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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미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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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그 할아버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날의 정자는 미쳤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었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자 개인 뿐만이 아니었다. 정자를 구성하고 있는 그 모든 것, 그녀의 의식, 감정, 이성, 의복, 액세서리 나부랭이들 모두가 정자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녀가 그날 지하철 안에서 들이마시고 내뱉었던 공기마저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경멸하기까지 했다.


*


서울에서 계절의 변덕을 가장 빨리 느낄 수 있는 북악산 자락의 새벽은 벌써 가을에 접어든 지 오래였다. 산중턱 곳곳에 병든 이파리들이 계곡에, 길섶에 다람쥐와 산짐승들이 먹이 행위를 하는 곳곳에 쌓여 바스락거릴 것이 틀임이 없는 그런 초가을의 새벽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바로 아침일 테지만 기분상 새벽에 무언가 하는 것을 좋아하는 정자는 대략 7시 전이면 새벽이라 일컫는다. 


 그런 새벽이면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편안함 대신 무언가 허전하다는, 인간이 필경 둘이 있어야 하는시간이 아님에도, 정자는 외로움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거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하다든가 하는 이성적 외로움이 아닌, 본능적 외로움임을 직감하는 데에는 채 일초가 걸리지 않았다. 뻐근한 외로움, 텅 빈 공간의 외로움, 비어 있는 공허함이 살을 할퀴는 외로움 같은 것들이다.


원시의 인간이 짦은 토가 같은 가죽옷을 걸치고 사냥을 나가는 것은 오로지 먹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획득한 사냥감은 여자를 사는 힘의 원천이다. 그런 심정으로 정자는 사냥에 나섰다. 욕정의 해결에는 속결이 답이다. 튀어나오는 못대가리는 박아넣어야 한다. 오래 두면 녹이 슬고 더 튀어나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가 된다. 어떤 때에는 치명적인 파상풍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뽑든지 쑤셔넣든지 속전속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쌓인 욕정은 큰 화를 일으킨다. 같은 피를 빤다거나, 옆집의 주인 있는 식사감을 강탈하려 한다. 그것은 범죄다. 그 이전에 해결해야 한다. 


가을사냥을 나서자.


사냥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건 원시적이든 지금이든 미래든 동일할 것이다. 사냥은 일상이 아닌, 특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별함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몸을 다스렸다. 거기에는 몸에 따르는 모든 부수적인 것을 함께 다스린다는 의미가 있다. 몸의 가장 은밀한 구멍들의 청소부터 소독까지 세세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 다음 수컷이 좋아하는 색깔의 속옷, 향기를 포함한 그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자신만의 공간인 화장실에서 이뤄진다. 화장실의 거울만으로 부족해 침실의 커다란 거울이 달린 화장대 또한 충성스런 그녀의 신하다. “여왕폐하, 아름다우십니다. 여왕폐하, 오늘은 아프로디테의 황금거들을 입으셨군요.”라고 정자를 추켜세우며 그녀의 전투력을 배가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사냥감은 대중 교통 속에 있다. 공공시설은 다수가 사용하는 관계로 정신병자, 특히 성 도착자들이 있을 개연성이 크다. 성을 종교시 하고 숭배하는, 성 외에 다른 어떤 가치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맛있는 먹이들. 


사냥터는 전철이었다.  정자는 수원행 전철을 타러 서울역에 갔다. 동네에서 가장 가깝고 멀리 갈 수 있는  자유스런 공간, 서울역에는 화장실조차 타락한 냄새가 난다. 전철을 타기 전 먼저 화장실에 들러 여자들의 지린내를 마시고 그 속의 음란성을 음미한다. 반대편 화장실로 드나드는 남자들의 팽창된 달팽이를 생각하며 팬티를 내리고 워밍업을 한다. 말 그대로 워밍업이다. 옆 칸 년의 방귀소리, 소음순을 가르는 폭포수 같은 오줌 소리와 변기통을 때리는 기관총 소리, 킁킁거리는 암캐의 소리에 이어 화장지을 뜯어 조개를 닦는 소리 그리고 부풀어 듬성한 둔덕 위에 무성한 잡초 비벼대는 소리들에 질 내부가 움찔거리는 기분을 만끽한 후 한번 쓰윽 둔덕을 쓰다듬는 것으로 워밍업을 마친다. 


