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일 연재분은 오늘과 비슷한 시간에 연재되겠습니다!
-文pia딸기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앙금고라니 작가님!!!!!!!!!!!!!!!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수호(秀昊)작가님!!!!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주인공의 아버지인 호콘 시구르손, 그리고 큰형 에이리크 호코나르손은 984년(혹은 986년), 혜룽가바우그르 해전에서 욤스바이킹 군단이 이끄는 덴마크 침략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했습니다. 전투의 자세한 전개 과정은 현대까지도 불명이지만, 호콘의 의도대로 해상전이 진행되었고 욤스바이킹 군단이 대패한 것은 명확한 사실로 보입니다. 에이리크 호코나르손은 이후 아버지를 본 받아 또 다른 노르웨이 왕을 수장 시킵니다. 라데의 야를 집안은 2대가 킹슬레이어인 보기 드문 집안으로 역사에 남습니다.
+’파르티안 샷’의 유래가 된 사건은 그 유명한 삼두정치의 크라수스가 죽은 카르헤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중장보병 주력의 로마군은 경기병 유목민족 주력의 파르티아 인들에게 역사상 최악의 대패를 당하지요. 로마 군단병들은 화살만 날리고 도망 다니는 궁기병들을 잡으려고 어떻게든 시도했지만, 경기병들은 도망가는 중에도 허리를 돌려 화살을 날리며 로마군을 농락합니다. 로마군은 화살이 떨어지게 되면 반격에 때가 오리라 생각하고 인내했지만, 파르티아 인들은 낙타와 보급 마차에 화살통을 가득 쌓아놓고 스웜 전술을 통해 끊임없이 화살을 퍼부어 로마군을 박살냅니다.
+흥미롭게도 카르헤 전투에서 파르티아 인들이 채택한 전술- 보급마차를 통한 궁기병들의 끊임없는 화살 보급-은 훗날 베로이아 전투에서 똑같은 유목민족 페체네그 인들이 채택하여 재활용됩니다. 동로마 군 역시 이에 굉장히 큰 피해를 입지만, 어제 설명 드린 것처럼 480명의 바랑인 친위대가 돌격하여 화살 보급 마차 자체를 때려부수며 승패를 뒤집을 수 있었습니다.
+튀르크 계 유목민들은 전투를 한 번 벌일 때 전 재산과 가족들까지 전부 데리고 이동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튀르크 인들이 한창 거지였을 때 생긴 이 습성은 종족 전체가 떡상해서 부자가 된 뒤에도 유지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가량 뒤, 룸 술탄국의 킬리치 아르슬란 과 1차 십자군의 도릴라이움 협곡 전투에서도 이 풍습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요. 매복까지 걸렸음에도 기어이 튀르크 경기병들을 박살낸 1차 십자군의 기사들은, 술탄이 도망치며 전쟁터에 남긴 재산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모은 군자금은 안티오키아 공성전을 역대급으로 무식하게 치르며 전부 고갈되어 버립니다.
아, 또한 베로이아 전투에서 패배한 페체네그 족이 소멸한 것 역시 근본적으로는 이 습성 때문이었습니다. 페체네그 주력 부대를 전멸시킨 동로마 군에 의해 부족 대부분이 포로로 잡히거나 학살되고 말았고, 결국 페체네그 인들은 재건의 여지조차 없이 완벽하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기반을 완전히 상실한 페체네그 족들은 이번에야말로 제국에 완전히 동화, 복속되어 제국이 멸망하는 때까지 이민족 경기병대로써 복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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