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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시상식

심장이 두근거리고 두려움이 몰려온다. 아드레날린이다. 내 원시의 먹잇감을 앞에 두고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흥분했던 그 버릇이 21세기 이 순간에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늑대를 잡지 않으면 내가 죽었을 그 당시, 나의 몸은 잘 벼린 칼과 하나가 되어 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늑대 역시 한갓 인간인 주제에 자신에 대항하고자 하는 앞의 동물이 가소롭지만 그래도 맘을 놓을 수는 없다. 이곳은 야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 먼 먼 원시의 어느 깊은 산골에서.


파이터는 시작종이 울리기 전에 싸우지 않는다. 단지 앞으로 있을 싸움을 대비할 뿐이다. 이미 훈련은 끝났다. 이제는 내가 상대를 두려워하는 것만 남았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죽을 것 같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온다. 아드레날린이다. 아드레날린은 오로지 승자와 패자를 필요로 하는 승부사의 베아트리체. 극도의 공포감과 그것을 극복한 후의 극치감, 자유, 행복감 그리고 존재에 대한 확신과 믿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 그 반대의 경우 죽음이다.


대상을 받았다. 모래톱에서. 소설은 그렇게 나를 사회로 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시상식이 두려웠다. 너무나 두려워 시상을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정은 몸의 신경세포를 통해 나의 일상생활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잠을 청할 때도. 어떻게 수상소감을 말해야 하지, 가 나의 두려움의 본질이었다. 난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어, 내 목소리는 떨려서 남들이 모두 나를  바보라 생각할 거야. 난 정말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가. 내 공포는 간헐적으로 이성적 사고를 수용하려 했다. 두려움의 본질은 물질이고 그 물질은 최고의 행복을 선사하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대가 있어야 할 때, 그것이 물리적 대상이든 지적 대상이든 불문하고 두려움은 대상에 의해 생겨나는 것임을. 수영 선수가 스타트 라인에서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통제하는 것, 복서가 상대의 눈을 응시하며 무심한 전의를 다지는 것, 불의의 사고로 죽음 직전에 몰렸을 때 몰려오는 두려움 너머 알 수 없는 편안함, 과 같은 것들이 한 고비를 넘어야 만 하는 과정으로써, 누구나에게 있고 누구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강한 자극의 섹스나 자극적인 향신료가 가미된 음식이 더 큰 쾌락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 나는 두려움에 이성의 싹을 틔워 나를 안정시켜갔다.


오늘 시상식, 여덟 명의 수상자들 중 소설 부문 대상인 내가 당연 주인공이었다. 가슴이 요동치는 것이 가끔 느껴지기도 했지만 난 그것이 자연현상으로 인지했다. 그리고 곧 사라질 것임을 믿었다. 그러자 수상소감도 담소하는 순간순간에도 난 목소리 떨림 없이 대상 수상자로서 격을 지킬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발표공포증을 극복하는 순간이었다. 두려움이 없는 일상은 기쁨도 크지 않음을 알았다. 번지점프대에 선 나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뛰어내릴 것이다. 그것으로 나는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을 알았기에. 세상은 두려움 천지이다. 그 두려움을 즐기는 자만이 주체적인 자아로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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