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간 장르소설 읽는 것을 그만두었는데, 무슨 발작이 일어났는지는 몰라도 고3 수험생이 된 지금 갑자기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특정한 한 소설을 읽었는데, 초반엔 전개가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정말 글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을 저도 알 수 있더군요. 이 소설이 조아라에서는 상당히 인기가 많던 것을 생각해보니, 뜬금없이 '이런 것이 바로 장르 소설의 한계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한담으로 어떤 글이 올라왔던 적이 있습니다. 장르 소설이 순수 소설에 비해 소위 꿀릴 것이 없는데, 왜 장르 소설이 전문가들에게 무시받는 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뭔가 이런 글을 '써보고 싶기도' 해서 조금 끄적여 봅니다.
1. 작가의 전문성.
대부분의 장르 소설 작가들은 소설 집필을 취미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만은, 대개 그렇죠. 여기서 다시 한 번 순수 소설 작가들과 차이가 납니다. 순수 소설 작가들의 작업 환경과 장르 소설 작가들의 작업 환경부터가 다른 것이죠. 애초부터 소설 집필을 직업으로 삼는 이와 부업으로 삼는 이와의 수준은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순수 소설 작가들은 시점, 어조, 작가의 개입 등등 여러 요소들을 모두 도입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잘 표현하려고 합니다. 반면, 대부분의 장르 소설 작가들은 설명과 묘사 위주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혹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쉽게 말하면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문성에서 비롯되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입니다. '기술'의 부족에 의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치명적인 경우가 있으니, 바로 '사정'입니다. 흔히들 많은 작가님들이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일찍 완결을 낸다.'고 말합니다. 전업과 부업의 차이가 결국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대해 가져야 하는 책임감까지도 무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반드시 작품의 완성도와 연결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많은 장르 소설들이 용두사미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2. 장르 소설 자체의 한계.
독자들이 장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재미에 있습니다. 즉, 장르 소설 자체는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죠. 이 재미란 독서의 즐거움이 아니라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그래서 겪어 보고 싶은 세계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이겠지요.
어떤 작가들은 이 소설을 쓰면서 '인간의 욕망을 철저히 해부해보고 싶었다.' 내지는 '인간미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 했다.'라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는 장르 소설의 인기와 재미에 편승하려는 의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만약, 작가가 뭔가 자신이 표현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는 반드시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글을 써야할 것입니다. 그게 더 호소력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무협지에서 누구누구 회의 삼류 무사들이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도륙하고 강간하고 납치하는 장면이 매우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떤 소설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명품을 위하여 사람까지 죽이는 한 여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판타스틱 개미지옥) 두 사례 모두 인간의 욕망과 비인간성을 그리고 있습니다. 과연 독자들은 어떤 글을 읽고 '정말 인간이 가지는 욕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라는 느낌을 더 잘 받을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현대 사회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예는 아무리 묘사를 잘 한다한들, 결국에는 무림의 모습일 뿐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다.
뭔가 하나 더 쓸려고 했는데 잘 생각이 안 나는군요.-_-; 쓰다보니 장르 소설을 너무 비하하고 순수 소설은 극찬하는 글이 되어버렸는데,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장르 소설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이 투영되었다고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결국에 장르 소설이 하나의 진짜 소설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장르 소설 작가분들의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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