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이처럼 가볍게 쓰여서는 안 됩니다.
킬링타임 Killing Time.
한국어로 풀자면 시간 죽이기, 혹은 시간 때우기 정도 되겠습니다.
장르소설(이하 소설로 중략)이 킬링타임으로 전락하는 것은 대단히 비통한 일입니다.
독자들이 말하는 것조차 막아야 할 판에, 작가분이 스스로 ‘내 글은 킬링타임용이야’ 라고 말하는 걸 봤습니다.
지금부터 말하겠지만... 그 말은 곧 ‘난 오늘도 그저 문자의 나열인 쓰레기를 양산해냈지.’ 라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 때우기라는 것은, 정말로 할 일이 없을 때나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치가 있는 일이 생긴다면 결코 하지 않을 최후의 수단이라는 겁니다.
물론 누구는 소설 읽는 일이 TV 보기보다, 혹은 게임보다 가치가 있을 수는 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 사람 내에서는 가장 가치 없는 일입니다.
내 소설은 킬링타임용이야, 내 소설을 읽는 것은 네게 있어서 가장 가치가 없는 일이 될 거야. 그것을 확신할 수 있으니 나는 내 소설을 킬링타임용이라 자신있게 부르겠어.
이 소리를 하신 겁니다.
가장 가치가 없는 일을 하는데에 있어서, 8천원이나 주고 책을 삽니까?
800원 주고 대여점에서 빌리는 것도 안 합니다.
스캔본이나 텍본이 유행한 이유가 ‘학생들의 궁핍함’ 때문도 있지만,
소설을 읽는 행위가 가장 가치가 없는 일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돈을 주고 사거나 빌려야 하는 이유조차 없기에 그렇게 된 것도 있습니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킬링타임용이라 부른다면 그건 제 살을 깎아먹는 겁니다.
반대로 독자가 특정 작품을 킬링타임이라고 부른다면?
그것 역시 제 살을 깎아먹는 겁니다.
세계명작들이 괜히 명작이 되었을까요.
그 작가들이 제 아무리 엄청난 의미와 교훈을 심어놨다고 해도,
그것을 킬링타임의 목적으로 보는 독자들이 ‘재미있네.’ 하고 덮으면 끝장입니다.
그 내면에 담긴 의미와 교훈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겉으로 드러난 재미만 보고 책을 덮어버린다. 그러면 그 어떠한 작품도 명작이라 불릴 수가 없습니다.
단지 재미만으로 세계 top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마다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이 나라의 재미가 저 나라에도 통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정녕 세계를 호령하는 명작이 되려면 작가의 메세지나 교훈이 필요합니다.
허나 독자가 먼저 그것을 전혀 간파하지 못한 채 ‘킬링타임’의 목적으로 보고 덮는다?
“이 소설 어때요?”
“어, 그거 킬링타임용으로는 읽기 좋더라.”
이 말은 곧, ‘나는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주고자 하는 그 어떠한 메시지도 교훈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겉으로 드러난 재미만 읽고 책을 덮는 저급한 안목을 가진 독자야.’
라는 소리밖에 안 되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작가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소설을 킬링타임용이라 주장하는 시점에서, 아무런 의미와 교훈이 담겨있지 않으니 독자들이 제 아무리 안목이 높아도 알아볼 수 없는게 당연하기는 합니다만.)
작가의 수준을 위해서도, 독자의 안목을 위해서도, 그리고 장르소설의 부흥을 위해서도 [장르소설=킬링타임]이라는 공식은 깨져야 합니다. 정말로 개인의 사상 중 가장 가치가 없는 일에, 800원 주고 보기도 아까워 다운 받아 보게 하는 이유를 지닌 말이 ‘킬링타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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