어떤 넘이 걸릴까?


등산복 차림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전철 안의 자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보험설계사, 다단계 판매원, 직장 구하지 못한 백수 그리고 그들의 고민을 넘어 듬성듬성 비어있는 초록색 낡은 시트가 보였다. 마치 이빨 빠진 노인네처럼 오래된 전철을 상징하는 듯했다. 


산행족들이 전철 안을 소음과 울긋불긋 차려입은 등산복으로 평일의 전철을 주말의 그것처럼 색깔을 바꿔놓았다. 정자는 짧은 스커트를 앞으로 여미며 그들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주변을 슬쩍 둘러보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모바일을 꺼내 들었다. 거울 앱을 꺼내 자신의 요모조모를 살폈다. ‘그래, 됐어. 이뻐. 아니, 좀더 헤프게 보여야 해. 이쁜 것만으로 사냥을 할 수 없어. 이쁜 것은 실탄 없는 매그넘50처럼 멋지기만 하지 아무런 실속이 없지. 난 리볼버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그런 헤픈 구멍을 보여줘야해. 적어도 여섯은 문제 없다는 듯이. 다리를 좀 더 벌리자. 비너스의 거들인지 씨나락인지 오늘은 붉은색으로 입었다. 생리 하지 않는 날, 붉은 팬티는 뭘 의미하는지 꾼들은 다 알거든. 호호.’


정수리가 다 벗겨진 혈색 좋은 할배가 자신의 다릴 흘금거린다. 정자의 더듬이는 그 눈길을 감지하고 게임을 시작해볼까, 머리가 아닌 가슴과 세포로 하는 게임, 결국 풍선 터지듯 터져버리고 말 그런 게임을... 해볼까 생각한다. 


전철은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라의 언어를 토해내며  별 할 일없어 보이는 승객들의 나른함을 달래주고 있었다. 마치 아무런 의미 없는 주례사처럼 왱왱거렸지만 도시의 모습은 이래야만 했다. 누군가 살아 떠들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도시다웠다.


허벅지를 살며시 오무렸다, 폈다 하며 모바일 거울을 통해 영감의 들떤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정도면 팬티가 보일거야. 닫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엉큼한 늙은이. 저 봐, 앞섶이 부풀렀어. 그래도 힘은 좋은 가 봐. 음... 꼴려. 간지러. 아... 저게 날... 한번 먹어볼까. 줄까. 주겠지. 저 영감 팔뚝과 손가락이 장난이 아니야. 오늘은 그냥 당하고 싶어.’


다른 영감들은 함께 한 할매들과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영감의 눈은 점차 당혹감과 기대감 그리고 독립된 공간을 원하는 늑대의 식사 시간처럼 긴장과 경계와 열기가 교차된 음란의 묵시록이 눈가에 읽히고 있었다. ‘아, 저 년, 뭐? 저게 뭐야. 팬티야 뭐야? 아직 젊은 년이 나에게... 흐흐흐 오늘 한 건 하나...’  영감은 부러 앞섶을 슬그머니 쓸어내리며 달팽이가 기지개를 펴고 있음을 정자에게 보려주려 애썼다. 


‘탄탄하네. 난 할배의 깊은 주름이 좋아. 저 손가락 좀 봐. 아... 노가다 출신인가. 그래 날 헤집고 뜯고 물고 빨고 상처내 줘. 내 구멍 모둘 막아줘. 할배... 손가락, 발가락, 아...’ 


