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랑 시운이 오빠랑 준영이 오빠랑요. 왜 이렇게 잘해줘요?”
“어?”
“너무 잘해줘서 떠나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나중에 떠나야 되면요. 그럼 슬프잖아요. 너무 잘해주면요. 나중에 떠날 수가 없잖아요.”
“안 떠나면 되잖아.”
“글쎄.”
“왜 떠날 생각만 하지?”
“...”
“이유가 뭐야?”
“내가 떠나지 않으면 상대방이 날 떠나가니까.”
-----
“제기랄.”
그애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내가 눈으로 확인한 것보다 더 먼저 알아챈 모양이었다.
“왜 그래?”
“화장품 냄새.”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명이 우리 탁자로 다가왔다. 준영이 형이랑 시운이는 우리 앞에, 미연이는 내 옆에 앉았다.
“너 얼굴이 왜 그래?”
“...”
“이쁜아, 너 얼굴이.”
“--!”
그애의 조용한 욕설에 시운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애는 한참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나 먼저 갈게.”
“야.”
“저 여자 올 땐 나 부르지 마.”
“...”
그애가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나갈 수는 없었다. 미연이의 손이 그애의 손목을 잡아서였다.
“너 지금 누구한테 욕했지?”
“...”
“대답해 봐.”
“놔.”
쫘-악!
그애의 얼굴이 돌아갔다. 그애가 손을 올려 뺨에 댔다. 하지만,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뭐야.”
준영이 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그애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괜찮아?”
“...”
“정아.”
“...”
“정...”
뺨을 만지고 있던 그애가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난 그애의 눈빛을 봤다. 허무한,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눈빛. 그래서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파 보여서, 아니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마치. 마치 일상이라는 듯이.
-----
“거기서 전화가 왔어요.”
“...”
“개학하기 전에 오라고. 꼭 오라고 했어요.”
“...”
“그런데. 가기 싫어요. 진짜요. 진짜 가기 싫어요.”
“...”
“어떡해요. 가야 되면 어떡해요.”
“정아.”
“제발. 제발 벗어나게 해 줘요. 제발.”
그애의 절규가 아프게 들려서, 그래서 어떻게 해줄 수 없었다. 너무 아프고 너무 안쓰러워서,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그랬다. 곧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아서.
-----
“그만큼 미라가 형을 아낀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
“...”
“난 잘 모르지만 미라 보기만 해도 과거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아. 그냥 보면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르는 게 정말 많은 아이거든. 근데 눈치가 빨라. 그렇다는 건 눈치를 보며 자랐다는 거잖아. 그래서 형한테 숨기고 싶은 게 아닐까? 여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자신이 비참했던 일은 보이고 싶지 않아 한다고 형수가 그랬거든. 미라도 그런 게 아닐까?”
“...”
“동균이란 사람이랑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라가 죽였다고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난 형이 알기 전부터 미라가 그 사람을 죽였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근데 형은 몰랐잖아. 나보다 형이 더 중요했으니까 형한테는 숨겼던 것 같아. 어떻게 보면 그건 미라가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을 거잖아.”
“...”
“그래도 형은 행복한 거야. 미라한테 사귀자고 해서 거절당하진 않았잖아. 난 형 덕분에 말도 못 꺼내봤는데.”
“넌 항상 옆에 있잖아.”
“형이 모르는 모양인데 사람을 경호한다는 거 그거 쉬운 일 아니야. 특히 미라는 더 그래. 쉬운 일 절대 아니야. 병원에 데리고 갈 때마다 때려치우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나중엔 오기가 생기게 만들어 버리거든. 미라는 그래.”
“...”
“미라는 사람을 잘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안 그래.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아니거든. 더구나 병원은 미라가 세상에서 제일 가기 싫은 곳 2순위라고 하더라. 병원에 데리고 갈 때마다 난 온종일 미라 옆에 붙어 있어야돼. 화장실에 갈 때면 다른 여자애 하나 불러서 미라 감시하게 하거든. 그거 쉬운 일 아니야.”
“그래.”
“형은 행복한 투정을 하는 거야. 형이 가자고 해서 미라가 병원을 안 가진 않았잖아.”
-----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과거가 많은 아이 미라.
새롭게 생긴 여자친구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성호.
사랑하지만 경호원으로서, 동생으로서 미라를 봐야 하는 한국.
미라의 엄마이자 친구이자 아빠인 준영.
이들이 만들어가는 가슴 아픈 이야기.
홍보합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