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력에 대해.
제가 뭐 전문 문창과 교수도 아니고 전문 작가도 아닌 입장이기 때문에 짧게, 아주 짧게 '필력'이라는 것에 대해 말을 해 보겠습니다.
(제가 글을 써야 홍보를 하려고 기다리시는 분들이 홍보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요.ㅎㅎㅎ)
혹시나... 아니 당연히 이견이 많으시겠지만, 그저 개인의 부족한 생각이겠거니 하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필력이라고 제목을 썼지만, 필력이라기 보다는 필력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는 거죠.
이 글은 글을 접을까 말까 하시던 분에게 댓글로 썼던 걸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글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문장력이 화려해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글.
이런 글은 번역서로 만나보기는 힘들고 국내의 소설가나 시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흠모하는 소설가로는 박상륭선생님이 계시고, 시인으로는 백석이 있습니다. 박상륭 선생님은 제가 흠모해 마지않아 그분의 "죽음의 한 연구"를 필사를 하기도 했었죠. 덕분에 한동안 제 글이 박상륭 선생님의 습작처럼 보였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그 색깔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구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문장은 보잘 것 없지만, 글 자체가 좋은 글이죠.
사실 이런 글은 무척 드뭅니다.
글이란 것을 저자와 독자의 매개체로 산정한 이상, 문장이 뒤떨어지면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작가들이 한 문장을 두고 그리 고심하고 또 고심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그렇다고 이들의 문장력이 후지다는 것은 아닙니다) 카프카와 까뮈, 그리고 시인으로는 기형도와 보들레르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대가가 되는 경우는 후자의 경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오지 않은 것을 단순히 번역의 문제로 치부하며(이런 경우 그들의 논리는 매우 편협하죠) 자위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세계에 통용될 사유를 다루는 작품과 작가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차원적인 담론을 다루는 것은 앞서 말한 작가의 종류에서 후자에 속하죠.
이렇게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괴리되는 이유의 주된 원인은 현재 한국 문단의 자위적 행태에 있습니다. 문단권력을 형성하는 폐쇄적 집단이 "소설은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헛소리를 하며 글을 자르고 꼬매 버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죠.
극단적인 예를 보아 현재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글들의 80%이상이 문예창작과 출신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정석적인 소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형식이 존재하면 그 외의 것은 부정되므로 발전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을 조금 알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지만, 그들 역시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기득권이라는 것이 그렇죠.
그런데 간혹 문피아의 한담이나 비평란을 보면 마치 문장이 글이 전부이며, 문장력=필력이라는 등식이 성립 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습니다.
사실 문장력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거든요.
물론, 아주 기본적인 문법은 갖추어야 겠죠.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아쿠튼 짧게 쓴다고 해 놓고 말이 길어졌지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너무 문장력에, 혹은 필력이라고 생각되는 그 어떤 것에 상처받고 힘들어하지 마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글에는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그리고 문장력이야 한두 달이면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은 웬만하면 다 표현 할 수 있을 만큼 끌어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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