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용대운님의 작품중 한 대목입니다. 이 글을 읽다 문득 금강님이나 좌백님의 작품 중 이런 식의 가슴 울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나 싶어서...
그의 태도는 확고하고 진정이 되어 있었다.
그는 복수에 대한 차분한 계획과 확고한 자신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임무정의 성격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임무정과 원수를 진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부르는 법이에요. 전 당신과 그 분이 피를 보게 되는 걸 원치 않아요."
"할 수 없소. 그게 내 인생이오."
"당신은 이제 더이상 젊은 청년이 아니에요. 대다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좀 더 조용한 삶은 원하는 법이지요."
임무정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까."
그녀는 다시 가슴이 아팠다.
그것은 가슴 한 구석을 칼로 도래는 듯한 아픔이었다.
"무정. 정말 미안해요."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소."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니에요. 잘못이 있어요. 우리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잘못되었어요."
임무정은 흠칫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난 이제 새상을 알게 되었어요. 여자는 언제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모른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녀의 음성은 나직하면서도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난 어릴 때부터 정욕이란 사악하고 파괴적인 것이라고 배우며 자라 났어요. 당신과 같이...... 지냈던...... 한동안은......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세요."
그녀의 눈에 희미한 물막이 피어올랐다.
허나 그녀는 억지로 눈물을 속으로 삼켰다.
"나는 내 생애를...... 망치고 말았어요. 당신까지도 망쳤죠. 아버지 말씀이 옳았어요. 그 이래 나는 한번도 그걸 잊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에요."
임무정은 침침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불쑥 말했다.
"지금의 남편을 사랑하나보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저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어요. 젊은 처녀 때와 같은 방법의 사랑은 아닌지도 모르죠. 하지만 사랑하고 있어요. 여자가 젊은 처녀로 있을 수 있는 것은 평생에 한번뿐이에요."
(그리고 그때는 당신을 사랑했지요)
그녀는 입밖까지 나온 이 말을 간신히 억눌러 참았다.
그의 눈빛이 한층 쓸쓸해졌다.
"세월은 모든걸 변하게 하는군. 아니면 변하는 것은 사람이고 세월은 그냥 흘러가는 것일까?"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나서 간신히 말했다.
"이제 떠나주세요.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세요."
그는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버림받은 사람의 눈빛이었다.
"알았소."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입술을 마주치고 싶었다.
그를 지금도 사랑한다고,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허나 대신에 그녀는 두 손을 피가 나도록 꼭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입구로 갔다.
그녀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그녀는 나직이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Commen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