무를 마쳤고, 서희와 은별이 예상할 수 있는 최대의 성과를 냈다.

서희는 정완의 미소 띤 얼굴에서 임무를 완수한 사람의 여유를 보았다. 그가 웃는데도 뜬금없이 가슴이 싸해 왔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야. 그 다음은 담여원님한테 배워.”

“어쩐지 PD님이 우리를 담여원 심사위원님한테 인수인계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인수인계는 다른 사람들한테 했고, 어쨌든 너희들은 좋은 기회를 잡았으니까 무조건 그분한테 달라붙어서 배워.”

“네.”


서희와 은별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9시까지 오면 되지?”

“더 늦게 오셔도 돼요. 팀원들 미팅이 9시 반에 있대요.”

“그럼 10시까지 올게. 그 전에 끝날 것 같으면 전화해. 갈게.”

“쉬세요.”


서희는 정완이 사라질 때까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은별은 서희와 정완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이때 여원은 이들 근처에 있던 길 꺾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리고 있었다.


작가의말

일요일이 되자마자 한 편 올립니다.


다음 연재는 5월 12일 화요일인데, 이날은 아내가 준비해왔던 사업을 개업하는 날입니다.

저 역시 바빠서 그날 연재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서 내일 밤에 올릴게요.

성원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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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욱일302
    작성일
    20.05.10 06:34
    No. 1

    정완이 주인공 맞죠 건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진사로
    작성일
    20.05.10 23:53
    No. 2

    정완이 주인공 맞습니다...만, 처음에는 서희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썼습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정완의 분량이 늘어나네요. 이 작품의 스토리상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 주인공이 되어버렸습니다.
    욱일302님 감사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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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Slough. 그녀의 취미 20.05.31 161 6 31쪽
20 Tears. 한계가 아닌 줄 알았는데 +6 20.05.28 181 11 23쪽
19 Abyss. 눈물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때 +6 20.05.24 176 9 22쪽
18 Restart. 욕심이 되어버린 밤 +2 20.05.21 193 9 27쪽
17 Separation. 신데렐라처럼 +4 20.05.17 183 11 24쪽
16 Friendship. 내일 일어날 일 +4 20.05.14 192 8 23쪽
» Limitation. 임무를 마친 자의 여유 +2 20.05.10 190 11 21쪽
14 Round 3. 자신과의 싸움 +4 20.05.07 198 11 23쪽
13 Preparation. 조금 덜 치열해도 괜찮은 곳 20.04.30 209 10 29쪽
12 Wedding. 순정남녀가 순정부부로 20.04.23 225 9 29쪽
11 Goodness. 이럴 줄 알았으면 +2 20.04.21 222 8 23쪽
10 Round 2. 치열하게 따분한 날 +2 20.04.12 200 8 23쪽
9 Deeper. 녹음이 잘 되지 않는 이유 +8 20.04.09 237 11 22쪽
8 Fangs. 그녀의 실수 +8 20.04.07 233 12 28쪽
7 Round 1. 화살은 누가 쏜 걸까 +4 20.04.02 225 11 29쪽
6 Reoccurrence. 묻고 싶었던 말 +4 20.03.31 242 11 31쪽
5 Suggest. 좋은 제안이지만 +2 20.03.29 239 13 29쪽
4 Preliminary 2. 비 오는 아침 +2 20.03.24 265 11 29쪽
3 Preliminary 1. 저 사람들 또 +2 20.03.22 266 10 30쪽
2 Making. 만들어야 할 게 노래만은 아닌 팀 +4 20.03.15 353 13 28쪽
1 Prologue. 오래 전 약속 +4 20.03.15 713 16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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