수원역을 지나 천안을 향해 갈 때까지 정자는 마주 앉은 할배와 상상의 섹스를 즐겼다. 아프로디테의 팬티는이미 젖어 허벅지까지 개울을 이루었고 일부는 흘러 항문을 더럽히기까지 했다. 곧 내려야 했다. 할배의 앞섶은 관심을 갖고 쳐다보면누구가 알 수 있을 만큼 중력을 이겨낸 놈이 이른 팡파르를 울리고 있었다. 


천안 역사 안에서 정자는 다시 화장실을 찾았다.  물에 녹는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아 둔덕과 계곡에 흥건한 샘물을 닦아내었다. 자신의 이름을 지은 친 할아버지가 어떻게 알았을까 싶다. 이렇게 물이 많은 나를 정자, 우물년이라 지었으니.... 자극을 받은 요도와 방광이 터질 듯 부풀어올라 세찬 물줄기를 쏟아내었다. 옆칸의 누군가가 응응거리듯 울어대며 방귀를 뀌여댔다. 세상엔 희한한 년들이 많다. ‘년들이란 다들 겉과 속이 다른  표준 동물이야. 너나 나나 가릴 것 없어. 그냥 표리부동과 동의어가 여자인 게야. 더러운 년들.’ 


준비해간 아프로디테 팬티로 갈아입자 둔덕이 상쾌했다. 화장실을 오가는 년들의 치맛바람이 화장실 문틈을 통해 들어와 둔덕을 간지럽혔다. 지린내와 음욕이 섞인 공기가 정자의 온몸을 감싸자 정자는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숙명 같은 욕망이 샘처럼 솟아나는 것을 느끼며 화장실을 나왔다. 


할배는 우두커니 천안역 광장의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인조 대리석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필히 정자를 찾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무슨 핑계가 일행과 그를 떼어놓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혼자였고, 곧 둘이가 되길 기대하는 욕정의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욕정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천안역 입구를 나오는 짧은 치마에 긴 머리, 초가을에 어울릴만한 베이지 톤의 얇은 패딩을 투명한 나시 셔츠 위에 받쳐 입은 30대 아니 20대 후반의 여자가 시선에 들어왔다. 할배는, 나이 70이 넘은 할배는 잠시 전 전철에서의 과감한 노출의 그녀가 분명한 것을 확인하고 남자로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용기를 냈다.


할배는 남자가 되었다. 후두암 수술의 흔적으로 목소리는  갈라진 기도를 겨우 통과해 소리를 만들어 거칠고 알아듣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남자는 나이에 걸맞는 인생을 살아온 모양의 이마와 목과 턱 주변에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처럼 거칠고 쭈글쭈글한 주름이 정오의 햇볕 아래 깊은 골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검은 눈썹과 서글서글한 눈매는 한 시절 소리 꽤나 했음을 짐작케 했다. 무엇보다 대지를 밟고 서있는 장대한 키에 들고 있는 등산 지팡이가 마치 광화문의 이순신처럼 멋있어 보였다. 먹을거리는 젊은이에게 있는 것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


“내가 군인었지 뭐요. 그것도 뭐랄까... 좀 어려운 일을 하는...”

“네, 그러셨군요. 어쩐지 포스가 남다르다 했어요. 전 아직 시집 안 간 노처녀, 가을바람 쐬러 나왔어요. 정자예요. 우물 정,  사람 자. 호호... 이름이 야하죠?”

“허허... 정자라... 보통 맑은 정이나. 정숙할 정을 쓰는데... 이름이 좋구먼, 난 대식이야. 대식이.”

“와... 대식, 이름 좋다. 큰 대, 심을 식인가요? 제가 아는 한자가 그것 뿐이라서... 호호...”

“아냐, 심을 식은 맞는데. 대는 큰 대가 아니고 대신할 대 자, 암... 대신할 대. 하하하...”

“이름 특이하다. 대신해서 심는다, 끝내준다. 할아버지.”

