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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태풍은 베갯잇에 젖어

옆방에 자는 남자의 방에서  태풍 ‘타파’가 어떻고 저떻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온다. 창가에 부딛히는 비바람이 창문을 세차게 흔들어댄다.


일어나야지.


액정의 시간은 벌써 7시를 넘기고 있다. 시간과 날씨는 정자의 의식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람과 조직에 의해 피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여느 도시의 사람들과 달리, 정자는 조직을 통한 생계형 인간이기 보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소위 외톨이의 인생을 살아온 지 오래되었기에 자연이 만드는 날씨, 시간, 기온 따위의 외적 요소가 중요한 위치에서 그녀의 일상을 지배한다.


 오늘 아침이 그런 날이다. 날씨가 정자를 지배하는 전형인 그런 날.


‘일어나기 싫다. 저 자식은  밤새 티브이를 켜놓고 잔나? 휴...  아둔한 곰 같은 자식.’

옆방의 남자가 맘에 들지 않는 아침, 태풍이 자신을 침대에 머무르길 강요하는 아침에 정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없다.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자거나, 부가가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공상 속에 빠져드는 것뿐이다. 

‘곰은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어. 왜?  어디 아픈가? 바보 자식... 날 뒤척이게 만든 놈은 더는 남자가 아니야. 난 아직도 젖어 있는데... 멍청한 놈.’

해소되지 않는 욕구는 사람에게는 암세포와 같은 존재다. 은밀하게 생겨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정상 세포의 친구처럼 성장한 후, 힘이, 자신에게 스스로 감내할 힘이 생겼다 판단하는 순간, 마치 어둠에 쌓인 비밀이 빛에 의해 일순간에 걷히듯, 진면목을 드러내는 영악하고 질 나쁜 존재다. 사람에게는... 

하지만 암의 입장에서 인간이란 땅의 지배자와 한번 붙어볼만한 존재인 자신이 매우 자랑스런 자긍심의 존재인 것이다. 여하튼 덜 채워진 정자의 욕구는 암처럼 정자의 내면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렀다. 

오로지 곰 한 놈이 정자가 지니고 있는 불만의 유일한 숙주임이 분명한 아침이다. 이런 날 정자는 베갯잇에 일렁이는 태풍을 타고 밀려온 공상으로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맛깔나게 물들인다. 마치 쓸쓸한, 친구 없이 들이켜는 혼술이 결국 맛술로 바뀌는 그런, 혼자가 만드는 마법의 시간과 같이... 

‘왜? 천천히 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싫은 내색을 했는데도 모른다. 그냥 싸버리고, 또 싸버리고, 내가 무슨 수챗구멍인가. 더러운 조루쟁이. 크면 뭐해. 간질이다 마는 걸... 바보 곰탱이.’

세상에는 정의할 수 없는 존재들 투성이다. 그것들이 관념적인 것이든 실체적인 것이든 불문하고,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채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사랑, 정의, 악, 선과 같은 추상적인 것들 뿐아니라 물체, 인간, 중력, 생명과 같은 구체적인 것 또한 쉽게 정의할 수 없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그 의미들이 필요한 사람들 끼리 서로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통용되는 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그런 존재들 중 하나가 ‘섹스, 성교’이다. 쉽게 정의될 수 없는 실체이면서 관념의 존재다. 성교, 성행위 기타 여러 싸구려 단어들로 그것을 함의한다. 

싸구려일 수도, 고귀한 번식의 행위일 수도 있는 성교는 종교의 영역과 비슷한 모호함을 지닌, 양면의 검과 같은 인식 대상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교는 쾌락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다. 쾌감 없는 성교는 영혼 없는 인간과 같은 무의미한 존재 및 행위로써 시간을 희롱하는 은밀한 낭비일 뿐이다. 

정자는 쾌감을 성교의 유일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 정자에게 쾌감 없는 성교는 자신의 영혼을 살해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성교를 사랑이라 미화하는 얼빠진 치들에게 정자는 고한다. ‘사랑은 성교를 위한 예비 과정일 뿐이라고. 사랑의 완성은 성교이며 완성은 쾌락으로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결국 생산을 위한 쾌락이 아닌 쾌락을 위한 생산임을 정자는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바보 곰탱이, 혼자만 하는 것은 범죄인지도 모르는 멍청한 놈. 기억해, 남자, 너희들, 섹스란 함께 하는 것이란 말이야. 천천히 해. 바보들아. 천천히 하는 것이 쾌락의 전주임을 모르는 바보들아. 날 천천히 달아오르게 하란 말야. 힘들게 움직이지 마, 그냥 너의 뜨거운 것을 넣고만 있으면 돼. 힘 쓰지 말란 말야. 미련 곰탱이들아. 여자의 질은 살아움직인단 말야. 자궁도 세포도 모두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해면체와 같단 말야. 제발 혼자서 쇼 좀 하지마!’

뭉크가 절규하는 이유가 우울이라면 정자가 절규하는 이유는 쾌락 때문인 것을... 남자에게 복음 같은 절규를... 베갯잇을 깨무는 태풍의 아침에 정자의 절규는 쾌락을 찾아 길을 떠난다. 상상이란 날개를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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