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래에 햇살님이 재미있는 의견을 발의하셨습니다.
리얼리틱한 판타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던져 볼 만한 질문이네요. 그런데, 좀.... 문제를 제기하신 분 부터가 잘 못 단추를 꿰고 계신 것 같습니다 ^^
흔히 알고 있는 중세의 갑옷. 검의 베기가 통용되지 않는 플레이트 메일 급의 갑옷이 언제부터였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혹은 검의 베기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갑옷이 어느 정도부터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17세기까지만 해도 중세 서양의 금속제련술은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검도 성글고, 입고 다녀야 하는 갑옷은 더 그렇죠. 전투를 해야 하는 전사들의 입장에서는 풀 플레이트 메일은 인간이 입고 다닐 물건이 아닙니다. 좀 세게 치면 툭툭 쪼개지는 어설픈 제련기술 때문에 갑옷은 일부러 두텁게 만들었죠. 두터워지면 당연히 무거워지죠. 십자군 전쟁으로 금속제련술이 발달하기 전 까지, 몸 전체를 가리는 강철 갑옷이란 존재하지도 못했습니다. (존재 하기야 했겠죠. 요는 그걸 입고 전장에서 싸울 수 있는 인간이 없다는 거지만)
흔히 말하는 다마스커스 강철. 강철과 연철의 조합으로 아롱아롱 지는 무늬를 만드는 철의 배합. 이 기술의 전래와 수없이 이어진 전쟁 때문에 서양의 기사들은 비로소 <얇고 가벼우면서도 단단한>갑옷을 입게 된 거죠.
중세시대의 갑옷을 살펴보자면, 클로쓰 메일(천갑옷) 라이트 레더(얇은 가죽갑옷) 하드레더(강화된 단단한 가죽갑옷) 정도가 당시 일반적인 전사나 용병들의 갑옷입니다.
체인메일. 링메일. 쯤 되면 이미 빠방하게 나가는 1급 전사고요. 하프 플레이트 정도만 입어도 엄청나게 장비가 좋은겁니다.
풀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전장에서 설치는 기사는 말 그대로 돈 덩어리거나 인간 흉기죠. 요즘 세상으로 치자면 보병과 탱크의 가격 차이를 가져옵니다. (자유 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기량이 있다는 가정하에) 즉. 검을 잘 방어할 만한 무장을 갖춘 기사나 용병? 별로 없습니다.
무협에서는 검을 병중지왕이니 만병지존이니 하는 말로 말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말씀 하신 바 대로 검이 겉멋 부리는 데만 쓸만하다면 왜 수많은 무협에서는 검을 든 사람들이 나타날까요? 정말로 환타지만이 아니라 무협 소설 작가들 역시 전부 개념 이탈해서 그런걸까요?
저는 다르게 봅니다. 활용하기에 따라 검은 최상의 병기로 되기 때문이라고. 특히 판타지의 배경으로 많이 쓰이는 중세 유럽의 검은, 중원으로 대표되는 중세 중국의 검과도 또 다릅니다.
중세 유럽의 검은 대개 중국의 도와 검의 중간형태에 가깝습니다. 무게. 크기. 활용도등 모든 면에서 혼합형인 겁니다.
보통 검. 하면 일반적인 크기만 생각하시는데, 사람마다. 전장마다 크기가 다 제각각입니다. 기병용 검 세이버. 모 환타지 때문에 엄청 잘 알려진 바스타드. 너무 커서 말 그대로 <무쟈게 긴>이란 뜻으로 불리는 롱소드. 날이 엄청 넓어서 반쯤 방패로도 쓸만한 브로드 소드. 고대 로마때부터 집단 병진의 최전선에서 쓰인 그라디우스. 그리고 수많은 여행자와 병사들이 가장 많이 활용한 숏소드.
중국에도 협봉검이니, 귀두대도니 환두대도니 검과 도를 지칭하는 말이 수십 수백 종류가 있는데, 왜 서양의 검. 환타지에서 <용병들이 쓰는 검> 이라고 하면 하나같이 길이 1미터 30가량의 똑같이 생긴 검을 상상하시는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날이 파도처럼 삐죽삐죽한 플람베르그. 말 그대로 양손으로 잡지 않으면 들지도 못하는 투핸드소드(독일어로 쯔바이핸더). 둥글게 휘어진 시미터. 앞쪽으로 부메랑처럼 툭 꺾여 무기 파괴에 좋은 쿠쿠리. 실제로 수 많은 검들을 부러뜨린 소드 브레이커. 송곳처럼 갑옷 관통에 최적인 레이피어. 검이면서 방패처럼 적절히 활용하는 메인거쉬. 모두가 다 넓게 보자면 <판타지의 검>에 해당합니다.
이런 다양한 검으로 왜 갑옷을 못 벤다고 생각하십니까?
충분한 무게와 타격을 살리면 갑옷 채로 쪼갤수 도 있습니다. 많이들 나오는 퓨전 환타지 처럼 검기 펑펑 날려서가 아니라, 무게와 속도만 충분히 조정하면 갑옷 . 충분히 벱니다. 혹은 금속 자체를 쪼개거나, 그도 아니면 우그려 뜨려 버립니다. 쫄바지만 입어도 갑갑한게 사람의 몸인데, 입고 있는 강철 갑옷이 우그러지고 비틀리고 깨지면 그걸 입고 있는 사람의 불편함은 어느정도일까요. 공격받은 쪽은 움직임에 극심한 장애를 가져옵니다.
요즘의 기술. 즉. 가볍고 단단한 스테인레스 강철을 써도 그당시의 검으로 만들면 무게가 2-3킬로그램 정도 나갑니다. 중세시대에는 더 나갔습니다. 충분한 무게와, 검이 휘둘러지는 속도와, 그리고 몇번 칼질 좀 해본 솜씨가 결합된다면, 갑옷을 입었다고 해도 사람 잡는건 쉽습니다. 1년만 단련해도 사람의 맨손으로 송판을 격파할 수 있는 법입니다. 게다가. 레이피어같은 뾰족한 검으로 찌르는 건 어떻게 하고요.
당시의 철갑은 실제로 근접전에서 검을 막기 위한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갑옷은 손쉽게 사람을 상해하는 <화살>을 막기 위한 것이었죠. 롱보만 되어도 그 유명한 풀 플레이트 메일을 뚫습니다. 아쟁쿠르 전투라는 걸 찾아 보시면, 영국의 장궁병들이 철갑으로 무장한 프랑스 기사단을 캐관광시킨 걸 알 수 있습니다.
햇살님의 의견은 분명히 재미있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나름 분명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판타지라는 글의 배경이 너무 규정이 되면서 다소 정황에 안 맞는 세계가 많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조금 더 자료를 찾아 보시고 반론에 대한 역 반론을 제기할 만큼 알게 되신 다음에 이런 말을 하셔도 좋을거라고 여겨집니다. 판타지를 쓰는 작가들이 바보는 아니거든요.
탱알.
Comment '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