“예끼, 이 사람, 할아버지라니 대식이라니까, 대식이.”


천안역의 무인텔은 퇴폐적일 수 있을 만큼 폐쇄적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성인용품 자판기가 놓였고, 그 옆으로는 비어 있는 방을 나타내는 번호와  방값을 계산하는 무인기가 있었다. 대실, 숙박을 선택해야 했고, 콘돔을 자판기에서 빼내야 했다. 물론 두 사람은 그저 해야할 일을 하는 기계처럼 그렇게 자신들을 내버려두었다. 꼴리는 것은 꼴리는 대로 하는 법이다. 엘리베이터 표지판을 따라 복도에 들어서자 비상용 등만이 어두운 복도의 아랫부분에 켜져 있었고, 복도의 중간쯤에서 대식이 정자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답지 않은 소심함이 묻어났다. ‘병신, 이미 니 껀데. 바보.’


 “5”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트 내부는 온통 음식 배달용 스티커로 도배가 되었고 간혹 커피를 배달한다는 여자 모델의 스티커도 눈에 띄었다. 정자는 문득 저 일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건가.


할아버지 대식은 거칠게 정자를 몰아붙였다. 70살 노인이 아니었다. 누가 노인을 노련한 사람이라 했던가. 


대식은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정자를 번쩍 들어올렸다. 정자의 짧은 스커트가 허공에 춤을 추듯 팔랑거리자 정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대식의 목을 감싸 안았다.  이미 물의 요정이 된, 욕정의 포로가 된 과부처럼 정자는 늙은 노인의 입술을 찾아 미친듯이 핧아댔다. 입에서는 거친 남자의 냄새가 넘쳤다. 치약의 냄새가 아닌 남자의 냄새를 맡는 여자는 뜨거운 여자임이 분명하다. 그러자 대식은 거칠게 아프로디테의 황금거들을 찢어 버릴 듯 거친 손을 계곡 속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쑤셔넣었다. 침대는 멀리 있지 않았다. 대식과 정자에게 청결은 그들의 의식과는 전혀 관계 없는 타인들의 영양가 없는 소문 같은 것이었기에 누구도 청결의 노예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오직 서로의 몸과 정신이 원하는 하나 되는 의식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이성을 내치는  ‘씻어, 냄새 나’와 같은 말들은 그들에게 그저 사치와 같은 것이었다.


정자는 죽을 것만 같았다. 대식이 침대 위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의 근원은 군대란, 그것도 특수한 상황에 적응해야만 하는 특수부대의 그것을부터 유래한 것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작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정찬과 같은 의식에 대식은 격식을 차려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욕정이 이끄는 대로 내일이 없는 자의 마지막 분출이었다. 휴화산이 휴지기를 마치고 터질 때 온몸을 내던지는 그것과 마찬가지로.


“아... 여기, 아... 대식 씨, 얼른... 아...”

“더러운 년,  내일 죽을 놈하고 하니 좋아?”

“응, 나도 같이 죽을래. 미친 놈, 젊은 나를 보고 꼴리던?”

“하.... 넌 늙은 날 보고 벌렁거리더냐?”

“아... 날 죽여줘. 거기... 더... 더... 아악! 나 간다아!”

“허헉! 허...어....”


낮은 이미 암막 커튼 아래 죽어버렸다. 죽은 낮의 뒤에는 검은 밤이 이미 다가와 죽음의 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일이든 오늘이든 그들에게는 없었다. 단지 두 사람은 모든 것을 바치는 의식을 ‘지금’ 치르고 있었다. 더하기와 빼기에 익숙한 얄팍한 구멍가게 주인 같은 머리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가슴이 말하고 계곡이 넘치고 음량이 줄줄 짓이겨져 내리는 그런 의식의 낮과 밤을 보냈음을 세상에 증거했다.


‘할배는 지금 뭐할까? 죽었을까? 그래, 그럴지도 몰라. 할배는 내일이 없는 특수부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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