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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하나 되기

이 시간이면 아마도 정자가 아는 어떤 사람도 깨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정자의 시간에 불청객이 끼어들지 않는 유일한 시간대,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 세상과 하나가 되려 하는 정자의 노력을 본다. 사실 이미 정자는 세상과 하나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에서 그녀의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 것이다. ‘노력’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누군가가 선택한 발버둥의 한 모습이니까.


일상이지만 매일 새로운 것과 맞닥뜨리는 정자는 그녀가 인식하고 인지하는  모든 것에 생경함을 느낀다. 그것 뿐 아니라 정자가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는 대상, 어둠이 물러가는 현상, 침묵 속에 들리는 알 수 없는 귀 울리는 소리, 자신의 집 뒷산에서 우짖는 이른 아침을 깨우는 까마귀 소리와 같은, 어제도 있었지만 오늘 역시 신비할 수밖에 없는 현상들에 정자는 감응한다. 그녀는 매일 새로 태어나는 신생아와 같다.


공항으로 내려 서는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린다. 저 안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공항에는 누가 마중나와 있을까. 처음 오는 사람도 있읋까. 정말 쓸데없는 생각들이 그녀의 뇌를 장악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것이 정자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며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 끼적이게 되는 영감을 낚아채는 것, 영감사냥꾼, 정자다.


누군가 세탁기를 살려 놓았다. 정자는 그러지 않았는데. 헉! 저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혹 사람의 시체, 멋진 남자의 시체. 나의 팬티를 누군가가. 온갖 잡동사니들이 자신의 머릿속을 밀고 들어온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엉뚱한 생각이나 뜬금없는 짓거리들은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한 마디로 정자의 사고와 행동은 사차원 혹은 오차원 정도 되어도 별반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 나를 짓이겨 주신 분, 저 세탁기처럼 당신은 멈추지 않았어. 내가 숨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어. 오직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나를 밀어부치기만 했어. 당신은 롤링과 피칭 보다 머물러 회호리가 되길 원했지. 난 그저 애닳아 미쳐버렸고. 세탁기 같은 넘, 내 할아버지, 하고 싶다. 난 하나였지. 절대 둘이 아닌 세상과 하나, 할아버지와 하나, 나와 하나, 내 음란함과 하나, 오늘 새벽 누군가 돌려놓은 세탁기 와도 하나, 그 속의 멋진 남자와도 하나. 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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